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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쓰기 쉬운 우리말
1. 놀라다/놀래다/놀래키다
* 놀라다 : 설명안해도 아실 듯^^
* 놀래다 : '놀라다'의 사동사. 쉽게 말하면 '놀라게 하다'.
* 놀래키다 : '놀래다'의 사투리.
2. 어휘
'어휘=낱말'이 아니라 '어휘=낱말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휘'는 '단어'가 아니라 '단어를 모은 것'을 뜻한다. '彙'라는 한자가 '모을 휘'자이고 '무리'나 '모으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써야 옳다.
* 이 사전은 모두 50만개의 어휘를 싣고 있다.
* 초등학생의 어휘는 중학생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은 고작 1500단어 안팎의 빈약한 어휘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3. 빌다/빌리다
'빌다'는 말과 '빌리다'는 말이 있다. 두 말은 이렇게 구분된다.
* 빌다 : (1)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2)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다./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얻다.
* 빌리다 : (1)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 (2)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보니 약간 어려워 보이지만 보기를 보면 간단히 이해된다.
* 빌다 : 소원을 빌다. 부처님께 빌다. 다시 볼 수 있게 빌다. 명복을 빌었다./밥을 빌어 먹었다. 양식을 빌다.
* 빌리다 : 돈을 빌리다. 머리를 빌리다. 말을 빌리다.
그러니까 '자리를 빌다'가 아닌 '자리를 빌린다'가 바른 말이겠고 그 활용꼴은 '자리를 빌어'가 아닌 '자리를 빌려'가 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된다. '이 자리를 빌려'라고
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대로 믿어도 좋다? 좋다!!!
4. 한국어와 한글의 관계
* 중국어 - 한자
* 일본어 - 가나
*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 로마자(라틴문자)
이런 조합이 있다면 '우리 나라'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앞에는 '한국어'가 오겠죠. 뒤에는? 예! '한글'이 옵니다. 그러니까 한국어는 말, 한글은 글자(문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위의 보기글은 전혀 맞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겁니다. 신조어나 은어나
컴퓨터용어라는 새로운 '말'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글'이 왜 위기이겠습니까.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좀더 설명할까요. '진달래, 철쭉, 원추리'같은 것들은
'순우리말'입니다. '부산항, 태종대, 청사포'같은 것은 '한자어'이고 '마우스, 캡, 하이일드펀드'같은 말들은 '외래어'입니다.
그러나 이 '순우리말'이나 '한자어'나 '외래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죠! 모두 '말'이나 '어'로 끝을 맺죠. 그러니 이것들은 모두 '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글로 표기할 때는
어떻게 되나요. 외래어든 한자어든 순우리말이든 모두 '한글'로 표기합니다. 다시 설명하면, 입으로 '마우스, 캡'이라고 하면 외래어이고 이것들을 글로 쓰면 그 표기 수단은
'한글'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외래어나 신조어, 은어 따위를 모두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데 왜 '한글의 위기'가 이야기됩니까. 되레 한글의 우수성이 증명되지...
5. 책갈피
* 책갈피 : 책장과 책장의 사이. 예) 은행잎과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는 '책갈피'는 '책갈피'가 아니라 '책갈피에 끼워놓는 어떤 물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당연히 '책갈피 못봤니?'라고 하거나 '책갈피 좀 주세요' 하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살수 있는 것 역시 당연히 책갈피가 아닌거고.
그러면 이 물건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주 쉽게 '갈피표'라고 하면 된다. 한자어로는
'서표'(書標)나 '표지'(表紙)라고도 한다. 이 두 한자어에서 같이 쓰이는 한자 '표'는 같은
글자가 아니므로 조심하길... 또다른 말로는 '보람'이라는 것이 있다. 순우리말인데 '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지 않기 위해 표를 해두는 것이나 또는 그 표적'을 가리킨다.
책갈피는 이렇게 쓰면 된다.
* 아내 몰래 책갈피에 비상금을 넣어두었는데 오늘 찾아보니 없어졌더라.
* 책갈피에 단풍잎을 넣어두는 것이야 괜찮지만 꽃을 넣어두면 책을 버리기 쉽다.
자, 정리하자. '책갈피'대신 '갈피표, 서표, 표지, 보람'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두꺼운 표지로 싼 책들에는 갈피표 대신 쓸 수 있게 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것은 '보람줄, 갈피끈, 가름끈'이라고 부른다.
6. 강추위
이제 곧 겨울이다. 조금 있으면 또 우리 나라 신문과 방송들이 줄기차게 잘못 쓸 말 가운데 '강추위'라는 것이 있다. 보통 이렇게 쓴다.
* 대관령 지역이 최고 1미터의 적설량을 기록한 가운데 내일부터 우리 나라 전 지역에
눈을 동반한 강추위가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서울 지역에는 순간 최대 풍속 3미터의 강풍을 동반한 강추위가 예상됩니다.
* 영동과 호남 지방에는 눈이 오는 등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예상됩니다.
* 영남지역 폭설 동반 강추위 지속될 듯.
그러나 이 보기글에 나온 '강추위'는 모두 틀린 표현. 아마도 '强추위'라는 뜻으로 썼을
것이고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은 또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만 이런 말은 없다. 사전엔 오직 '강추위'라는 말만 나오는데 이 말은 설명이 이렇게 달려 있다.
"바람도 불지 않고 눈도 오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
그러니 위에 나온 네 개의 '강추위'는 모두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부는 추위는 강추위가 아닌 것이다. 그냥 '매운 추위'나 '매서운 추위'면 됐을텐데. 이 때 '추위' 앞에 붙은 '강-'은 한자 '强'이 아니라 순우리말 '강'이다. 뜻은 두 가지. 먼저 '무엇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 있는데 '강술, 강조밥'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억지스럽다'는 뜻이 있는데 '강울음, 강다짐, 강호령'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말들은 이런 뜻이 있다.
* 강술 - 흔히 '깡술'이라고 하는 바로 그것. 안주 없이 마시는 술.
* 강조밥 - 좁쌀로만 지은 밥.
* 강울음 - 억지로 우는 울음.
* 강다짐 - 국이나 물에 말지 않고 먹는 맨밥. 보수도 주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남을 부리는 것.
* 강호령 - 아무 까닭 없이 꾸짖는 호령.
이제 강추위라는 말은 모두 이해가 되시겠지. 올 겨울엔 '강추위'라는 말을 잘못 쓰는 신문과 방송이 있으면 '추상'처럼 꾸짖자. 아니, '강추위'처럼 꾸짖자. 다시는 잘못 쓰지 않도록...
1999. 12. 27 그러나 국립국어연구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강(强)추위'를 표제어로 올린 뒤 '눈이 오고 매운 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라고 풀이를 달아놓았다. 옹색스럽게... 도대체 왜 이러는지. 제 정신인지를 모를 지경이다. 어쨌거나 눈이 오고 바람에 불어도 '강추위'라고 쓸 근거는 마련된 셈인가. 이때 '강'은 순우리말 접두어가 아니라 한자어 접두어 '강(强)'이라고 우기면 된다는 얘기다.
7. 계기판, 나침판, 개피
가장 먼저 '계기판'. 자동차나 비행기의 운전석 앞부분에 복잡한 문자나 숫자, 바늘 따위가 표시돼 있는 장치를 일컬어 흔히들 '계기판'이라고 한다. 그러나 '계기반(計器盤)'이
옳은 말. 영어로는 '대시보드(dashboard )'라고 한다. 응용하자면, 전기를 끊고 잇거나 기기의 제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는 '배전판'이 아니라 '배전반'.
다음은 '나침판'. 이 말 역시 '나침반'이라야 옳다. 소리가 아주 세게 나와야 안심하는 버릇들 때문인지 아니면 습관을 갑자기 버리기 힘든 때문인지 '나침반'이 맞는 말이라고
고쳐줘도 '나침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듯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고 그 마음이 작아보이던가? 나침반이라고 해도 충분하다. 판(板)과 반(盤)의 차이는, 짐작컨대 기능이 적극적이냐 아니면 소극적이냐 하는 점에서 구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같이 평평해도 단순한 나뭇조각일 때는 '송판(松板)'이나 '합판'으로
부르지만 다른 기능이 덧붙은 때는 '음반'이나 '선반(旋盤)'으로 쓰는 것을 봐서 그렇다는
말이다.
또 있다. '개피'라는 말. 주로 담배 낱개를 세는 단위로 쓰는 이 말은 '개비'가 바른 말이다.
물론 '열 개비'보다는 '열 개피'나 '열 가치'가 더 분명하게 들리지만, 이 말들은 틀린 말이라고 약속돼 있고 아직 표준말 항렬에 끼이지 못했으니 지금은 '열 개비'라고만 부를 일이다.
8. 서식
우리 나라에 무궁화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그렇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는 무궁화뿐만 아니라 어떤 나무도 서식하지 않는다. 대나무도, 감나무도, 백일홍도, 동백나무도... 어찌 그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들어 보라.
