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여러 영역에서 대안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대안교육이, 의료와 관련해서는 대안 의료가, 언론과 관련해서는 대안언론이 추구되고 있다.
농업 및 음식과 관련해서도 대안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슬로우 푸드 운동이다.
다른 대안운동이 기존의 체제나 대상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처럼 슬로푸드 운동도
현대 농업 및 음식에 대한 성찰로 생겨났고, 이를 문제삼고 있다.
"다운시프트족(자동차를 저속기어로 변환한다는 뜻으로,고속으로 주행하던 자동차를 저속기어로 바꾸듯이
생활의 패턴을 여유롭게 바꾸어 여가를 즐기고 삶의 질을 향상 시켜 만족을 추구하자는 일종의 ‘느림보족’을 칭함)의
먹거리는 슬로푸드!" 웰빙을 지향하는 삶의 추세에 맞춰 먹거리에서도 슬로Slow, 생활에서도 Slow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른바 "슬로푸드(Slow Food), 슬로라이프(Slow Life)". 이중 슬로푸드는 짧은 시간에 대량 생산하는
패스트푸드(Fast Food)의 반대 개념으로 발효.가공 등의 정성스런 작업을 거친 좋은 재료의 토종음식을 말한다.
슬로푸드는 요즘 유행하는 웰빙(한글식 표현은 ‘참살이’)의 개념과 상통하며 무한경쟁과 속도전쟁에 반기를 들고
삶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지향하는 다운시프트족에게 딱 맞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불량식품 파동은 슬로푸드 물결 확산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
먹을 것도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패스트푸드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슬로푸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슬로푸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전통 음식인 된장, 고추장, 곰탕, 삼계탕 등이 훌륭한 슬로푸드라 할 수 있다.
또한 슬로푸드 운동은 어떤 특정한 음식만을 먹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변화시키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식사 만들어 먹기, 텃밭 이용해 채소 키우기, 식사시간 길게 끌기, 재래시장 가기, 제철음식 먹기,
아이들에게 음식 교육하기 등을 실천사항으로 꼽을수 있다.
슬로푸드를 섭취하면 영양 불균형과 위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비만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그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우리의 농업을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슬로푸드가 각광을 받으면서 전통 음식, 사찰 음식, 친환경 재료 음식들이 고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속도의 경쟁에서 벗어난 슬로라이프를 주창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에서 출범한 슬로푸드 운동은 그 외연을 넓혀왔다.
슬로푸드 운동이 추구하는 바는 슬로푸드 선언문, 지침, 슬로푸드 시상대회 등에 잘 나타나 있다.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채택된 슬로푸드 선언문에서는 현대문명을 속도전쟁으로 보고,
속도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날 것을 주창한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속도에 대한 강조가 우리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고,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을 추구해야 하며, 그 대안을 슬로푸드에서 찾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의 지침은
① 소멸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음식, 음식재료, 포도주(wine) 등을 지킨다.
② 품질 좋은 재료를 제공하는 소생산자를 보호한다.
③ 어린아이들 및 소비자들에게 미각(taste)을 교육한다.
이 지침을 보면, 슬로푸드 운동은 전통적인 음식을 유지, 보존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환경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소생산자를 보호하고, 미래에 대비하여 아이들과 소비자들을 교육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본부 및 지부에서 여러 중요한 사업 및 활동을 펴고 있다.
이탈리아 브라(bra)에 있는 슬로푸드 운동본부는 그 철학과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몇 가지 행사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슬로푸드 시상대회를 비롯하여 우수 농산물과 식품을 전시하고 시식하는 미각의 전당 행사,
희귀종을 보호하는 미각의 방주 프로그램, 어린아이들에 대한 미각교육, 유전자 조작 반대운동 등이 있다.
현재 550여 개가 조직되어 있는 지부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중 일부를 보면, 포도농장 방문 및 시음, 특정나라의 음식으로 된 저녁식사, 토론회, 칼로리 저녁식사,
시음 및 시식회, 생산자들과의 대화, 술과 음식 궁합 찾기,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간담회, 특별 저녁식사,
음악을 곁들인 식사, 와인 양조장 그룹투어 및 시음, 슬로우 생활 심포지엄 및 식사,
다른 지부의 방문여행; 상호이해의 증진, 가정음식 및 과일경연대회, 시음 워크숍, 초청특강 등이다.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 및 음식에 대한 대안의 추구가 요구
슬로푸드 운동에서 지적하듯이 인간의 건강과 행복의 측면에서 볼 때 현대의 농업 및 음식은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패스트푸드의 경우 고지방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건강에 부정적이다.
패스트푸드는 건강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비만을 가져온다.
패스트푸드는 식당에서 종업원과 소비자의 인간관계를 피상적인 관계로 만든다.
또한 패스트푸드의 확산에 의한 가정식사 빈도의 감소는 가족관계를 붕괴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차분히 앉아서 음식을 즐길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도 부정적이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식재도 건강에 부정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장기간의 수송의 필요성 때문에 방부제 등이 살포된다.
이러한 식재의 경우 어떠한 생산과정을 거쳐서 수확되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의 안전성여부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자연의 법칙을 어겨가면서 생산되는 식재의 경우도 안전성이 문제가 된다.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농약, 항생제, 성장 호르몬 등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과일이나 식재가 제철 생산이 이루어지기 보다 사철 생산이 이루어짐으로써 우리의 식사는 철에 따라 덜 단조로워졌다. 이제 일년 내내 토마토, 고추, 참깻잎, 상추, 오이 등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계절식사의 상대적 단조로움은 일년 내내 절대적 동일함과 균일함의 단조로움으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해서 일년 내내 풍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나 제철 과일의 맛을 잃게 되었다.
