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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2006년 여름호.
<서정시학 집중 조명 대담 원고>
임금님의 요리사와 40인의 도둑 外 4편
김 참
임금님이 포도주 두 병을 비웠을 때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요리사의 며느리는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옷을 짜고 있었습니다 요리사가 구워낸 칠면조가 임금님 식탁에 올라갔을 때 요리사의 아내는 아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잔치가 있는 이웃집에서 접시를 닦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의 요리사가 창고에서 포도주 병을 꺼내 쌓인 먼지를 닦고 있을 때 감옥에 갇혀있는 노름꾼의 큰아들이 죽었습니다 노름꾼의 큰아들이자 사촌오빠의 사위가 죽은 줄도 모르고 왕비는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술 취한 임금님이 식탁에 엎어져 코를 골고 있을 때 요리사의 막내딸은 아홉 번째 항아리를 열고 뜨거운 기름을 부었습니다 임금님이 잠꼬대를 하고 있을 때 요리사네 옆집에 사는 할머니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항아리 속에 웅크린 채 뜨거운 기름에 데어 죽었습니다 알리바바네 뒷마당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요리사가 휘파람을 불며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 요리사네 옆집 사는 할머니는 아들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고 요리사의 며느리는 골방에 틀어박혀 옷을 짜고 있었습니다
도마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자를 따라 사거리 갈빗집에 갑니다 갈빗집 통유리에 회색 도마뱀들이 죽은 나방처럼 붙어 있습니다 마을 청년들은 고기타는 냄새 가득한 갈빗집 밖에서 맨손체조를 합니다 사거리 갈빗집에 앉아 낯익은 사람들이 저녁을 먹습니다 면사포를 벗고 밥을 먹던 여자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고 벌떡 일어납니다 활짝 핀 개나리 덤불이 있는 벽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음악에 맞춰 맨손체조를 하던 동네 청년들이 여자를 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꽃무늬 벽지에 도마뱀들이 붙어있는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합니다 하얀 사기그릇에 야채스프를 담아 식탁에 올려놓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숟가락을 들고 야채스프를 허겁지겁 퍼먹는 동안 도마뱀들은 네모난 식탁에 차려진 둥근 접시들과 접시 옆에 놓인 포크를 밟으며 돌아다닙니다 마을 청년들이 여자의 집에서 아홉시 뉴스를 들으며 녹차를 마시는 동안 천장에 붙어있던 도마뱀들이 식탁 위의 둥근 접시에 떨어집니다 갈비집 주인이 텔레비전을 끕니다 마을 청년과 여자와 도마뱀들이 사라집니다 통유리에 회색 도마뱀들이 죽은 나방처럼 붙어 있는 사거리 갈빗집을 나와 활짝 핀 개나리 덤불 아래를 걸어가는 동안 개나리 덤불에서 뚱뚱한 도마뱀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내립니다
선물
나는 너에게 물고기를 주고 너는 그에게 꽃나무 화분을 준다 그는 옆집 여자에게 고양이를 주고 그의 옆집 여자는 네거리 꽃집 남자에게 나무인형을 준다 네거리 꽃집 남자는 밤무대 여가수에게 꽃다발을 주고 밤무대 여가수는 옷가게 주인에게 포도주 세 병을 준다 옷가게 주인은 총포상 여주인에게 검은 우산을 주고 총포상 여주인은 K에게 검은 권총을 준다
내가 너에게 어항을 주면 너는 그에게 물고기를 주고 그가 옆집 여자에게 꽃나무 화분을 주면 그의 옆집 여자는 네거리 꽃집 남자에게 고양이를 준다 네거리 꽃집 남자가 밤무대 여가수에게 나무인형을 주면 밤무대 여가수는 옷가게 주인에게 꽃다발을 주고 옷가게 주인이 총포상 여주인에게 포도주 두 병을 주면 총포상 여주인은 K에게 검은 우산을 준다
어느 비 오는 오후 나는 K를 만난다 검은 우산 쓴 K가 나에게 권총 한 자루를 준다 나는 권총을 들고 너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너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옆집 여자에게 그의 옆집 여자는 네거리 꽃집 남자에게 네거리 꽃집 남자는 밤무대 여가수에게 밤무대 여가수는 옷가게 주인에게 옷가게 주인은 총포상 여주인에게 총포상 여주인은 K에게 전화를 한다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K와 함께 너의 집 앞에 있는 나에게 다가온다 검은 권총을 빼앗는다 나는 수갑을 차고 비 내리는 철물점과 어둠이 내리는 네거리 꽃집을 지나 경찰서로 끌려간다 검은 쇠창살 안에 갇힌다
사라진 집