문제는 역시 한자말. 바로 이 '서식'이라는 말 때문이다. 한자로는 '棲息'이라고 쓰는데,
우리들은 이 말을 거의 학술용어에 버금가는 뜻으로 쓰고 있다. 신문에도 많이 나온다.
* 무제치늪에 서식하고 있는 참나리
* 무한계곡 바위틈에 서식하고 있는 물김
* 제주 난도에 가면 문주란이 서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주 낯이 익은 표현들이 아닌가. 이런 표현들은 신문뿐만 아니라 많은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위에 나온 한자 가운데 '棲'자는 바로 '집'이나 '보금자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 '서식'은 동물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나라에는 무궁화가 서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궁화뿐만 아니라 어떤 나무라도...
이 때는 그냥 '자라고 있다'고 하거나 '살고 있다'고 하면 충분하다. 조금 더 유식하게 쓰고 싶으면 '생장한다'고 하면 되고 '집단서식지'는 '군락'이라고 하면 된다.
9. 발자국
'발자국'은 발걸음을 떼서 남은 '흔적'이다. 경남 고성이나 전남 해남의 공룡 발자국 화석터에 가서 암만 들여다 보라. 그 '발자국'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가. 유식한 말로 '족적'(足跡)이라고 하는 이 발자국은 그냥 흔적일 뿐 결코 소리를 내는 어떤 기능도 없다. 눈길을
걸어갈 때 나는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는 뭐냐고? 그건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발 소리'이고 '발걸음 소리'일 뿐이지.
암만 문학적 상상력이 뛰어나고 시적 자유가 무제한으로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말글살이에 혼란을 끼치는 표현이라면, 나는 당연히 제한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검열이냐고? 그래, 차라리 맞춤법 검열위원회같은 또 하나의 위원회가 생겼으면 하는 것이 우리말도 제대로 못쓰는 문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이다.
'용각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발자국도 소리가 없다.
10. 쳐다보다, 치닫다
* 쳐다보다: '치어다보다'의 준말.
* 치어다보다 : 얼굴을 들고 치떠보다. '올려다보다'와 같은 말.
그러니, 결코 어머니가 젖먹는 아기 얼굴을 가만히 쳐다볼 수 없으며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은 자리에 앉은 학생들을 쳐다볼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는 그냥 '봤다'고 하면 되는
것이고 뭔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면 '내려다봤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치닫다'는 말이 있다. 이때 '치-'라는 말은 '위로'라는 뜻이다. '치솟다, 치받다, 치올리다'처럼. 그러므로 '치닫다'는 말은 '위로 달리다'는 뜻이 되는데도 종종 소설
같은데서 보면 '급한 마음에 지게도 벗어던진 채 산아래 마을로 마구 치달았다'라는 표현이 보이기도 한다. 아래쪽으로 달리다는 뜻으로 쓰는 말은 '내리닫다'가 있다.
"승강기가 고장나 1백층까지 헐떡거리며 걸어가던 만득이는 갑자기 다시 아래쪽으로
내리달렸다. 아파트 열쇠를 차에다 두고 왔던 것이다"처럼 쓰면 꼭맞는 표현이다.
단, '내리닫다'와 비슷한 '내닫다'는 말은 다른 말이므로 '내리닫다'고 써야 할 자리에 '내닫다'라고 쓰면 안된다.
11. 선친
누군가에게 만약 "선친은 잘 계시느냐?"고 유식한 체하며 물었다면 이보다 더한 망신에
망발은 없다. 왜 그런지 먼저 사전을 펼쳐보자.
* 선친 :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남에게 이르는 말.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되는가. 왜 그렇게 묻는 것이 망신이고 망발인지 알겠는가. 그냥
'아버님은 잘 계시느냐?'고 물으면 될 것을, 한자말을 섞어쓰다 당한 망신이 왜 망신인지
알아보자. 풀이에서 밝히고 있듯 '선친(先親)'은 '너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나 이 글을 쓰는 바로 그 사람의 아버지인 것이다. 그러니 자기
아버지의 안부를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이 어찌 망발이 아니겠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역시 풀이에 나와 있듯 이 말은 '나의 아버지'이긴 하되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만을 가리킨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를 두고 '잘 계시느냐'고 물으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묘지기'인가. 말이란 이렇게 오묘하고 재미있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 하나를
낱말 하나 잘못 선택해 묘지기로 만들 수 있으니...
'돌아가신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어려운 말로는 '선고(先考), 선고장(先考丈)'이 있고 '살아계신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어려운 말로는 '춘부장(春府丈, 椿府丈), 춘장(春丈), 춘정(春庭), 춘부대인(春府大人, 椿府大人)'이 있다.
12. 재원
한자로 '才媛'이라고 쓰는 이 말은, 눈치빠른 사람은 벌써 '媛'이라는 글자에서 알아챘겠지만, 재주 많은(才) 젊은 여자(媛)를 가리킨다. 즉, 남자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 없는 말이다. 또 여자이긴 하되 젊어야 한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분은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쁜가 안 예쁜가는 별 상관이 없다(상관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런데도 어떤 신문은 어떤 남자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재원이지만 취직을 못해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떠나버렸다'고 써 이 사람을 '동성연애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정리해 보자. '재원'이란 말은
1. 남자는 안된다. 여자에게만 쓴다.
2. 젊은 여자라야 한다. 나이든 분은 안된다.
13. 평양감사
이런 속담을 자주 쓴다. -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누구나 즐겨 쓰고 또 누구나 이 속담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안다. 그러나, '평양감사'라는
말이 말도 안되는 엉터리 말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말이 왜 말도 안되는 말인지
알아보자.
세조가 이룬 업적 가운데 가장 윗길로 치는 것이 '경국대전 편찬'이다. 물론 전부터 있던
여러 법령을 집대성한 것일 뿐이라는 얕잡아 보는 눈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 '경국대전'은 조선시대를 지배해 왔던 아주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이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지방관직(外官職)'편에는 이렇게 돼 있다.
'평안도의 우두머리는 평안도관찰사이다. 단, 평양부윤은 평안도관찰사가 겸임한다' 벌써 알아챈 사람도 있겠지만 '평안도'라는 도(道)의 가장 높은 관직은 '관찰사'다. 관찰사는 또 다른 말로 '감사(監司)', 도백(道伯), 방백(方伯)'이라고도 한다. 또 '평양'이라는 도시의 가장 높은 관직은 '부윤(府尹)'이다. 그러니 연결을 하자면
'평안 - 감사, 관찰사'
'평양 - 부윤'
의 꼴이 된다. 다시 말하면 '평양감사'라는 공식적인 직책은 우리 나라에서 전혀 볼 수 없는 관직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평양감사, 평양감사'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제 이 속담은 제발 이렇게 쓰자. "평안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14. 수육
'수육'은 한자어 '熟肉'에서 변한 말이다. 말뜻은 '삶아서 익힌 쇠고기'이다. 즉, 이 때
'肉'은 모든 '고기'가 아니라 '쇠고기'만을 가리킨다. 비슷한 말 가운데 '육포'라는 것이 있다. 고기를 얇게 저며 말린 것을 가리키는데 이 때 '고기'는 모든 고기가 아니라 '쇠고기'만을 가리킨다. 또 '육개장'이란 것도 있지. 원래 보신을 위해 먹던 음식은 '개장(국)'이라고 한다. 그런데 개고기가 없어 대신 다른 고기를 넣어 끓인 음식이 바로 '육개장'이다.
물론 이 때 '육'도 역시 '쇠고기'를 가리킨다(지방에 따라서는 닭고기를 넣고 끓인 '닭개장'도 즐긴다) 그러니 '돼지'와 '수육'은 결코 함께 어울릴 수가 없는 말이다. 죽어도... 또,
거꾸로 생각하면 '쇠고기 수육'이란 군더더기 말도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돼지고기를 가리키는 말로는 '제육'이라는 것이 있다. 한자어 '猪肉'에서 변한 말인데 '돼지 수육'이나 '돼지고기 수육' 대신에 '제육편육'이나 '돼지편육'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15. 장이/쟁이
많이 헷갈리는 것 가운데 하나로 '-장이'와 '-쟁이'가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의외로 간단히
구분할 수 있다. '기술자일 경우에는 '장이'로 쓴다'는 원칙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 자, 다음 말들을 연습해 보자.
간판( )이, 땜( )이, 거짓말( )이, 고자질( )이, 석수( )이,
빚( )이, 오입( )이, 미( )이, 뚜( )이, 트집( )이, 담( )이,
소금( )이, 변덕( )이, 유기( )이, 익살( )이, 수선( )이, 허풍( )이,
유기( )이, 오림( )이, 칠( )이
의문 나는 것은 사전을 찾아보자.
