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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발상 하나로 세계적 특허를 거머쥔 사람들
[저자]왕연중: 한국발명특허협회 조사과장, 저서로서 발명생활, 나도 발명왕이 될 수 있다, 발명 여행, 외길집념의 승리, 발명특허백과 발명교실 등 다수
이책은 세계적인 특허들의 탄생 배경과 일화들을 소개한 글이다. 현대에 와서 국가간의 지적 소유권 전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간의 경쟁에서도 승패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다. 특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권리를 확보한 것이다. 발명특허는 15년, 실용신안은 10년 의장등록은 8년 동안 독점권리가 주어 진다. 대부분 사람들은 발명하면 전화, 텔레비전, 로켓, 로봇, 컴퓨터, 비아그라 등 첨단기술제품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많은 생활 필수품들도 모두 발명품들이고, 대부분 생활 주변의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시철망, 고무지우개 달린 연필, 코카콜라 병 등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엄청난 부를 만들어 냈다. 국내에서도 간단한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세계적인 발명품으로 손꼽히는 제품들을 만들어 낸 발명가들이 있다. 이태리타월은 김필곤씨가 개발했고, 종이음료용기는 신석균씨가 개발했으며, 세줄지퍼는 이행용씨가 개발했는데 이들 모두 현존하는 발명가들이다. 이들의 개발품은 언뜻 보면 발명품 같지도 않다.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작은 발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성공했다. 작더라도 유용하게 쓰이는 발명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발명가이다. 인류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한 많은 발명품들과 의약품들은 수많은 과학자들이 수년, 수 십년, 또는 평생을 바쳐 헤아릴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끈기와 집념으로 이루어 낸 것들이다. 그러나 간단한 발상 하나로 우리 일상 생활에 편리함을 더하고 발명가 자신은 엄청난 부를 쌓게 된 경우도 수 없이 많다. 우리는 그들 모두로부터 일상의 사물과 사건을 지나쳐 보지 않고 항상 해결 또는 개선을 생각하는 자세와,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발상법과, 즉시 연구에 착수하는 실행력과 포기하지않는 끈기 등을 배워야 할 것이다. 본 요약문에서는 평생을 바친 큰 연구과정보다는 우리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실용화에 관한 일화를 요약 소개한다.
1. 코카콜라 병: 루드은 1905년 미국 조지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병공장에서 유리액을 금형에 부어넣어 병을 만드는 일을 했다. 이 때 코카콜라가 새로운 음료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현상금 최저 1백만 달러에서 최고 1천만 달러를 걸고 코카콜라 병 디자인을 현상모집하고 있었다. 루드는 코카콜라가 제시한 조건대로 모양이 예쁘고, 물에 젖어도 미끄러지지 않고, 보기보다 양이 적게 들어가는 병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6개월 간 애인 주디와 데이트도 중단하고 연구에 몰두 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6개월 만에 약속대로 주디를 만났지만 면목이 없었다. 그날 주디는 당시 유행하던 통이 좁고 엉덩이의 선이 아름답게 나타나는 긴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순간 루드의 머리에는 바로 그 주름치마에 가려진 예쁜 엉덩이와 주름을 강조한 새로운 병의 디자인이 떠올랐다. 결국 루드의 병은 코카콜라에의해 채택되었고 그 당시 엄청난 거금인 600만 달러의 거금을 받게 되었다.