자고 일어나니 집이 없어졌다 집을 찾으러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었다 놀이터에 앉아 모래를 팠다 모래 속에서 잃어버렸던 진공관 라디오가 나왔고 라디오 밑에서 첫사랑의 흑백사진도 나왔지만 아무리 모래를 파도 사라진 집은 찾을 수 없었다
한참 모래를 파자 녹슨 철문이 나왔다 철문 안에는 빨간 맨드라미 핀 작은 집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함께 살던 가족들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철문을 열어젖히고 나오니 집 밖은 사막이었다 선인장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사막에는 둥근 비행접시가 있었다 비행접시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은 삽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나도 삽을 들고 땅을 팠지만 아무리 땅을 파도 사라진 집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막을 달리는
김참 씨가 쓰는 시에는 사막이 나오고 낡은 자동차와 검은 망토 걸친 여자가 나오고 자동차 타고 사막을 달리는 김참 씨가 나온다 아니다 김참 씨가 탄 것은 자동차가 아니다 그가 탄 것은 사막을 달리는 늙은 타조다 아니다 타조를 탄 사람은 김참 씨가 아니라 검은 망토 걸친 여자들이다 아니다 훔친 타조를 탄 김참 씨가 사막을 여행하다가 달리는 자동차에 탄 여자들과 장거리 경주를 한 것이다 아니다 김참 씨가 탄 자동차는 달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동차는 사막에 갑자기 나타난 신기루 앞에서 고장으로 멈춰 서있다 아니다 자동차가 서있는 곳은 검은 선인장들이 끝없이 늘어선 오아시스 마을 어두운 숲속이다 아니다 이마에 뿔 달린 거인들이 묻힌 오래된 모래무덤 앞이다 아니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이 있는 강변의 하얀 모래밭이다 아니다 햄버거 가게와 약국이 보이는 사거리 횡단보도 근처에서 뚫린 구멍을 통해 벽돌집 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 검은 벽 앞이다 아니다 검은 벽 앞에 멈춘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늙은 타조다 검은 망토 걸친 여자들이 타조 위에 김참 씨를 태우고 사막의 오아시스 옆을 지나가다가 뿔 달린 거인들이 앉아 있는 벽 앞에 멈춘 것이다 아니다 타조가 멈춘 곳은 벽 앞이 아니다 선인장 숲에 버려진 낡아빠진 자동차에 멍하니 앉아 열린 창문으로 선인장 숲을 바라보는 김참 씨의 낡은 자동차 옆이다 아니다 기찻길과 도로가 교차하는 화장품가게 앞에서 귤과 사과를 파는 좌판 옆이다 아니다 김참 씨는 지금 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김참 씨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아 사막에 관한 시를 쓰고 있다 김참 씨는 시를 쓰다 말고 김참 씨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이것 보시오 김참 씨! 정말 답답해 죽겠소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시를 쓰고 있어야 하는 거요?
김 참 : 1973년 경남 사천 출생.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미로 여행』이 있음. 1999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
<집중 조명 대담>
맹문재 : 김 시인, 오랜만입니다. 서로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미로 여행』을 내는 일로 인연이 되어서 그런지 아주 가깝게 여겨집니다. 저하고 다시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게 되어서 참으로 깊은 인연이라고 생각되네요. <서정시학>을 믿고 귀한 원고를 넘겨주셔서 그저 고맙게 생각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김 참 : 반갑습니다. 몇 년 전에 서울에서 한번 뵙고 그간 통 뵙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 이어 세 번째 시집 출간도 맹문재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지금 인제대학교에서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하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고, 가끔씩 청탁 오는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은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집들을 출간할 때와 다른 감회가 있겠지요?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특히 내세우고자 하는 면이 있는지요?