그런데 '-장이'나 '-쟁이'를 둘다 쓸 수 있는 말들은 어느 것을 쓰느냐에 따라 뜻이 많이 달라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양복장이/양복쟁이, 감투장이/감투쟁이, 안경장이/안경쟁이'같은 말이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하는데 '양복장이'는 '양복을 만드는 기술자', '양복쟁이'는 '양복을 입은 사람'을 뜻한다. '감투장이, 안경장이'는 역시 감투나 안경을 만드는
사람을, '감투쟁이, 안경쟁이'는 '감투를 쓰거나 안경을 낀 사람'을 지칭한다.
또 하나 '침쟁이'라는 말은 '침을 맞는 사람', 즉 아편중독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침술로
병을 다스리는 의원', 즉 '침의(鍼醫)'를 낮춰 부르는 말이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16. -워/-와
'따사로워/따사로와'나 '슬기로워/슬기로와'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따사로워, 슬기로워'가 맞는 말. 한글 맞춤법 제 18항에는 '어간의 끝 'ㅂ'이 'ㅜ'로 바뀔 적'에는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고 돼 있다.
- 깁다/기워/기우니/기웠다
- 굽다/구워/구우니/구웠다
- 밉다/미워/미우니/미웠다
그런데 단서 조항이 있다.
'다만, '돕-, 곱-'과 같은 단음절 어간에 어미 '-아'가 결합되어
'와'로 소리나는 것은 '-와'로 적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돕다, 곱다'만 '도와, 고와'로 '-와'를 쓰고 나머지는 모두 '-워'로 쓴다는 뜻. 그러니 '도와, 고와' 외에는 '따사로워, 슬기로워, 향기로워, 안타까워, 무거워, 괴로워, 매워, 즐거워, 놀라워'가 바른 표기이다.
17. 안전사고, 피로회복
한자가 우리말에 저지른 나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마는 '안전사고'만큼 딱 들어맞는 예가 또 있을까. '안전'과 '사고'를 연결해 보다가 아무래도 어려워 포기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사고는 안전하지 않아서, 불안전해서 일어나는 것인데 안전사고라니.
그런데, 맙소사! 사전에는 이 말이 버젓이 올림말로 나와 있다. 해석인즉 '주의를 소홀히
하여 사람과 재산에 피해를 끼치는 사고'라나. 이렇게 되면 사전도 무조건 믿을 게 못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주체적 사전 읽기'(시간이 없더라도 사전을 한 번 꼼꼼히 들여다
보라. 얼마나 틀린 말이 많은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래도 지금으로선 사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어쩔까).
이 말하고 비슷한 게 '피로회복'이다. 어떤 제약회사는 이렇게 광고한다. '피로회복엔 역시 ○○.' 피로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약이라니. 사라진 피로, 겨우 없앤 피로를 다시 '회복'시켜 주는 약이라? 이걸 돈내고 사먹는 사람들은 필시 전혀 피로하지 않은
사람들이라야 말이 되네. 하긴, 대부분의 '피로회복제'가 자양·강정(혹은 '강장') 작용을
하니, 이 약을 먹고 '강정(强精)된' 사람들의 뒤끝은 반드시 피로하긴 할게다.
18. 타산지석, 귀감, 본보기
한자 성어 가운데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다. <시경>에서 유래한 말로, 다른
산에서 난 좋지 않은 돌이라도 옥돌을 가는 데 필요하다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하찮은
행동이나 말도 자기 수양에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은 흔히 이렇게들 쓰기도 한다.
*1) 삯바느질로 번 돈을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한 행상할머니를 타산지석 삼아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르자.
*2) 제이(J )리그로 축구붐을 일으킨 일본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도 프로축구에 좀더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보기글들에서 '타산지석'은 적절하게 쓰이지 않았다. 앞에서 설명했듯 '타산지석'은 '다른 산에서 나는 돌'이긴 하되 '하찮은 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 가운데서도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 '하찮거나 못난 행동'을 가리킬 때만
써야 하는 것. 그게 '타산지옥(玉)'이 아니라 '타산지석(石)'인 이유다. 그러므로 '타산지석'은 이렇게 써야 한다.
*3) 어릴 때 엄마의 사랑을 못받아 빗나간 신창원을 타산지석 삼아 모든 엄마들이 자녀
교육에 좀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4) 뇌물을 받아 구속된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를 타산지석 삼아 모든 공직자는 몸가짐,
마음가짐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장학금을 기부한 할머니'나 '일본 축구계'는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말 가운데
'거울삼아 본받을만한 모범을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는 '귀감(龜鑑)'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 보기글 1), 2)에 나온 '타산지석'은 모두 '귀감'으로 바꾸면 바른 쓰임이 된다.
또 '타산지석'이나 '귀감' 모두를 아울러 쓸 수 있는 말로는 '본보기'가 있다. 순우리말은
아니지만 '타산지석'이나 '귀감'보다는 쉬우므로 즐겨 쓸만한 말이다.
19. 일본식 조어
일본말이나 일본식 글말투를 쓰지 말자고 하면 '왜?'하고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 요즘
하는 말로 정말 '대책이 없는 반응'이다. 막연히 몰라서인지,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자는
쪽인지 알기 어려워 입을 크게 벌리고 눈만 말똥거리고 있었던 내 반응을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설명할란다.
'말이 가면 생각도 간다.' '생각은 말을 따라 간다.' 좀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언어생활이
사고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 말투에는 일본인의 의식(그리고, 문화
정서 생활습관 따위 온갖 것들)이 아주 끈끈하게 녹아있다. 적절한 예가 될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굳이 예로 들자면, 타향에서 고향 사투리를 들었을 때나 외국에서 한국말을 들었을 때의 반가움이 바로 그 정체다(이게 바로 '정체성(아이덴티티)인가). 이게 바로 일본말(투)을 쓰지말아야 하는 이유. 아이엠에프(IMF) 시대이니 또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돈이다. 일본말투에 젖어들면 우리돈이 일본으로 솔솔 빠져나갈 위험도 높다.
일본 영화나 또다른 그들의 문화상품을 우리가 익숙하게 여긴다면 그럴 위험은 아주 높다. 따로 설명이 필요없겠지.
이 난에서는 우리말 속에 끈적끈적하게 녹아서 우리말투인지 일본말투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운 말들, 일본어식 관용구를 소개하겠다. 나도, 힘들지만, 알고 난 뒤에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말들이다.
* 가슴에 손을 얹고
* 귀에 못이 박이다
* 낙인이 찍히다
* 낯가죽이 두껍다
* 눈살을 찌푸리다
*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 도토리 키재기
* 비밀이 새다
* 애교가 넘치다
* 이야기꽃을 피우다
* 종지부를 찍다
* 콧대를 꺾다
* 폭력을 휘두르다
* 희망에 불타다
* 가슴에 손을 얹고 - 胸に手を置く - 무네니 테오오쿠
*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다 - 猫の首に鈴を付ける - 네코노 구비니
스즈오 쓰케루
* 귀가 멀다 - 耳が遠い - 미미가 도(오)이
* 귀를 의심하다 - 耳を疑う - 미미오 우다가우
* 귀에 못이 박이다 - 耳にたこが出來る - 미미니 타코가 데키루
* 꿈처럼 지나가다 - 夢の樣に過ぎる - 유메노 요(오)니 스기루
* 낙인이 찍히다 - 烙印をおされる - 라쿠인오 오사레루
* 낯가죽이 두껍다 - 面の皮が厚い - 쓰라노 가와가 아쓰이
* 눈살을 찌푸리다 - 眉をひそめる - 마유오 히소메루
*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 目頭が熱くなる - 메가시라가 아쓰쿠 나루
* 닻을 내리다 - 碇を降ろす - 이카리오 오로스
* 도토리 키재기 - どんぐりの背くらべ - 돈구리노 세쿠라베
* 마각을 드러내다 - 馬脚を現わす - 바캬쿠오 아라와스
* 마음을 주다 - 心をやる - 고코로오 야루
* 말 뼈다귀 - 馬の骨 - 우마노 호네
* 머리가 숙여지다 - 頭が下がる - 아타마가 사가루
* 머리를 짜다 - 頭を絞る - 아타마오 시보루
* 벼락이 떨어지다 - 雷が落ちる - 가미나리가 오치루
* 벽에 부딪히다 - 壁に突き當る - 가베니 쓰키아타루
* 비밀이 새다 - 秘密が漏れる - 히미쓰가 모레루
* 뿌리를 내리다 - 根を下ろす - 네오 오로스
*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 想像にかたくない - 소조니 가타쿠 나이
* 새빨간 거짓말 - 眞赤なうそ - 맛카나 우소
* 손에 땀을 쥐다 - 手に汗をにぎる - 데니 아세오 니기루
* 손을 대다 - 手をつける - 데오 쓰케루
* 순풍에 돛을 달다 - 順風に帆を揚げる - 준푸니 호오 아게루
* 숨을 죽이다 - 息を殺す - 이키오 고로스
* 시험에 미끄러지다 - 試驗にすべる - 시켄니 스베루
* 애교가 넘친다 - 愛嬌が溢れろ - 아이쿄가 고보레루
* 어깨가 무겁다 - 肩が重い - 가타가 오모이
* 얼굴을 내밀다 - 顔を出す - 가오오 다스
