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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꼬리왕쥐
염승숙 “차라리, 차라리 나를 잡아먹겠다고 말해.” 그 순간, 나는 피를 흘리며 아스팔트 위로 널브러지는 나를 상상했다. 내 몸은 찢어발겨져, 저 흉측한 입 속으로 들어가리라. 단단한 뼈는 부서지고 질긴 살은 씹혀 저 몸의 일부가 되리라. 꽉 다물었는데도 이빨이 덜덜 떨려왔다. 턱이 흔들리는 것인지 세상이 요동치는 것인지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리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놈은 여전히 배실배실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내 몸의 모든 피가 쏟아져 아스팔트에 스며들고, 내 몸의 모든 살이 갈기갈기 찢겨 지나는 자동차 바퀴에 뭉개진다 해도 저 웃음을 보는 것만큼 나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놈의 웃음에 전신의 신경세포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하수구로 흘러드는 구정물에 나동그라져 온몸에서 악취가 배어나왔다. 한 발짝씩 다가오는 놈의 걸음에 맞춰 나는 엉덩이를 슬슬 뒤로 빼냈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온몸이 지직거렸다. 내 몸의 주파수를 제대로 맞출 수 없어 나는 허둥대었다. “뱀꼬리왕쥐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놈은, 이번엔 조금 더 길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온몸을 아프게 두드려왔다. 놈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라 넘어질 때 발목을 삐끗했던 듯 쏟아 붓는 빗줄기에 발목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하수구 철창살을 쏙 빠져나온 검은 생쥐 한 마리가 내 운동화로 달려들었다. 생쥐는 날쌘 동작으로 운동화끈을 풀더니 유유히 꼬리를 흔들며 두 발로 서서 걸어가 버렸다. “내 운동화끈!” 하고 나는 소리쳤으나, 달아난 생쥐 대신에 놈이 내게 다가와 무릎을 구부리고 소리 없이 앉았다. 놈은 빗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내 운동화끈을 추슬러 꽉 매어주고는 운동화코를 탁탁, 두 번 두드리고 다시 웃었다. ‘아아, 이런.’ 놈이 보다 더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바투 들이밀었다. 살려달라고 빌며 훌쩍여볼까, 아니면 한 대 후려치고 냅다 튀어나가볼까. 나는 머릿속이 온통 헝클어져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할지 난감해졌다. 어쩐지, 아침에 고양이가 던진 반짇고리에 맞은 것부터가 불길했었다. 가위며 초크, 줄자, 클립, 바늘들이 잔뜩 얽히고설킨 채로 온몸에 전기를 일으키며 파닥거렸다. 나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전단지 뭉치를 떨어뜨렸다. 방바닥을 온통 뒤덮어버린 에이 포 용지 크기의 종이 속에 갇혀 수십, 수백의 케이가 웃고 있었다. 살갗을 찔러대는 바늘더미에 내가 아야, 하는 소리를 내지르자 고양이는 실실 웃음을 쪼개며 이불 위에 엎드린 채 손톱을 깎았다. “그러게, 주무르랄 때 재깍재깍 달려와 주물러주면 좀 좋아?” 정확히 날아와 꽂힌 대바늘들을 쑥 빼내자 팔뚝엔 숭숭 구멍이 뚫려 있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손에 쥔 듯 고양이의 허리와 엉덩이 여기저기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나는 짜증을 냈다. “그놈의 뼈마디 암만 주물러줘도 시원하다 소리 한번 못 듣는데!” 고양이는 눈을 흘기며 깎은 손톱에 입을 대고 후, 불었다. 먼지들이 날개를 달고 팔랑거렸다. “종이쪼가리 암만 붙여봤자 안 올 놈은 결국 안 오게 되어 있어, 네 애비를 봐라.” 무심한 고양이의 목소리가 졸음처럼 내 눈꺼풀 위에 내려앉았다. 고양이 입에서 나온 아버지란 단어에 나는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고개를 떨구니 바닥에 흩뿌려진 바늘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총총히 줄맞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차륵차륵 소리를 내며 걸어가서는 차례를 기다려 하나 둘씩 반짇고리 안으로 들어가 몸을 눕혔다. “얼른 주워 담지 않고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어, 얘가.” 고양이는 어깨를 한껏 옴츠리고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거실 곳곳에 나뒹구는 바늘들이 아침 햇빛에 닿아 반짝거렸다. 나는 바늘을 한움큼 집어 들고 하나씩 내 눈에 박아 넣고픈 충동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줄자로 크기를 재고, 초크를 집어 금을 긋고,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머릿속에 하나씩 하나씩 클립과 바늘을 찔러 넣고 싶어 순간 목이 메었다. 