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보 시론 (2000. 5. 27)
신학 교육과 기독교 대학
신학 교육의 문제는 교단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신학 교육은 온 교단의 관심과 사랑과 기도 가운데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인간적 이기심이나 집단의 명예심이 개입되어서도 안 되며, 오로지 일심 단합하여 미래의 우수한 교역자들을 양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교단의 신학 교육은 천안의 신학대학원과 부산의 고신대학교 신학과로 이원화되어 있다. 물론 법적으로는 한 교수회이며 서로간에 강의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리적 여건과 운영상의 이유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이원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가불 교육과정 문제와 신학석・박사 과정 문제 등으로 인해 약간의 견해차가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외부의 인사들에게 마치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인 것처럼 비춰진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며 유감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단지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볼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 교단의 미래가 걸려 있는 신학 교육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신학대학원과 대학 신학과 사이의 문제의 근본은 ‘기독교 대학’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곧, 기독교 대학이란 무엇이며 기독교 대학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신학 교육 일원화에 대해서는 다 동의하고 찬성하지만, 결국에는 고신대학교 안에 있는 ‘신학과’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나아가서 기독교 대학인 ‘고신대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고 말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염려는 영도의 신학과를 천안으로 옮길 경우 교단의 신학 교육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고신대학교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염려일 것이다. 그럴 경우 고신대학교의 기독교 대학이라는 성격이 약화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의 근본 바탕에는 ‘신학과’가 고신대학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신학과의 존재가 현실적으로 그러한 기능과 역할을 감당해 왔으며 지금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원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대학에서 ‘신학과’가 다른 과들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지도하고 또는 섬기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은 신학과가 모든 다른 학과의 중심에 서서 유기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사고’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대학이란 기독교 대학에 대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그 대학의 이념과 정신, 운영 원리를 따라서 운영하는 대학이다. 따라서 기독교 대학 안의 모든 과의 ‘모든 교수들’이 기독교 대학에 대한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교육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교수들이 1년에 몇 차례씩 자체적인 주제 발표와 세미나를 가짐으로써, 스스로 기독교 대학을 잘 운영해 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신앙 지도와 교육을 위해서는 ‘교목실’을 두어서 경건회를 주관하고,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모든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성경과 신학 개론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대학에서 신앙과 영적 지도는 ‘신학과’가 아닌 ‘교목실’이 맡아서 하는 것이 옳다. 이것은 기독교 중고등학교의 경우를 보면 분명해진다.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는 대학처럼 과(科)가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원리만큼은 분명하다. 곧 기독교 학교의 신앙 지도는 ‘교목실’이 맡아서 한다는 원리이다. 규모가 큰 대학에서는 교목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럴 경우에는 교목실을 강화(强化)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일 것이다. 곧 개혁주의 신학을 깊이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훌륭한 목사 여러 명을 교목실에 배치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신학교’는 구약 시대의 ‘선지 학교’를 계승한 것으로서 교회의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교회가 세운 ‘교회 안의 한 특수 기관’이기 때문이다. 여하한 경우에도 ‘신학교’는 상아탑 아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아카데미) 안의 한 과’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당장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무리가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만큼은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현체제로 운영되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해결해야 과제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큰 결단을 내려 일시에 다 해결할 수 있다면 제일 좋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분명한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그 목표를 향한 단계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기독교 대학의 성격과 운영에 대해 올바른 방향을 정립함으로써, 기독교 대학의 장래 문제뿐만 아니라 신학 교육의 일원화 문제도 원리대로 바로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2000년 5월 27일자 기독교보 시론. 변종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