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업체인 ‘브라운 옵티머(Millward Brown Optimer)’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패션 브랜드 Top10’을 선정하여 ‘포브스誌’에 발표했다.
여기에서는 그 중 Top5를 집중해서 조명해보기로 한다.
- 루이 뷔통
(Louis Vuitton)
브랜드 가치 : 25.74조 달러 취급 품목 : 가방, 의류, 쥬얼리, 신발, 선글라스, 시계, 필기구 등
LVMH 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본사는 프랑스의 파리에 있다. 1837년 16세의 나이에 트렁크 회사 견습공으로 일하기 시작한 루이 뷔통(Louis Vuitton)은 1854년에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파리에 매장을 열어 직접 제조한 여행용 가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867년에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해서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1885년에는 런던에 매장을 열었다. 1892년에 처음으로 핸드백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창립자 루이 뷔통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조르주 뷔통이 이어받았다. 1896년에는 자사제품의 모조품 방지를 위해서 '모노그램 캔버스(Monogram Canvas)'를 디자인했는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루이뷔통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모조품이 많은 브랜드이다. 1987년에 샴페인과 브랜디 제조업체인 '모엣 헤네시(Moet Hennessy)'와 합병하여 'LVMH 그룹'을 설립했으며, 현재 루이 뷔통 그룹은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겐조', '벨루티', '겔랑' 등의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2009년 현재 미국, 영국, 한국, 일본, 대만,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인도, 네덜란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집트, 모로코, 러시아 등 세계 14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에르메스(Hermes)
브랜드 가치 : 9.63조 달러 취급 품목 : 가죽, 기성복, 스카프, 넥타이, 시계, 향수 등 14개 분야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y Hermès)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귀족들에게 납품하기 위한 마구(馬具)작업장으로 출발하였다. 전통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새로운 제품들을 제작하고 있으며, 제품의 높은 완성도와 비싼 가격으로 유명하다.
1855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여 기사작위를 수여 받았고, 1880년 에르메스의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파리근처로 매장을 옮기면서 유럽 북아프리카, 러시아, 아시아와 아메리카 시장으로 확대되었다.
한때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김옥윤 여사 및 이영애의 핸드백
| 1900년에 말 타는 사람들이 안장을 옮길 수 있도록 디자인된 haut à courroies백을 출시했고, 이후 손자들이 경영하게 됨에 따라 회사명칭을 에르메스 프레레스(Hermès Frères)로 변경하였다. 특히 에밀 모리스(Émile-Maurice)는 러시아 황제의 안장을 납품하였고, 1914년까지 무려 80명의 안장 기술자들을 고용하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가죽제품과 의복에 사용되는 지퍼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획득하면서 프랑스에 최초로 그 기술을 소개하였고, 이에 따라, 1920년대 가죽의복과 지퍼가 있는 골프 자켓을 출시하였다.
1922년 최초의 가죽 핸드백을 출시한 후 다양한 색상, 크기 및 스타일의 핸드백이 나왔고, 1929년에는 최초의 여성복을 파리에서 선보였다. 1935년 훗날 “켈리백(Kelly Bag)”이라 불린 Sac à dépêches 제품을 생산하였고, 1937년 프랑스 리용에 스카프 제작공장이 건립되면서 에르메스 스카프가 출시되었다. 1946년에는 실크넥타이를 런칭하였고, 1949년에 향수제품을 내놓았다. 1951년 에밀 모리스 사후 로버트 뒤마 에르메스(Robert Dumas-Hermès)가 이어받았고, 말 마차와 귀족이 새겨진 로고를 취득했다.
1970년대 유럽전역, 미국과 일본으로 진출하였으나, 다른 경쟁기업의 성장과 함께 성장이 주춤했는데, 에르메스는 다른 기업에 비해 천연소재만을 고수하면서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후1978년 장-루이 뒤마-에르메스(Jean-Louis Dumas-Hermès)가 경영하면서 실크, 가죽, 기성복 분야에서 혁신을 꾀하고,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하였다.
이로 인해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되면서 1980년대 제2의 성장기를 맞았고, 1990년대에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구찌(Gucci)
브랜드 가치 : 9.34조 달러 취급 품목 : 가방, 선글라스 등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패션 및 가죽제품 브랜드인 구찌는 1921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본사는 플로렌스에 있다. 1938년 크게 성장하여, 로마에 부티크를 오픈하였고, 1947년에는 오늘날까지 구찌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은 대나무 핸드백(bamboo handle handbag)을 출시했다. 1950년대는 안장 끈에서 영감을 얻은 상표 그린-레드-그린 웹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마크가 되었다.
1953년 구찌오의 사망 이후 그의 아들 알도(Aldo), 바스코(Vasco), 우고(Ugo), 로돌포(Rodolfo)가 기업을 승계하였고, 런던, 파리, 뉴욕에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홍콩, 도쿄, 한국 등 극동아시아로 사업을 확대하였으며,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이니셜인 더블G로고를 선보였다. 또한, 헐리우드 배우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를 위해 만들어진 플로라 실크 스카프를 비롯해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의 ‘Jackie O 숄더백’을 출시하였다.