2. 철조망: 조셉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철조망을 발명했다. 그가 특허권이 끝날 때까지 벌어 들인 돈은 미국의 유명한 계리사 11명이 1년 동안 달라붙어 일했어도 다 계산하지 못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사용된 조셉의 철조망은 이 전쟁에 사용된 포탄보다도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조셉은 목장에 양치기로 취직했다. 양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들이 울타리를 넘어 도망가 남의 밭을 망치기가 일쑤여서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그런데 양들을 유심히 살피던 조셉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양들이 가시가 있는 장미넝쿨 쪽은 피해서 철사 울타리만 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셉이 철사가시를 꼬인 철사줄 사이에 넣고 나니 양들이 한 마리도 도망가지 못했다. 이를 본 주인이 놀래서 즉시 조셉에게 아버지를 모셔 오도록 해서 특허를 출원하도록 했다. 철사가시 울타리는 지방신문에서 중앙신문까지 특집으로 보도되었고 조셉은 밀려오는 주문을 감당하기 바빴고 공장은 나날이 확장되어 갔다. 1914년 세계1차대전이 터지자 철조망의 생산, 판매 및 특허권 사용료 수입은 천문학적으로 늘어 났고 조셉의 조국인 미국도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었다. 조셉의 일상생활에서의 유심한 관찰력이 세계적인 부를 이루어 낸 것이다.
3. 십자나사못: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십자 나사못과 드라이버, 이것이 바로 일상생활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개선의 의지가 만들어낸 훌륭한 발명품이다.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출생한 필립은 집안이 가난하여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전파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하려면 라디오에 박혀 있는 1자 나사못을 빼야 하는데 잦은 수리로 홈이 마모된 나사못은 아무리 애를 써도 뺄 수가 없었다. 이런 때 라디오 수리는 시간이 몇 배가 더 소모되었다. 온통 머리 속에 1자 나사못에 대한 생각으로 나날을 보내던 필립은 망가진 1자 나사못 위에 가로로 새로운 홈을 팠다. 쉽게 빼고 박을 수가 있었다. 필립은 ‘필립’이라는 작은 공장을 세우고 세계 각국에 특허를 출원했다. 엄청난 로열티 수입에 공장은 계속 확장되어 ‘필립사’를 대기업으로 발전되었다.
4. 지우개 달린 연필: 이것은 기존의 연필에 끝에 콩알보다 조금 큰 지우개를 달아 편리를 도모한 비교적 간단한 발명품이다. 미국의 가난한 청년 하이만이 그림을 그리다 자주 잃어버리는 고무를 생각 끝에 연필 끝에 고정시키게 되었는데 이를 본 친구 윌리엄이 이 아이디어를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특허를 출원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특허가 나온 것이 1867년이었는데, 리버칩이라는 연필회사에서 착수금 1만5천달러와 2퍼센트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특허권을 사주었다. 그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이 일을 주선한 윌리엄은 필라델피아의 총판권을 얻게 되었다.
5. 공기타이어: 오늘날 공기 타이어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86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존 보이드 던롭이 수의사 개업을 했다. 가축진찰 때문에 울퉁불퉁한 길을 마차로 다니던 던롭은 마차를 탈 때마다 바퀴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했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20년이 지나고 마차의 앞바퀴가 돌멩이에 부딪치며 아들 조니가 떨어져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돌멩이와 바퀴는 딱딱한 것끼리니까요.” 라는 아내의 말에 던롭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던롭은 고무호스를 잘라 바퀴 둘레에 잡아 매었다. 별 효과가 없었다. 왕진 갔다가 우연히 자전거 바퀴 이야기를 듣고 호스를 부드러운 것으로 채울 생각을 했다. 고무 호스 속에 헝겊을 넣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차츰 포기할 즈음 조니가 조그라든 축구공을 가지고 와서 공기를 넣어 달라고 했다. 공에 바람을 넣고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손가락으로 눌러 보는 순간 던롭의 머리 속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던롭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고무튜브에 공기를 넣고, 바깥 쪽을 고무로 튼튼히 씌웠다. 1882년 특허를 내고 ‘던롭 공기 타이어’회사를 설립했다. 이것이 세계적인 던롭의 시작이다.
