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여성의 역할은 현모양처가 가장 으뜸이었으며, 장래 희망란에 현모양처라고 쓰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은 적당한 시기가 되면 결혼적령기란 문구가 붙고 당연히 결혼이라는 걸 해야했다.
그러나 요즘 결혼에 대한 시각은 예전과 다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며 꼭 해야되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가능하면 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시대다. 이는 다시 말해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며 여성의 역할이 가정에서 사회로 확대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세계 각국 정상들의 방한 때는 대통령의 전문통역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주불 한국대사관에서 주재국 정세와 그에 대한 반응, 경제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해 정부의 정책결정과 대처방안에 일조하는 여성 외교관이 있다.
외교관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프로의 정신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녀. 바로 주불 한국대사관의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로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외무부 소속 류복렬 서기관이다.
긴 독신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3살 된 딸아이의 엄마로 든든한 남편의 외조(?)에 힘입어 오늘도 당당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뛰고 있는 그녀에게 가정과 일 두 가지 모두를 성공적으로 지켜갈 수 있는 비결을 들어보았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신 걸로 아는데.
= 1985년에서 92년까지 프랑스에서 유학했습니다.
불문학이 제 전공이었고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에서 7년동안 공부하면서 석.박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6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나름대로 천직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했고, 그 기간동안 여러 가지 논문 발표와 번역서 출간도 했습니다.
▶외교관의 길을 선택한 동기가 있으시다면.
= 막연한 희망직종이었는데 잠재의식 속에는 그 길로 가야된다는 예시가 있었던 듯 해요.
물이 흐르듯 운명처럼 정해진 길을 오게 된 것 같기도 하구요. IMF 이후에 채용제도가 없어졌지만 97년 당시 외교부에서 국제 관계 전문가를 채용하는 제도가 있어서 각 지역별 지역 연구가로 10명이 공개채용 되었습니다.
당시 불어권은 저와 다른 남자분 한 분이 채용되었습니다.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현재 그분은 아프리카 지역으로 발령 받아 업무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저와 동기생인 다른 8명도 1년 안에 언어권 별로 발령이 나서 한국을 떠난 상태였지만 본부에 불어전공자가 없는 관계로 저는 3년 동안 남아서 세계정상회담이나 그 외에 유럽 국빈들 방한시 대통령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장재룡대사님의 프랑스 발령에 맞추어 저의 희망지인 프랑스로 발령이 났습니다.
저의 20대를 보낸 곳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프랑스에 대한 애착이 많은 저로서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외교관의 역할은 무엇이며, 그에 따른 어려움은.
= 외무부 정무과 소속으로 외교의 기본 바탕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주재국 정세와 크고 작은 사건들을 파악해서 분석하는 일입니다. 크게는 세계정세의 흐름에 주재국의 태도와 반응을 파악해서 본부에 보고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프간 사태에 대해 프랑스정부의 첫 번째 포지션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지원책과 협력체제는 어떠한지 등등.
또한 대선과 총선을 앞둔 프랑스정부의 주 안건은 무엇이며 그에 따른 각료들과 시민들의 반응 등. 초급을 다투는 정보를 수집해서 본부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국에서는 각 대표국의 상황을 총 집계해서 정부의 정책 결정에 반영시켜 그에 대한 국가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거기에 따른 대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사님을 보좌해서 크고 작은 외교관련회의를 참석하거나 그에 따르는 문제와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 등, 여러 가지가 많습니다.
어려운 일이라면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입니다.
지난번 미국의 테러 사건 같은 경우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상황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르죠. 그 당시 대사님과 공식오찬이 끝나고 관저로 들어오면서 바로 접한 소식이었는데 사건 발생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프랑스 대통령의 성명이 있었고 각국 대표들의 입장이 발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내용들을 파악하고 분석, 본부로 연락을 취한 뒤늦은 시간에야 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 외교관의 신분이 주는 부담감은 없으신지.
= 공직자로서 언행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저 자신의 행동이 여성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죠.
남성위주의 사회집단구조가 팽배한 우리 나라의 공직생활은 性이 다른 한사람으로 항상 누군가의 주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외교관이란 신분에서 저 자신 스스로가 느끼는 특정한 소외감 때문일 수 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당당하게 저의 역할을 해나가므로 시간이 지난 후 평가되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여성 외교관은 몇 명 정도 되는지.
= 여성 외교관은 60-7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지금 막 시작하신 분들이고, 매년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여성외교관의 활동의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여성외교관으로는 김경임국장을 선두로, 뉴욕의 강경화 공사참사, 독일의 김영희 공사참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분들 모두 세계정상 회담시 영어권과 불어권 통역을 담당하셨던 분들이십니다.
