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陽明이라는 인물. 중국사상사에서 번쇄한 주자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유학의 정신을 새롭게 밝힌 인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는 교조화된 주자학으로 인해 王陽明 이름 석자라도 들먹이면 異端으로 몰려 죽음으로까지 내몰렸던 陽明學!
王陽明의 저술은 지극히 적으나 제자와의 문답은 어느 정도 남아있다. 『傳習錄』이 그 단편이다. 전습록을 거의 2년에 가까이 읽으면서 남는 언어는 '致良知'이다. 인간에게 남아있는 신성과도 같은 양지를 끊임없이 닦아라. 양명의 제일 메시지인 것이다.
양명학에 매료되는 것은 양명의 인격이기 때문이지만 그가 보통 사람에게도 공부의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학자만이 학문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신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유대를 느낄 수 있다.
태권도는 분명히 몸의 실천에서 비롯되어 마음과 함께 나아가는 공부이다. 공부를 어디까지나 몸의 기예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아우르는 인격의 차원으로 바라본다면 공부론의 보편적인 지평을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구체적인 몸의 공부는 각각의 영역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일반화하기 힘든 수준이 도사리고 있기에 함부로 입을 뻥끗했다간 보편적인 인식의 지평을 열 수가 없다.
致良知의 良知는 본래 인간이면 가지고 있는 토대이다. 태권도를 하든 어떤 공부를 하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판단,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확충하여 보편화하여야 한다. 인간에게 있는 사리분별로부터 세상만물을 포용하고 일체화하는 대장부의 마음으로 양지를 키워야 한다.
주자학의 번쇄한 언어로부터 지성인의 용기로서 바른 길을 간명하게 밝힌 양명의 本義로부터 태권도 교육론의 간명한 언어는 실천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知行合一! 언어보다 실천의 중요성을 이보다 확실히 얘기한 언어는 없을 것이다. 바로 실천 속에 致良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내가 태권도인이라면 태권도를 하는 것이다. 도복 속에 숨쉬는 내 몸 속에서 태권도의 혼(陽知)가 자라는 것이다.
태권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면서도 집단적인 운동일 수 있다. 집단적인 성격은 서로의 공부를 도울 수 있는 좋은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금의 심무회 태권도 수련 모임은 집단적인 약속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으로 규율이 빠져버렸다. 나 역시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있지만 정말이지 여러분에 죄송할 따름이다. 양명의 저술을 읽으면서 난 부끄러운 태권인이라고 생각했다.
큰 轉機가 없는 한 운동모임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개인으로서 수련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사범, 이규형 사범님의 제자로서 만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