* 얼굴이 넓다 - 顔が廣い - 가오가 히로이
*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 欲に目がくれる - 요쿠니 메가 구레루
* 이야기에 꽃이 피다 - 話に花が く - 하나시니 하나가 사쿠
* 입을 모으다 - 口をそろえる - 구치오 소로에루
* 입이 무겁다 - 口が重い - 구치가 오모이
* 종지부를 찍다 - 終止符を打つ - 슈미후오 우쓰
* 콧대를 꺾다 - 鼻を折る - 하나오 오루
* 폭력을 휘두르다 - 暴力を振う - 호료쿠오 후루
* 흥분의 도가니 - 興奮の(土+甘)(土+삼수 없는渦) - 고훈노 루쓰보('루쓰보'에 해당하는
한자 두 자는 모두 넷스케이프에서 지원이 되지 않는 한자입니다)
* 희망에 불타다 - 希望に燃える - 기보니 모에루
물론 이 관용구들이 우리말에서 쓰이고 있는 일본어식 관용구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보기 가운데 일부분일 따름이다. 이만큼 우리말은 일본말에 물들어 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이 말들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일본말 가운데 단어는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버리기도 쉽지만 이런 관용구들은 마치 우리말처럼 보이는데다 우리말에 끈적끈적하게
녹아 있어 솎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높이 평가하다'란 우리말이 있는데도 '높이 사다'를 쓰고, '어슷비슷하다'란 뜻으로 '도토리 키재기'란 일본식 관용구를 씀으로써, 우리식 표현을 밀쳐 놓는 일은 재고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20. 상표이름
'클랙슨' 대신 '경음기'를, '호치키스' 대신 '종이찍개'를, '롤러블레이드' 대신 '인라인스케이트'를 써야 한다고 얘기했던가? 쓰지 않아야 할 '클랙슨, 호치키스, 롤러블레이드'는
모두 상표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제' 대신 '퐁퐁'을, '승합차'대신 '봉고'를 써서는 안되는
이유와 똑같은 이치다. 생각해 보라. '세제에 유해성분이 들어 있다'는 말 대신 '퐁퐁에
유해성분이 들어 있다'고 말하거나 보도를 하면 그 파장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단, 단서는 있다. 사전에 실렸을 경우엔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인정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전에 따라선 '클랙슨'이나 '호치키스'를 표제어로 올린 경우도 있어 이제
이 말들은 어쩔 수 없이 일반명사가 된 외래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이 가운데 아주 고치기 어려운 말로 '포크레인'이 있다. 이 말 역시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언론마저 땅을 파는 기계의 상표 이름임에도 땅을 파는 기계를 아울러 이르는 말쯤으로 생각하고 쓰고 있다. 대우에서 만든 기계든, 삼성에서 만든 기계든 모두 '포크레인'이라니, 이렇게 엉터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제대로 된 상표는 '포클레인'인데... 그래서 신문에는 포크레인은 상표이니 일반명사인 '엑스커베이터(excavator)'나 '굴삭기'로 쓰자고 주장하는 투고가 실리기도 한다. 또 어느 회사는 자기 회사 제품을 '**굴삭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된 주장이고 잘못된 용법이다. 먼저 '엑스커베이터'는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외국어를 쓸 필요는 없다. 또 '굴삭기'로 쓰자는 주장 역시 무리다. 우리말에 '굴삭'이란 것이 없는데 '굴삭기'란 말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굴삭기(掘削機)'는 일본어식 한자어다. 땅을 파거나 뚫는 기계를 우리말로 이르자면 '굴착기(掘鑿機)'. 땅을 파는 일을 두고 일본은 '굴삭한다'고 하고 우리는 '굴착한다'고 하는
차이가 있으므로 '굴삭기'는 일본에 줘버리고 우리는 '굴착기'만 쓰기로 하자. 정 일본이
좋아 발광하는 사람들은 놔두고, 자기 제품을 굳이 '굴삭기'라고 주장하는 회사도 놔두고...
21. 샛강
* 샛강 : 큰 강에서 한 줄기가 갈려 나가서 중간에 섬을 이루고 아래에 가서 도로 합류하는 강.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가. 샛강은 '시냇물'이나 '조그만 하천', 혹은 '개천'이라는 뜻이
아니다. 샛강이 있으려면 반드시 섬이 있어야 한다. 여의도 샛강처럼 한강의 본류에서
벗어나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로 흐르는 강이 바로 샛강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이런 샛강이 얼마나 되는가. 서울의 암사동이나 뚝섬, 잠실이나 행주산성 부근 강가에서
쓰레기를 주워봤자 그들은 샛강을 살린 것이 아니라 그냥 강을 살렸을 뿐인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샛강을 개천이나 작은 하천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게 만든 책임 가운데 많은 부분을 그 신문이 져야 한다. 그러나 그 신문이 사람들에게 사과는커녕 '샛강이란 말은 우리 신문이 썼던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하고 바로잡는 것도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꼭 그 신문만의 잘못일까. 물론 이 신문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말이 잘못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는 신문이 거의 없었으니 다른 신문들 역시 주범을 면했지만 종범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많은 국어학자들이나 어문 관련 기관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독자들의 책임도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수준과 비례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우리 나라에 아직 이런 왜곡된 거짓말을 일삼는 신문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랄밖에.
22. 비리/비위
돈을 받고 정보를 빼내준 공무원이 있다면, 탈세 방법을 가르쳐 준 공무원이 있다면, 납품 대가로 돈을 받은 공무원이 있다면, 단속을 빌미로 10대 접대부와 여관까지 간 경찰이 있다면, 이들을 한 마디로 뭐라 불러야 하는가. 아마 대부분은 언론에서 '가르쳐 준'
대로, '얼버무린'대로 '비리 공무원'이라고 부를 것이다.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 준 돈을
받은 국회의원이 있다면 '비리 의원'이라 할 것이고, 돈을 주고 군에 가지 않으려 한 경우는 '병역비리'나 '병무비리'라 부를 것이다.
아서라. 누누이 언론을 믿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론에 속은 여러분이 스스로 이들
범법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누가 이들에게 죄를 줄 것인가. 또 언론은, 만약 이것이 게으른 탓이었다고 하더라도 죄를 면할 길이 없다. 왜 속은 것인지, 왜 언론을 믿어서는 안되는 것인지 알아보자.
지금 우리 나라 모든 방송, 모든 신문은 성향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상관없이 '비리'라는 말을 잘못 쓰고 있다. 이 말을 그렇게나 많이 쓰면서 '사전 한 번 찾아보지 않은 때문'이다(이것은 사실에 가까운 추측, 혹은 추측에 가까운 사실이다). 그럼 사전을 보자.
* 비리(非理) : 도리에 어긋나는 일.
아니, 앞서 저지른 많은 죄들이 단지 '도리'에 어긋나는 일들이었다니. '도리'가 어떤 말인가. 도리에 어긋난다면 욕은 할 수 있을지언정, 벌을 줄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는가(요즘은 되레 도리를 다한 자식에게 돈으로 보상하려 드는 판인데). 납품 대가로 돈을 받고, 세금 적게 낼 수 있도록 해주고 돈을
받은 공무원을 처벌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오로지 비판 기능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은 '제 4부'로 부르는 언론이 스스로 비판 기능을 포기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네 번째 권력기관'인 언론에는 또 묘한 핑계가 있다. '독자들이, 시청자들이, 청취자들이
원해서...'라는 것이 그것이다. 적어도 언론에 이런 핑계를 대주지 않으려면 우리가 말을
제대로, 적확하게 골라 써야 할 일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 비위(非違) : 법에 어긋남. 또는 그 일.
확실히 법에 어긋난 일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하지 말고 '법을 어겼다'고 해야 한다. 죄를 지은 공무원, 국회의원은 '비위 공무원, 비위 의원'이라고 부르자. 병역 면제를 노려
지은 죄는 '병무 비위'라고 부르자. 언어 생산자인 언론이 생산을 잘못 하고 있으니 언어
소비자인 독자들, 시청자들, 청취자들이 나서자. '비위'를 '비리'라고 얼버무리는 언론은
상대하지를 말자(일급비밀 : 언론은 '왕따'를 가장 무서워 한다).
23. 안본지 오래 됐다
말은 과학이다. 왜냐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어학 관련 학과는 '인문과학'이라고 이름 붙인 단과대학에 속해 있잖은가.
그러나 과학까지 갈 것도, 수학까지 갈 것도 없다. 산수 정도만 하더라도 바른 말글생활을 충분히 할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다.
"영화 안 본 지 오래 됐다"
"회 안먹은지 오래 됐다"
"안해 본 지 오래 됐다"(여기서 '해보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묻지 말라. 상상하는 것 그대로이니까).
