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살기운동성북구협의회 *행동강령*
바르게살기운동은 정직한 개인, 더불어 사는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국민정신운동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1. 우리는 21세기를 선도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의식개혁운동에 앞장선다.
2. 우리는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질서를 지킬 줄 아는 문화생활 운동에 앞장선다.
3. 우리는 가정사랑. 이웃사랑. 나라사랑을 위한 사랑의 실천운동에 앞장선다.
4. 우리는 거짓과 부패를추방하고, 지역감정이없는 바른사회 만들기운동에 앞장선다.
5. 우리는 이웃과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회봉사활동에 앞장선다.
바르게살기운동성북구협의회 *우리의 결의*
바르게살기운동 성북구협의회 회원은 도덕성불감증과 무너진 경제 질서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지속적인 국민운동으로 이를 개선하여, 기본이 바로선 건강하고 활기찬사회를 이룩하는데 앞장설 것을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1. 우리는 사랑과 봉사로써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이룩하는데 앞장선다.
2. 우리는 부정과 부패를 추방하여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하는데 앞장선다.
3. 우리는 질서지키기를 생활화하여 아름답고 깨끗한 서울가꾸기에 앞장선다.
4. 우리는 삶의 보금자리인 화목한 가정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선다.
5. 우리는 조국의 앞날에 미래한국의 기둥이 될 수 있도록 청소년선도에 앞장선다.
아름다운 “바르게살기운동성북구협의회 농촌 일손돕기” 를 다녀와서
계절의 여왕답게 싱그러운 5월의 햇빛은 여전히 빛났고, ‘농촌일손돕기’라는 처음 접한 생소한 단어에 마음이 한없이 설렜다. 새벽 6시 20분에 집을 나서서 일행을 만나고 모두모여 7시에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김밥을 먹으며 차창너머로 보이는 실록의 계절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기도 하면서 영월군 북면 연덕1리 경노당에 도착했을때는 10시쯤이였으며, ‘영월바르게협의회장님’‘이 우리일행을 뜨겁게 맞이해 주셨다. 도착하자마자 경노당에서 오늘의 봉사할 목적지를 정하고 전인원 41명이 6개조로 나뉘어 뿔뿔히 흐터저 대부분 봉사할 밭으로 트럭뒤에 서서실려서 갔고 내가 속한조는 5조로 마침 제일가까워서 걸어서갈수있는 인근주택가였고 주인은 인심좋고 후덕하게생긴 50대아줌마, 미쓰리라는 호칭이였다.
미쓰리는 “다른작업장은 도마도와 오이의 순치기작업이며 뜨거운 비닐하우스안에서 일하므로 몹시 덥다”고 연신 말했으며, 알고보니 우리조는 그늘지고 바람부는 마당에 둘러앉아서 일한것이 복중의 복인듯했다. 우리가 한일은 퇴비흙을 모판에 담고 그위에 수수알을 3개씩 넣어 또 퇴비흙으로 덮는 수수모심기였고 순식간에 수수모판을 80판이나 만들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던 엄회장님마저도 우리를보자 “뜨거운 비닐하우스안에서 땀흘리는 다른팀에 비하면 신선노름”이라고 하셨고, 미쓰리의 입이마르게 읊던말과 일맥상통했다. 허리펼 여가없이 열심히 일한탓에 허리가 많이아팠던것 외엔 언제나 생각해도 일한보람을 느끼며 행복한 시간이였다. (바르게카페운영자)도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좋다”고 말하며 연신 샷타를 눌렀다. 그즈음 새참시간 이라면서 막걸리와 파를 길게넣어 부친 먹음직스런 메밀부침을 갖고와 이곳이 푸근하고 인심좋은 시골임을 대언했다. 말만 봉사이지 천국과도 같았을만큼 행복했으며 더욱더 좋았던것은 국악인회원과 한조가 되어 우리소리를 멋지게 들려주는 특혜도 누렸으며 프로다운 노래가락이 아까워 한바탕 모두일어나 춤을 덩실덩실추기도 하면서 신이났었다.