나도, 고양이도, 우리의 일상도, 우리의 세계도 모두 환상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은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열일곱의 생일이 다가오는 어느 날에 보았던 그 광경은 첫 수음의 경험처럼 나를 헐떡이게 만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 학교에서 일찍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왔던 날, 안방에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허리 디스크로 오년 째, 이부자리에 누워 끙끙대던 아버지가 고양이의 배 위에서 씰그럭대는 모습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언하건대 그것은 끈끈하고 질퍽한 정사의 장면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구겨진 헌 옷가지처럼 둥그렇게 말려진 채로 고양이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두 눈을 비비려던 찰나에, 아버지는 고양이의 입 속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소음이 나지 않는 진공청소기로 옷걸이에서 흐물흐물 흘러내린 옷이 빨려 들어가듯 아버지는 그렇게, 고양이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마침 커튼을 달지 않은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고양이의 몸에서 새하얀 광채가 반사되는 듯 보였다. 고양이의 무심한 눈길이 내게로 향했을 때 나는 마침내 다릿심이 풀려 방문턱에 주저앉아 버렸다. 고양이의 눈동자 속에서 아버지가 울부짖었다. “네 애비가 집을 나갔다.” 움푹 패여 납작해지고 색이 누렇게 바랜 이부자리를 손으로 가볍게 쓸며 고양이가 입을 뗐다. 잠시 멍해졌을 뿐, 괴롭거나 슬픈 기분에 휩싸이진 않았다. 건조한 고양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저 ‘이제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겠구나’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눈이 보는 것, 머리가 생각하는 것 전부를 믿지 못하게 되는 일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것은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바지 앞섶을 꽉 조이는 나의 몸을 확인하는 일만큼이나 두렵고, 고양이의 가랑이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수백 수천의 또 다른 아버지를 상상하는 일만큼이나 짜증스러운 것이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오선지처럼 깨끗했던 나의 하루, 나의 일상은 점점 화려한 선율에 휩싸여 생생한 노랫말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것을 해석하지 못해 몸이 달았다. 일상은 고달팠고, 차츰 그런 나 자신에게 적응해나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은 더욱 고독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납작 엎드린 채로 시계바늘을 움직여왔다. 아버지는 도대체 집을 나가 어디로 간 것일까. 고양이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은, 정말 아버지였을까. 혹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바로 고양이의 뱃속인 것은 아닐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내가 머무른다. 참과 거짓의 강에서 내가 헤엄친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틈에 내가 존재한다. 나는 서있으면서 앉아 있고, 자면서 깨어 있다. 말하면서 듣고, 믿으면서 의심한다. 사랑하면서 증오한다. 나는 있으면서, 없다. 숨쉬되 숨쉬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진정 살고 있는 것일까, 묻고 싶을 때마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삶은, 거짓이 아니다. 나 또한, 환상이 아니다. “맞습니다. 당신은 살아 있어요, 살고 있지요.” 놈은 여전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실실 웃음을 쪼개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계속해서 눈으로, 입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얼굴이 따가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 나하고 뭘 하자는 거야.” “난 당신과 뭘 하자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이미, 우리의 세계로 들어왔는걸요.” 얼토당토않은 놈의 이야기에 다급했던 마음이 일견 수그러들고 있었다. ‘흐응, 마음대로 지껄여보라지’하고 나는 생각했다. 환상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사라진 환상은 또 다른 환상을 불러온다. 새로운 환상과 마주했을 때 나는 또 그것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내려앉은 어둠처럼 음산한 놈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지도, 그리고 콧구멍을 벌름대며 서 있는 놈의 어처구니없는 저 표정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인형을 발로 찼을 뿐이었노라고, 빗방울이 흐득흐득 떨어지는 이 밤에 단지 빗물에 젖은 크고 더러운 쥐 한 마리와 마주쳤을 뿐이었노라고 주문을 외듯 속으로 되뇌었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진실로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녹이 슨 우산살을 망연히 올려다보며 걷던 나는, 그 무엇이라도 구둣발에 채이면 답삭 집어 던져버릴 만큼 기분이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젖은 모래처럼 절그럭거리는 채로, 하필이면 내 바짓가랑이에 구정물을 튀기며 달아나는 자동차의 꽁무니를 향해 욕설을 퍼붓던 중이었다. 그런 내가, 흙탕물에 찌들어 바닥에 뒹굴던 덩치 큰 인형을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때마침 고양이가 아침부터 바늘더미를 집어던진 날이었고, 때마침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날이었고, 또한 때마침 어느 몹쓸 년놈팽이가 대형 폐기물 스티커도 부착하지 않고 길가에 더러운 인형을 내다버린 날이었다. 