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호공의 장자는 현감 열(悅)이다. 열(悅)은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형제와 종반 여러 명이 함께 화를 입었으나 인조반정후 증직(贈職)으로 영의정이 되고 전원군(全原君)에 봉해졌다. 차자 흔은 좌랑이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연으로 후손이 봉화지역에 세거하고 있으며 흔의 사위인 군자감정 권래(權來)는 충재(冲齋)의 손자이다.
춘호공의 제3자인 진사 업(心+業)은 판서 권협(權悏)의 사위가 되었는데 권협의 손자가 영의정 권대운(權大運)이니 업(心+業)은 권대운의 고모부가 되는 것이다. 권대운은 기사환국 이후 영의정에 올라 남인정권을 주도한 인물이며 청렴하고 검소하여 한세대의 신망을 받았던 인물이다. 권대운의 가문도 유명한 남인 가문이다. 선조부마인 길성위 권대임(吉城尉 權大任)과 판서인 권대재(權大載)는 모두 사촌들이고 영조 즉위초인 무신년(1728)에 남인과 소론을 일부 규합하여 소현세(昭顯世子)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密豊君 坦)을 추대해서 국권을 쟁탈하려는 난을 일으킨 이인좌(李麟佐)는 전주이씨 임영대군파(臨瀛大君派)로 감사 운징(雲徵)의 손자이고 찬성인 백호 윤휴(白湖 尹鑴)의 손서인데 이운징은 권대운의 사위이다. 그리고 권대운의 동생인 권대술은 진성이씨 송재파(松齋派)의 감사인 반초당 이명익(返招堂 李溟翼)과 사돈이니 권대술의 딸이 이명익의 아들인 현감 이학표(李學標)의 부인이 되었다. 유업의 부인으로 보면 친정 종손녀가 이명익의 며느리가 된 것이다.
다음 제(悌)는 현감으로 도정 권탁(權晫)의 사위가 되었는데 권탁은 양촌 권근(陽村 權近)의 후손이며 권탁(權晫)의 처가는 삭녕최씨로 세조조에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의 주손가(冑孫家)이다. 좌의정 원두표(元斗杓)는 권탁의 작은 처남인 사간 최동식(崔東式)의 사위이고 판서 이관징(李觀徵)은 큰 처남인 감사 최동립(崔東立)의 손서이다. 이관징은 연안이씨 첨사공파로 숙종조에 허목(許穆) 계열의 남인으로서 정계의 중진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관징(觀徵)의 아들 참의 옥(沃)은 영의정 이성구(李聖求)의 손서가 되고 진사 협(浹)은 판서 오정위(吳挺緯)의 사위가 되었는데 갑술환국 이후 중앙에서 남인의 세력이 크게 위축되자 여러 형제들 중 이들 두 사람은 남인들의 본거지인 영남지역으로 낙남(落南)하게 되는데 옥(沃)은 상주지방으로 내려오게 되고 협(浹)은 안동지역으로 내려와서 동성(東城)에 자리 잡게 되었다. 모두가 좋은 문호를 이루었으니 협(浹)의 손자는 박실 노애공의 사위가 되고 손녀는 우리 대간선조의 손부가 되었다. 식산 이만부(息山 李萬敷)는 옥(沃)의 아들이다.
제(悌)의 동서 즉 권탁(權晫)의 다른 사위는 앞에서 설명한 바가 있는 참판 목서흠(睦敍欽)으로 목서흠의 후손도 번창하였으며 아들 중 특히 겸선(兼善)은 감사로서 찬성 민형남의 사위가 되었으며 래선(來善)은 좌참찬이고 전주이씨로 감사인 이명웅(李命雄)의 사위가 되었으니 이명웅은 전첨 세구(世龜)의 증손인 적의 사위이다.
춘호공의 다음 아들 선(愃)도 현감인데 여러 형제들과 함께 김직재의 무옥 당시 화를 입었다. 선(愃)은 단양우씨에 장가를 들었는데 승지 우준민(禹俊民)의 사위가 되었다. 우준민은 좌의정 성세창(成世昌)의 손자인 사예 성자제(成子濟)의 사위가 되고 우준민의 딸은 영의정 이덕형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이덕형과는 사돈이 된다. 선(愃)은 그러니까 이덕형의 아들인 감사 이여황(李如璜)과는 동서가 된다. 또 선(愃)의 딸은 문화유씨 가문으로 출가하여 감사 유경집(柳景緝의 아들 유신(柳珅)의 부인이 되었는데 유신(柳珅)의 매부인 한산이씨의 감사 이태연(李泰淵)은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의 처남이 되니 선(愃)의 따님으로 보면 송시열의 처남이 시매부인 셈이다.