김 참 :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 시를 쓰는 동안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 결과 제가 예전에 썼던 시보다는 짧고 이해하기 쉬운 시, 탄력 있는 언어가 담겨 있는 시, 재미있는 내용을 담은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짧고 쉬운 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시집 원고를 정리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짧은 시들 가운데는 힘이 부족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들은 이번 시집에 몇 편만 수록할 생각입니다.
새롭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아내고 탄력 있는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될 시들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제가 했던 여러 가지 고민들을 담고 있습니다. 시 한 편 한 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차례 퇴고를 하고 있지만, 좋은 시를 쓰기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시집도 그랬지만 이번 시집에 수록될 작품들도 내용이 서로 연결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작품은 그 자체로 완결되기도 하지만, 다른 작품과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시와 내용이 연결되는 것도 있고, 앞으로 쓸 시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도 있습니다.
맹문재 : 저는 김 시인이 그동안 출간한 시집들과 이번 시집 원고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집” “검은” “물고기” “꿈” “여자” “창(문)” “권총” “무덤” “할머니” “경찰” “인형” “항아리” “뿔 달린 사람” 등의 시어들을 상당히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어들을 잘 살피면 김 시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김 시인의 작품이 난해하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이 시어들을 파악하고 나면 상당 부분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이번 대담은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행하렵니다.
우선 김 시인의 작품에는 “집”이란 시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요?
김 참 : 많은 분들이 제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잘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 시는 서사적 성격이 짙습니다. 제가 쓴 시에는 대부분 어떤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공간이 제시됩니다. 그러니까, 시의 주인공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은 제 시의 중요한 공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 살고 있고, 집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의 반을 집에서 보내지 않습니까? 시에서 “집”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제 시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시의 배경으로 제시되는 “집”은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인 경우도 있고, 그와는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시 속의 인물들은 “집” 안에 머물러 있기도 하지만 “집”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집”을 찾으려고 미로 속을 헤매기도 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여행은 “집”에서 나가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맹문재 : 또한 김 시인의 작품에는 “검은”이란 시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검은 권총” 및 “검은 쇠창살”(「선물」), “검은 망토”(「사막을 달리는」), “검은 선인장”(「들판에 추락한 우주선」, “검은 개” 및 “검은 옷의 여자”(「검은 여자」), “검은 날들”(「검은 날들의 기록」), “검은 뱀들”(「12월 32일」) 등 참으로 많습니다. “검은”색이라는 시어를 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 참 : 제 시를 해설한 평론가들 가운데서도 그 점을 지적한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시가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시에는 검은색뿐만 아니라 흰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회색, 녹색 등 각각 다른 색깔을 지닌 여러 사물이 제시됩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집”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물들은 저마다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시 속에서 이야기 하려고 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어떤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 노란색일 수도 있고, 검은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들은 소설가들과는 달리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이야기하는 데 인색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검은색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깔입니다. 그렇지만 제 시에 “검은”색이 유난히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부분은 원래가 “검은”색을 띤 사물들이지만, 「검은 날」이나 「검은 여자」「우리들의 낙원」같은 시에서처럼 가끔씩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검은”색들로 그려진 사물도 있습니다. “검은색”은 회색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와 꽤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검은”색의 의미가 어느 정도 이해되는군요. 김 시인의 작품에는 “꿈”도 많이 나오는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김 참 : 저는 시가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낮과 밤을 같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많은 시들은 낮의 세계만 그려내고, 밤의 세계는 잘 그려내지 않습니다. 꿈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함께 우리의 삶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시가 노래하는 세계가 현실 세계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꿈의 세계에서도 살아있으니까요. 많은 시인들이 주로 현실의 세계만 노래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사는 또 다른 세계인 “꿈”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와 병치시키기도 하고, 두 세계의 벽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맹문재 : “꿈”에 대해서도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김 시인의 작품에는 “여자”라고 칭하는 경우도 많은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요?
김 참 : 제 시에서 인물을 제시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가끔씩 인물의 이름이 직접 제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인물들은 “남자”, “여자”, 혹은 “나”, “너” “그”, “그녀” 들로 불려집니다. 따라서 “여자”라는 지칭에는 특별한 의도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보거나 그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남자 아니면 여자죠. 그래서 제 시에는 “여자” 못지않게 “남자”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맹문재 : “권총” “경찰”이라는 시어도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 것일까요?
