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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산과 둔덕산행 (펌) 스크랩 대야산(930.7m)- 경북의산 2006.05
먼산가랑비 추천 0 조회 63 07.09.06 23: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대야산  930.7m 탐구
경북 문경 2006.05 월간mountain
글 김선미 기자

 

 세속에 흔들리지 않는 큰 아버지의 산
세속을 떠난 사람이란 말이 오히려 속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도(道)를 닦아서 현실의 인간 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산다는 상상의 사람’이란 본뜻보다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이 고단한 노동의 대상이었던 나무꾼에게 신선의 세계는 넘볼 수 없는, 아니 넘보아서도 안 되는 금기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선유동(仙遊洞) 역시 민중과는 거리가 먼 사대부들의 풍류의 공간 아니었을까. 이름난 계곡마다 전각 전시장 마냥 바위마다 제 글씨 새기기에 급급했던 흔적이 굽이굽이 남아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 나라에 선유동이란 이름 붙은 곳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산 하나에 선유동계곡을 안팎으로 품은 산은 대야산뿐이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대야산 동서로 양쪽 산자락 밑에 내·외선유동을 구분해 적어 놓았다.
백두대간 동쪽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의 선유동은 내선유동, 서쪽 충북 괴산군 청천면은 외선유동이다.
문경 쪽이 안이 된 것은 백두대간이 이 고장을 감싸 안고 굽어, 남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괴산 쪽 들머리인 삼송리 농바위 마을에서는 대야산 서쪽으로 이웃한 중대봉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산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백두대간을 척추동물의 등뼈로 보면, 대야산은 하중을 받는 자리답게 단단한 암릉들이 많이 모여 있는 구간이다.
그래서 대간 종주자들에게는 그 등마루가 오르내리기 힘겨운 곳으로 악명이 높다.
지도상 거리만도 110km에 이르는 문경 구간의 남쪽 끝자락이 희양산(999.1m)을 지나 대야산~조항산(951m)~청화산(984.2m)으로 이어져 속리산(1058m)으로 뻗어나간다.
대야산의 많은 부분이 속리산국립공원 안에 속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야산의 바깥 선유동인 괴산의 선유구곡은 쌍곡구곡·화양구곡과 함께 속리산국립공원의 이름난 관광지들답게,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모여든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곤 한다.
문경의 선유동은 용추폭포의 유명세 때문에 선유동보다는 흔히 용추계곡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야산 안팎의 물줄기는 똑같이 선유동이란 이름의 계곡을 따라 신선의 마을에서 사람의 마을로 흘러내려간다.
그러나 본디 하나의 산에서 태어난 물이 동쪽과 서쪽의 비탈을 따라 나아가는 길은 멀고도 멀다.
산이 백두대간의 한 식구이니 안팎의 물줄기가 이 땅 위에서는 다시 만날 재간이 없는 것이다.
대간 동쪽 문경 선유동의 물은 희양산에서 발원한 가은천과 합쳐져 영강으로 해서 낙동강으로 가고, 서쪽 괴산의 물은 한강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문경 사람들은 대야산에서 ‘서쪽으로 오줌을 누면 서울사람, 동쪽은 부산사람 입으로 들어간다’며 제 고장 산을 아끼는 마음을 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로 북상하는 백두대간 길이 한강과 낙동강의 수계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은 속리산부터다.
대야산의 물줄기가 몸을 섞는 영강이 경북 상주군 화북면의 속리산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야산과 속리산은 굳이 국립공원의 경계가 아니더라도 한 핏줄인 것이다.
산 아래 계곡이야 예부터 이름난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였지만 높은 산마루의 빼어난 풍광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면서부터다.
변변한 절 하나 없던 산이니 외지인들에게는 오랜 세월 단단히 빗장을 지르고 있던 셈이다.
용추계곡 들머리 벌바위마을에서 대간 종주자들의 발이 되고, 주린 배를 채워주던 ‘돌마당식당’이 외딴 골짜기에 처음 문을 열고 산지도 올해로 10년째인데, 지금도 겨우 네다섯 집 정도가 장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여름 한철 계곡을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어서 속리산국립공원에 걸쳐 있으면서도 요란하지 않은 산이다.