이 모든 이유에 분명, ‘나’는 들어있지 않았다. 하루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행위들은 이유 없이, 그러나 자연스레 맞물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한다. 나의 행동 역시, 우연. 오늘의 이 환상 역시 의미 없는, 일상적 행위. 그러나 내 구두코에 옆구리를 채인 놈이 발딱 몸을 일으켜 핑그르르 돌아, 온몸의 빗물을 샅샅이 털어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놈에 의해 이 늦은 저녁, 온갖 오물의 지린내가 코끝에서 진동하는 하수구 빗물받이 위에 주저앉는 수모를 당할 줄은 더더욱 예상치 못했었다. “나는 뱀꼬리왕쥐예요.” 놈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무표정해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의 거대한 몸집 때문에 더욱 새까만 어둠에 휩싸여버린 나는 그 깜깜한 공포에 숨이 턱턱 막혔다. “뱀…… 뭐?” 화살처럼 온몸에 내리꽂히는 빗줄기 때문에 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어 나는 철벅철벅 구정물만 움켜쥐었다. 놈은 보다 가까이 내 앞으로 다가와 천천히 뒤를 돌아보였다. 그 순간 무언가 코끝으로 다가왔다가는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나의 콧등을 훑었고, 나는 베이기라도 한 듯 황급히 코로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나는 빗물과 함께 입술 새로 흘러드는 끈적끈적한 무언가를 느끼며 입을 벌리고 머리통을 감싸 쥐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심장이 터질 듯 했다. 입술을 비집고 든 그것은 뱀이 혓바닥을 내밀어 핥을 때 묻은 침이었다. 점성이 그닥 강하지 않은 침은 마치 깨끗하고 맑게 흐르는 아이의 콧물처럼 투명한 것이었으나 이내 빗물에 쓸려 버렸다. 쥐와 뱀, 뱀과 쥐, 뱀꼬리왕쥐. 나는 휘융 휘융,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정신의 끝자락을 잡고 일어서려 애를 썼다. “좀 제대로 눌러드리라고.” 퇴근 전, 원장은 나에게 다가와 헛기침을 해댔다. 마침 나는 거리낌 없이 바지를 까내리고 누운 한 중년 여자의 꼬리뼈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곳을 향해 적외선 치료기의 목을 뒤틀고 있던 참이었다. 원장은 투실한 왼쪽 엉덩이에 깨알 같은 점이 다닥다닥 박힌 여자를 흘깃거리며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원장의 두툼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중년 여자의 맞은편 퀸사이즈 침대를 우리집 고양이가 하루 온종일 차지하고 누워 있는 참이었다. “아니 내가 왜, 내 아들이 여기 치료산데, 내가 왜!” 고양이는 당신 아들이 외과병동 물리치료왕국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며 뻔질나게 병원을 드나들었다. 원위적외선 치료기와 근위적외선 치료 기계를 해가 저물도록 두 개씩 차지한 채 내놓질 않았고, 하다못해 온습포며 얼음주머니 하나에도 종류별로 욕심을 냈다. 가뜩이나 하루에 사십여 명이나 되는 환자들을 혼자서 감당하느라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던 터였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는 데도 꼬리뼈가 아프다며 바지며 치마를 훌훌 벗어던지는 환자들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데운 온습포를 고양이의 허리에 대어주려다 원장이 찌른 옆구리를 매만지며 머쓱하게 손을 거두어들였다. 명상의 시간이라도 갖는 듯 평온히 누운 고양이의 귀 가까이 대고 ‘집에 가’라고 나직하게 속삭인 것은 여섯 시 반인 퇴근시간을 십 분 여쯤 남겨두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결국 오늘도 여덟 시가 훨씬 넘어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며, 엉덩이를 까고 엎드려 누운 무수한 꼬리뼈들을 향해 돌아섰던 때였다. 마침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원장의 등짝에 달라붙어 씰룩씰룩 엉덩이를 움직이는 식어빠진 온습포가 눈에 들어왔다. 춤추는 온습포를 지나쳐 와이가 또각또각 구둣발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고양이가 입을 삐죽대며 일어난 침대 시트 위에 한 움큼씩 빠져있는 고양이의 머리털을 주머니 속으로 정신없이 쓸어 담았다. 흰 가운 주머니 바깥으로 검고 굵은 그것들이 비죽 솟아올랐지만 그다지 거슬리는 일은 아니었다. 내게는 두툼한 환자별 차트를 겨드랑이에 끼고 침대 시트를 갈아 끼울 와이가 고양이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 더 신경쓰였다.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가고 일곱 시 반쯤 와이에게 다가갔을 때, 와이는 피곤하다는 듯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멋스럽게 꽂은 와이의 푸른색 비녀가 스르륵 몸을 풀어 지렁이처럼 와이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나는 와이의 목 뒤로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두 갈래의 날카로운 비녀는 매우 단단히, 와이의 머리칼을 그러쥐고 있었다. 나는 오후에 와이로부터 건네받았던 쪽지를 손 안에서 구기며 오랜 시간 와이의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댔다. ‘이렇게 너와 헤어질 순 없어, 와이.’