김 참 :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경찰”은 제 시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한 유형이고, 우리가 하루에 한 두 번은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권총을 차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맹문재 : 이밖에도 “창(창문)” “무덤” “인형” “항아리” “뿔 달린 사람” 등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설명해줄 수 있으면 좀 부탁드려봅니다.
김 참 : “무덤”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돌아가야 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존재들은 모두 “무덤”에서부터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아리”는 “무덤”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무덤”도 있고 “항아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 시에 나오는 “무덤”과 “항아리”는 그냥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인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뿔 달린 사람”과 “인형”은 꿈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거나, 혹은 제 시 속의 등장인물이 ‘그림자들의 세계’에서 만나는 존재들입니다. ‘그림자들의 세계’는 제 두 번째 시집에서 강조되고 있는 “미로”라는 공간과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창문”은 별다른 의미가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창문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창문이 얼마나 많습니까? 창문이 없는 건물은 별로 없고, 자동차나 기차에도 창문은 달려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창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외부의 공간과 접하게 되거나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다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창문”에 비친 인물들은 “그림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이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맹문재 : 수고가 많았네요. 일반적인 대담에 비해서 대답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네요. 김 시인의 작품 세계를 좀더 알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화제를 조금 돌려볼까요? 저는 지난 계절 몇몇 잡지들에서(가령 『시와 반시』, 『오늘의 문예비평』 등) 김 시인을 비롯한 신세대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21세기에 들어 등장한 신세대 시인들에 대해 그만큼 문단이 주목하고 있는 셈이지요. 신세대의 시인의 등장에 대해서 그 배경이나 특성, 의의 등을 당사자로서 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 참 : 신세대 시인들의 사고방식과 상상력은 앞선 세대의 그것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1980년대의 황지우, 장정일, 하재봉, 유하, 1990년대의 김요일, 박상순, 함기석, 김태형, 성미정, 이수명, 성기완, 서정학, 정재학 등의 시인은 앞선 세대의 시인들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시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20세기 말부터 활동을 시작했거나 21세기에 등장한 신세대 시인들 중에서도 김근, 김민정, 김언, 김이듬, 김행숙, 서대경, 안현미, 오은, 유형진, 이기성, 이민하, 장석원, 진은영, 황병승 등의 시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21세기에 등장한 신세대 시인들이 대중문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시는 영화, 드라마, 뉴스, 소설, 음악, 미술, 만화, 게임 등의 재현방식을 닮아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현실세계를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현실 세계를 해체하고, 전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21세기에 등장한 신세대 시인들의 시는 대체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신세대 시인들이 보여준 시보다 몽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컨대 신세대 시인들의 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맹문재 : 신세대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 난해하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실제로 신세대 시인들의 작품은 통사론이나 의미론 등의 한국어 체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잘 안 됩니다. 환상성이나 상징성도 매우 큽니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표기함으로써 낯설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 대한 김 시인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김 참 : 제가 읽기에도 난해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는 나름대로의 문법이 있으며, 그에 맞는 독법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정시를 쓰지만, 서정 갈래의 전통적인 재현방식보다는 서사 갈래가 지니고 있는 서술방식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작품을 읽을 때, 시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지 않습니다. 신세대 시인들의 시는 엽편소설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엽편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나 상징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는 최소한 엽편소설보다 읽어내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사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언어를 폭력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은 장경린 시인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입니다. 저는 김언 시인이 이 방법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거부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들, 정상과는 거리가 먼 문장들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하나의 시적 기교라고 할 수 있는데, 신세대 시인들 가운데에는 이와 같은 방법들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래전부터 창작되어왔습니다. 신화, 전설, 민담과 같은 구비문학 갈래를 비롯하여, 「금오신화」나 「구운몽」 같은 고전소설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환상성은 최근의 시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저는 이것을 신세대 시인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성격 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상징성 역시 시 갈래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에 신세대 시인들의 전매특허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표기하는 문제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이전보다 외국어, 특히 영어가 적지 않게 끼어 있습니다. 황병승 시인의 시에서 특히 그와 같은 점들이 잘 드러나는데, 앞으로는 이런 시들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맹문재 : 현재의 한국 시단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김 참 : 외국 시단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한국 시단은 분명 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한국 시단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시인들 근황을 좀 소개해주시지요? 혹 동인활동을 하는지요? 김종미 시인이 <서정시학>에서 시집이 출간되는 것은 알고 있겠지요.
