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 도해 (芙蓉道楷:1042∼1118, 조동종 投子義淸의 법을 이음)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 다. “내 이렇다 하게 수행한 바가 없는데 과분하게도 산문을 주관하게 되었으니, 이제 옛분들 이 주지하시던 법도를 비슷하게나마 본받아 보답하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일을 여러분과 의논해서 결정하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신도들이 베푸는 공양에 가지 않을 것으며, 화주 (化主) 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절에서 1년 동안 수확하여 거둔 것을 360등분하여 하루에 하루 분만을 사용할 것이며, 사람 수에 따라 늘이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 밥을 먹을 만하면 밥을 짓고, 밥을 짓기에 부족하면 죽을 쑤고, 죽을 쑤기도 부족하면 마음을 끓일 것이다. 새로 오 는 사람과 상견례를 할 때에도 차 끓이는 것으로 족하다. 다른 일은 애써 줄이고 오직 도를 결판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일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은 여러분 중에 나이 많은 이를 존중해서 다시 의논하도록 할 것이며, 이것 역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이여, 옛사람의 게송을 들어보았는가."
거친 산전 (山田) 의 좁쌀밥과 채소 시래기 반찬을 먹겠다면 나도 따라 먹겠으나 안 먹겠다면 마음대로 하여라. 山田脫粟飯 野菜淡黃 喫則從君喫 不喫任東西 「어록(語錄)」
24. 부뚜막 앞에서 선정에 들다 / 지자 의 (知者 ) 선사
지자 의 (知者 )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예전에 큰스님 한 분이 주지살이를 하면서 공양주에게 늘 죽을 쑤게 하였다. 하루는 그 공양주가 생각생각에 다 타들어 가는 장작불을 보면서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이 이보다 더 빠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부뚜막 앞에서 고요히 선정 (禪定) 에 들었다. 며칠 만에 일어나 그 절 상좌에게 가서 깨친 경계를 자세히 이야기하였는데, 법을 말하는 것이 자못 깊었다. 그러자 상좌는 ‘그대가 이제까지 말한 것은 나도 아는 경계지만 지금 말한 것은 내 모르니 더는 말하지 말라'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숙명통 (宿命通) 을 얻었는가?' ‘조금은 압니다.' ‘무슨 죄로 천한 몸을 받고 무슨 복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는가?' ‘저는 전생에 이 산의 주지였는데, 손님이 오는 바람에 모자라는 대중의 나물 반찬을 축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견책을 당해 지금 대중의 부림을 받게 되었으나 전생에 닦던 바 를 잊지 않았기에 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국청백록 (國淸百錄)」
25. 비구라는 말의 뜻/ 대지 (大智) 율사
대지 (大智) 율사가 지은 「비구정명 (比丘正名) "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범어로는 필추 (ц:比丘) 며 중국어로는 걸사 (乞君) 니 안으로는 법을 빌어 성품을 돕고 밖으로는 밥을 빌어 몸을 돕는다. 부모는 사람 중에 가장 가까이 할 사람이나 가장 먼저 그 인연을 끊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만 모조리 깎아 없앤다. 칠 보가 창고에 넘치는 부도 초개같이 버리고 일품 (一品) 벼슬에 달하는 명예도 구름이나 연 기만도 못하게 보면서 무상 (無常) 함에 진저리를 내어 모든 현상 〔有〕 의 근본을 깊이 캔다. 뜻을 높이고자 하면 반드시 몸을 낮추어야 하니 잡고 있는 주장자는 마른 찔레나무요 들고 있는 발우는 깨진 그릇과 다를 바 없다. 어깨에 걸친 회색 옷은 다 떨어진 누더기며 팔꿈치 에 둘러 멘 걸망은 영락없는 푸대자루다. 청정한 생활은 이미 팔정도 (八正道) 에 맞고 검약 한 처신은 사의행 (四依行) 에 맞으니 구주사해 (九州四海) 가 모두 내가 가는 길이며, 나무 밑 무덤 사이 모두 내가 쉬는 곳이다. 삼승 (三乘) 의 좋은 수레를 타고 부처님이 남기신 자취를 밟으며 거룩한 가르침을 어김없 이 받아 가지니 진정한 불제자다. 세상 인연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으니 실로 대장부다. 마군 과 싸워 이기고 번뇌 그물을 열어 제쳐 만금의 훌륭한 공양도 받을 만하며 사생 (四生) 의 복밭이 되는 것도 헛된 것이 아니니 걸사라는 뜻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지원집 (芝園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