 

험하기로 이름난 백두대간길의 하나
이 산 아랫도리 물가에는 민물고동인 다슬기가 많이 사는데 괴산 쪽에서는 ‘올갱이’가 되고 문경으로 오면 ‘골뱅이’가 된다.
산줄기는 다슬기 삶은 물처럼 짙은 초록의 물줄기만 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풍속을 가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그 높은 삶의 장벽을 넘어 충청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대야산의 고갯마루는 남쪽 조항산과 사이에 고모치와 밀재, 북쪽으로 불란치재와 버리미기재가 있다.
옛날 용추계곡 끝에 사기막골이 있어 도자기를 팔러 다니는 보부상들의 발길이 잦았던 고개들이다.
그중 버리미기재는 아홉 번 시집을 가서 낳은 자식들을 ‘벌어먹이던’ 팔자 센 주막집 과부의 전설이 전해지듯, ‘버리미기(벌어먹이다의 사투리)’를 위해 넘나들던 삶의 고개들이다.
대야산 북쪽으로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문경새재가 양반들의 길이었다면 대야산 주변의 고개는 그야말로 민중의 고개다.
지금은 버리미기재로 922번 지방도로가 산을 넘고, 고모치재 깊숙이까지도 도로가 파고 들어왔다.
신선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아니라 이 산에서 돈이 되는 돌덩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닦은 길이다.
대야산 지도를 들여다보면 안팎으로 유독 채석장과 광산 표시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이야 광산은 모두 문을 닫았고, 깍둑썰기 한 두부마냥 잘려나간 돌덩이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채석장 역시 한창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무꾼이야 지게에 질 수 있을 만큼 나무를 베어내지만, 채석장에서 잘려나간 돌덩이는 트럭에 실려 쏜살같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그런 사람들에겐 신선이 바둑을 두던 바위들이 모두 돈으로만 보였을 테니, 느린 걸음으로 풍경을 눈에 담아 두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산의 뼈와 살을 떨어져 나와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되고 고급 바닥재가 되어 사람의 마을에 주저앉았다.
그걸 바닥에 깔고 사는 사람들은 본디 그 돌이 산의 몸뚱이었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밟아 대야산을 지나간 사람들조차 채석장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생활 깊숙이 산의 뼛조각이 흘러들어왔음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문경에서 대야산으로 들어오는 가은읍에는, 예전 문경 경제를 주무르던 은성광업소 자리에 세워진 석탄박물관이 ‘시절 좋은’ 그때를 기록해 놓았다.
이곳 역시 산의 가장 깊은 속살을 캐다 ‘버리미기’한 흔적이다.
그곳에는 “광을 낸 구두보다 탄가루 묻은 검은 신발이 인기가 많았다”는 시절, 젊은 날을 막장에 바친 광부들의 폐를 유리병 속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석탄마냥 검게 굳어진 진폐증 환자의 폐다.
우리의 추운 겨울을 데워주고 기간산업의 모터를 돌려주었던 밑바탕에 남은 상처. 높은 산에서 내려와 꼭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도끼자루 썩을까 두려워 신선놀음에 눈길 한번 제대로 줄줄 모르던 나무꾼마냥 고달팠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산을 다시 보게 한다.

 