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온종일 마른침만 삼켜대니 목젖이 아파와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라는 되도 않는 직함을 달게 된 것은 순전히 꼬리뼈가 아프다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외상에 의한 허리 근육통이나 디스크 수술 후의 통증, 골다공증에 의한 척추뼈 압박 골절 등, 원인이 정확히 파악되는 환자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자세불량이나 혈액순환부족으로 오는 만성요통 환자들이었다. 동료 선배 케이와 함께 나는 맘 편히 커피 한잔 마실 틈도 없이 환자들 틈에 끼어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만성적 미추통 환자들은 감당할 도리 없이 난감하기만 했다. 주치의들이 내린 피로와 스트레스, 라는 진단은 ‘특별한 이유 없음, 나도 잘 모르겠음’이라는 뜻과도 같았다. 스테로이드와 국소마취제를 혼합한 약물을 주사하면 시술시 통증이 거의 없고 합병증도 최소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물리치료를 원했다. 초음파 사용으로 정확도도 높아요, 하고 권해도 다들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뜨끈히 찜질을 받으며 두어 시간 푹 쉬다 가는 것으로 그들은 만족해했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고민하던 케이가 ‘통증은 감각에 감정이 더해진 것입니다. 감정의 정서적 요소를 조절하는 것이 통증의 극복에 도움이 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물리치료실 곳곳에 붙여놓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바빠서야 원, 푸실푸실한 아무 여편네 엉덩이라도 붙잡고 오입하고 싶어지겠는 걸. 자세가 딱 나오잖아, 딱. 집에 들어가 마누라 안아줄 시간도 없는데 말야. 클클.” 위로랍시고 꺼내는 원장의 재미없는 농담들에 나는 쓴웃음을 삼키고 말았지만 케이는 언제나 양 볼은 물론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케이가 없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엎드려 누워 꼬리뼈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의 허리에 데운 온습포를 올려놓고 적외선 치료기의 예약 타이머를 십오 분에서 이십 분으로 맞춰놓는 행동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따름이었다. 골반 및 척추변형에 의한 통증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힘주어 꼬리뼈를 마사지 해주기도 하지만 일시적으로 그들의 편안한 수면을 유도할 뿐, 딱히 뚜렷이 호전되는 효과를 보진 못했다. 그렇기에 매일 매일, 내 손은 살점을 뜯고 꼬리뼈를 움켜잡는다. 미지근하고 탁한 강물에서 갓 건져 올린 꼬리뼈는 기운을 잃고 축 늘어져 있다. 나는 꼬리뼈를 들어낸 빈 자리에 모래와 아스팔트를 사박사박 채워 넣는다. 그 위에 생명력이 사그라지는 꼬리뼈를 눕히고 토닥인다. 색이 바래고, 병이 들었던 물고기는 이내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퍼덕인다. 다 스러져가는 물고기를 등골뼈의 밑끝 부분에 매단 채 사람들은 매일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들의 꼬리를 만지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내 손길은 데워진 온습포처럼 따뜻할까. 삼십 분 이상 지속되는 열기운처럼, 혈관을 수축시키고 염증을 감소시키는 얼음주머니처럼, 정녕 뜨겁고도 차가울까. “뱀의 혀는 포유류의 코예요.” 놈은 어느새 다시 제자리, 제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순식간에 내 코를 훑고 사라진 뱀 역시 환상이었나,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놈은 입을 놀렸다. “쉴새없이 혀를 움직여 뇌에 냄새를 전달하죠. 공기 중 미립자와의 접촉을 통해서요. 단지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니 너무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꼬리가…….” “뱀이죠.” 나는 숨을 헐떡였고, 놈은 여유만만했다. 빗줄기에 때려 맞고 있는 온몸이 흐느적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비릿한 물냄새와 땀냄새가 하수구 악취에 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다시 말하건대 나는 뱀꼬리왕쥐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에 발길질을 했고, 내가 바로 그 문이지요. 문이 열렸으니 당신이 들어오시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의 어깨를 감싸고 도는 우주의 순리입니다.” “무슨 개 같은 소리야!” “환상은 환상을 믿는 사람 곁에 머물지요.” “난 믿지 않아.” “아뇨, 당신은 믿지요. 그리고 바라지요. 실재하는 모두가 환상이기를.” “그래, 그럼 너도 환상이라는 거로군.” “아닙니다. 내 세계에서 나는 현실입니다. 당신은 뱀꼬리왕쥐의 세계로 들어오셨습니다.” ‘나는 아직 아냐!’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놈은 빙긋이 웃으며 깃발처럼 꼬리를 펄럭였다. 뱀의 비늘이 어둠속에서도 반짝이는 듯 눈이 부셨다. 당장이라도 혀를 늘여뺀 뱀이 내 목을 휘감을 것만 같아 온몸의 세포가 빳빳이 굳어 왔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달겨들어볼까, 그러나 놈의 거대하고 퉁퉁한 배는 내 몸의 무게마저 흡수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주위에 무기될만한 것이라도 뭐 없을까, 나무 막대기나 녹슨 고철 나부랭이라도. 그러나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놈은 지금, 내 눈알이 돌아가는 속도마저 감지하고 있으리라. 