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농어촌체험지도사 과정 강의 / 사진 : 정진욱 교수님]
레크리에이션 대학으로 맺은 대구YMCA가 반골 기질의 나에게 기름을 부었다.
92년 레크리에이션대학을 우스운 성적으로 수료하고(자격증은 못 받았지만 수료증은 받았음) 대구YMCA 캠프자원지도자로 캠프를 따라 다녔고 청년Y 새날클럽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는데 이 모임은 지방자치를 연구하는 여러 개의 청년모임 중에 하나였다.
모임의 순서에 '함께 나누는 삶'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일주일간의 자기 이야기를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학내 문제로 지친 나의 영혼에 위로와 희망을 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청년Y 활동에 빠져들었고 반골적이고 비주류적인 나의 성향에 논리를 제공 해 주었다.
환경과 교통문제를 다루면서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디자인'에 대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선고하고 디자이너의 길에 대한 작은 불씨마저도 물로 죽이고 그것도 모잘라 냉동실에 가두어 버렸다.(어쩌면 실력이 부족한 자기 변명과 합리화이기도 하다)
'디자이너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라는 논리는 이렇다. 디자이너들은 소비를 부추긴다. 사용하는 것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도 유행과 새로움과 아름다움의 강박관념을 자극하며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쓰레기가 늘어난다.
또 하나 청년Y 활동을 통해 평생 스스로를 옭아 맬 두 가지의 실천 과제(올가미)를 만들었다.ㅠㅠ
환경과 교통문제 등에 대한 이런 저런 세미나도 하고 여러 훌륭한 사람들의 강의도 들었는데 일부 강사들과 선배들의 삶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 할 수 없었고 때론 분노하기까지 했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시민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지구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의 실천과제가 나왔다.
'운전'과 '스키'였다.
운전은 '배기가스'라는 주범이 있어 사람들이 궁금 해 하지 않는데 '스키'는 왜냐고 물어 온다.
나는 산이 파 헤쳐져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스키장이 어떤 곳이냐? 인간의 놀이를 위해 자연을 죽여놓은 공간이 아니던가!
이때의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이것은 실천과제이면서도 스스로에게 씌운 가시관이요 십자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천형을 통해 나의 논리가 만들어 졌고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다.
내 강의에 묻어있는 나의 개똥철학은 머리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와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몸으로 만들어진 땀내나는 것들이다.
위와 같이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훈련과 함께 대구YMCA는 문화적 끼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 해 주었다.
내가 수료한 다음 기수인 9기 레크리에이션 실습 캠프 캠프파이어 장소에 추장님이 자리하실 신성한 공간의 조명을 PET병에 한지를 두르고 촛불의 켜 만들었는데 이 설치에 뿅간 이벤트 업체 사장이 끈질기게 일을 같이하자며 프로포즈를 해 오기도 했다.(이런 제안에 말을 돌리는 것이 나의 특기이다.)
그리고 캠프의 자원봉사자로 참여 해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진행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기억에 가장 남는 캠프는 '슬기샘 과학캠프'이다.
지금까지 말은 자원봉사지만 사실은 내가 짝사랑한 여자가 캠프 실무자라 자주 갔다.
이 캠프가 짝여가 진행하는 캠프였는데 나는 지도력으로 따라갔다.
캠프의 하일라이트 캠프파이어를 내가 직접 기획, 연출, 설치, 출연 등 진행 말고 거의 다 했었는데
하나님과 에디슨의 합성어인 '하디슨 박사님'을 탄생시켜 캠프파이어 때 등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디슨 박사가 미래세계에서 오실 수 있도록 타임머신도 만들고 불도 자동으로 점화되도록 준비를 해 두었다.
자동점화는 시스템의 고장으로 쇠 파이프에 수건을 말아 점화봉을 준비 해 두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된 사회자 최승필이 하디슨 박사님의 등장을 외쳤다.
타임머신이 깜박이고 스모그와 함께 내가 분장한 하디슨 박사가 등장했다.