뼈와 살을 깎은 돌로 ‘버리미기’ 하던 산들
신선놀음은 도끼자루 손에 쥘 일 없는 양반들의 놀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물가 바위마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흉내 내 아홉 물굽이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데 열을 올린 사람들이 즐겼을 흔적은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로 입장료를 받는 관리사무소가 있으면 암각 된 글자마다 찾아내 안내판을 붙여놓고 상품화시켰을 것이다.
문경 선유동은 옥석대(玉潟臺), 난생뢰(鸞笙瀨), 영귀암(泳歸岩), 탁청대(濯淸臺), 관란담(觀瀾潭), 세심대(洗心臺), 활청담(活淸潭), 영차석(靈 石), 옥하대(玉霞臺)라는 이름이, 괴산에는 퇴계 이황이 명명한 선유동문(仙遊洞門), 경천벽(擎天壁), 학소암(鶴巢巖), 연단로(鍊丹爐), 와룡폭(臥龍瀑), 난가대(爛柯臺), 기국암(基局岩), 구암(龜岩), 은선암(隱仙岩)이란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유학자들의 신선놀음보다는 역사를 통해 현실을 반추하는 드라마에 쏠리는 탓인지, 문경 선유동 계곡에는 용추폭포 앞에 <태조 왕건> 촬영장소란 표지판만 서있을 뿐이다.
문경에는 새재로 가는 옛길을 복원한 곳에 세운 왕건 드라마 촬영장이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고, 지금은 석탄박물관 옆에 <연개소문> 세트장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관광지의 안내판이란 것도 사람들 관심을 끌기 위해 과대포장 하는 경우가 많으니, 오히려 아무런 정보 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차라리 계곡을 따라 바위 속에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호젓하게 걸어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신라 최치원의 글씨라는 ‘선유동’과 조선말 이완용이 쓴 ‘학천’까지 다양한 필체를 감상하는 것 또한 색다른 즐거움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산사람들엔 산행의 땀을 식히는 물소리가 가장 반갑다.
산 아래는 푸른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암, 신선이 금단을 만들어 먹고 장수했다는 연단로, 바둑 두는 신선을 구경하는 사이 도끼자루가 썩어 없어졌다는 난가대, 달그림자가 물 위에 드리워지는 월영대… 산마루에는 책바위, 코끼리바위까지, 기암괴석마다 갖가지 이름이 있다 한들 사람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신선의 세계를 부수고 깎고 캐어내 돈을 만들던 성장일변도의 시대로부터 진일보한 오늘, 이 산자락 주변에는 여전히 돌멩이가 돈으로 보이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산에서부터 굴러 떨어져 물매를 맞고 닳고 닳아 물가에 박힌 수석들이다.
특히 가은읍 구랑리의 오석은 수석시장에서 알아주는 물건이다.
대야산의 정상석 역시 누군가 집안에 3년 동안 고이 모셔놓았던 돌멩이를 제 자리 찾아준다며 문경시산악연합회에 쾌척한 오석으로 만들었다.
벌바위마을의 돌마당식당 주인 역시 젊은 시절 은성광업소에서 번 돈을 모조리 수석에 쏟아 부었는데,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귀한 돌을 용추계곡에 들어앉아서야 겨우 만났다고 했다.
하트 모양 또는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선전하는 용추폭포가 떨어지는 너럭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자연을 닮은 돌을 캐다 제 집 마당 안에 들어앉히는 일보다, 직접 산을 오르내리며 신선의 경치를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낫다고 뒤늦게 깨달은 탓이다.


대야산이란 이름은 그 유래에 대해 정확한 기록이 없다.
대야산의 산문(山門)을 연 절이 있었다면 그럴 듯한 전설이라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이름의 ‘야’자 또한 옛 문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던 것을 1789년 발행한 문경현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야(耶)’자로 쓰고 있다.
어조사 ‘야’는 아버지를 부르는 글자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예수를 ‘야소(耶蘇)’라고 표기할 때 쓰는 글자와도 같다.
‘야소’ 역시 단순히 비슷한 발음을 찾아 쓴 것이라기보다 ‘소생(蘇生)하는 아버지’란 뜻을 담았던 것 아닐까. 그러므로 대야산 역시 ‘큰’ 아버지의 산이란 뜻을 담은 게 아닌지. ‘세속적인 상식에 구애되지 않고, 고통이나 질병도 없으며 죽지 않는다’는 신선의 도를 아는, 큰 그릇을 가진 아버지의 산. 흔히 용추폭포의 모습이 여성의 성기를 닮아 음기가 센 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호사가의 말일뿐. 실제로 그렇다 해도 아버지가 품 안에 어머니의 성정까지 지녔다면 이보다 더 ‘큰’ 아버지는 없지 않겠는가. 그 아버지의 품에 소리 없이 꽃들이 피고진다.
여름철 성수기를 피해 꽃 피는 계곡을 거슬러 호젓한 산길을 오른다면, 아버지의 속 깊은 내면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문경 선유동 계곡의 들머리인 학천정 앞 반석 위에 학천(鶴泉)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완용의 글씨라 하는데, 일제에 맞서 싸우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의병대장 이강년이 태어난 마을에 나라를 판 이가 유람 와서 글을 새기고 갔다.