이런 말들이 아무 어색함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라면 그 사람들의, 또 그 사회의
인지 수준과 '합리적'인 사고 수준은 걱정할 만하다. 전혀 '과학적'이지도, 혹은 그보다
더 낮춰 '산수적'이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산수를 해 보면 이 말들은 이렇게 써야 옳다.
"영화 본 지 오래 됐다/회 먹은지 오래 됐다/해 본 지 오래 됐다"
영화 안 본 지 오래 됐다면 바로 조금 전에도 영화를 봤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영화를 본 것이 아주 오래 됐다고 이 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말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말을 제대로 쓰려고 애쓰는 아이들이나 우리말을 갓 배운 외국인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흔히 이야기를 잘못 해놓고도 억지를 쓰는 말에 이런 것이 있다.
"개떡 같이 이야기 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라."
정말 개떡 같은 말이다. 두말 할 것 없이 개떡은 개떡이다.
개떡을 찰떡으로 알아듣는 말글생활이 청산되는 날,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학교에 교육용 컴퓨터를 들이면서 뒷돈을 받는 교장도, 찾아오지 않으면('찾아오는'의 주체는 너무나 다양해서 일부러 생략했다) 스스로 찾아가서 봉투를 들이밀어야만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유흥업소 업주도 사라질 것이다. 외국 관광객을 위해 우리 나라 간판에 한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신없는 장관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24. 너무
'너무'라는 말의 말밑(어원)은 '넘다'이다. 아마도 '잦다'의 어간 '잦'에 '우'가 붙어 부사
'자주'가 된 것과 같이 '넘+우'가 '너무'로 변한 꼴일 것. '넘(는)다'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똑같다)이라는 말도 있듯,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반갑다'면 적당히 반가운 정도를 넘어서 반가운 것이 부담이 될 정도라거나 아니면 반갑지 않음과 똑같다는 뜻이 된다. '너무 좋다'는 것 역시 '좋은 것이 지나칠 정도'라는 뜻.
'너무 어렵다/너무 크다/너무 고르다/너무 흔하다/너무 밝다' 따위 보기글에서처럼 '너무'라는 부사 뒤에 붙는 말들은 말하는 사람이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는 상황이라야 어색하지 않게 된다. 즉 '어렵거나, 크거나, 고르거나, 흔하거나, 밝은 일'은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너무 좋다/너무 기쁘다/너무 반갑다'는 말들은 말하는 이가 결코 '좋지 안기를/기쁘지 않기를/반갑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 아니다. 이게 바로 '너무'라는 말을 아무데서나 쓰지 말아야 할 이유다.
25. 터울
우리가 흔히 쓰는 '터울'은 단순히 '나이 차'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더 깊고도 깊은 속뜻이 숨어 있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한 어머니에게서 난 자녀의 나이 차이'이다.
많이들 틀리게 쓰는 말 가운데 '사사하다'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을 보통 이렇게 쓴다.
* 아무개 선생에게서 사사를 받아 실력이 일취월장, 이번에 큰 상을 타게 됐다.
* 소월은 안서 김억에게서 시를 사사하였다(이 표현은 우리 나라의 어떤 사전에 용례로도 실려 있다).
26. 사사
그러나 '사사(師事)'라는 말은 '누구에게서 배우다'는 자동사가 아니라 '누구를 스승으로
섬기다'는 뜻의 타동사이다. 그러니 '박녹주선생을 사사했다'나 '유의태를 사사한 허준은...'같이 써야 맞는 표현. 당연히 '시를 사사하였다'라는 표현은 말이 안된다.
27. 사열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 도착,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
이런 글을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대통령을
좋아하든, 아니면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나라의 대통령을 우리 나라 신문이 이렇게 다루는데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안될 일이다. 아직도 이 글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말 실력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겠지만... 왜 그런가 보자.
'사열'이라는 말은 '조사하거나 검열하기 위해 하나씩 쭉 살펴보는 일'을 뜻한다. 또는
'부대의 교육 정도 및 장비 유지 등에 관하여 검열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서 '사열하는 사람'은 '높은 사람', '사열받는 사람'은 '낮은 사람'이 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일본군대(자위대)의 사열을 받다니... 그것도 우리 신문이 그렇게 표현을 하다니...
'우째 이런 일이'라고 말하면서 그 신문을 던져버릴 일이다. 이 말은 이렇게 써야 올바르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 도착,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8. 영부인
예전 권위주의 시대가 남긴 유산 가운데 가장 뿌리깊은 것은 여러 가지 제도나 생각보다는 '말'이다. 제도는 사람이나 정권이 바뀌기가 바쁘게 고치고 생각 역시 시대가 바뀌면
급하게 따라 바뀌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 자신을 어떻게 불러줬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대통령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이 말은 바로 그 직전까지는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이 일반적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그 시절 그렇게 높은 뜻을 담고 있었던 이 '각하'라는 말도 알고 보면 그리 높이는 말이
아니어서 우습다. 전제군주시절 황제는 '폐하'라고 불렀고 왕은 '전하'라고 불렀다. 그런데 '각하'는 '대신'을 부를 때 쓰던 말이다(중국에서는 지방 수령들, 일본에서는 육군 소장 이상이 각하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일국의 대통령에게 대신에게나 써야 할 말을 쓴
그 많은 사람들은 알고보면 '불충'을 저지른 셈이 된다. 뜻을 알고 썼을까. 뜻을 알고 들었을까.
그 시절 유행하던 말로는 '영부인'이라는 것도 있다. 이 말은 아주 오랫동안 '대통령 부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 호칭은 그대로 이어져 5공 시절 '빨간 바지 주걱턱 부인'에게까지 쓰였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 말은 결코 높임말이 아니다. '귀부인'과 같은 말로 그저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일 뿐이다. 그런데도 요즘까지 일부 언론은 '대통령 부인'은 물론 외국의 '퍼스트 레이디들'에게까지 영부인이라고 쓰기 일쑤다. 따위 제목은
이제까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종종 나올 듯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옛날의 말버릇이라고만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내 생각이지만 '令夫人'을 '領夫人'이라고, '대통령'의
'領'자를 잘못 가져와 해석해서 이렇게 쓰는 것은 아닐까.
영부인에 관한 우스갯소리로 이런 것이 있다. 이 말을 대통령부인이라고만 해석한다면
'부인을 동반하라'는 뜻의 '동 영부인'이란 글귀가 찍힌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희호 여사님' 모시기에 바쁘겠다고.
29. 섭렵/섭력
'아무개씨는 요직을 두루 섭렵하고...'
이렇게 신문에 틀리게 나와도 당사자가 항의했다는 소리나, 혹은 그래서 신문이 고쳐 실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재미(?)있다. 아무튼 신문에 이름이 실렸으니 좋다는 얘긴가. 아니면 신문을 상대로 시비를 걸기가 껄끄럽거나 무섭다는 얘긴가.
여러분들은 아래의 보기글이 이상한가, 아니면 괜찮은가.
'개똥이는 우리 나라 현대소설 대부분을 섭렵했다'
이상하게 보인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문제는 많은 신문과 사람들이 '섭렵'과 '섭력'을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간단히 살펴보자.
* 섭렵(涉獵) : 온갖 책을 널리 읽는 것.
* 섭력(涉歷) :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경험하는 것.
이제 쉽게 이해가 되는가. 그러니 위의 '인물평'에 나온 글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아무개씨는 요직을 (두루)섭력하고...'
'섭력(涉歷)'의 '歷'자가 '經歷'의 '歷'자와 같은 한자라는데 착안을 하면 헷갈리지 않을
것.
30. 장본인/주인공
'아무개씨가 바로 맨손으로 강도를 잡은 장본인이다'라거나 '행상으로 번 돈 전부를 장학금으로 기증한 장본인'이라는 표현이 신문에 종종 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장본인'을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으로 알고들 있다.
그러나 사전은 '나쁜 일을 빚어낸 바로 그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그 사람'이긴
하되 '나쁜 일'을 만든 사람이라는 뜻인 것. 또다른 어떤 사전에는 '일을 꾀하여 일으킨
사람'이라는 정도로 나와 있고 같은 말로 '발두인(發頭人)'과 '주모자'를 들고 있다.
이렇게 사전마다 다르게 설명돼 있고 보면 '장본인'이라는 말이 꼭 나쁜 사람에게만 쓴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부정적으로도 쓰이는 말을 굳이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생각)하면 답은 나오기 마련. 윗문장에 나온 '장본인' 대신 '주인공'을 쓰면 껄끄러운 뒷맛도 없이 아주 딱 들어맞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담의 장본인'보다는 '미담의 주인공'이 훨씬 더 맛이 나지 않는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피해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다.
31. 조우, 해우
한자나 한자어를 좋아하는 깊은 병이 든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여덟이나 아홉은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말이 '조우'와 '해후'이다. 다음 예문을 보자.
* 국무회의장에서 대통령과 조우한 국무총리는 충남지역 현안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 가 그룹 회장이 전경련 주최 골프모임에서 나 그룹 회장과 해후, 서로의 건강에 대해
묻고 있다.
