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의 상황은 참으로 기이하고 알 수 없다. 며칠 전까지 남쪽의 축구경기를 녹화방송하던 북한이 돌연 서해상에서 무력도발을 일으켰다. 기이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남쪽의 대응 역시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다수의 사상자까지 생기는 터에 동해에서는 관광유람선이 계속 금강산을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한편에서는 국방 책임자가 북한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책 당국자가 햇볕정책에 변함이 없음을 굳이 다짐하고 있다. 이 혼란스러움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 무책임한 西海 도발 대책
흔히 남북한 관계는 이중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남북한은 서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동시에 대결 또는 적대적 관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중적 현실이 거기에 대한 대응책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같은 시점에 서로 상반된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것은 정책의 난맥이거나 실책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금강산관광 계속 여부 문제부터 그렇다. 한쪽에서 도발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금강산관광 계속을 다짐한다면, 우리가 북쪽에 대해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금강산관광이 단순한 관광이 아님은 다 아는 일이다.
관광의 이름을 빌린 대북 경제지원일 뿐만 아니라 미화(美貨) 현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쌀이나 비료지원과도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같이 중요한 대북지원 정책을 북한의 무력도발에도 불구하고 지속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제3, 제4의 도발을 자초하는 위험은 없는가.
아무 대응책도 없는 사과, 재발방지 요구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진실로 북쪽에 대해 그같은 요구를 관철시킬 의사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태도는 더욱 단호하고 명백해야 한다.
북한의 무력도발에는 경제적이든 외교적이든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력수단이고 보면 그들이 이런저런 목적으로 이를 행사하려는 충동을 다른 무슨 방책으로 억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햇볕정책의 일관성을 내세우며 정책 재검토를 거부하는 태도는 너무 무책임하게 보인다.
상대방의 반응이 어떠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정책의 일관성이라면 그것은 도리어 역효과를 불러올 뿐이다. 오른 뺨을 맞고 왼 뺨을 내미는 것이 햇볕정책의 일관성은 아닐 것이다.
월드컵을 통한 국가 이미지 상승에 찬물을 끼얹은 북한의 도발을 그대로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생각할 것은 북한과의 합의가 지니는 의미를 재음미해야 한다는 점이다. 6.15 남북 정상회담과 그 합의문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는 존중돼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한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합의문 구절의 모호함과 관련해 서로의 해석에 차이가 있음은 이미 논란돼왔지만, 이 점을 떠나서도 더 본원적인 문제는 남는다. 무릇 합의 그 자체가 의미를 지니려면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 (Pacta sunt servanda)'는 관념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합의를 언제든 깨도 좋다는 생각을 상대방이 갖고 있다면 그런 상대와의 합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오직 힘밖에 없다.
*** 남북예멘 교훈 배웠으면
이 점과 관련해 아라비아반도 서남부의 이슬람교 국가 예멘의 사례를 상기하게 된다.
1967년 사회주의를 표방한 남예멘이 분리, 독립하면서 예멘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몇 차례의 무력충돌을 겪으면서도 남북 예멘은 통일을 추구했고,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과 수많은 협정을 거쳐 90년 드디어 통일국가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94년 다시 내전상태에 들어갔 고 결국 북예멘이 승리함으로써 재통일을 이루었다. 예멘의 경험은 분단국간의 합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일깨워준다.
재작년 남북 정상회담 직후 귀로의 서울시청 앞 광장 연 설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梁建(한양대 법대 학장)
▶필자 약력=서울대 법대 졸업.서울대 법학박사.1985년 이래 한양대 법대교수.저서로 '헌법연구''법사회학'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