 

[산행]-봄날 황사도 쓸만할 때가 있다.
벌바위~용추폭포~밀재~정상~피아골~벌바위

전국에 계엄령 같은 황사주의보가 내려졌다.
산행 전날 황사가 덮은 하늘에 걸린 해는 차가운 양은 쟁반 같았다.
영화 <블레이드 런너>처럼 암울한 미래의 태양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고도가 높을수록 희박해지는 대기와 달리 황사는 높이 올라갈수록 농도가 짙어진다.
따라서 황사가 낀 날 산에 오르는 일은 무모하다.
어차피 근대 등산 역시 무모한 출발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마귀가 산다고 믿었던 알프스를 오르던 일이야 ‘불확실한’ 위험이었지만, 해로운 줄 알면서도 황사 덮인 산을 오르는 일은 노약자나 호흡기 질환자에겐 ‘확실히’ 위험한 일이다.
그나마 밤사이 장대비가 쏟아져 공기를 세척한 듯했지만, 하늘은 여전히 부옇다.
벌바위 마을 끄트머리, 산으로부터는 첫 번째 집인 ‘청주가든’ 앞마당에서부터 출발이다.
괴산 선유동에 살면서 매일 버리미기재로 백두대간을 넘어와 문경 선유동에서 ‘버리미기’를 하고 있는 집이다.
입담 좋은 이 집 주인은 용추폭포까지 동행하며 구석구석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길 즐긴다.
특히 하트 모양 용추폭포가 여성의 생식기를 닮았다고 하면 모두가 혹 해서 폭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고 했다.
흔히들 음기가 세면 잠자리가 편하지 못하거나 수련에 방해가 된다는 말은 다분히 여성 비하적인 발언으로 들린다.
음과 양은 어느 한 쪽이 우월한 개념이 아니라, 생명을 만드는 두 가지 다른 기운 일 뿐, 자연계에서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필요충분조건이다.
아무튼 용추폭포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매끄러운 암반 위로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용트림 한 것이라 불리는 흔적이 뚜렷하다.
그럴듯한 전설을 만들어 낼만 한 모양이다.
용추폭포는 용을 두 마리나 낳은 어머니의 자궁답게 신성한 곳이어서 예부터 가뭄이 들면, 이곳에 ‘돼지 피를 뿌리며 기우제를 지내면, 제관들이 산을 다 내려가기 전에 비가 쏟아져 그 피를 말끔히 씻어냈다’고 한다.
밤사이 황사를 씻어줄 빗줄기를 바랬던 우리의 마음에도 분명 하늘이 동한 모양이다.
간밤에 쏟아진 비가 아니더라도 일년 내내 수량이 넉넉하기로 이름난 계곡이다.
용추폭포를 지나 다래골과 피아골이 만나는 곳의 월영대는 술상바위라 불리는 평평한 반석까지 옆에 끼고 있어, 보름달이 뜰 때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이다.
서둘러 높이 오르기 보다는 신발 끈을 풀고 풍류의 속도대로 산을 즐기라고 자꾸 발목을 붙잡는 곳이다.
그래서 실제로 산 아래 용추계곡은 알아도 대야산 높은 산마루의 풍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계곡을 건너 키 큰 조릿대 터널을 따라 고도를 높인다.
우거진 조릿대를 통과한 물소리가 잠잠해진다.
이제는 귀를 씻고 산을 오르는 일에 집중해야할 때다.
소나무 한 그루가 물가에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
키에 비해 뿌리가 짧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지 않는데, 물가 가까운 곳의 나무는 아쉬울 게 없어 뿌리가 얕은 법이라 했다.
“인생에 굴곡이 없는 사람도 물가 나무처럼 쉽게 쓰러지기 마련이지.”의료담당인 남기탁씨의 말이다.
똑같은 말도 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리는 것은 말에도 인생의 무게가 실리기 때문 아닐까. 밀재에 다다르기 전 사기막골이라 불리던 곳에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수풀 사이로 도자기 파편들을 찾을 수 있다.
“예전엔 발밑에서 자그락자그락 소리가 날 정도로 많았어요.”오석윤(문경시 새재산악회 회장)씨의 설명이다.
‘노스페이스와 함께 떠나는 100대 명산’의 1기 지리산 참가자였던 그는 고향의 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대야산 길안내를 자청했다.
그 뿐만 아니라 엄규한·김우진·엄상문씨 또한 문경 땅을 찾은 밟은 사람들이 모두 제집 손님인양 환대했다.
좋은 산만큼 애향심을 북돋우는 게 없다.
산사람들은 오랜 동안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산과 육친적인 유대감을 절로 느끼는 것 같다.