6. 각설탕 포장법: 20세기 중반 커피, 홍차 등 차문화가 발달하면서 많은 나라가 미국에서 설탕을 수입해갔는데, 미국이 처음 각설탕을 수출할 때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설탕이 모두 녹아 수출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로 인한 손해가 실로 엄청났다. 드디어 1958년 미국의 한 각설탕 회사가 2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녹지 않는 각설탕 포장법을 현상 공모하게 되었다. 오랜 항해 생활을 하던 존이 이 회사 사장을 직접 만나기를 고집하여 결국 면담이 허용되었다. ‘녹지 않는 각설탕 포장법을 제시하면 정말 20만 달러를 주는 겁니까? 존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물론이죠. 신문광고까지 냈는데” 존은 주머니에서 각설탕을 하나 꺼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이 건 우리 회사 제품 그대로 아니오?’ 임원들은 존을 정신이상자로 알고 내쫓으려 했다. 존이 말했다. “이 설탕을 잘 보십시오. 보시는 대로 귀사의 제품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세요. 포장지에 뚫린 이 작은 구멍이 저의 아이디어 입니다. 저는 수개월 동안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항해한 선원입니다. 수개월 항해 기간 동안 운송하는 물건들을 썩지 않게 하려면 창고 천장이나 벽에 통기창을 만들죠. 이 각설탕에도 바로 그 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이미 이 각설탕은 저와 함께 3개월이상을 항해를 하고 돌아 왔지만 그대로 입니다.” 설명을 들은 사장이 말했다. “정말 신기하군요.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니…” 수개월 간 회사는 실험을 통하여 확인한 후 결국 존에게 현상금 지급했다.
7. 아페르의 식품 보관법: 나폴레옹이 전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1809년, 나폴레옹은 전쟁의 지속적이고 빠른 수행을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식료품의 새로운 저장, 포장법을 공모했다. 그 당시 요리사로 일하던 아페르는 이 현상공모를 보고 식품의 장기 저장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경험에 의해서 날 것보다는 익혀둔 것이 더 오래 보존됨을 알았고, 뚜껑을 닫아 놓은 생선이 변질도가 낮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뻔한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세균에 의해 식품이 변질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어서 식품가공에 대한 책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연구를 계속한 아페르는 끓여놓은 음식이 변질되기 건에 한번 더 끊여두면 더 오랫동안 변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뚜껑을 단단히 닫아 둘수록 오래 변질되지 않음도 알았다. 아페르는 생선을 끓여 넣은 병을 코르크 병뚜껑으로 막고 양초를 부어 밀봉한 후 다시 한번 병들을 솥에 담아 끊여냈다. 결국 아페르의 병조림법이 채택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통조림 캔으로 발전되었다.
8. 굿이어의 고무유화법: 굿이어는 미국의 한 직물공장에서 일하는 직공이었다. 그는 생고무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계절에 관계 없이 쓸 수 있는 고무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 두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온갖 실험을 해도 실패는 계속되었고 빚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몰라보게 수척해진 모습으로도 밤낮 없이 연구에만 몰두했다. 생고무에 각종 화학제를 첨가해 다시 끊여 보기도 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2년이란 기간을 보내는 사이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났고 연구는 전혀 진척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굿이어의 고무에 대한 집념은 강해졌다. 어느날 밤 굿이어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실험실에 들어서니 아주 이상하게 낮선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 많던 화학제들이 모두 온데간데 없이 사라고 없었다. 무심코 서랍을 열었더니 난데없이 유황가루가 가득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유황가루와 잘게 잘라놓은 생고무 조각을 들고 공장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맑고 뜨거운 햇볕 아래 생고무 조각을 놓고 유황가루를 뿌려 섞어 놓았다. 굿이어가 잠시 햇볕에 넋을 놓는 사이 생고무는 질좋은 고무로 변하고 있었다. “성공이다. 얏호!” 외치는 순간 잠이 깨었다.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 아침 부부는 꿈 속의 실험을 재현해보기로 했다. 세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릇에 담긴 고무는 변화가 없었다. “내가 미쳤지, 꿈을 믿다니…” “아니에요, 여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꿈속에선 햇볕이 뜨거웠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차가운 겨울이잖아요.” 그들은 다시 숨을 죽이고 그릇 속의 고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정오가 지나고 햇볕이 강해지면서 그릇 속의 고무는 꿈속에서 본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이 것이 오늘 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굿이어의 탄생이었다.