발목엔 여전히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빗물을 옴팡 뒤집어쓴 옷이 축축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혼쥐! 나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혼쥐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살아있는 자의 영혼을 의미하는 혼쥐는 산 사람의 콧구멍 사이로 드나든다. 사람의 몸 바깥으로 혼쥐가 잠깐 외출하면 병이 나고 영원히 떠나면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놈의 정체는 바로 내 영혼을 가진 쥐가 아닐까, 나는 조급해졌다. “그렇다고 하기엔 제 덩치가 너무 크지 않을까요?” 어이없다는 듯 벙시레 만면에 웃음을 띠는 놈 앞에서 나는 잠시나마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빠진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콧구멍으로 드나드는 콩알만한 혼쥐. 놈은 쥐의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몸집이 너무도 커서, 흡사 앞발을 내밀고 둥싯둥싯 엉덩이를 움직이는 곰처럼 보이기에 딱 알맞았다. 물리치료실은 결코 빈 자리가 나는 법이 없는 공동묘지. 치료실 침대마다 빼곡히 들어선 간이 무덤들. 나는 돈을 받고 그들의 무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자 삼십 분마다 한번 씩 퇴화된 꼬리뼈를 뚜둑 뚜둑 마사지해 몸속에서 날렵하게 헤엄치게 만드는 마술사. 고개를 외로 튼 채 빼곡히 엎드려있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잠시 의자에 앉아 쉴 양이면, 나직하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든 환자들의 코로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쥐들이 부리나케 달려 나가고 또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얼음주머니를 갈아주려 다가간 환자는 투명하도록 차가운 흰 쥐가, 실리카겔이 든 온습포로 바꿔주려 다가간 환자는 데일 듯 타오르는 붉은 쥐가, 속속 빠져나와 발가벗겨진 그들의 꼬리뼈 위에서 미끄럼을 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방 안에 펼쳐져 있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쓰러져 눕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안방의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날렵하게 내 곁을 스쳐 튀어 나갔던 건, 정녕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저 그러고도 꽤 오래도록, 사지를 늘어뜨린 채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고양이의 숨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운 비린내와 함께 전신으로 틈입, 흡수되었다. 그날 이후 나의 몸 구석구석을 채워버린, 흙탕물에 뒹군 고양이의 더러운 발자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고양이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봉인된 주술처럼 나를 아프게 두드려 왔다. “내 눈에 혼쥐가 보인다면 나는 낼름 잡아먹어 버릴 거야.” 오후에 고양이의 귀에 대고 혼쥐에 대해 얘기해주니 고양이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휘감으며 가르릉거렸다. 엎드려 누운 고양이의 꼬리뼈가 꿈틀대며 움직였다. 내가 한껏 허리를 구부려 고양이의 꼬리뼈를 누르고 있을 때 와이가 다가와 쪽지 한 장을 던지듯이 버려두고는 총총히 걸어갔다. 나는 반듯하게 두 번 접힌 자국이 난 쪽지를 힘주어 붙들고 마냥 고양이의 꼬리뼈만 눌러댔다. “왜, 저 여시 같은 년이 뭐라고 그러는데?” 고양이는 와이의 뒷모습을 향해 야옹대며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다. 와이와 만나 데이트를 할 때도 나는 쉴새없이 볼칵거리며 솟아나는 환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봇대를 향해 기어오르는 자전거를 붙잡기 위해 와이의 손목을 움켜쥔 채 뛰었고, 코스모스의 대궁을 죄다 꺾으며 낮게 날아가는 내 가방을 향해 몸을 날리느라 와이까지 곤욕을 치렀다. 티셔츠에 프린트된 남자와 여자가 와이의 가슴에서 포크댄스를 추는 바람에 제대로 된 첫키스는 물 건너 가버렸고, 방 안의 모든 사물들이 팔을 뻗어 ‘위스키! 허스키! 와이키키!’를 외치며 내 성기를 향해 달려드는 바람에 기껏 여관방에 들어가서도 와이의 손가락 하나 건들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했다. 고양이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아버지의 잔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아서 나는 와이를 향해 바로 누울 수조차 없었다. ‘병신’이라고 휘갈겨 쓴 와이의 날선 글씨가 쪽지를 비집고 나와 그 쪽지를 쥔 손에 피를 냈다. 붉은 피는 종이처럼 얇게 몸을 일으켜 흐느적거렸다. 나는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린 채 차트에 코를 박은 와이의 머리통을 내려보다가 종잇장을 구기듯 주먹을 꽉 쥐며 느지막이 병원을 빠져나왔다. 열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와이는 야근할 때 무슨 야참을 먹을까 혹은 화장실엔 몇 번이나 갈까 혹은 야참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가면서 내게 전한 쪽지를 후회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려 애쓰며 나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어둠을 헤치고 불붙여진 담배는 몇 모금 빨리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에서 스스로 제 몸을 태웠다.