신선은 계곡에서만 놀지 않았다
밀재에 다다르니 바람에 맵다.
바람이 밀고 올라와서 밀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백두대간 길의 쉼터답게 종주자들의 표지기 또한 어지럽다.
이제부터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대야산 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길이 가팔라진다.
“여, 퍼 대고 앉으면 왼쪽 엉댕이는 경상도 덮고, 오른쪽 엉댕이는 충청도를 덮어요.”백두대간이 지역을 가르는 거대한 삶의 장벽이라는 사실이, 문경 사람들의 정감어린 사투리로 전해지니 더욱 실감이 난다.
사투리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대야산 남쪽에 있는 마귀할매통시바위도 이 지역 사람들의 해학이 듬뿍 묻어나는 이름이다.
통시는 뒷간이란 뜻이다.
길이 제 아무리 힘들다 해도 눈이 즐거우면 고생은 반감되는 법.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되자 사방이 툭 트인다.
속 좁은 가슴도 집채만 한 바위 위에 주저앉아 볼 일을 보던 통 큰 할매 마귀가 된 양 시원하게 뚫린다.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대문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도 반긴다.
안팎의 선유동계곡만 알고, 대야산의 높은 산마루에 올라타 보지 않은 사람은 진짜 신선이 놀던 경치를 보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먹구름이 몰려와 사위가 흐려지는데도 대야산의 등마루는 희부연 화강암 때문에 쉽게 빛을 잃지 않았다.
집채만 한 바위를 끌어안고 좁은 바위 턱을 건너야 하는 아찔한 구간 앞에서는 여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남자들은 반가운 듯 손을 건넨다.
시쳇말로 ‘작업 걸기 좋은’ 바위들이다.
문득 언제부터 남녀의 만남이 ‘작업’이란 말로 희화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길이 수월하지 않아 서로 돕고 힘을 보태는 만큼 사이가 돈돈해지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북상하던 대간 길은 대야산 정상부터 동쪽 촛대봉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
반대편 괴산 쪽으로는 대야산과 어깨를 나란히 한 중대봉(846m)이 우뚝 서있다.
대야산 정상을 상대봉이라 부른 것에 견주어 부친 이름이다.
중대봉에 올라야 이웃한 대야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중대봉 아래 농바위 마을은 한때 모 야쿠르트 회사의 광고에 등장한 장수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마을 사람들의 장수 비결은 마을 전체를 덮고 있는 맥반석 지반에서 솟아나오는 물 때문이라고 한다.
정상에 오른 다음 삼삼오오 양지바른 곳을 찾아 도시락을 풀었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
황사도 부족해 난데없는 비까지 길을 막는다.
결국 촛대봉으로 해서 대야산 구간에서 가장 어렵다는 바윗길로 하산하려던 계획 대신 피아골로 발길을 돌린다.
경험이 부족한 초보자들이 많아, 빗속에서 로프를 따라 낭떠러지에 가까운 슬랩 구간을 내려간다는 게 위험하다는 리더의 판단이었다.
뜻대로만 되는 산행은 재미없다.
아쉬움이 남지만, 분명 그것 때문에 대야산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한번의 산행으로 그 산의 전부를 보겠다는 것만큼 오만한 생각도 없을 것이다.
문득 이성부의 ‘내가 걷는 백두대간-황사바람이 쓸만하다’는 시가 떠오른다.
“대낮인데도 해는 흐지부지 떠서 / 어디 아편 맞은 하늘처럼 온통 게슴츠레하다” 그런 황사바람 맞으면서 동서남북이 어딘지도 가늠을 못하는데, 도리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불확실성이야말로 나를 틔우는 첫 번째 힘이다”라고. “하늘도 세상도 모두 한통속인 찌푸림” 속에서 서성이다가도 결국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드는 황사바람이 “쓸만하다”고.실제로 황사는 산성비를 중화하고 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를 막을 뿐더러,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 산악지형의 식물들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체에 해로운 단점만 과대포장 돼 알려져 있을 뿐, 정작 우리는 그 먼 길을 날아 온 모래바람의 본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해마다 봄이면 멀고 먼 타클라마칸과 고비 사막으로부터 어김없이 우리 땅을 찾아오는 손님, 이제는 익숙해진 그를 어떻게 진짜 ‘쓸만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피아골은 밀재로 오르던 다래골보다는 가파르다.
험한 바윗길마다 로프가 매어 있지만 비에 젖은 바위 위에서는 조금만 방심해도 미끄러지고 만다.
하산 길,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이 빗줄기 역시 ‘쓸만하다’고 혼자 중얼거려 본다.
하산로 중간에는 아직까지 얼음과 눈이 남아 있는 폭포가 있었다.
원래 건폭인데 올해 마지막으로 내린 눈발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었다.
세상은 제아무리 봄기운에 흐드러져도 골 깊은 곳에 오래도록 겨울을 품고 있는 산, 그곳에선 풍파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매운 기운이 느껴진다.
산을 통해 인생을 담금질 한 사람들 역시 그런 강인함이 있다.
이번 대야산 참가자들 가운데도 과거 심근경색과 하반신 마비로 꼼짝을 못하던 사람들이 산을 통해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 셋이나 있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산에서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다.
“…오늘 짧은 산행에서 우리 인생사를 느낍니다.
푸르고 맑은 하늘 아래 출발했지만 강한 바람도 만나고 숨 가쁘게 험한 바위를 타고, 정상에 올라 기쁨도 맛보고, 다시 비바람에 추위에 떨다가도 다시 또 맑은 하늘을 맞이하고…. 지고지순한 나의 아내여, 오늘 당신의 고통 뒤에도 맑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며, 당신과 같이 산행 할 날이 빨리 오기를 소원합니다."
병중의 아내에게 띄우는 김영환씨의 편지다.
산에 가는 날이면 으레 서너 사람 몫의 풍성한 도시락을 챙겨주던 아내 덕에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곤 했던 그다.
이제는 그가 아내를 일으켜 함께 산을 오르고 싶어 했다.
피아골을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햇살이 계곡물 위에서 한가롭게 재잘거리는 모양을 보니, 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얼어붙은 폭포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봄이 와도 누구에게나 가슴 한구석에 겨울은 남아 있는 법이다.
때론 그런 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황사가 ‘쓸만해’지기도 하는 것처럼.

