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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
북한군은 8월 공세에서 5개사단을 대구를 목표로 집중투입하였으며, 그 중 전차로 증강된 보병3개 사단이 상주-다부동-대구축선에 전개되었다.
한국군 제1사단은 낙정리-청계동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 하다가 1950. 8. 12 대구 방어의 요충지인 다부동, 328번지, 유학산, 741고지를 연하는 선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이곳에서 한국군 제1사단 장병과, 학도병, 경찰, 노무자들은 구국 일념으로 혈전을 반복한끝에 8월 17일까지 사단 단독으로 주 저항선을 사수하다가 한국군 제 10연대와 미 제 23,
27연대를 증원받아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하여 전황을 호전시킨 뒤 미국 제1 기병사단에 이 지역을 인계하였으나 적의 9월 공세때 미군은 도덕산 180 및 174고지를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으며 1950년 9월 16일 총 반격 명령이 내리자 한국군 제1사단은 효령(중구동)방향 으로 우회 기동하여 북한군을 배후에서 포위 ·섬멸하여 다부동 일대를 회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
대구 북방 22km,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5번 및 25번 도로가 합쳐지고 왜관에 이르는 지방도로 (997번 도로)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마을을 중심으로 좌측(북서쪽)에는 유학산(遊鶴山 : 839m)이 북방을 향하여 횡격실(橫隔室)을 이루고, 그 우측(동쪽)에는 해발 902m의 가산(架山)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며 지형상 이 방어선이 돌파되면 10km 남쪽의 도
덕산 일대까지 철수가 불가피 하여 대구가 적 지상 포화의 사정권내에 들어가므로 다부동일대는 대구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투의 요충지이다.
국군 제1사단은 이러한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여 다부동 일대에 설정된 주 저항선에서 대구를 목표로 공격해 오는 북한군을 격멸함으로서 이른바 생사기로(生死岐路)에 직면한 전황을극복했던 것이다
다부동 전투 전개
* 55일간 쉼없이 전투······. 2만 7천여명 사상
『백척간두』조국 운명 구해
1950년 8월 5일 낙동강을 도하한 북한군은 주력인 제13사단, 3사단, 1사단, 15사단등 군단 병력(2만 1천여명)을 다부동 일대에 투입해 호시탐탐 대구 점령을 노렸고 백선엽 장군의 국군 제1사단과 미 제 27연대가 적 절반에도 못 미치는 8천 2백여명의 병력으로 맞섰다.8월 18일 북한군 제 15사단과 3사단은 유학산으로 제 13사단은 중앙계곡인 다부동쪽으로 동시에 공격해 요충지인 유학산이 적에게 점령되는 등 위기를 맞았으나 백선엽장군이 만일 "사단장이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쏘고 너희들이 명령없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며 병사들을 독려하여 역습을 감행한지 30분만에 목표고지 유학산을 재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8월 13일부터 12일간 정상 주인이 15번이나 바뀌는 328고지 (칠곡, 석적, 포남리) 전투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던 837고지 (칠곡, 가산, 학산리)탈환전 등 55일간 전투가 계속된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 중에서 최대의 격전이었으며 이 전투에서 적 1만 7천5백 여명의 사상자를 내었고 아군은 1만 여명의 희생을 가져왔다.
다부동 전투는 경북 안강 전투와 함께 대구를 사수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오늘에까지 있게 한 혈투에 혈투를 거듭한 대 전투였으며, 9월 16일 개시된 반격작전의 일환으로 다부동 북서쪽 11km지점의 천생산을 탈환한 후 잔적을 소탕한 9월 24일에야 종결되었으며 그 어느 전투보다 치열했고 참혹했던 격전이었다
이 전투의 경과 상황을 분석해 보면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1단계 : 주 저항선(303고지 - 328고지 - 숲데미산 - 유학산 - 714고지)까지의 지연전
(1950.8.1~8.12)
국군 제 1사단 12연대는 낙정리 일대에서 적 2개 대대를 저지하고 다부동 전투의 첫 교전을
승리로 장식
동 11연대는 해평에 주둔
동 15연대는 3차에 걸친 적 도하공격을 저지하였으나 실패하여 369고지를 피탈당하고 12연
대가 투입되어 369고지를 탈환
2단계 : 주 저항선의 공방전 (8.13~30)
국군 제1사단은 주저항선에 3개 연대를 배치하고 백병전으로 북한군을 저지하였으며 북한군
은 837고지-647고지-진목정까지 진출하여 다부동을 위협함으로서 주 저항선 돌파위기
미 8군, B29기로 융단폭격(960톤)
3,4단계 : 낙동강 방어선 붕괴와 반격 (8.31~9.24)
미군 제1기병사단은 174고지-180고지-도덕산을 방어하던 중 대구 북쪽 12km지점의 315고
지가 북한군 1개 대대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미 제7기병연대가 이 고지를 탈환하여 피탈작
전의 대구위기를 극복
9월 16일 한국군과 유엔군도 전 전선에서 총반격을 개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미
제1기병사단의 왜관 가산산성으로의 진격이 지연
한국군 제1사단이 중구동으로 우회 기동하여 적을 배후에서 포위, 분산하고 그 여세로 천생산과 군의를 탈환 함으로써 다부동 일대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였으며 북진의 계기를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