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이 한 재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금메달 열세 개와 세계 7위라는 자긍심 그리고 성취감과 자신감 등등. 특히 기대도 않았던 야구의 금메달은 가슴 벅찬 감동과 환희를 안고 왔다. 동메달이라도 따면 다행이라 생각했었는데.
야구는 모든 참가국의 예선 리그를 통해 상위 네 팀을 고른 후, 1위와 4위 그리고 2위와 3위의 준결승전과, 거기서 이긴 팀끼리의 결승전으로 금메달을 결정했다. 물론 진 팀끼리의 동메달 결정전도 있었다.
예선전 일곱 번의 경기. 그 중 미국과 쿠바와 일본의 실력은 우리보다 위고, 캐나다와 대만은 우리와 비슷했다. 중국과 네덜란드가 조금 쉬운 상대였지만, 네덜란드 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마조마하게 진행되었다. 결과는 7전 전승으로 1위였으나 하나같이 아슬아슬했다.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결승전에서 최강 쿠바를 다시 이긴 것도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좋았다고 또는 기적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피와 땀으로 일궈낸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말할 것 없고, 감독과 코치들도 같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리라. 경기 내내 TV를 보지도 못하고 응원한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과연 내가 아니었다면 이 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
내게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 내가 중계를 보고 응원을 하면 그 팀은 반드시(?) 지는 현상이다. 때문에 나는 우리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하고 언제나 재방송만 본다. 몇 년 전 한일 월드컵도 우리의 경기를 보지 못했고, 또 내가 중계를 보지 않았기에 우리 팀이 4강까지 올라갔었다.
이번 야구경기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의 예선 경기가 다 끝난 줄 알고 TV를 켰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 때부터 미국이 우리를 따라 잡는다. 설마 설마 하다가 역전 당하는 것을 보고 황급히 TV를 끄자, 얼마 안되어 온 아파트가 떠나갈 듯한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실력 차가 많아 쉽게 이기리라 생각한 중국전이 연장전까지 간 것도, 8점이나 앞섰던 대만 전이 6회에 동점이 된 것도 다 내가 TV를 본 탓일 것이다. 준결승전이나 결승전을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나는 결과를 안다.
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내가 TV를 보고 안 보고 하는 것이, 수 만리 떨어진 베이징의 야구 경기에 어떻게 영향을 준단 말인가? 현실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보든 안 보든 이길 게임은 이기고 질 게임은 진다. 다만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상상일 뿐이다.
정말 그럴까? 머리는 그렇다고 인정 하는데, 마음은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차라리 세상 만사를 홀로 결정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TV중계 같은 세상 오락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내게 전달하려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가 응원하는 팀을 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참 뜻은 ‘내가 승자의 편에 서서 희희낙락하지만 말고, 패자의 편에도 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 하라’는 것 같다.
흐뭇한 마음으로 베이징 하늘에 태극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또 본다. 환호하는 응원단 및 국민들의 모습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양손을 흔들며 환히 웃는 선수들의 대견스런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한편 이긴 자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거워하는 그 시간, 진 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 흘린다는 사실을 여태껏 잊고 있었다. 한 번도 그들의 쓰라린 마음을 생각해보지 않았고, 어떤 위로나 격려를 보내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게도 실패는 많았는데.
‘그래 이제부턴 달라지자. TV도 당당히 보고 이기면 이기는 대로 함께 기뻐하고, 져도 실망 말고 그들을 격려하며 더 응원해주자. 가까이서는 직접, 멀리서는 마음으로라도. 기도로라도.’
세상 모든 일이 다 승부이고 경쟁이다. 올림픽이 아니고 운동경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늘,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생겨난다. 그 때마다 나는 내 주위의 진 자에게도 다가가 손을 내밀고, 말을 들어주며, 그들의 편이 되어주자고 다짐해 본다. 어쩌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인지도 모르겠다.
예수님께서도 이긴 자와 함께 계시지 않고, 진 자와 함께 계실 것이다.
첫댓글 선생님, 한 마디로 '짱'입니다. 우선 내용이 퍽 재미있습니다. 저도 종종 이런 징크스를 느끼는 경우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표현이 참 재미 있습니다. "TV를 보지도 못하고 응원한 나" ㅎㅎㅎ 웃음이 퍽, 하고 터집니다. 이기고 있는데 끝난줄 알고 보았더니 역전을 당해서 껏더니 이기드라는 얘기도 재미있네요. 마지막 문단에 "그래 이제부턴 달라지자. TV도 당당히 보고 ..." 통쾌한 결말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까지 진 자와 함께 계신다 하셨네요.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선생님, 다른 글도 보여주세요. 선생님 글에는 유머도 있고, 메시지도 있어 좋습니다.
저도 비슷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일이라 남들에게 드러내지는 못하고, 제 마음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재밌고 짜임새있는 선생님 글 잘봤습니다. 선생님 글을 카페에서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참, 선생님의 등단작을 <등단작>란에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등단작은 어떻게 올리죠? 몇번이나 시도했는데 실패 했습니다. 복사를 해서 옮기고 등록을 하면 제목과 작자 명이 앞으로 와 버리네요.
지난 북경 올림픽의 야구 결승 게임은 야구의 묘기가 모두 담겨있는 통쾌한 드라마 였었지요.「 내가 응원하는 팀을 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참 뜻은 ‘내가 승자의 편에 서서 희희낙락하지만 말고, 패자의 편에도 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 하라’는 」 닮고 싶은 좋은 귀절입니다. 李 작가님은 마음이 참 따뜻하신 분 같습니다. '징크스'는 四柱에 神殺이 있어서 그렇다는 군요. 올려주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은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월드컵 경기에서 그 징크스를 깼습니다. 우리나라 경기를 안 보고 견딜수가 없더라구요. 제가 봐도 이기는 경기에서 그 징크스를 깼습니다. 그러나 요즘, 그런 가슴조이는 경기는 잘 안 볼려고 합니다. 이젠,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혀와서 되도록 안 볼려고 하지요. 패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 특히 우리편에게 진 상대편에 대한 배려.마음에 담아 두겠습니다.
ㅎㅎㅎㅎ 시종일관 웃으면서 선생님 글을 보았습니다. 그 묘한 징크스땜에 아니 대단한 애국심 때문에 재방송을 보시는 모습이 상상되어 더 웃었습니다. 이제는 재미나게 보십시요. 선생님 말씀대로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격려를 보내면서... 글이 재미잇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위해 오셨습니다. 이기는 자가 아니라 지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글을 잘 쓰는 자가 아니라 못쓰는 자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저를 격려해 주신 여러분은 바로 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신 분입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응원하는 팀은 반드시 진다.'라는 징크스. 장노님께서 웬 미신 같은 말씀을 하시나 의아해 했는데 결국은 하나님의 참 뜻을 헤아리시는군요. 좋은 글 진지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