김 참 : 저는 몇 년 전에 부산에서 김해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있을 때처럼 시인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부산에 잘 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모임이 있어서 나가면 한꺼번에 많은 분들과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가운데 서규정, 김언, 정익진, 조말선, 김종미 시인과 가깝게 지내는 편입니다. 허만하 선생님과는 전화 통화를 하거나 광안리 근처에서 가끔 뵙는데, 얼마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큰 사고가 아닌지 전화상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김종미 시인의 첫 시집이 <서정시학>에서 나온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김종미 시인은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를 쓰는 분으로 개인적으로 첫 시집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시인들 가운데 한 분입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 “할머니”란 시어가 상당히 나오는데, 할머니를 비롯해 가족의 얘기를 해줄 수 있나요?
김 참 : 제 시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돌아가신 제 외할머니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려면 제 외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 외할머니는 두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길러주신 큰 외할머니는 제가 중학생 때 돌아가셨고, 제 외할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큰 외할머니는 고향이 하동이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제 외할머니와 결혼을 해서 3남 3녀를 낳았습니다.
지금은 사천시로 통합되어서 없어져버렸지만, 제 고향은 삼천포시입니다. 고향에는 와룡산이 있고, 와룡산 아래에 죽림동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외가와 우리집은 가까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는 우리집이 가장 와룡산 가까이 붙어 있고,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 외가였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결혼하고 나서 외가 근처에 집을 지어서 살았던 것인데, 그때부터 큰외할머니는 우리집에서 같이 사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예비군 중대장을 하셨고, 어머니는 교사였습니다. 그래서 누나와 저, 두 동생들을 큰외할머니께서 업어서 키우셨죠. 제 시에서 “할머니” 등에 업힌 아이는 제 유년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제 시에 가끔 나오는 “할머니”는 저를 업고 자장가를 불러주시고, 부엌에서 밥을 짓기도 하시고,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기도 하셨고, 이웃집에 놀러가기도 하셨던 큰외할머니입니다. “할머니”는 유년시절에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분이었죠.
맹문재 : 학창 시절도 궁금하네요. 영향 받은 시인이나 일들이 있는지요?
김 참 :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만나는 제 고등학교 친구들도 모두 음악을 좋아합니다. 저와 가까운 사람들은 제가 음악광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예전에는 락을 주로 들었는데, 지금은 재즈, 국악, 클래식 등 좋은 음악이면 가리지 않고 듣는 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락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 중에서도 아트락, 아트락 중에서도 아방가르드 성향을 띤 진보적인 음악을 좋아합니다. 시를 쓸 때는 늘 음악을 듣습니다.
시는 음악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시를 썼는데, 그 친구는 수업 시간에 공부보다는 시 짓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기가 한 줄 쓰고 나서 나에게 한줄 쓰라고 연습장을 건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시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어서, 나중에는 따분한 수학 시간이 둘만의 시 쓰기 놀이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쓴 습작시들이 대략 천여 편이 됩니다. 그러니까 저와 함께 시를 썼던 그 친구는 제 습작기의 유일한 스승인 셈입니다.
영향 받은 시인은 아주 많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옥따비오 빠스의 시집을 읽고 그의 시에 매료되었습니다. 군생활을 할 무렵에는 이기철 시인이 쓴 <詩學>을 읽으며 시 공부를 했고, 프랑시스 퐁즈, 이기철, 김혜순, 홍영철 시인의 시집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제대하고 복학을 해서 2학년 때 등단을 했는데, 본격적인 시 공부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등단 이후에는 전봉건, 이승훈, 박상순, 함기석, 성미정 같은 선배 시인의 작품을 읽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맹문재 : 「임금님의 요리사와 40인의 도둑」은 임금님과 요리사 간의 관계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관계 혹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관계를 알레고리화한 작품으로 읽힙니다. 저는 이 작품을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읽었는데, 의도를 좀 설명해주시면 고맙겠네요.