9. 짜이스 안경: 짜이스 안경은 전세계 안경시장의 3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세계 제일의 안경 메이커이지만, 이 회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발명을 토대로 탄생했다. 약 150년 전 짜이스는 4명의 직원과 함께 유리를 만들고 이걸 다시 렌즈로 만들어 안경 가게에 납품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조 공정에 손이 너무 많이 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산량이 보잘 것 없었다. “좀 더 빠르고 간편하게 렌즈를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자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부엌에서 식칼을 가는 모습을 보고 묘안을 얻게 되었다. 아내는 계속해서 칼날의 한쪽만을 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연했다. 식칼은 애초에 한면만 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거다! 렌즈를 만드는 유리도 식칼처럼 한쪽 면만 만들면 되겠구나.” 그때까지 렌즈는 유리의 양면을 연마하여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이후로는 아예 처음부터 한면이 볼록한 모양의 유리를 만들어 한면만 연마하여 렌즈를 만들어냈다. 금방 효과가 나타났다. 같은 작업시간에 생산량이 두 배 이상으로 부쩍 늘어난 것. 불과 1년 만에 “짜이스 회사”라는 간판이 걸린 큰 공장이 세워지고 수출상담이 쇄도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돈방석에 앉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의 회사는 2만 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10. 도메스트랄의 매직테이프: 갓난 아기의 기저귀 고착 밴드에서부터 시계 밴드, 허리띠, 운동화 끈, 주머니 덥게, 기차의 좌석 커버, 우주복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사용되는 매직테이프(일명 찍찍이), 사냥광이었던 스위스의 조르즈 도메스트랄은 이 작은 발명으로 세계 100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벨크로사’를 키워 냈다. 도메스트랄은 산토기 사냥에 나섰다가 산우엉 덤불 속에 빠졌다. 덤불 속에서 나온 그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옷 여기저기 산우엉이 더덕더덕 달라붙어 고슴도치나 나름 없었다. 옷을 벗어 힘껏 털어보았으나 가시는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산우엉가시는 왜 잘 떨어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린 일이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도메스트랄은 확대경으로 산우엉가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시는 갈고리 모양이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곧바로 한쪽에 갈고리가 있고 다른 쪽에는 걸림고리가 있는 테이프를 만들어 서로 붙여보았다.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양쪽 면이 서로 닿는 순간 척 붙었다가 약간의 힘을 가하면 “찌직”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여간 신기하고 편리한게 아니었다.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했다. 도메스트랄은 즉시 특허를 출원하고 ‘벨크로’라는 상호와 상표 아래 매직테이프 생산에 들어갔다. 복잡한 공정이 필요없어 자신이 기술자겸 사장으로 운영한 벨크로사는 1년만에 미국과 일본에 현지 공장을 세울 정도로 번창했다. 그 무렵 2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하여 군복과 군화에까지 채택됨으로써 그의 회사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밖에 간단한 아이디어로 거부가 된 사례를 세가지만 추가한다.
1. 청바지의 시조 스트라우스: 1930년 경 미국 서부 황금 러시 시대에 스트라우스는 군납 용으로 만든 텐트의 납품이 실패하자 엄청난 재고함께 빚더미 않게 되어 실망 속에 술집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술집 구석에서 광부가 떨어진 바지를 꿰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재고 텐트로 떨어지는 않는 튼튼한 바지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청바지의 시조이다. 이 청바지가 엄청난 돈을 번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2. 질레트 안전 면도기: 1985년 질레트는 아침 거래처 약속때문에 서둘러 면도를 하다 얼굴 몇 군데를 베고 말았다. 절대 베지 않는 면도기를 만들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후 1년이 지나도록 연구가 제자리 걸음을 할 때 우연히 이발사가 가위에 빗을 대고 빗 사이로 빠져 나온 머리털만 자르는 것을 보고 안전 면도기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그 후 제품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프리카 오지의 추장까지 털 난 남성은 누구나 사용하는 질레트는 현재 세계 제일의 면도기 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