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내 몸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 나는 내 눈이 보여주는 시공간의 풀숲을 헤맨다. 내 머리가 판단하는 세상과 우주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 매 시 매 분 매 초, 나는 정확한 걸음으로 표지판을 향하여 걷지만 매 순간 나를 맞이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의 담벼락 뿐. 나는 궁지에 몰린다. 식은땀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내 엉덩이의 꼬리뼈도 움찔, 비늘을 털어내듯 능란하게 움직인다. “자, 이제 가셔야지요.” 놈이 잿빛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눈썹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정말 환상이 아니라면, 놈의 말대로 내가 뱀꼬리왕쥐의 세계로 들어온 거라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진실로, 이것이 환상이 아닌 실재일 수가 있는 걸까. 아스팔트에 스며들지 못하고 고여 버린 빗물이 내 발을 휘감고 있었다. 발이 퉁퉁 부어오른 듯 신발이 버겁게 느껴졌다. 꼬리뼈가 시리고, 턱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빗줄기는 약해졌으나 그 동안에 퍼부었던 빗줄기가 화살촉처럼 살에 박힌 듯 찬 기운이 몸에 감돌았다. ‘이건 환상이야, 홀리면 안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기억의 길을 되돌아 걷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와이를 바라보다 늦은 저녁 병원을 빠져나왔고, 때마침 퍼붓는 비에 가방에서 꺼내든 우산은 녹이 슬어 있었고, 이래저래 짜증이 왈칵 몰려들었고, 나는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뒹굴던 더러운 쥐 인형의 옆구리를 힘껏 발로 찼다. 그래 어쩌면 나는 몹시도 흥분하여 인형을 발로 차다가 미처 내 앞으로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운전자에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밤의 교통사고는 뺑소니를 치기에 안성맞춤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리에 방치됐고, 죽었고, 놈은 나의 영혼을 거두어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찾아온 사자인지도 모른다. “이 곳은 그럼, 높은 고개이겠구나.” 나는 어깨에 잔뜩 실었던 힘의 봇짐을 내려놓았다. 어쩐지 스르륵 긴장의 끈이 풀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곳은 단지 도로 위 아스팔트일 뿐입니다.” 놈의 목소리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죽은 자에게, 진실을 통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바지춤을 풀고 오줌발이라도 갈겨주고 싶었던 마음은 이미 잦아들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는 놈을, 너그럽게 이해해줄 것이다. “그럼 너는 할멈 대신에 나를 맞이한 것이겠구나.” “나는 뱀꼬리왕쥐예요.” “다 이해해. 그럼 이제, 술을 받아 마실 차례로군.” “술은 드리지 않습니다.” “시치미 떼기는. 그쯤은 나도 다 알아. 사람이 죽어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는 높은 고개가 있고, 고개 마루턱에는 술집이 하나 있다지. 그 곳의 아주 능글맞은 할멈은 망자에게 술을 마시게 한다면서. 누구든 그 할멈에게 걸리면 술을 받아 마시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술을 마시면 생전의 기억은 까맣게 잊게 된다더군. 그래, 그러니 이제 걱정 말고 나에게도 술을 줘. 이렇게 된 바에야 뺑소니 따위, 원망하지 않겠어.” “정신 놓지 말아요. 나는 환상도 아니고, 저승사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개수작 부릴 생각 마!” 나는 점차 흥분하고 있었다. 열 때문인지, 몸이 뜨거워지면서 정신이 가물거렸다. “당신은 그저, 내 손만 잡으면 돼요. 그 전에, 당신의 꼬리뼈를 내놓는다는 간단한 약속만 해주시면 됩니다.” 꼬리뼈! 머리가 흔들려 세상 전부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 놈이 서 있었다. 꼬리뼈, 라는 놈의 말에 가물거리던 정신은 칼처럼 매서워졌다. 마침 빗물을 타고 하수구로 쓸려 내려오던 줄무늬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신발 코 위로 폴짝 뛰어올라 운동화끈을 이빨로 물어 단단히 고정시켜주었다. “가만 보고 있으면, 마음달이 떠오르는 것 같아.” 하고 중얼거리곤 했던 사람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 케이였다.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심하던 케이는 책 읽는 것과 차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갑갑한 물리치료실 안에서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곤 했다. 그는 물리치료실을 가득 채운 꼬리뼈들을 바라보며 언제나 만면에 홍조를 띠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 하나씩 자신만의 달을 가지고 태어나. 그게 바로 꼬리뼈야. 천골에 이어지는, 여러 개의 미추가 결합된 뼈. 태생기에는 누구나 아홉 개의 미추로 이루어진 꼬리뼈를 가지고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성장하면서 소실되어 버리지만 흔적기관으로는 남아있지. 난 그게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는 달이라고 생각해. 