197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확장해나가며 우수한 품질과 장인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품질의 새 자재와 혁신적인 접근법에 대해 연구를 하며 생산 향상 및 다각화를 추진하였으며, 1979년 알도는 구찌 엑세러리 컬렉션(GAC, Gucci Accessories Collection)을 발전시켰다. 1982년에 주식회사로 상장되었고, 1990년대에는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바탕으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1994년에 톰포드(Tom Ford)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면서 모험과 도발적인 감각을 불어넣었다. 1995년 도메니코 드 솔로(Domenico de Solo)가 CEO로 선출되면서 100% 상장을 통해 완전한 주식회사가 되었고, 유럽비즈니스언론연합(European Business Press Federation)으로부터 경제 및 재무성과, 전략적 비전 및 관리 품질 부문의 ‘ 1998년 유럽기업’으로 선정되었다. 2000년 삐노-쁘랭땅-레두뜨(PPR, Pinault-Printemps-Redoute)그룹과 제휴를 맺고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되었다.
까르띠에 (Cartier)
브랜드 가치 : 9.29조 달러 취급 품목 : 쥬얼리, 시계, 잡화 등
네덜란드의 루이 프랑스와 까르띠에(Louis Francois Cartier, 1819∼1904)가 1847년 프랑스 파리의 몽토르고이(Montorgueil)에 세운 보석판매회사이자 브랜드명이다. 처음에는 보석류만 취급하였으나 점차 사업 영역을 늘려 시계·향수는 물론 필기구와 라이터·가죽제품·식기류·안경·스카프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한다. 이중에서도 펭링과 탱크·팡테르 등 보석 브랜드는 특히 유명하며, 판타무늬와 3골드의 트리니티링은 불멸의 디자인으로 칭송되고 있다. 트리니티링은 루이(Louis)가 1924년 친구이자 시인인 장 콕토(Jean Cocteau)를 위해 만든 반지로, 화이트골드·옐로골드·핑크골드 등 세 가지 색상의 링이 서로 얽힌 형태를 이루는데, 이는 사랑과 우정·충성을 상징하는데, 이후 명브랜드가 되었다.
창업자와 알프레드(Alfred), 루이로 이어지는 삼대기업으로, 1902년에 런던과 뉴욕에 지사를 설치하며 국제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고, 영국과 모나코 왕실 등 여러 나라 왕실을 고객으로 유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8년 모그룹인 방돔(Vendome)이 리치몬트(Richemont)그룹에 인수합병되면서 함께 인수되었고, 전세계에 180개 직영매장과 1만 2000개의 점포를 지녀 세계 최정상의 디자인·제조업체로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84년 그랜드하얏트서울에 매장을 내며 진출하였으며, 1997년에는 현지법인 까르띠에코리아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고, 현재는 리치몬트그룹코리아에서 운영 중이다.
‘까르띠에’로 치장한 미셸 오바마
샤넬(Chanel)
브랜드 가치 : 8,67조 달러 취급 품목 : 의류, 향수, 액세서리, 선글라스, 핸드백 등
프랑스의 소뮈르에서 1883년 출생한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 ‘코코 샤넬’은 별명이다.)은 1910년 파리의 캉봉거리(Rue Cambon)에 '샤넬모드(Chanel Modes)'란 여성용 모자 가게를 열었는데, 그녀의 모자가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들에 의해 명성을 얻게 되자 1913년에 프랑스의 도빌(Deauville)에 새 부티크를 열고 저지 소재를 이용한 여성 스포츠웨어를 출시했는데, 활동적이고 입기 편한 저지옷은 코르셋과 페티코트에 얽매어 있던 여성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1915년에는 비아리츠(Biarritz)에 그녀의 첫 번째 쿠튀르 하우스(Couture House)를 열었고, 1921년에 어네스트 보(Ernest Beaux)가 개발한 향수 '넘버 파이브(No.5)'를 출시하여 상류사회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어네스트는 후에 'No.22' '키르 드 뤼시(Cuir de Russie)' '가르데니아(Gardenia)' '부아 데 지르(Bois des lsles)' 등의 향수도 만들었다. 1924년에는 피에르 베르트하이머(Pierre Wertheimer)와 함께 향수와 뷰티 라인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 '라소시에트 데 파르풍 샤넬(La Societe des Parfums Chanel)'을 설립했다. 1926년에는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이 자자한 야회복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에 스코틀랜드의 의상에서 영감을 얻은 클래식 트위드(classic tweed)를 발표했다.
샤넬은 1939년에 쿠튀르 하우스의 문을 닫고 은퇴했으나 그녀의 향수와 액세서리는 샤넬 부티크에서 계속 팔았다. 1954년에 71세의 나이로 패션계에 복귀한 그녀는 컬렉션을 통해 발표한 트위드 투피스로 재기에 성공했다. 1955년에는 '2.55'란 이름의 퀼트 백을 출시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같은 해에 첫 번째 남성 향수 '오 드 투알레트(eau de toilette)'를 출시했다.
샤넬은 1971년에 사망했으나 그녀의 사후인 1978년에 기성복 프레타포르테(Pret-a-porter)라인과 액세서리가 출시되는 등 그녀의 이름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1983년에는 독일의 유명 디자이너인 카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올랐다. 그는 대담, 완벽, 독특, 정열, 환상의 5가지 원칙을 세우고 샤넬의 변화를 시도했다. 1987년에는 샤넬의 첫 번째 시계가, 1999년에는 첫 번째 스킨케어 라인인 '프레시지옹(PRECISION)'이 출시되었다. 원래 샤넬의 정식 명칭은 ‘하우스 오브 샤넬(The House of Chanel)’이며 본사는 프랑스 파리의 방돔광장(Place Vendome)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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