 

[대야산 산길과 볼거리]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일대에 걸쳐있는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산으로 북쪽 희양산과 남쪽 조항산 사이에 있는데, 대간 종주자자들은 문경 벌바위마을에서 대야산으로 올라가는 밀재와 922번 도로가 통과하는 버리미기재를 많이 이용한다.
산 전체가 속리산에 버금가는 빼어난 암릉들이 이어져 조망이 좋고 특히 산의 동쪽과 서쪽의 선유동계곡이 유명하다.
문경 선유동은 학천정부터 용추폭포까지의 계곡을 말하며, 특히 여름철 하트 모양의 소를 이룬 용추폭포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괴산은 선유동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한 선유구곡인데, 대야산 등산로와는 직접 연결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야산의 암릉과 계곡 모두를 즐기기 위해서는 용추계곡을 끼고 코스를 잡아야 한다.
대표적인 들머리는 문경 가은읍 완장리 벌바위마을로 용추폭포를 거쳐 다래골~밀재~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피아골~정상, 또는 피아골~촛대봉~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버리미기재에서 곰넘이봉~촛대봉~정상으로 오를 수도 있다.
벌바위마을에서 버리미기재까지는 승용차로 5분 이내(대중교통은 없다) 거리. 괴산 쪽에서는 청천면 삼송리 농바위마을에서 중대봉을 거쳐 대야산 정상을 오르거나, 밀재로 올라 정상으로 오를 수 있으나 현재는 국립공원에서 개방한 탐방로가 아니다.