안타깝게도 우린 늘, 삶이 너무 고되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만 고개를 들고 하늘에 매달린 달을 바라보지.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자신만의 달이 떠오르고 있어. 우리는 스스로 그걸 깨달아야 해.” 나는 케이의 남자답지 않은 감상적 고백을 웃음으로 흘려들었다. 케이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꼬리뼈가 내게는 온통 불온한 뼛조각들로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꼬리뼈 속에는 인간이 갖고 있는 아주 원초적인 본능들, 동물적인 습성들, 뭐 이런 것들이 내재되어 있는 것만 같아요. 격한 투쟁심이라든지, 음탕한 욕망이라든지, 피로 범벅된 생존 본능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에요. 인간도 동물이니까요.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는 척도는 이성적 사고나 언어적 능력도 있지만 몸의 형태만 놓고 보면 단순히 꼬리가 있다, 없다 아닌가요. 가슴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격정과 욕망, 불안과 공포가 모두 꼬리뼈로 가서 숨는 거예요. 사람들은 누구나, 꼬리뼈를 감추고 자신이 온순한 척, 고요한 척, 위선을 떨지요. 모두가 환상이에요. 실재는 없어요.” 내가 그의 앞에서 성난 목소리를 키울 때마다 케이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곤 했다. “그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내 눈엔, 몸 속 바다를 밝혀주는 노랗고 환한 꼬리뼈가 보여. 단단히 잠겨진 문 같은 꼬리뼈가 열리면 너무도 고요하고, 또 평온해지지. 그것은 불신도, 미움도, 증오도, 가난도, 환멸도 없는 시간이자 공간이야. 전신의 감각이 무력화 되어버릴 만큼 나 스스로의 문을 열어두는 행위지. 꼬리뼈가 열리면, 마음에 달이 뜬다.” 그런 케이가 한 달 전부터 아무런 통보도 없이 병원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물어물어 찾아간 집의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따뜻하고 차분했던 케이. 나는 치료실에서 늘 케이와 함께하며 얻었던 작은 미소와 위안을 잃고 상심해 있던 터였다. 나는 케이의 사진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발길 닿는 대로 붙여놓고 다녔다. 와이에게 케이의 일을 걱정하며 상담해 봤지만 와이는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듯 시큰둥한 반응만 보여줄 뿐이었다. 케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발목을 까딱 움직였을 때 줄무늬 새끼 고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나 놈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고개를 드니 코앞에서 놈이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서 가시죠. 당신에겐 꼬리뼈가 필요 없잖아요.”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나는 힘주어 반문했다. “당신이 늘, 그렇게 생각해 왔으니까요.” 멋지게 휘두르던 장난감 칼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소름처럼 돋아났던 마지막 희망이 내게서 등을 돌려 휘적휘적 걸어가는 듯 했다. “꼬리뼈를 내주면, 나도 뱀을 얻게 되는 것이로군.” “뱀의 등뼈는 약 삼백 여개쯤 됩니다. 세 개에서 여섯 개쯤밖에 되지 않는 그깟 사람의 꼬리뼈보다야 훨씬 이득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차츰 바닥 위로 널브러지는 내 몸 위로 놈의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던져졌다. 내가 나를 환상이 아니라고 믿듯, 놈도 실재인 걸까. 나는 들려오는 놈의 말을 막을 수 있다면 두 귀를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까스로 손을 들어올려 두 귀를 잡았다. 그러나 두 귀는 부러지지 않고 그저 물컹물컹 구부러지기만 했다. 좍좍 내려 긋던 장대비가 그쳐버린 어두운 이 밤, 아스팔트는 차가웠고 내 몸은 뜨거웠다. “집에 가야 해. 고양이가 기다려.” 꼬리뼈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고양이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 병원을 나섰다. 여섯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먼저 혼자 집으로 간 고양이는 늦게까지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짜증을 내고 있을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바보 천치에 빙충이라고 찔끔찔끔 눈물도 짜고, 요망스런 계집이라고 와이를 욕하며 바닥을 설설 기고 있으리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미끄러지면서 팔꿈치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래도록 차가운 빗물에 주저앉아 있었던 탓인지 엉덩이도 시큰거렸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머님은 아주 잘 계십니다.” 놈이 능글맞게 웃음을 흘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흐무러지기를 반복했다. “무슨……, 무슨 짓을 했어, 너!” 잡았다 놓은 고무 막대처럼 몸이 휘청댔다. 자꾸 눕고만 싶어졌다. 놈은 육중한 자신의 몸을 움직여 허공에 손가락을 대고 크게 네모를 그렸다. 