특히 정상회담시 통역은 여성들이 담당할 경우가 많습니다. 회의 진행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과 언어구사력이나 어휘선택에 있어 여성들의 섬세함이 작용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죠.
▶전공과 다른 분야여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 그렇죠. 물론 제가 정치학이나 외교관련을 전공한 경우는 아니므로 그 분야로 깊이 들어가면 부딪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곳에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공부를 하고 생활을 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정치외교 업무를 직접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조금씩 그 영역을 넓히며 전문적인 정치 외교 관련 수업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 좀더 자신 있고 깊이 있는 업무 수행이 이루어지리라 생각되니까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비 전공자라서 어려움을 겪거나 업무 파악이 불가능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외교관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느 분야에서.
= 아마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문화 관련 사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번역, 출판, 문화 전시 등, 저와 뜻이 맞는 몇몇 사람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근무 외의 시간에는 쉬지 않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번역작업이죠. 고등학교 때부터 내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불어를 제 스스로가 좋아서 전공으로 택하고, 대학을 마치고 프랑스로 와서 20대를 '앙드레 말로'에 심취해서 보낸 것처럼 불문학은 제게 많은 매력을 느끼게 했습니다.
번역작업은 저만의 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약간은 경직된 공직생활에 많은 활력소를 주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제 마음의 중심이 되어 저를 바로 잡아 주기도 하죠.
외무부에 근무하면서 번역서를 3권이나 출간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왜 그렇게 힘든 작업을 계속하는지 의문을 갖기도 하겠지만 저를 늘 지켜보는 남편은 불문학에 대한 저의 애착을 이해 해 준답니다.
▶유창한 불어 실력,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다면.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 그리고 프랑스에서 유학하시는 모든 분들에 대해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어가 유창하다는 말보다는 불어를 조금 이해했다는 말이 더 나을 듯 하군요.
불어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라면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불어는 아주 미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문화를 모르고는 그 언어가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도록 되어있는 것 같아요.
먼저 프랑스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에 스며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갖고 배우는 불어는 한계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와 문학 그리고 그들의 풍습을 익히고 그들과 섞일 수 있어야만 자연스러운 불어가 나온다고 생각됩니다.
본인의 전공이 아닐지라도 문학에 대한 관심과 예술에 대한 관심,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겪는 갈등은 없으셨는지.
= 늦게 결혼을 했답니다. 만약에 제가 지금 까지 독신으로 있다면 일에 대한 강도가 지금 보다 더 클 수 도 있겠지만 결혼이 주는 또 다른 안정감과 사회적인 시각으로 볼 때 결혼은 가능하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갈등과는 다른 성격의 조금은 가슴아픈 기억들은 있었어요. 가끔씩 집안의 중요한 행사가 있는데, 공식적인 출장 일정이 겹쳐 집안 행사를 뒤로 미루어야 할 때, 지난 번 딸아이의 돌이었는데 출장을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돌을 뒤로 미루어서 했어요. 외교관의 업무가 시간을 정해 둔 것이 아니라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보니 퇴근이 늦을 때도 많고 갑자기 사건이 발생되면 시간과 상관없이 다시 업무에 복귀해야 하니까요.
다행히도 저의 남편은 다시 생각해도 결혼은 잘 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게 협조적인 든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과 가정사이에서의 갈등은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유학생활의 선배로서 현재 유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 개인의 자유와 의견이 생활의 중심인 나라 프랑스는 유난히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이 유학오신 걸로 압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자만과 독선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적응 속도나 활동 영역도 미국에서 유학을 하신 분들과 비교가 되어질 정도로 좁은 것 같아요.
또한 여성유학생의 비율이 강한 프랑스는 어쩌면 여성들의 파워형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선 미국중심의 파워형성이 매우 강합니다.
그건 유학이후에도 서로간의 정보공유와 유대관계가 친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개성 강한 프랑스 출신의 유학생이나 재외동포들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절충해서 프랑스 출신의 각료도 탄생되고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책임감과 사명감을 잊지 않고, 한국 여성들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여성외교관으로서 누가 봐도 손색이 없는 올바르고 전문적인 공직자의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한 가정의 주부로서의 가정생활을 잘 엮어갈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할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 할 때면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빨리 포기해야하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아빠 옆으로 얼른 가서 "엄마 안녕" 이라고 말하는 우리 딸에게 미안하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인데 엄마보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저의 남편에게 마음으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11월30일 저희의 네 번째 결혼 기념일 저녁은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욕심일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