또 제철 음식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즐거움도 사라져버렸다.
이 밖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음식의 과잉 섭취로 골치를 앓고 있는가 하면 많은 국가에서는
기아와 굶주림이 계속되고 있다.
식량을 충분하게 향유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비만과 성인병, 광우병과 같은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반면에
식량부족국가의 식량부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식량폭동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려면,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 및 음식에 대한 대안의 추구가 요구된다.
사철농업이 아니라 제철농업이 중시되어야
식량문제와 환경문제, 음식의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고, 먹는 즐거움을 회복하려면,
슬로푸드 운동이 제시하는 농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에너지를 많이 쓰고, 출처가 분명하지 않으면서 식재와 식품을 공급하는 탈 지역화된
산업형 농업에서 벗어나 지역농업으로 나가야 한다.
지역 농업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역민들을 위한 식량생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자연의 흐름을 어기는 사철농업, 유전자 조작 농업도 중단되어야 한다.
사철농업이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간 유지해온 제철농업이 중시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농업, 제철농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대규모의 산업형 농업보다는 소생산자들의
소규모 농업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소생산의 경우 영농 자체가 더 환경 친화적이며, 생산과정이 투명하고, 보다 안전한 농산물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한겨레신문 2004년 8월 4일자 기사 일부를 살펴보면,
제주 한라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식습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워서 먹지 않던 고추도 한입에 베어 먹고, 하얀 쌀밥에 구수한 된장 묻힌 상추쌈을 좋아하는 ‘야채킬러’가 됐다.
한라초등학교는 올해 제주시로부터 친환경급식시범학교로 선정돼 연동 해군아파트 근처에
600평짜리 체험농장을 마련했다.
5~6학년 1천여명은 일주일에 두 번 농장에 가 직접 상추와 고추를 기르고 급식 때 반찬으로 먹는다.
1~4학년은 교실 밖 베란다에서 방울토마토, 가지, 상추 등을 심어놓았다.
학부모들도 주말과 휴일이면 농장에 나와 일을 거든다.
아이들이 여태까지 상추를 수확한 것만 모두 6차례. 급식용 외에도 한보따리씩 집에 가져갈 정도로 ‘풍년’이었다.
아이들이 기른 상추와 고추는 각각 507㎏과 35㎏, 시가로 450여만원을 번 셈이다.
체험농장에서는 농약을 쓰지 않는 대신 유용미생물 배양액을 물에 1천배 정도 희석시켜
땅과 작물에 뿌려주는 ‘이엠(EM) 농법’이 이용된다.
현병만 교감은 “제주시청에서 받는 지원액 2천만원 가운데, 절반은 체험농장 관리비로 쓴다”며 “
나머지는 체험농장 채소 외에 급식 때 먹을 유기농 과일·쌀 등을 사는 데 들어간다”고 말했다.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먹을 채소에 정성을 쏟게 되자,
아이들의 음식투정도 사라졌다. 올초까지만 해도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야채 안 먹어요”,
“김치가 너무 시어요.”라는 등의 글이 이어졌지만, 이젠 급식시간을 기다리는 글만 600개가 넘었다.
“벌레가 많았지만 꿋꿋하게 상추를 땄다.
흐흐. 오늘은 급식에 우리가 딴 상추가 나오는 날이다”(한승혜) “우리 모둠이 맡은 고추가 더욱 커졌다.
고추야, 안녕! 내가 너의 아빠란다.”(강준형)
이경아(40) 교사는 “아이들이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면서 편식 습관이 없어졌다”며
“학교 전체가 행복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처럼 야채를 기르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홈페이지는 아이들이 직접 찍은 작물 사진들로 가득찼다.
학부모들은 지난 5월 농업기술센터에서 재배법을 익혀와 ‘친환경 장터’를 열었고,
집에서 재배해 먹는 방울토마토, 고추 등 모종 2천여개가 팔리기도 했다.
어머니회와 학교운영위원회도 아이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자,
시범사업이 끝나는 내년에도 체험농장을 지속시키는 방안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바쁜 현실을 핑계로 느림과 여유의 삶을 도외시하고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생활 속에서 느리게 사는 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하는
지름길임을 모두가 깨달아야 합니다" 라는 이경아 교사의 말은 우리에게 잔잔한 파문을 안겨준다.
슬로푸드 선언은 ‘인간중심 사회로의 복귀’ 선언입니다!
다음글은 한국에서 슬로푸드운동의 선구자인 김종덕 교수의 ‘슬로푸드 슬로라이프’ 머리말의 일부분이다.
“오늘날 기계는 우리 생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으며, 우리의 습관을 망가뜨리며 우리 가정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를 먹도록 하는 빠른 생활, 즉 '패스트 라이프'라는 음흉한 바이러스에 굴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 식탁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역 요리의 맛과 향을 다시 발견해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의를 낮추는 패스트푸드를 추방해야 합니다.
생선성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빠른 생활이 우리의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고
우리의 환경과 경관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용기 있는 해답은 '슬로푸드'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슬로푸드 운동은 아직 걸음마단계이다.
하지만 우리의 농업과 먹거리에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슬로푸드 운동이 더 필요하다.
특히 빠른 것에 익숙해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