숙박시설과 식당, 주차장 등 편의시설은 벌바위 마을에 집중되어 있다.
사계절 모두 다양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산이나 여름철 산 아래쪽 계곡을 찾는 관광객들이 특히 많다.
그러나 사계절 수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봄부터 초여름까지 신록과 꽃이 어우러진 계곡과 암릉을 즐기는 산행이 호젓하고 좋다.
암릉 구간에 위험한 곳은 로프가 매여 있지만 겨울철에는 미끄럽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능선 상에서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어느 쪽 코스를 택하든 4~5시간 이내로 산행이 가능하다.
봄철 산불경방기간에는 산행이 통제되므로 사전에 확인하고 떠난다.
그러나 비온 다음 날 같은 경우는 유동적으로 산을 개방한다.

 

[찾아가는 길]
대야산은 최근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으로 한결 가까워졌다.
서울 쪽에서는 문경으로 오는 것보다 점촌으로 직접 가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빠르고 대야산 접근도 쉽다.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점촌 행 30분 간격으로 운행, 2시간 걸림.10600원. 그밖에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042-624-4451~3)→문경(점촌행) 1일 13회 운행, 대구→문경(대구 북부시외버스터미널053-357-1851) 15분 간격 운행, 부산(부산시외버스터미널051-508-9966)→점촌 1일 5회 등이 운행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울, 대구, 부산 등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통해 문경새재IC에서 가은읍 벌바위마을 용추계곡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문경새재IC에서부터 30~40분 정도 걸린다.
국도를 이용해 상주(3번 국도)까지 와서 점촌을 거쳐 가은읍 용추계곡으로 갈 수도 있다.
괴산의 쌍곡계곡을 거쳐 버리미기재를 넘는 922번 지방도로로도 벌바위까지 갈 수 있다.
점촌에서 대야산 들머리 벌바위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1일 3회 운행(08:20, 09:00, 17:00), 가은까지는 1일 21회 운행한다.
가은에서 벌바위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가은개인택시합동사무소(054-571-5789), 요금은 10000원. 괴산 쪽으로 대야산을 가려면 서울~청주까지 간 다음 청주~청천간 직행(1일 26회/50분)을 이용해 청천~이평리 시내버스(1일 8회/30분)를 이용한다.
승용차는 중부고속도로 증평IC에서 청천~송면~이평리 또는 경부고속도로 청주IC로 청천~송면~이평리로 들어간다.

 

[숙박과 먹거리]
문경 벌바위 용추 주차장 쪽에는 자연산 버섯전골이 맛있는 대야산청주가든(571-7698), 대야산장모텔(572-0033), 돌마당식당(571-6542), 벌바위가든(571-5691), 댓골산장(571-4182) 용추골식당(571-0262) 등이 있다.
지역번호 054. 청주가든과 돌마당식당에선 대야산에 대한 상세한 산행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용추계곡에서 30분 거리의 문경 읍내를 이용하면 문경 온천과 함께 새로 지은 숙박시설들이 많아 편리하다.
문경 읍내는 약돌삼겹살 구이 등이 유명하다.
괴산쪽은 송면에서 화양동 방면으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화양유스호스텔(043-832-8801) 스위스모텔(043-832-7886) 등이 있다.

 

[주변 볼거리]
괴산 연리지와 왕소나무
대야산 괴산 쪽 들머리인 청천면에는 두 곳에 이름난 소나무가 있다.
삼송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90호 왕소나무는 높이 12.5m에 둘레만 4.7m에 이르는 600년 넘은 나무가 용처럼 꿈틀거리는 모양으로 서 있는데 가히 왕이란 이름이 붙을 만하다.
밑둥이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 하나로 이어진 연리지 소나무는, 일명 사랑나무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
연리지는 두 나무의 밑둥이 붙어 자라는 연리목보다 훨씬 더 희귀하게 나타난다.
선유구곡 들머리인 청천군 송면리 길가에 있다.