맑은공기속의 강원도영월의 농촌일손돕기는 아름다운 추억이 됬고 “언제든 친정처럼 다시오면 재워준다” 약속하던 순수하고 푸근한 미쓰리의 뚝뚝흘러넘치던 정겨운 대화의 모습에 반했다. 미쓰리부부가 운영하는“청결해야만 버섯을 계속딸수있다”는 현대버섯농장도 둘러보고 버섯농장앞에서 같이 사진도 찍으며 일마무리를 했고 헤어짐을 아쉬워 했다. 6개조가 모두모여 바르게살기영월회원이 베푸는 막걸리를 겸한 삼겹살파티로 늦은 점심을 대접받은후 농촌일손돕기를 마무리하는 기념사진촬영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우리는 관광뻐스에 몸을싣고 관광이 시작되었는데 알고보니 영월은 단종과 엄흥도라는 충신과의 아름다운 역사가 살아숨쉬는 역사의 고장이였다. 단종이 귀양왔던곳은 깊은산골 영월에서도 강을 작은배로 건너야만 갈수있는곳 청령포라는 커다란 소나무가 700그루가 특색인 작은 섬이였다. 추운겨울에도 아궁이 없는 방두칸만있었다던 그겨울들의 강추위를 생각할 때, 또 550년전의 야수가 들끓던 깊은산속의 외로움과 무서움을 15세의 단종이 감당했을 슬픔들을 생각할때 가슴이아려왔고 눈물이 났다. 단종이 기거하던 집을 향해 모든 소나무가 고개숙이듯 자세의 풍경도 이채로웠지만 일명‘충신엄흥도소나무’라고 있었는데 넙죽업드려 단종이 기거하던방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과 꼭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했는데 참 재미있었고 한바탕 모두 웃었다. 그당시 비가많이와서 기거하던집 청령포에 물이차서 지금의 영월시내로 거처가 옮겨졌다고했다. 그곳에서 사약받고 '동강'(영월시내를 흐르는강이름)에 던저진 단종의시신을 엄흥도충신이 아들3형제와 지개에 지고서 산꼭대기지금의 장릉에 (단종을 도우는자에게 3대가 멸한다는 엄한 어명에도 개의치않고) 묻어줬다고 한다. 그런 충정으로 오늘의 단종의 역사에 엄흥도충신이름이 대대손손 단종과 엄씨문중과 뗄수없는 아름다운 미담으로 후손들의 자부심있는 아름다운 역사가됬으므로 마침 바르게전체회장이 엄씨문중의 후손인 엄회장님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저녁 7시서울도착예정이였으나 단종,엄흥도의 고적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영월에서 7시에 떠났으므로 집에는 10시쯤 도착했다. 여주휴게소에서 부회장님이 냉면을 샀으며 고맙고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 몸은 피곤하고도 녹초가되었지만 행복했고, 즐겁고 보람된 날이였으며 “바르게 살기회원이 된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며 이모든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란 생각을 해본다.
2009.6.4. 월곡두산아파트부녀회장 유명옥.
저는 두산아파트에 이사온지 7년째됬고 이사온 그해 2003년 9월부터“두산A정의를실현사람들의모임”카페의 운영자입니다. 정의감에 불타서 동대표회장직무정지가처분을 통해 조합동대표회장을 내모는데 선봉자였으며 또 바뀐동대표회장 독재에 맞서 직무정지가처분을 단독진행중에 있으며, 입주민들에게 알릴권리로 싸이트에적은 카페글내용이 동대표회장 본인을 명예훼손 시키기위해 적은글들이라면서 형사고소해 벌금을 많이냈으며 개인적희생무릅쓰고 바르게살기를 힘쓰며, 정의를 위하여 꾸준히알리고 있는중입니다. 김효재국회의원사무실여성회장으로서 일할당시 박만근위원장님부부를 알게되어 ‘바르게살기모임’을 처음 권면받았고 2008년도 정기총회, 구청회의 참석등등, 올2월27일 태극기를 나눠주는 봉사도 동참했었습니다. 박위원장님이 이처럼 아름다운 바르게살기에서 일할수있게 해주셨으니 고맙다는 생각이듭니다.
