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삼정골!
청수골과 범밭골, 남녁들과 뒷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은 들이고 앞산과
뒷산,안산이 높고 아름다워 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좋은 고장이라 생각했는데
내 자라 안목이 넓어지고 나서야 그저 산좋고 물맑은 심심 산골로서 도회지의
돈 많은 사람 별장지어 주말 보내기 좋은 시골이라는 걸 알았다.
정해년 유월 초아흐렛날 늦은 아침에 태어났다 하니 시계가 흔하지 않던 시골
이라 태어난 시간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어림잡아 오전8~9시 사이라 본다.
부친께서는 두동소학교(현 초등학교)제3회 졸업생으로 나의 선배도 되시며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시어 대화는 물론 혹자가 서간, 서책을 가지고 와서
번역을 요구하면 번역해 주는등 당시 농촌에서 보기 드문 지식인이었다.
가끔 농사일에 힘이 드실때면 외증조 할아버님을 많이 원망하셨는데 사유
인즉 외증조 할아버님의 반대로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하셨다는 것이다. 나의
진외가(陳外家)는 김해 김씨 가문으로 당시 우리 동네의 훈장으로서 신식
교육을 적극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유년시절인 6.25전쟁때는 부친께서 3반장을 하셨는데 총을 맨 군인들이 가끔씩
우리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들에게 건빵과 초코렛을 얻어 먹은
기억과 캄캄한 밤. 경주 안강전투의 치열한 포탄소리와 연발 총소리에 놀라
할머니 치마자락으로 숨어 들던 일. 남쪽으로 피난을 가자는 부친 말씀에 몸이
불편하신 할머님께서 “나는 이곳에서 죽을란다” 는 말씀이 생각난다.
소년시절!
학교 갔다 오기가 바쁘게 소를 몰고는 뒤뜰의 배추밭골과 갓골.
청수골의 분덕골과 모이동. 월새동의 진밭골, 장작터. 범밭의 불성골, 갓골,
감씨골. 새벽골의 못안골, 소멱골, 분통골, 물탕골, 황골백이.
남녁의 수리짓골. 앞산넘어 숯굴골 등에 고삐감아 올려놓고 함께간 형들이
시키는데로 어떤날은 뫼등에서 동무들과 씨름대회. 또 어떤 날은 살구받기대회,
달리기대회를. 그리고 또 어떤날은 한마디의 불평불만도 없이 가재나 장어,
물고기를 잡아 맛있게 구워 형에게 진상했는가 하면 이는 내가 자라 또래의
최고 형뻘이 됐었어도 전통으로 대물림이 됐었지.
노을지면 꼴 한짐지고 소몰아 집에 오면 보리밥에 애호박, 감자찌개등
어머님이 마련하신 저녁식사는 온 가족이 마주하는 만찬이 아니었던가?
저녁 식사 끝나고 모기가 앵앵거리면 낫들고 앞 개울가 여뀌풀(약국대)
섞인 잡초베어다 마당 가운데에 모깃불 피워놓고 옥수수나 양대 삶아 밤이
이슷하도록 별을 헤며 이야기 듣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오리가 넘는 학교길!
책가방이 없던때라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둘둘말아 허리에 메거나 어깨
에서 허리로 비껴 메는 것이 당시의 너와 나!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교량이 설치되지 않아 여름철 비가내려 청수골, 범밭골 물이 불어나면 바지
가랑이 거둬부치고 너,나 손잡고 세번씩이나 물을 건너야 했었고, 아무리
추운 겨울일지라도 작은산길 또는 큰산길을 내달아 학교에 도착하면 범잡아
먹는다는 범밭골의 강추위에도 땀이 났지 않았는가!
지금도 생생이 기억하는 초등학교 교가
1.동에는 태연한 치술령 솟-고
북으로 향기높은 신라 옛도읍
푸른산 맑은물을 울을 삼으며
우뚝선 보금자리 우리 두동교
2.장할시고 모교는 깊고 긴역사
선배들 닦아놓은 자취를 이어
무중에 숨은 진리 찾아보려고
굳세게 자라자 이 우리 두동교
일학년 대반시절, 오른손 불끈 쥐고 위 아래로 흔들며 목청껏 불렀던 노래!
「국어시간 되면 가야 배우고 산수시간 되면 하나둘 배요
이와 같이 우리들 일학년은요 처음부터 배워요 처음부터요」
오래전에 고인이 되신 우리학교의 국보급 정규환 선생님!
선생님 손잡고 반 동무들이 운동장 돌면서 불렀던 노래!
1. 아-가야 나오너라 냇가로 가자
앵두따다 실에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가자 냇가로 가자
2.시내물결 남실남실 어깨 춤추고
머리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며
달-밤에 소금쟁이 내 따라 돈다
4학년때 김응환 선생님께 하모니카, 퉁소 배워 내 즐겨 불렀던 노래!
< 앞날의 희망을 바라보며 기나긴 날 한결같이
손잡고 이끌며 같이 웃고 같이 놀던 동무들
언제나 그 마음 변치 말자
서로다 정한 맺은 명세 떠난들 잊어랴
동무들의 따-뜻한 사랑을>
1.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 중간 생략 -
2.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 중간 생략 -
3.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 - 중간 생략 -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졸업생이나 재학생이나 모두가 울먹이며 불렀던 졸업식 노래! 혜여지기
싫어 모두가 망설이던 그때의 모습 떠올리며 성인이 된 지금도 이 노래
부르면 눈시울에 이슬이 맻혀짐은 무슨 까닭일까?