이런 문장들은 신문에서 예사롭게 나오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넘어간다. 그러나 '해후'나 '조우'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뜻은, 만나긴 만나되 그야말로 '우연히 만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무회의장에서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나 전경련이 주최한 골프모임에서 재벌 회장들끼리 만나는 것이야 전혀 '조우'도 '해후'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신문들은 오보를 내보낸 셈이기도 하고, 독자들은 그 오보에 그냥 속아넘어간
셈이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우민화 정책'이고, 쉬운 말로 하면 '온 국민 바보 만들기'이다. 만나면 그냥 만났다면 되는 것이고, 우연히 만나면 그냥 우연히 만났다면 될 것을 왜들 그렇게 어려운 말로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위의 글들은 다음과 같이 쉽게 쓸 수 있겠다.
* 국무회의장에서 대통령과 만난 국무총리는 충남지역의 어려움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했다.
* 전경련이 마련한 골프모임에서 만난 가 그룹 회장과 나 그룹 회장이 서로 건강이 어떤지를 묻고 있다.
32. 식혜/식해
철을 가리지 않고 즐겨 마시는 우리 전통음료 가운데 '단술'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것으로 '식혜'가 있다. 식혜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에 여러 음료 회사에서 앞다투어 만들어내던 깡통 음료를 떠올릴 것이다(지금도 나오고 있나?).
그런데 식혜와 비슷한 말이자 구별해 써야 할 말로 '식해'가 있다. 가끔씩 신문에서도 소개되는 함경도 지방(혹은 동해안 지방)의 별미 음식 '가자미 식해'가 바로 가장 대표적인
'식해'. 경북 동해안 지방에선 고춧가루와 채썬 무, 되직하게 지은 밥과 생선을 버무려 삭힌 '밥식해'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러면 '식혜'와 '식해'는 어떻게 다른가 알아 보자.
먼저 '식혜(食醯)'는 흔히 말하는 '단술(= 甘酒)'에 가깝다. 한 마디로 말해 단맛이 나는 음료인 것. 그러나 '식해(食+ 젓갈 해)'는 '생선젓'이다. 다만 멸치젓이나 황석어젓, 밴댕이젓 같이 소금만 들어간 젓갈과는 약간 다르다. 앞서 얘기한 밥식해나 가자미식해 모두
'고춧가루'와 '무' 따위가 들어간다. 밥식해는 되직한 밥을, 가자미식해는 되직하게 지은
조밥을 주로 쓴다는 차이만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식혜'라는 말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종종 '가자미식혜'라는
틀린 말이 신문에조차 나오곤 한다. 그러나, 밥알이 동동 떠 있는 위에 가자미 토막까지
떠있는 식혜라면 누가 그걸 마실 것인가.
지금 내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이는 까닭은 달디 단 식혜가 아니라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
나는 가자미 식해나 밥식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식혜와 단술은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식혜 : 밥알이 삭아서 동동 떠오르면 밥알을 따로 건져놓고 끓여서 차게 식혀 밥알을
띄워서 마신다.
* 단술(감주) : 밥알이 다 삭아서 노르스름해지고 끈끈해지며 단맛이 날 때 끓여서 단맛을 진하게 하여 따끈하게 마신다.
33. 임대/임차
어느 신문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김 아무개씨는 아무개 건물 지하를 임대, 미싱 4대를 놓고 공장을 운영해 1년 동안 얼마의 수입을 올렸다.
어느 말이 틀렸겠는가. 두 개를 모두 찾았다면 상당한 실력이라고 칭찬받을 만하다.
먼저 '임대'. 임대는 '빌려주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건물 지하를 임대하는(빌려주는) 사람은 건물 주인이지 김씨가 아니다. 김씨는 '임차'를 했다.
여기서 느낀 점은? 괜히 어려운 한자어를 쓰다가 말을 틀리지 말고 쉬운 우리말로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기자들도 종종 틀리게 쓰고 있으니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쉬운 말로 쉽게 쓰자.
또, 다음 틀린 말은 '미싱'이다. 원어가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인 이 말은 일본식 외래어인데도 '공업용 미싱 파문'이라는 말도 있듯(주로 신문과 방송에서 쓴 말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로는 모두들 잘 알고 있듯
'재봉틀'. 그러니 '부라더 미싱'은 일본에서나 통용될 상표인 셈이다.
34. 조선통신사
많은 한국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잘못 쓰는 말 가운데 으뜸이나 버금쯤 되는 것이 '조선통신사'라는말이다. '조선통신사라는 말이 왜?' 할 사람도 많겠지만, 한국 사람이 이 말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얼빠진 일인지 이제 알아 보자.
먼저 '통신사'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통신사는 한자 표기 '通信使'를 보면 알
수 있듯 '외교 사절'이다. 조선시대 때 일본에 보내던 사신인데 고종 때는 '수신사'로 이름을 바꿨다. 수신사중에는 김기수나 김홍집같은 이가 이름이 났다. 그런데 이들을 일러
'조선 수신사'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으면서 왜 '통신사'는 '조선통신사'라고 일본 쪽에서
부르는대로 따라 부르는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챘겠지만 '조선통신사'라는 이름은, 혹은 호칭은 일본 쪽에서 부르는 방식이다. '김대중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사람들이고, '김대중 한국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인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나라 직책이나 관직 이름을 부를 때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조선통신사'라는 일본식 호칭 대신 '통신사'라고만 불러야 될 일이다. 그런데 석사 박사를 받겠다는 이들의 논문이나 유명한 학자들의 글에서조차 조선통신사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니 그들의 국적은 대체 어디인가.
참고로, 같은 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던(이런!) 사절 이름은
'조선 성절사'가 아니라 '성절사(聖節使)'이고 중국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던(이런! 이런!) 사절 이름은 '조선 천추사'가 아닌 그냥 '천추사(千秋使)'이다.
35. 임산부/임신부
흔히 아주 무서운 영화를 선전할 때 '임산부는 보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표현. '임신부는 보지 말라'고 해야 한다. 변죽은 그만 울리고 실제 차이점을 알아보자.
'임신부'는 '임신(姙娠)+부(婦)'이니 '임신한 아녀자'란 뜻이다. 그러면 '임산부'는? 이 말은 '임부(姙婦)'와 '산부(産婦)'를 합한 말이다. 즉 임신한 사람과 낳은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니 '임신부'보다는 범위가 훨씬 더 넓다.
36. 뗑깡
'뗑깡'은 절대로 써서는 안될 말이다. 왜냐하면, '일본말'이니까.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나? 그럼 또 다른 이유. 왜냐하면, '뗑깡'이란 말은 '간질'이란 말이니까. 다시 말하면, 아이들보고 '뗑깡부린다'고 하는 말은 '지랄 발광하고 있네'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차마 뜻을 알고는 못쓸 말이 아닌가. 일본에서는 '뗑깡'이라고 읽고 한자로는 '癲癎'이라고 쓴다.
37. 삼가해 주십시요
'삼가해 주십시요'라고 한 적은 없는가. 구두 닦는 이는 구두 상태를 보고, 미용사나 이발사는 머리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짐작한다고 하는데, '말 좀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당장 당신의 모든 수준이 형편없음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이 짧은 한 마디에는 틀린 것이 두 개나 있다. 먼저 '삼가해'는 '삼가'라야 한다. 으뜸꼴이
'삼가하다'가 아니라 '삼가다'이므로 '삼가다 - 삼가고 - 삼가니 - 삼가서 - 삼가라 - 삼가'꼴로 활용을 한다. '삼가하다 - 삼가하고 - 삼가하니 - 삼가해서 - 삼가해라 - 삼가해'는
모두 틀린 활용.
또 '주십시요'는 '주십시오'라야. 모든 종결어미는 '∼오'로 쓰는 것이 철칙이다. 다만 나열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는 '∼요'를 쓸 수 있다. '이것은 배요 저것은 감이다'처럼.
38. 설레이는/설레는
예전의 유행가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설레이는 가슴을 어쩔 수 없어, 첫사랑인가
봐요" 그러나 '설레이다'라는 우리말은 없다. 대신 '설레다'라는 으뜸꼴은 당당히 사전에
실려 있다. 그러니 '설레는'이라야지, 괜히 근거도 없는 '-이-'를 덧붙여 '설레이는'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명사형은 역시 '설레임'이 아닌 '설렘'이라야 하고.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을 보면 설레인다'라고 하면, '그런 거짓말 하지마'하고 얘기해도
된다. '설레이는 마음'은 없으니까.
39. 추스리다/추스르다
흔히 '추스려라', '추스리자' 따위로 잘 쓰고 있지만 이런 활용이 이뤄지려면 으뜸꼴이
'추스리다'라야 한다. 그러나 사전에는 '추스르다'만 실려 있으므로 '추스르다 - 추스르고
- 추스르니 - 추슬러 - 추슬러라'꼴로 써야 한다. 당연하게도 '추스리다, 추스리고, 추스리니, 추스려라, 추스리자'는 모두 틀린 말. 이젠 제발 '경제 살리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죽어가고 있는 말과 글도 좀 추스르자. 추슬러보자꾸나.