김 참 : 「임금님의 요리사와 40인의 도둑」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수록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패러디한 작품입니다.「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의 주인공은 알리바바와 그녀의 하인이고, 40인의 도둑은 알리바바의 집에서 하녀가 부은 기름에 데어 독 안에서 죽고 맙니다. 「임금님의 요리사와 40인의 도둑」을 쓰게 된 계기는 하녀가 부은 기름에 데어 죽은 도둑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알리바바와 같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들이나 손자, 형제이거나 아버지이거나 남편이 아니었을까?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텐데!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둑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들, 딸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결국 그들은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은 다른 시각에서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항아리에서 죽어 갈 때 그들의 가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에 대한 상상의 결과가 「임금님의 요리사와 40인의 도둑」입니다.
맹문재 : 「도마뱀」 또한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욕망의 실제를 통해 자본주의 혹은 물질주의의 모순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어 그 거리감이란 클 수밖에 없는데, 결국 자본주의 시대에 갖는 인간 소외이겠지요. 이 작품에 대한 의도도 소개해주면 고맙겠네요.
김 참 : 「도마뱀」에 등장하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자는 이번 시집에 수록될 다른 시에도 등장합니다. 그녀는「이상한 결혼식」과 「장례식 풍경」, 「신혼여행」에서도 만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큰 거울과 작은 거울이 있는 방에 대한 보고서」라는 작품에도 잠깐 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시집의 몇몇 시에서도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 여자의 정체는 앞으로 쓸 시에서 더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그녀는 “그림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의 작품에는 자신을 등장시키는 경우(가령「사막을 달리는」「화투」「오래된 책」)도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작품을 시도한 의도가 궁금하네요?
김 참 : “김참” 씨가 등장하는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보르헤스가 쓴 자기 반영적인 소설, 그리고 이승훈 시인의 시집 『밝은 방』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고 나서입니다.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메타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메타시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동안 「화투」「미로여행」등 “김참” 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를 썼고, 그 이후에도 자기 반영적인 시를 몇 편 쓰게 되었습니다. 메타시를 시도한 의도는 시 쓰기에 대한 고민과 반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은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요? 그 기준을 듣고 싶네요.
김 참 : 좋은 작품은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시는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시입니다. 저는 실험적인 시도 좋아하지만, 서정적인 울림이 있는 시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인간적 면모가 잘 느껴지는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구체적인 시인이나 시집을 예로 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작고한 전봉건 시인의 작품들이 대부분 좋은 작품에 속합니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들도 모두 좋아합니다. 이승훈 시인의 『밝은 방』에 수록된 작품들, 민음사에서 나왔던 정화진 시인의 첫 시집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에 수록된 시들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김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미술이나 음악 등에 관한 소재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취미나 관심 갖고 있는 것들이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시지요?
김 참 : 중학교 때까지 미술부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주위 사람들은 모두 제가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날마다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중학교 때 미술부에서 같이 그림을 그렸던 친구들 중에서 화가가 된 친구도 있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화가가 될 줄 몰랐고 제가 화가가 될 줄 알았다고 합니다. 대학에 다닐 때, 유화 두 점을 그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림은 통 그리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전자 기타를 구해서 혼자 연습을 했습니다. 한참 기타를 칠 때는 하루에 대여섯 시간 이상 기타를 잡고 있었고, 제가 치는 기타 소리에 스스로 만족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타를 거의 치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 취미는 다양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표 수집을 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희귀음반을 모았고, 대학에 올라와서는 당구에 빠졌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춘란을 기르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음향기기 수집에 열을 올렸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지겨워서 작년부터는 열대어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며칠 전에는 시클리트과에 속하는 브리샤르디가 산란을 했습니다. 요즘은 어항 속을 돌아다니는 브리샤르디 치어들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맹문재 : 김 시인과 참으로 유익한 대담을 나누었네요. 김 시인의 작품에서 모호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상당히 알게 되었고, 시 쓰기에 대한 열정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시작 활동을 비롯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참 : 저는 계획을 잘 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 “참 마음 편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은 맹 선생님도 잘 아시는 것처럼 세 번째 시집 원고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원고 정리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집에서는 나이가 찼다고 결혼을 하라고 합니다. 저도 이제는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께서 며느리 될 사람의 반지까지 마련해 두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동생에게 듣기도 했습니다.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 참 : 1973년 경남 사천 출생.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미로 여행』이 있음. 1999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