또 하나 소풍 추억!
어머님께서 주신 계란 몇 개. 점방 주인과 과자랑 돌사탕이랑 교환하여
호주머니에 넣은 후 신라 충신 박제상의 충정서린 치술령, 부군의 비운
소식에 육신은 치술령의 망부석이 되고, 혼은 새가 되어 비조마을 지나
국수봉 암벽으로 숨어들었다는 박제상 부인 전설깃던 은을암으로
동무들 손잡고 발맞추어 노래 부르며 소풍갔던 추억…
지금은 신석기시대의 유물로 보존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국보제285호),
천전리 각석(국보제147호), 공룡 발자국. 나 중학교 재학시절 때까지만
해도 그냥 넓은 반석에 맑은물 흘러 학생들 소풍지로 도시락 먹으며 앉아
놀던 곳 아니었던가!
청소년 시절!
하모니카 불며 동네 한바퀴 돌고 나면 어느 샌가 이친구 저친구 모두 나와
가곡이며 유행가며 민요등으로 젊음을 노래했던 시절!
무더운 여름밤이면 관솔불로 남녁 청상딤에서 청수골 부엉딤까지 목욕겸
후리치기로 물고기 잡으며 즐겼고, 눈보라 몰아치고 부엉딤의 부엉이가
우는 겨울밤이면 친구들과 후레쉬로 초가지붕 처마끝의 참새 잡던 일!
형들과 함께한 영양보충(?)의 닭서리와 배서리, 수박서리!
결과는 ‘네 것 내가 먹고, 내 것 네가 먹은 꼴’이였지만…
오늘날에는 사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서리라는 말
5~60대 중늙은이들 잊지 못할 추억 아닌가?
겨울철 개최하는 노래자랑대회!
친구들과 어울러 우리 동내 참가자에게 일등 안주면 재미적다고 주체측에
공갈치던 일. 가끔씩 찾아오는 가설극장과 요술, 마술장에서 어둠을 틈타
아가씨들 골탕먹이등 일들!
말 타고 가마 타고 장가, 시집가는 잔칫날! 으례히 친구들 모여 바가지,
바케스 두둘기며 전(煎)과 탁주, 감주 단자해서 초당방에서 밤이
이슷하도록 먹고 마시며 즐겼던 일들!
또 하나 있지!
(선창) 어아호 어아호 어어야 어아호
(후창) 어 어 어아호야 어아 넘자 어아호
장정 20여명이 합심하여 상여 맬 때에는 불효자식 한겨울 얼음물속으로
내 몰았고, 돈 많다는 사위, 백관! 노자돈 옭아 낸다고 논두렁, 냇가마다
가던길 버텨 멈추섰고, 이 세상 마지막 가는 길 사자 우선이라며 다리위에서
버스와 다투어 물러서게 했던일! 그때 힘을 함께하셨던 분들! 대부분 북망
산천하여 있고 이생을 살고있는 분들도 검은머리 파뿌리 되어 있지 않은가?
1987년 5월8일 어버이날!
기념품과 떡, 음식 장만하여 마을회관으로 고향 어르신 초청 대접한 것을
시작으로 전주민 이주전까지 매년 5월 첫토요일엔 고향 모든 분과 출향자들이
소잡아 성대히 개최하던 어버이날 행사가 되었지 않았는가!
내 고향 삼정골!
우리 집안이 최초로 동네를 이루어 삼정승이 나는 등 부귀영화 누리면서
대대로 잘 살았지만 뜨내기 지관 말듣고 안산마루 명당 선조묘 이장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일가친척 뿔뿔이 헤여졌다지만 그래도 우리집만은 내고향
삼정을 지켜오지 않았는가?
고향이 이북인 월남가족은 그래도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만은 있다지만 대곡댐으로 수몰된 내 고향 그나마도 없구나?
100가호가 넘던 마을! 흔적없이 사라지고 기름진 논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며,
어릴적 멱감던 청수골, 눈부시게 맑은 모래, 자갈 위를 나르던 노고지리는 전부
어디로 가고 무심하게 갈대만 자랐는가?
상전벽해가 된 앞산과 안산을 잇은 다리위에서 저기쯤 기와이은 우리집이
있었겠고 저기는 ○○씨의 논, 밭이었겠다고 이야기 할 날만 남았구나!
고향수몰로 인해 보상금을 많이 받은 분이나 일푼 땡전도 받지 못한 분
모두가 섭섭함은 마찬가지겠지만 나처럼 향수를 더 많이 느끼는 연령층은
고향산천에 계시는 선조들과 상봉할 날이 가까워지기 때문일까?
세월이 흐르면 고향은 잊어버릴 수가 있겠지? 그러나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향수병은 어떻게 하랴! 이 병을 치료해 줄 명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대곡댐아 너는 아는냐! 정말 답답하구나.!
내 두고 두고 언제까지나 너만 원망하리라!
첫댓글 고향 생각이 많이 많이 나시지? 우리 삼정 사람 들은 모두가 똑 같은 마음 일 꺼에요.많이많이 슬퍼집니다.눈물이 핑~~~~~~~~~~~~~~~~~~~~~~~~~~~~~~~~~
고 향 무 정 ........ㅠㅠㅠㅠㅠ
내 두고 두고 언제까지나 너만 원망하리라! 삼수님의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음 충분이 이해합니다.
선배님 남기신 글을 보니 제 마음이 찡 하네요.........
선배님 글 읽고 저도 어릴적생각이 쌔록쌔록나며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숙연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