아이들은 진짜로 착각하고 있었다.
근엄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예비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약속들을 받아내고 드디어 점화시간
점화봉에 불을 붙이고 나는 평소의 습관대로 점화봉을 돌리며 불춤을 멋있게 추었다.
그런데 나무가 아닌 쇠 파이프라 그런지 불덩이가 쑥 빠져 버렸다.
정말 황당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까 나는 들고있는 쇠 파이프로 불덩이를 골프공처럼 쳤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장작더미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튕겨져 나오는 것이 아니가!
불을 점화해야 하는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아 손으로 불덩이를 잡고 장작더미에 던져 넣었다.
점화가 되었다. 불덩이를 손으로 잡는 하디슨 박사님의 놀라운 능력에 모두들 넋이 나갔다.
정말 성공적인 캠프파이어 였다.
일과 후 교사 미팅시간에 사실을 털어 놓았더니 모두 놀랐다.
모두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시나리오 대로 한 줄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불덩이를 손으로 잡고 점화를 할려고 했느냐며 신기 해 했다.
손으로 불덩이를 잡고 점화한 94년 '슬기샘과학캠프' 가장 기억에 남는 캠프이다.
위와 같이 프로그램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청년Y 활동에서도 시민공청회 설치미술, 촌극 시나리오, 환경모니터 기획 등을 맡았었고 지구의 날,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선포식 무대설치 참여 및 재활용품을 이용한 무대 설치 등 레크리에이션의 영역을 넘어 설치미술, 문화기획, 캠프, 이벤트 등에 대해 이 시대에서는 도저히 경험 할 수 없는 엄청난 훈련과 경험을 쌓았다.
이때, 대구YMCA의 문화적 역량은 전국 최고 수준 이었다.
현재 나의 지도력은 이때 대구YMCA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은 부모님이 만드셨지만 나의 프로그램 능력은 대구YMCA를 통해 만들어 졌다.
그리고 사람 하나를 얻었으니 그가 바로 집사람이다.
1993년 지구의 날 행사를 준비하며 '교통캠페인'을 위해 모형 차를 내가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집사람이 대구Y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당시 이창건 간사가 신입회원 한명이 왔는데 보조로 쓸 의향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보내라'고 했더니 단정한 아가씨 한명이 Y강당으로 들어왔다.
나는 군기를 잡기위해 나를 사부로 부르라고 했다.
집사람은 거수경례를 하며 "알겠습니다 사부"라며 신고를 했다.
제법 맵시있게 보조를 잘했다.
다음 날, 제자는 사부를 위해 장갑을 사왔다.
나는 우리가 함께 제작한 모형 차 안에 [만든사람 정 : 송종대 / 부 : 정00]이름을 적어 놓았다.
다음 해, 환경모니터를 하면서 자료집 제작에 집사람을 다시 보조로 활용했다.
자료집에도 그렇게 적어 놓았다.
우린 친구처럼 지내다가 1996년 겨울 평생 원수가 되었다.
- 다음 이야기는 4부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야매강사에서 결혼 골인까지~
좋아요~(엄지)
지금은 서로 후회하며 티격태격 삽니다.^^
나의 개똥철학은 머리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와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몸으로 만들어진 땀내나는 것들이다. 박수를 보냅니다^^; 다음편 더욱 기대됩니다!!!
자발적 글쓰기에서 독자들이 늘어나면 스트레스 받습니다.ㅠㅠ
스트레스 안받으시도록 잘 읽고 부담은 드리지 않도록 하죠^^; 내려오신다면서 연락이 아직 없네요?
오라는 대답이 없어서 침만꼴깍...
솔직, 담백...있는 그대로~
수채화처럼 맑게 그려진 글들이 참 읽으면서도 제 마음까지 정화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철새마을에는 언제 오실겁니까?
불러주셔야 갑니다. 전인철 팀장 꼬셔서 강의 한번 잡아주삼^^
네 꼬셔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