그러자 네모난 공간 안에서 고양이의 모습이 나타났고, 고양이는 바른 자세로 걸어와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흑백도 컬러도 구분이 잘 되지 않는 흐릿한 고양이의 영상은 그러나, 빠르게 혀를 놀리는 한 마리의 뱀이 고양이의 엉덩이로부터 쑥 삐져나와 있는 모습을 명백히 내게 보여주었다. 고양이는 능숙하게 유(U)자 곡선을 그리며 뱀의 꼬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아 눈물이 날 때까지 두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고양이의 얼굴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땄을 때도, 첫 출근을 하던 날에도, 절뚝이는 다리로 병원에 찾아와 ‘내 아들, 내 아들’을 찾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때에도 저토록 빛나는 표정은 아니었다. 뱀의 몸을 얻은 고양이는 행복하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진 선인장처럼 수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나직한 탄성을 뱉어냈다. 진득한 가래침처럼 나는 흐무러져 바닥에 들러붙었다. 누군가 검은 구둣발로 뚜걱뚜걱 걸어와 나를 짓이겨 주었으면, 삶의 저 밑바닥에서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리듯 카악 칵, 맑고 끈적한 가래를 덧씌워 주었으면, 나는 갑자기 밀어닥친 요의에 단단한 방광을 움켜쥐고 굴렀다. 따뜻한 오줌이 허벅지를 적시고 빗물에 섞여 하수구 빗물받이로 흘러들었다. “케이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놈은 말없이 그저 고개를 흔들었다. 어두운 이 밤, 가로등처럼 내 앞을 밝히고 선 놈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이,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케이는.” “그러나 꼬리뼈를 내어줄 사람은 무궁무진하지요. 우리는 당신들이 원하는 몸을 내어줍니다.” “적어도, 뱀은 아냐.” “그 무엇이든지요.”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고, 어둠이 밀려오고, 어둠이 사라진다. 꼬리뼈는 살아있고, 꼬리뼈는 죽어있고, 내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뜻하게 데워줘. 아님 차갑게 식혀줘도 되고. 혼곤히 잠이 들도록 꼬리뼈를 만져주면 꼬리뼈가 열려. 몸이 두 동강이 난 듯 해. 사람들이 우리에게 꼬리뼈를 맡기는 순간, 그들은 스스로의 문을 열어젖힐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고 이내 그들은 자신만의 달을 마음에 매달지. 사람들은 편안해지고, 온순해지고, 고요해져.” 어디선가 조근 조근 이야기해주는 케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나 소중해서, 열린 꼬리뼈 사이로 들어가 버렸나요. 몸을 가르고 들어가 노란 달이 되어버렸습니까, 케이. “마음대로 해.” 나는 허공에 대고 힘없이 말을 던졌다. “반갑습니다. 당신은 드디어 뱀꼬리왕쥐의 세계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순간 놈이 보다 가까이 내게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내 머릿속은 온통 와이, 와이로 얼룩이 졌다. 꼬리뼈를 내어주고 뱀의 몸을 얻은 나를, 와이는 받아들여줄까. 나는 너에게 두 번 다시는, 병신이 아니게 될까. 처음으로 나를 무언가의 존재로 규정해 준 사람인 와이, 그게 병신이란 이름의 존재라 하더라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게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병신일지라도, 와이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나는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존재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쿨렁,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또한 무언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혼쥐가 아닐 것이며 그러므로 나는 살아있는 것이며 나와, 나를 이루고 있는 세계 역시 환상이 아닐 것이다. 잃고, 또한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 지닌 쳇바퀴의 본질.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의 반응. 그것은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의 움직임과도 같은 관성. 바람이 머물던 고무의자의 반동이 멎듯 우리네 몸의 반응도 일시적이고 즉각적이다. 변화하고 적응한다. 그것이 우리의 몸, 나의 몸, 너의 몸. 몸, 이처럼 나를 눈물 젖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머리카락과 피부, 뼈와 손톱에 깃들인 무수한 ‘나’의 얼굴들이 몸에 의지해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간다. 텅 빈, 나의 몸. 그 무엇이 들어와 나를 채운다 해도, 변할 것이 있으랴. 나는 여전히 나, 척추가 부러지고 파충류의 표피를 얻어도 나는 여전히 나,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존재하는 나, 나의 몸. ‘당신은 믿지요. 그리고 바라지요. 실재하는 모두가 환상이기를.’ 다시 퍼부어대는 빗줄기의 소리를 들었던가, 놈이 유쾌하게 웃는 소리를 들었던가, 나직하게 속삭이는 케이의 목소리를 들었던가, 저 멀리서 날카롭게 손톱을 세운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던가, 다시금 방안의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와 웅크리고 누운 아버지의 몸 뒤채는 소리를 들었던가. 정신의 불이 끔벅 들어왔다가는 꺼져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