 

학천정
문경 선유동 계곡의 입구인 학천정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 이재를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1906년에 세운 정자다.
현재는 새로 단장을 해서 고풍스런 맛은 사라졌지만, 학천정 앞 넓은 반석 위에 새겨진 이완용의 글씨라 전해지는 ‘학천’, 정자 맞은 편 바위에 최치원의 친필로 전해지는 선유동, 정자 뒤편의 절벽에 새겨진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석각 글씨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학천정 아래 하류 쪽으로 이 고장 출신 ‘우’자 호를 가진 일곱 사람이 뜻을 모아 세운 칠우정이란 정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복원을 위해 헐려있는 상태다.
학천정 위쪽에 주차장이 있고, 여름 한철 쓰레기수거 명목의 입장료를 받는다.

 

운강 이강년선생기념관
가은읍 완장리 용추계곡 들어가는 길 오른편에 있는 곳으로, 구한말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선생을 기념하는 자료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기념관 가까이 선생의 생가도 복원돼 있다.
이강년이 태어날 때 대야산과 이웃한 둔덕산이 아기가 태어나기 3일 전부터 ‘웅 웅’ 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강년은 1896년 을미의병과 1907~1908년 정미의병 전쟁에서 활약하다, 제천 청풍 작성 전투에서 사로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진남교반과 고모산성
대야산 선유동 계곡의 물줄기가 따라 만나는 가은천이 조령천과 만나 영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경북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손꼽히는 진남교반이 있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 아래 강물 위로 철교와 신·교 등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 있는 곳이다.
봄이면 주변에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한창이다.
진남교반 근처 진남휴게소에서 삼국시대 산성인 고모산성에 오를 수 있는데, 성곽을 따라 가면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길인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된 토끼비리로 이어진다.
토끼가 다니는 벼랑길이란 뜻으로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하다 토끼가 벼랑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곳에 길을 냈다고 한다.
짚신을 신고 이 길을 넘나들던 조상들의 발자국으로 거칠고 단단한 오석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게 닳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진남교반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여름철에는 진남휴게소 앞 영강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근처 진남매운탕(054-552-7777)이 유명하다.

 

철로자전거
진남 교반 주변 진남역에는 옛날 석탄을 운반하던 폐 선로 왕복 4km를 달리는 철로자전거를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3월 1일∼9월 30일은 09:00∼18:00 운행(매표는 08:30~17:00까지), 10월 1일∼2월 28일은 10:00∼16:00 운행(매표 09:30~15:00)하고, 2명이 함께 타는 자전거 1대당 1만원(만 12세 이하는 2명 추가 승차 가능)이다.
단체(15대이상) 20%, 문경새재유스호스텔ㆍ청소년수련관과 불정자연휴양림 숙박자, 문경관광사격장, 문경석탄박물관 이용자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당일에 한해 30% 할인해준다.
주말에는 가족 이용객이 많아 조기 매진된다.
문의 신현리 진남역 054-550-6478

 

문경석탄박물관과 연개소문 세트장
1994년 문을 닫은 은성광업소 자리에 세워진 문경석탄박물관은 실제 채탄작업에 사용했던 갱도를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어 광산 내의 환경을 실감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석탄의 기원, 다양한 광물과 화석 등도 전시되어 있어 체험학습장으로 좋다.
입장료 1000(어린이 500)원. 박물관 바로 옆에는 이전에 광산에서 캐낸 흙들을 쌓아 둔 곳이 산이 되었다.
그 위에 최근 <연개소문> 드라마 세트장이 세워지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릉리 432-5번지 054-550-6424

*유용한 인터넷 사이트-문경명산가이드http://san.netian.com

대야산과 주변 관광 안내 자료는 문경시청 문화관광과와 괴산군청 산림과를 통해 받을 수 있다.
각 지자체에 대야산이 소개된 <문경의 명산>과 <괴산의 명산>이란 홍보 책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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