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방웅선배님.
먼 미국조지아에서 그날을 되새기라고 보내주신 메일과 동영상 잘 봤습니다.
어제가 6.25 전쟁이 일어난지 꼭 58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 나이가 다섯살 되던 때이지요(63-58=5)
5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6.25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저는 집이 경남 김해였기때문에 직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피난민들의 행열이 우리가 있는 마을까지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그때 시골에서 술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여름이라 피난민들이 냇가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을때 어머님은 큰 가마솥에 국밥을 끓여서 수차례 피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셨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우리들 역시 그 당시의 처절했던 전쟁을 거의가 다 잊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너무 잘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제가 어떻고 해도 정말 잘 살고 있음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니까요.
집앞에만 나가면 음식점, 노래방, 맥주집 등등,
각종 대형 할인마트에는 밤낮없이 뭔가를 사려고 하는 여성들로 인파를 이루고 있구요.
식당에는 밤낮없이 먹기위해 들끓고 있는 그 모습 들,
해외여행이라면 기를 쓰고 갖다와야 자랑거리가 생기는 그 모습 들,
해외에 골프를 하지 않으면 축에도 못기는 그 모습 들,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언제 그 6.25를 다시 생각 할 수 있겠습니까.
6.25전쟁의 실제 피해자들은 이제 하나, 둘씩 그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그 자식들은 그 세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설문조사에서 6.25가 마치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일어났다고 하는가 하면,
미국,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라고도 하며,
남한이 북한으 침략했다고도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만 한답니까.
이 모든것이 우리 부모들과 학교의 교육과 무관심한 결과 일 뿐입니다.
얼마전 저의 안식구랑 현충일에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누워있는 호국영령들이 뭐라고 말씀하시겟습니까.
한국은 총체적 안보의 위기에 처해 있지만,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우리는 그래도 여러 정보나 책을 통하여 엄청난 위기위식을 갖고있으나, 우리의 자식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고 있음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언제 죽어도 상관이 있읍니까만은 우리 자식들은 또 제2의 6.25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월남이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고 난 뒤 불과 수개월도 되지 않아 공산화 되었으며,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공산화를
수천만명이 학살을 당해야 했고, 수백만명이 이민을 가야 했던 그 때가 불과 35년전의 일입니다.
그것도 우리 세대만 알고 있는 사실이니 자식들이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도 군복을 입고 다시 전장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온 가슴속에 가득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먼저 자기가 살기 위하여 피난이나 도망을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또한 지금의 군인들은 어떨까요.
아마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뒤로 꽁무니를 뺄 것입니다.
무너진 군기와 기강으로 해이해진 군은 무력 할 뿐입니다.
이젠 유엔군의 참전도 기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수십만 또는 수백만의 인구가 전장에서 사라질것입니다.
또한 친북좌파의 내부 괴멸작전으로 인하여 전방이 없고, 후방이 없는 그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 뻔한 일입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힘이 없고, 통치력도 없고, 강력한 지도력도 없고, 그냥 당하고 말 형편이며,
국민은 국민대로 힘도 없고, 의지도 없고, 이념과 사상도 없으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하는 물결일 뿐입니다.
선배님이 전에 말씀하신대로,
만약에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우리는 전장에 가서 싸우다가 산화하여야 할 것이며,
그래도 살아 남아있다면, 지하에 숨어들어가서 처절한 게릴라 활동으로 끝까지 싸워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선배님께서 그 간절함을 일깨워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계속 보내주시는 메일 잘 보고 있습니다.
또한 프린트를 하여 금여사라도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드리구요,
또 건강하시고,
다시 언제인가 뵐 날을 기다립니다.
안양에서
신병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