5월 26일, 부녀회원들과 함께 약70명분의 음식을 장만하여 (박위원장님부부, 회원참석) 바르게 살기운동의 취지에 대해 알리는 자리를 만들었었습니다. 박위원장님은 식당에서 본인이산다고 하셨지만, 저는 많은인원이 늘 우리집에서 5년동안이나 식사를 했듯이 묵,취나물등 11가지 반찬으로 보리비빔밥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참외1박스, 수박등으로 집잔치를 했습니다.
태백산 정기를 받고 장릉의 양기를 얻고
단종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 장릉!
문화관광해설사의 장릉이야기
장릉은 조선6대 왕인 단종의 능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와의 자리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이 17세 되던해에 죽임을 당하여 그 주검이 동강에 버려젔으나 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수습하여 현재의 능이있는 이곳에 암장하였다.
역사상 가장 슬프고도 애환이 많은 단종대왕의 능은 다른 능에 비해 많이 다르다
한양 백리 안에 모시는 것이 관례였지만 지방에 모셔진 유일한 왕릉이며 낮은 구릉에 모셔진 다른 왕릉에 비해 높은 곳에 모셔져있으며 대부분이 왕릉이 봉문, 정자각, 참도홍살문이 일직선 상에 조영되지만 단종릉의 봉분은 신좌을향으로 모셔졌고 정자각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능의 옆구리를 향해 절을 할 수 밖에 없다.
27대 임금 중 유일하게 단종릉에만 있는 장판옥은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32인, 조사위 186인, 환관군노위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며, 영천은 정조 15년(1791)박팽년의 후손이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왕릉에 제향을 지내던 한식 무렵에는 물이 넘치도록 많이 솟아 올랐다는 신령스러운 샘물이다.
엄흥도정려각은 1726년(영조2년)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833년(순조33년)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다시 증축하였는데 1876년(고종13년)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하여 1879년(고종16년)에 비석에 있는것을 다시 고쳤다.
그 외에도 장릉에 제향을 올릴 때 제물을 올리는 '배위청' 이라 불리는 정자각이 있으며, 중종 36년 영월군수이던 박증원이 노산묘를 찾아 제를 지낸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인 '낙촌비각'이 있다.
첫댓글 이글전체를 6-70부 카피하여서 회원으로 같이일하자고 나누어주면서 바르게살기회원으로 권면해 충원해보려고 합니다. 월곡1동을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러시군요 카페주소도 함께하시면 어떨까요 귀왕에 바르게 회원으로하시려면 우선 성향이 아름답고 가능한 말없이 열심히 자기몫을 다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어느 단체보다 바르게살기 이념에 걸맞는그런사람들이 였으면 좋겠습니다,이제 신입 회원이시니 좀더 활동해 보시고 위원장 의사도 물어 하시면 좋을듯합니다,감사합니다
농촌봉사활동 후기 잘 읽엇습니다...앞으로도 즐겁고 보람된 바르게살기운동이 되도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박위원장님과 의논했습니다. 부녀회에 음성군수님이 보내신 고추모가 300화분(이미고추가달린개당1만원짜리다년생고추) 와서 부녀회원들,박위원장에게도 드렸는데 운영자님께도 나누고 싶습니다. 구청장님이 군수님전화 받으셨다면서 칭찬을겸한 전화를 해주셨고 월요일 초대해주셔서 매우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보람된 활동 참하군요 마음으로받도록하지요 월곡 1동에 아주 유명한 인재가 게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리고 더욱 많은 활동 기대합니다,앞으로 월곡1동 온라인책임 맡아주십시요 감사합니다,
가을로 영화줄거리를 우연히 같이 다 읽고서 같이 사진찍을때까지 부회장님인줄 전혀 몰랐읍니다. 부회장님이 냉면산다고 광고할때 처음 알았고 우연히 사진같이찍은것 참 영광이네요. 그날의 따끈한 냉면국물 맛있었어요. 감사히 잘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