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0월 13일) 오후 2시 부터 오후 6시까지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교육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주제로
광주시민 500인 원탁토론이 진행되었는데 그 토론에 참가한 소회를 적어본다.
요즘 '000인 원탁토론'이 뜨고 있다. 아니, 이를 주관하는 '코리아스픽스(Korea SPEAKs)'가 뜨고 있다고 해야하나?
대의정치에 식상한 시민들에게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주관 기관에서는 이런 토론을
통해 "숙의 민주주의(또는 심의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Deliberation Democracy)"를 실현시킨다고 한다.
경남도민 500인 원탁회의, 전국 대학생 1000인 원탁회의, 서울시민 500인 원탁회의, 대선 정책 500인원탁회의 등 수없이 많은 원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토론은 다수의 의견을 집약하여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좋은 기제임에 틀림없다. 단 2,30명이 모여서도 의견 수렴이 안되는 상황에서 수백명의 의견을 모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원탁토론은 10명 정도의 인원이 한 테이블에서 토론을 벌이고 이 내용을 정리해서 5~7개의 의제로 모아 이를 전체투표에 붙여 전체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500명의 의견을 모으는 기술인데 이 기술이 발명(?)되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인터넷과 결합한 투표기인데 이 투표기가 있다면 한 공간에서 수천명도 동시에 투표할 수 있다.
물론 토론 참가자들의 토론에 대한 절차, 즉 토론규칙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인데 이 코리아 스픽스의 원탁토론 규칙은 "1. 발언시간(입론은 2분으로 하고 자유발언은 1분에서 2분까지 상항에 맞게 주어진다)준수, 2. 발언은 결론부터 한가지를 중심으로 말하기, 3. 발언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적극적 경청), 4.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주장, 5. 휴대폰은 꺼놓고, 6. 휴식은 개별적으로 하되 투표는 꼭 참여하기"로 되어 있다. 이건 토론 형식이라기 보다는 토론 진행의 원칙이지만 전체의사를 모으기 위한 절차적 규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주제와 관련하여 자기의 의견을 정해진 시간 안에 결론 부터 집중해서 얘기해달라는 의미이다.
이번 광주시 교육청의 500인 원탁토론의 대주제는 "광주교육을 설계하다-광주교육의 변화와 혁신"인데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소주제를 '1. 학교문화의 문제점 어떻게해결할 것인가, 2. 미래 핵심역량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두가지로 나누었는데 이 소주제를 가지고 순차적으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토론장의 분위기는 대체로 좋았다. 사전에 참가자들을 조직(또는 초청)하는 과정을 거쳐 모든 테이블에 퍼실리테이터(Facilitater, 촉진자 또는 토론도우미) 1명, 교사 1~2명, 교육관련 전문가 1~2명, 교장 또는 교감 1명, 일반 시민 1~2명, 교육 관련 시민단체 인사 1~2명, 학부모 1~2명 등 10명을 배치했다. 토론은 일정한 룰에 의해 진행되고, 모든 발언이 헤드 테이블에 전달되어 일정한 형식으로 기록이 모아질 수 있으며 투표를 통해 전체의 의사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인터뷰를 거친다.
이 토론을 통해 모아진 의견을 광주시교육청에 전달하여 향후 교육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인데 이날 토론에는 장휘국 교육감도 토론 테이블에 참여하였으며 부교육감, 동, 서부교육장은 물론 시의회 교육위원들도 한사람의 토론자로 각 테이블에 나누어 참석하여 토론 내용을 듣거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여기서는 토론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겠으나 한 가지만 결론 삼아 얘기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내놓은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의제별 문제의식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한두문장으로 정리하다 보니까 목적과 수단, 즉 목표와 방법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학교문화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문제점은 일방적 폐쇄적 의사소통과 수직적 권위적 문화로 나왔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합리적 수평적 소통구조, 자율적 능동적 학교문화가 제시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토론제도, 자율권확보, 효율적인 업부메뉴얼, 상호토론식 수업 도입, 프라이버시 확보, 공동체의식 함양으로 제시되었는데 이를 범주화하는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토론과정에서는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부차적인가를 설명하고 정리하기가 몹시 어려워 진다. 이런 문제의 해결방법은 헤드 테이블에서 토론 참가자들의 의견을 좀더 세분화하거나 구조화하는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발언 내용을 한 자리에서 짧은 시간에 재구조화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겨우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어 범주화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나열적이 될 수 밖에 없고 참가자들은 범주화한 내용에 투표하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의견이 조금 다르더라도 범주화한 내용와 유사한 곳에 모일 수 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토론 참가자 전체의 의견이 적절하게 반영되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 다만 경향성과 문제의식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만 후속 토론이 없으면 사장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왜냐하면 광주교육의 문제점을 확인하는 정도(?), 그해결 방향은 대체로 거기 모인 다수의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그 지점에 있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무를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면 미래인재양성이 큰 목표이고 이를 위해서 학교의 소통 시스템 마련, 진로적성 교육 강화, 예체능 교육 강화, 교사 역량강화, 교육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면 그 구체적이 방법이 나와야 하는데 나열적이거나 그만그만한 내용을 갖고 해결책이라고 내놓는다면 대중 추수주의라고 할 수 밖에 없는건 아닐까? 즉 상위목표, 하위목표,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세부 계획 또는 사업 방향, 더 나아가서는 로드맵까지.... 하나의 정책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는 데 따르는 세부적인 사항을 고려해야하는데 다수가 모여 1회성의 토론을 잘 했다고 해서 우리 광주 교육이 이만큼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교육청 당국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시민들의 의견과 그 경향성을 파악하여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인정할만 하다. 다만 500명에 한정하여 1회성 토론에 그칠 것이 아니라 광주 교육청 당국자들과의 열린 토론의 기회를 상설화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이런 토론을 1년 내내 아니면 최소한 1년에 5차례 이상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을 세워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 나올 수 있게 심화시키는 과정을 거치면 모를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토론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원탁토론의 형식과 그 규모에 있어서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