40. 콩고
* '콩고 내전이 수도인 킨샤사까지 확대돼 로랑 카빌라 대통령이 피신을 갔다.'
98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이 글에선 '콩고'라는 나라 이름이 틀렸다. '콩고'는 옛날부터 콩고지만 예전에 '자이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얼마 전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문제. 이 나라의 서울이 바로 킨샤사다. 내전이 일어나 대통령이 피란을 간 나라도 바로 이 콩고민주공화국. 이 나라 왼쪽에 붙어 있는 콩고(서울은 '브라자빌')는 콩고민주공과화국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41. 도미니카
* '99년 프로야구에서 롯데는 도미니카 출신의 호세가 맹활약을
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 보기글에서 틀린 말은 '도미니카'이다. 맞는 말은 '도미니카공화국.' 우리는 흔히 '도미니카'라고들 부르지만 '도미니카'는 '도미니카 연방'과 '도미니카 공화국' 두 개의 나라가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해에 있지만 도미니카 연방은 1978년 독립한 인구 10만명 쯤 되는 나라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1844년 독립한 인구 7백만명 쯤 되는 나라.
42. 양동작전
*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여당은 '강경책과 온건책의 양동작전을 펴 야당을 원내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위의 보기글 가운데 틀린 말은 '양동작전'이다. 고개를 갸웃거릴 남자들이 많겠지만 이
말은 한자로 '兩動作戰'이 아닌 '陽動作戰'이다. 즉 양쪽에서 한꺼번에 움직이는 작전이
아니라 이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해놓고 저쪽을 치는 기만작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의 6.25때 유엔군이 마치 원산에 상륙하는 것처럼 맹렬한 폭격을 해놓고 인천에 상륙한
것 같은 그런 작전인 것. 이 보기글에 알맞은 말은 '양동작전'이 아니라 '양면작전'이다.
43. 언론에서 쓰는 문장
언론이나 지식인 계층이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게 많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말에
대해서는 그들이 바로 '원흉'이라고 할 만하다. 그들이 우리말을 어떻게 비틀고 꼬집고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지는 다음 예문에서 보자.
1) 우승자에게는 상장과 부상이 주어졌다.
2) IMF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땀과 눈물이 요구된다.
3) 부상을 막기 위해서는 주의가 요망된다.
4)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힘이 보태져야 한다.
5)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 중의 하나.
이 예문 가운데 1)번에서 4)번까지는 우리말에선 아주 어색하고 잘 쓰지도 않는 피동형 '-지다'나 '-되다'를 쓰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언론에서는 흔히 이렇게 표현하지만 실제 우리가 말을 할 때 '주어졌다, 요구된다, 요망된다, 보태져야'라는 말을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면 이 말들이 왜 어색하다는 것인지 간단히 알 수 있다. 이런 명제가 있다.
'가장 좋은 글은 가장 말에 가까운 글'
이 말들은 대부분 일본말의 영향을 받은 말이자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잘못 퍼뜨리고 있는 말들이다.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말이 훨씬 힘있고 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우승자에게는 상장과 부상을 주었다.
2) IMF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
(또는 '…온 국민이 힘써야 한다')
3) 부상을 막기 위해서는 주의해야 한다.
4)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5)번은 영어에서 영향을 받은 말. 다시 말하면 영어로 표현해서는 전혀 잘못된 것도, 어색할 것도 없지만 이것을 우리말로 바꿔놓으니 문제가 되는 것. 즉, 앞부분의 '가장 뛰어나다'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인데 뒷부분에서는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했으니 모순되는 것이다. 만약 가장 뛰어나다면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라고 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장'을 빼고 대신 '아주'나 '매우'를 넣어 '아주(혹은 '매우') 뛰어난 축구선수'라고
하면 충분하다. 영어를 조금 안다고 괴상망측하고 논리에도 맞지 않는 표현을 한다면 그를 어찌 지식인이라고 부르겠는가, 언어 사대주의자일 뿐이지.
44. 웅큼/움큼
'한 움큼'을 '한 손으로 움켜쥔 만큼의 분량'이라고 이해하면 헷갈리지 않을 듯하다.
45. 냄새/내음
'바다 내음'이나 '봄 내음' 같은 말은 포악한 사람의 가슴에도 저절로 시심(詩心)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말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유감스럽게도, '내음'은
비표준어로 처리돼 있다. 옳은 말은 어감이 다소 떨어지고 정감도 나지 않는 '냄새'. 그러니 '꽃 내음' 같은 말은 '꽃 냄새'로 써야 하는데, 꼭 '냄새'대신 '내음'을 쓰고 싶다면 반드시 표시를 해줘야 한다.
46. 썸찢하다/썸뜩하다
여름이 다가오면 극장가는 당연히 공포영화를 많이 상영한다. <여고괴담>이나 <조용한
가족>같은...
이런 영화를 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가. 오싹오싹해지고 소름이 돋으며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섬ㅉ하다'라고 하는데, '섬ㅉ하다'라는 이
말은 전혀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므로 써서는 안된다. 바른 말은 '섬뜩하다'. 그러니
"아유, 섬뜩해!"나 "가슴이 섬뜩하게 내려 앉는다"처럼 써야 한다.
"사전에 나오지 않으면 어때! '섬ㅉ'이 훨씬 더 좋아 보이는데"라는 섬뜩한 말은 하지 말기. 마치 한국인이기를 포기한다는 소리처럼 들리니까.
47. 퍼센트/퍼센트포인트
먼저 '퍼센트'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백분율'을 말한다. 그러니 백 개 가운데 다섯 개면
'5%'인 것이다. 반면 '퍼센트포인트'는 '퍼센트와 퍼센트의 비교치'를 말한다. 즉 '5%와
10%의 차이'는 '5%'가 아닌 '5%포인트'라고 해야 하는 것. 때문에 당연히 이 두 말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투표인 숫자가 10만명인 어떤 투표에서 'ㄱ'이 50%(5만명), 'ㄴ'이
10%(1만명)를 득표했다면 'ㄴ'은 'ㄱ'보다 40%포인트 낮은 득표율을 올렸으며 표수로는
'ㄱ'보다 80% 적은 득표를 했다고 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같은 숫자의 경제활동인구라고 가정할 경우 1년 사이에 실업률이 2%에서 4%로 높아졌다면 실업자 숫자는 '50%'나
늘어난 셈이지만 비율로는 겨우 '2%포인트' 늘어났을 뿐인 것.
48. 알맞는/알맞은
시험 문제 가운데 '알맞는 말을 골라 넣으시오'라는 표현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남을 시험하겠다는 이 문제는 스스로 틀린 표현을 쓰고 있어 말이 안된다. 꼭 시험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도 실생활에서 흔히 '알맞는'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알맞은'이라야 옳은 표기. 그 이유는 '알맞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즉, 형용사 '예쁘다'를 활용하면 '예쁘고,
예쁘니, 예뻐서, 예쁜'이 되는데 '예쁘-'라는 어간에 '는'이란 어미를 붙여 '예쁘는'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흔히 신문에서도 자주 잘못 쓰는 '걸맞는' 역시 '걸맞다'가 형용사이므로 '걸맞은'이라고
써야 한다. 반대를 뜻할 때도 '알맞지 않는, 걸맞지 않는'이 아니라 '알맞지 않은, 걸맞지
않은'이라야 옳다.
49. 옛부터
먼저 '옛부터'는 우리 말법으로 보아 성립하지 않는 말. '부터'는 토씨(조사)이므로 앞말이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이나 부사, 부사격 조사, 혹은 연결어미일 때는 붙을 수 있지만 '옛'이라는 '관형사'에는 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부터'는 관형사 '옛' 대신 명사 '예'를 써서 '예부터'라고 해야 한다.
또 '님'이란 말 역시 유행가 가사나 문학작품에도 많이 나오는가 하면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쓰고 있지만 이 말은 두음법칙을 적용, '임'으로 써야 한다. 그러므로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은 '임의 침묵'이라야 하고 '님께서 가신 길'은 '임께서 가신 길'이라야 옳다. 이제는 시 제목이라는 고유명사가 돼 <임의 침묵>으로 고칠 수는 없겠지만 원칙은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착각하지 말 것은, '하느님'이나 '선생님'에 붙어 있는 '-님'은 두음법칙과 상관없는 '접미사' '님'이라는 사실.
50. 새벽
새벽은 한밤중에서 아침 사이의 넓은 시간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즉 아주 짧은 시간대인 '날이 밝을 무렵, 동이 터올 무렵'을 뜻하는 말인 것. 그러니 계절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대개 여름에는 5시 무렵, 겨울에는 6시30분에서 7시 무렵이라야 새벽에 해당한다. 아직 깜깜한 오전 2시나 4시는 동이 트지 않은 시각이므로 암만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아니다.