춘호공의 따님은 세분인데 모두 좋은 가문들과 혼인을 맺었다. 우선 큰 따님은 기계유씨 가문으로 출가를 했는데 장령 유수증(兪守曾)의 부인이 되었다. 유수증의 가문도 물론 명문가였다. 판서 유여림(兪汝霖)의 현손으로 부친인 대정(大禎)은 참판이며 좌의정을 지낸 홍(泓)은 종조부가 된다. 유수증이 양자로 들여온 아들 군수 비(木+必)는 대제학을 지내고 찬성이 된 유근(柳根)의 손서가 되었다. 유근은 진주유씨로 광해군 재위시절에는 정치적인 부침을 거듭했으나 문명(文名)을 일세에 떨친 인물이다. 반정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김류(金瑬)는 유근의 사위이다. 수증의 손자인 하익(夏益)은 판서를 지냈고 대사간인 목행선(睦行善)의 사위가 되었다. 목행선은 참판 목대흠(睦大欽)의 아들이고 영의정 이덕형의 손서이다. 그리고 하익(夏益)의 아들인 군수 임중(任重)은 목사 이정기(李廷機)의 사위인데 이정기는 영천이씨로 감사 광준(光俊)의 손자이며, 참판인 자암 이민환(紫巖 李民寏)의 아들로 백부인 부제학 경정 이민성(敬亭 李民宬)의 아들로 출계를 했는데 영천이씨이며 이 가문은 의성 산운(山雲)에 세거하고 있다.
둘째 따님은 연안이씨로 출가해서 감사 현(袨)의 부인이 되었다. 이현(李袨)은 판서 이광정(李光庭)의 아들이며 앞에서 이야기 한 이관징(李觀徵)에게는 당숙이 된다. 이 가문은 연안이씨 첨사공파(詹事公派)로 판소부감공파(判少府監公派)의 이정구(李廷龜) 가문과 함께 명문 연안이씨에서 쌍벽을 이루는 가문이다. 현(袨)의 아들 성징(星徵)은 감사이고, 다음으로 진사인 아들 정징(井徵)은 대제학인 용주 조경(龍洲 趙絅)의 사위가 되었으며 딸은 출가하여 좌의정 남이웅(南以雄)의 며느리가 되었다.
현(袨)의 매부 즉 이광정의 사위들을 보면, 군수 유성민(柳聖民)은 문화유씨로 반계수록(磻溪隨錄)의 저자인 유형원(柳馨遠)의 조부이고, 감사 민광훈(閔光勳)은 문과에 장원을 한 인물로 민시중(閔蓍重) 민정중(閔鼎重) 민유중(閔維重) 등 아들 삼형제가 모두 현달하였으며 후손은 조선 말엽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가문을 형성했다. 그리고 판서 홍우원(洪宇遠)은 토홍계(土洪系) 남양홍씨인데 판서 홍가신(洪可臣)의 손자로 숙종조에 남인의 원로 정치인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며, 백씨인 두곡 홍우정(杜谷 洪宇定)은 병자호란 후 낙남하여 후손이 봉화지역에 세거하고 있다.
셋째 따님은 청주한씨에게로 출가를 했으니 한소일(韓昭一)의 부인인 바, 인조의 장인인 서평부원군 한준겸(西平府院君 韓浚謙)의 며느리가 되었다. 한준겸은 영의정 한상경(韓相敬)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거치면서 한 때는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서도 일했으며 드디어는 판서에까지 올랐다.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으로 광해연간에는 대북파의 미움을 사 귀양길을 들락거리는 처지였으나, 반정으로 사위인 능양군(綾陽君)이 등극하여 인조가 되자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준겸의 장자 회일(會一)은 좌윤으로 판서 이성중(李誠中)의 사위인데, 이성중은 전주이씨 담양군파(潭陽君派, 세종왕자)로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인 조준(趙浚)의 후손인 경력 조수(趙琇)의 사위이며 동서가 되는 파평인 윤국형(尹國馨)도 판서를 지냈다. 이성중의 사위에 진사 황유첨(黃有詹)은 대사헌 섬(暹)의 아들인데 섬(暹)이 황응규(黃應奎)의 아들이니 춘호공으로 보면 대사헌 황섬(黃暹)은 처남이고 처질인 황유첨은 딸의 시숙과 동서가 되는 관계이니 이들 가문과 혼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소일의 매부는 참판 여이징(呂爾徵)과 감사 정백창 (鄭百昌)인데 여이징의 아들 여성제(呂聖齊)는 영의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