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회의 한(?)이 서린 외연도에 다녀왔습니다.
벌써 열두 번째 답사인가? 기억이 아득하네요.
6월부터 9월까지는 평일에도 여객선이 하루 2번 왕래하는 까닭에 처음 당일치기 답사를 했죠.
이번 답사는 사진촬영과 현재 집필 중에 있는 '외연도 역사민속지' 보충조사를 겸한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28세의 청년을 만나 잊지못할 망외의 추억을 만들기도 했구요.
용인에 산다는 그 청년은 바쁜 일상을 쪼개 2박 3일의 일정으로 외연도를 찾았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요즘 보기 드물게 사려깊은 청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낚시가 취미인 그는 밀물을 틈타 2키로에 달하는 농어 2마리를 낚았는데,
길손을 위해 한 마리를 선뜻 횟감으로 내놓아 육지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싱싱한 자연산 농어를
안주삼아 기꺼이 낮술 한 잔을 했네요.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덤이랄까, 특권이랄까.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각설하옵구....
외연도는 대천항에서 53키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이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섬 외연도.....
뱃길로는 거친 파도를 헤치고 2시간 10분여를 달려가야 닿을 수 있는 서해의 절해고도입니다.
본래 유인도서였던 횡견도 오도 황도를 비롯, 20여 개의 크고 작은 섬과 여(바위섬)가 열도를 이루고 있죠.
그러나 1970년대 독가촌 철거사업에 따라 세 섬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강제로 철거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죠.
반공이 국시로 채택되어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던 암울한 시대의 아픈 역사가 이 섬에도 서려 있습니다.
항구를 빠져나간 여객선은 원산도, 삽시도를 지나 중간 기착지인 호도와 녹도를 경유합니다.
'여우섬'이란 뜻을 지닌 호도는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강태공들이 가장 즐겨 찾는 섬이고,
사슴을 닮아 명명된 녹도는 지난날 조기잡이 주목망어업의 메카로 불리었던 풍요로운 섬이었죠.
호도와 녹도를 뒤로하고 망망대해를 향해 1시간 여를 더 나아가야 하나의 점으로 남아 있던
외연도가 비로소 선연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외연도는 세 개의 산이 포근하게 감싸는 천혜의 어장입니다.
동쪽으로는 봉화산이 우뚝 솟아 천년 등대가 되어주고 있고,
서쪽으로는 뾰쪽한 망재산이 조응하여 한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그런가 하면 북쪽으로는 야트막한 당산이 살포시 내려않아 마을의 鎭山으로 좌정하였죠.
진산이란 풍수상의 용어인데요, 쉽게 풀이하자면 한 마을이나 고을을 지켜주는 主山이란 뜻이죠.
당산은 섬주민들이 신성구역으로 숭배를 해온 산입니다.
하여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지인들은 물론 섬사람들도 출입을 꺼려했던 신성불가침의 공간이었죠.
심지어 임신한 여인네들은 당산을 바라보는 것조차 금기시했다고 하니,
당산에 대한 주민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죠.
당산에 오르면 하늘을 뒤덮을 듯한 울창한 상록수림이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동백나무, 팽나무 등이 어우러진 이 숲은 말 그대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외연도의 보배와 같은
존재입니다. 때문에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죠.
산정에는 외연도 산신을 모신 산제당이 있고, 그 바로 밑에는 풍어의 신이자 어업의 신으로
치성을 받는 전횡장군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田橫 장군하면 다소 생소한 이름이죠?
중국 고대 제나라의 장수이자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전횡은 3형제가 평민의 신분으로 몸을 일으켜 한고조 유방, 항우와 더불어
천하의 패권을 다툰 영웅호걸입니다. 그러나 유방에게 패하자 자신을 따르는 500여 무리와 더불어
서해의 섬에 은거하게 됩니다. 후한을 두려워한 유방이 사신을 보내어 회유하자 두 식객과 함께
낙양에 이르렀으나 스스로 자신의 목을 칼로 찔러 자결을 합니다.
유방의 부름에 응한 것은 부하들에게 화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죠.
전횡을 따라 간 두 사람 역시 끝내 벼슬을 받지 않고 슬퍼하다가 주인의 무덤 옆에 구덩이를 파고 자결을 택합니다.
전횡의 비극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죠.
섬에 남아 있던 500여 명의 장졸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한날한시에 모두 목을 매어 죽으니,
전횡 장군과 그의 부하들이 보여준 의리와 절개는 천고의 미담이 되어 역사의 기록으로 전하게 되었죠.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고려시대부터 전횡을 추모하는 수많은 한시가 쓰여졌고,
조선왕조에서도 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론이 되곤 했죠.
그런 전횡 장군을 외연도에서 수호신으로 모신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요?
외연도에서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전횡이 그 무리와 더불어 은신한 섬이 바로 외연도라고 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죠.
중국에는 전횡이 머물던 섬(전횡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횡의 은거지가 외연도로 알려진 것은 고대 제나라가 위치했던
산둥반도와 외연도가 지척에 위치하는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중국에서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는 속언은 이를 두고 한 말이지요.
아무튼 외연도에 살게 된 전횡은 지나가는 군선이나 상선을 부채로 끌어들여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준 의로운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민들을 구제했다는 이러한 전설이 외연도에서는
전횡 장군을 수호신으로 모시게 된 배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연도를 일명 전횡도라고 부릅니다.
이런!
외연도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데, 강의시간이 좀 늦어지다보니 벌써 날이 훤하게 밝아오는군요.
다음을 기약하며....
첫댓글 역사 속의 유명한 영웅들과
그 영웅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비극을 맞이했던 인물들
이성계를 추모하고 기리는 사당 보다는 최영을 모시는곳이 훨씬 더 많다는 것과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오히려 더 추앙을 받으며 신으로 대접을 받는것
이런 것들을 종합해 분석해 보면
역사적 사회적 약자였던 민들의 애환과 한은
그런 준영웅들과 어떤 정신적 감응의 역학적인 관계가 있을법도 하네요.
또 그에따라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 이런거 참 좋네요.
전횡 하길래 전횡(專橫)을 일삼는다는 말이 얼핏 생각나서 찾아보니 한자가 전혀 다르네요 ㅎㅎㅎ
참 유성의 연구소는 오픈했나요?
내가 언제부터 외연도를 알았을까? 아마도 그건 강박사님의 소개로 알게되었을 겁니다.
내가 언제부터 외연도에 가고싶었을까? 아마도 그건 강박사님의 강의를 문득문득 듣고나서일 겁니다.
작은 섬 외연도에 대해 많은 역사, 민속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해주시는 강박사님! 감사합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다음강의가 기다려집니다.
언제한번 외연도에 우리 청솔회 친구들 모두다 함께 가면 너무너무 즐겁고 유익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한 인물들이 신격화된 경우가 많죠.
미리님이 지적한 최영 장군을 비롯, 서해의 어민들에게 조기의 신으로 신격화된 임경업 장군,
28세에 요절한 남이 장군 등이 대표적인 실존인물들입니다.
비극적인 삶이 민중들에게 해원의 필요성이 제기된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이 민중들의 여망에 부응했다는 사실일 겁니다.
미리님! 봉구님!
지난 가을에 풍랑으로 이루지 못한 외연도 답사를 떠날 날이 있겠지요.
함께 봉화산에 올라 점점이 펼쳐진 외연열도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마음껏 느껴보자구요.
참 연구소는 현재 진행중입니다. 함께 할 동지가 생길 듯합니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