51. 재털이/재떨이
다음 말 가운데 맞는 말은?
① 재떨이 ② 재털이
답은 ①번, 재떨이. 왜 그런지 생각해보자.
'재떨이'는 '재+떨이'의 구조로 결합된 복합어인데 '떨이'의 원말. '떨다'를 굳이 거센말인
'털다'로 쓸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1로 충분한데 2나 3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재털이'가 아닌 '재떨이'로 써야 하는 것.
당연히(요즘은 '당연하다'를 '당근이다'라고들 쓰기도 하더라만) '먼지털이'와 '먼지떨이'
가운데서도 '먼지떨이'가 옳은 말.
52. 널판지/널빤지
평평하고 너른 나뭇조각을 일러 '널판지'라고들 하기도 하나 실은 '널빤지'가 옳다. 아마도 '판자, 판자때기'가 연상이 돼 널빤지 대신 널판지를 쓰고 있는 듯한데 순우리말로는
'널빤지', 한자말로는 '판자'(板子)가 옳은 말. 'ㅃ'은 된소리(경음), 'ㅍ'은 거센소리(격음)라고 하는데 말이 자꾸 거세지는 이유는 자기 말에 자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어느
분이 말했다.
53. 안절부절하다/안절부절못하다
흔히 "왜 그리 안절부절 하니?" 혹은 "왜 그리 안절부절이니?"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거니와 신문에서도 <감원 바람에 안절부절>이라거나 <안절부절하는 감독> 따위 표현들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안절부절'은 '안절부절하다'가 아닌 '안절부절못하다'가 으뜸꼴(기본형)이므로
'왜 그리 안절부절못하니?, 감원 바람에 안절부절못해, 성적부진으로 안절부절못하는
감독'과 같이 써야 옳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주책없다'가 있는데,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하는 몹시 실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는 '주책이다'가 아닌 '주책없다'라고 해야 한다. '주착없다, 주착이다'도
틀린 표기.
54. 둥굴레차
예전엔 흔히 보리차를 많이 끓여 먹었지만 요즘은 집에서 끓이는 차도 종류가 많이 다양해졌다. 이 가운데 가장 흔히 끓이는 차로는 둥굴레라는 식물의 뿌리로 끓이는 둥굴레차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정에선 '둥글래차'나 '둥글레차'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이름은 '둥굴레차'.
55. 짜집기/짝깁기
양복 따위 모직물에 구멍이 날 경우 그 부분만 표시가 안 나게 메우는 기술로 '짜깁기'라는 게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대부분 '짜집기'라고 하기 마련. '깁다'의 사투리 '집다'의 영향을 받은 때문으로 보이는데 '짜깁기, 짜깁다'가 옳은 말이다.
57. 절대절명/절체절명
'절대절명'이란 말 역시 잘못 쓰고 있는 말. 이 말도 '절대'라는 말이 가지는 절대성 때문에 널리 잘못 쓰고 있으나 제대로 된 말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이다.
58. 양수겹장/양수겸장
자주 쓰는 한자 성어 가운데 '양수겹장'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양수겸장'(兩手兼將)으로 써야 옳다. '겹'자가 가지는 뜻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 말.
59. 다대기/다진 양념
'다대기'도 얼핏 생각하면 순우리말 같지만 일본말 '다타키'(叩き)에서 들어와 역시 우리말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말. 순우리말로는 '다진 양념'으로 써야 한다. "다진 양념 좀
더 주세요"라고 하기가 귀찮거나 쑥스럽거나 입에 익지 않아 어색하다면 "양념 좀 더 주세요" 해도 된다.
60. 다시
"멸치는 머리까지 넣어야 다시가 잘 난다"라고 흔히 말하기도 하거니와 자주 듣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는 결코 우리말 '다시마'와 관련이 없는, 그야말로 순일본말 '다시지루'(出汁)에서 응용(놀라워라!)을 한 말이다. 조미료 상표 가운데 '다시다'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래서 '다시'라는 일본말을 우리말인 것으로 착각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사람으로서 배알이 있다면 이런 상표를 쓰는 제품은 되도록 사지 말 일이다. 우리말로는 '맛국물'. 요즘은 '국수(국시)장국'이라는 상표도 나오는데, 이 가운데 '장국'을 대신
써도 될 법하다.
61. 금슬/금실
'금슬'은 '거문고와 비파',
'금실'은 '부부 사이의 사랑', 또는 '금실지락의 준말,
'금실지락'은 '금실'의 본래 말이니 당연히 '부부사이의 사랑'.
하여튼, '금실이 좋다'고만 외우면 될 일이다.
62. 차로/차선
아주 오랫동안 잘못 쓰이다가 얼마 전부터 바로잡힌 말 가운데 '차로'가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2차선 도로'나 '차선 위반' 따위로 쓰고 있지만 이 말들은 '2차로 도로'나 '차로 위반'이라야 옳은 것. '차선'과 '차로'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먼저 '차로'는 말 그대로 차가 달리는 길이다. 그리고 차로와 차로를 구분하느라 그은 선이 바로 차선이다. 그러니 승용차만 다닐 수 있는 차로에 화물차가 들어가면 차선 위반이 아니라 차로 위반이 된다.
또 도로 관리 관청에서 차로와 차로 사이를 구분하는 선을 긋는 공사를 하고 있다면 이는 '차로 공사'가 아닌 '차선(긋기) 공사'이다. 물론 도로 한가운데에 노란 색으로 그어놓은 것은 '차선'이며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중앙선'이라고 부르지 '중앙로'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원론적으로, 교통경찰이 딱지(←스티커)를 뗄 때 '차선 위반'이라고 항목을 적는다면 딱지를 떼인 사람은 이의를 제기할(그래서 벌금을 내지 않아도)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첫댓글 이곳에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운영자께서 보시고 적당한 곳에 옮겨주세요.
잘 올려주셨어요.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겠어요.
알고 있던 것도 있고 몰랐던 것들도 있네요.이렇게 하나하나 우리말을 바로 쓰려는 노력들이 모여서 우리말을 빛나게 하는 것이겠지요.고맙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주말에 프린트해서 읽어보았는데 저는 별로 마음에 안드네요. 관용어, 속담 같은 것까지 기계적으로 재단하고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을 매도하는 태도가 좀 지나치다고 봅니다.
글에 주관성을 빼면 좋을 듯하고, 언어에 과학적 사용과 문학적 사용과 일상적 사용이 있는데도 과학적인 분석만 강요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 "근거는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몇가지 정리해서 올려볼께요.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감사합니다. 또 하나를 배워가네요. 요즘같이 이렇게 많이 배우다보면 혹시 저 천재되는것 아닐까요?
언어의 문학적 사용은 그 과학성을 바탕으로 창작자가 다듬어내는 창작의 소산이에요.이 글은 그 올바른 사전적 지식을 알고 응용하라는 뜻이죠.뻔한 문제를 갖고 뭘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그루터기님?그것은 활자예술을 다루는 각자의 상대적 수용력이자 표현력이며 기본문제이니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문학적 사용이 지나치면 결국 생활용어의 부분별한 적용 및 표현의 혼돈이 올 수 있듯 상호 유기적으로 수용하되 그 과학적 쓰임에서 벗어나면 안돼요.시와 소설의 언어적 표현방법이 다르듯 장르별 차이도 분명히 있고요.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창의를 위한 지식이 중요해요.기준과 정도(正道)가 있어야 하니까요.
마음님 좋은 지식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 늦게 프린트 해서 지금 읽고 있어요. 몰랐던 것을 알아간다는 것이 좋네요. 간혹 내용에서 웃긴 문장이 나와서 웃기도 했지만....하하..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헉!! 이것까지 잘못된 표현이었을 줄이야!! 하는 표현들이 많네요..ㅠㅠ
새로 알게 된 부분도 있지만, 그루터기 님의 말씀에 동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안 해본지...라는 말은 '한 번 해 본 후에 안 해본지 오래되었다, 라고 해서 앞의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표준어는 원래는 표준어가 아니었다가 사람들이 많이 씀으로 해서 표준어가 되눈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표준어도 그런 단어가 많고요. 여기서는 강추위가 그렇군요. 원래뜻은 그렇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의도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라면 국어학자가 그런 말을 표준어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신종어,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상님의 말처럼 과학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언어이고 작가가
그에 바탕해서 올바른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언어는 사람들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기준은 필요하지만 획일성과 기준은 다른 것입니다. 사동이나 피동문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말이지만, 오히려 번역체를 잘만 가꾸어 쓴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잘 표현해주는 문장쓰임이 새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을 하면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의견이 나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아무튼 저도 국어 공부 많이 해야겠습니다.
언어가 변형 생성 소멸한다는 촘스키의 이론은 타당합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계승하는 일을 헤프게 여길 일이 아니다 여깁니다. 소통이 갈수록 중요시 되는 시대에 올바른 소통과 아름다운 표현을 위해서 우리말 살리기와 우리말 알리기에 좋은 정보가 오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