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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좀 길어질 듯해서 '자유간접화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잇는 글을 올립니다.
자유 화법
여기서 ‘자유 간접 화법’이라는 용어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허구적 서사물에서 화법의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맥헤일(Brian Mchale)의 분류를 예로 들자면, 하나의 사실만 설명하는 ‘설명적 요약’, 하나의 사실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내용의 재현을 담는 ‘완전치 못한 설명적 요약’, 남의 이야기를 내용만 간추린 ‘간접 내용 간추림’, 남의 이야기를 전하되 현장성을 많이 살려서 전하는 ‘모방성 간접 화법’, ‘자유 간접 화법’, 남의 말을 직접 전달하는 ‘직접 화법’, 말하는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자유 직접 화법’ 등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용법에서 보자면 화법은 크게 직접 화법과 간접 화법으로 나눌 수 있다. 영어에서는 여기에 자유 간접 화법이라는 기능적 화법이 추가되었다. 영어의 경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직접 화법 He said, "I live in Seoul now"
간접 화법 He said that he lived in Seoul then
자유 간접 화법 He lived in Seoul now1)
자유 간접 화법을 중심에 두고 위 비교를 정리해 보면, 첫재, 말하다(said)라는 보고 동사가 없고, 둘째, 주어와 서술어는 간접 화법을 따르고, 셋째, 시공간을 나타내는 부사어는 직접 화법을 따른다. 보고동사가 없으면 인물의 말을 서술자가 인용한다는 흔적을 없애게 된다. 인물의 증언이 없어도 서술자는 권위있게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는 인물의 입장을 살리므로 사건은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서술자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시공간을 직접 화법과 같은 차원에 두므로 현장성을 강화한다. 피서술자(독자)와의 교감도 강화된다. 이 때문에 비문법적 현상이 발생한다. 자유 간접 화법에서는 말하는 주체의 말 습관, 사투리, 호칭 등도 직접 화법에서 쓰이는 그대로 쓰일 수 있다. 간접 화법은 그럴 수 없고 서술자의 어투에 따른다.
자유 간접 화법에서 비문법적 자질이 발생함에도 소통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 현상을 일찍 분석한 함부르거(Kate Hamburger)는 간접적 담화도 아니고 직접적 담화도 아니므로 서술자의 말도 인물의 말도 아니라 하였다.2) 함부르거와 앞에서 언급한 스탄젤을 비롯한 독일어권의 학자들은 이 현상이 규범적인 언어 현상을 뛰어 넘는 것이므로 허구적 서사물에 나타나는 한 특징으로 보았다. 그래서 문체의 현상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도 서술자의 언술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유 간접 화법이나 자유 간접 문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직접 화법이나 직접 인용, 간접 화법이나 간접 인용이란 용어로 두 화법을 인정하는데 자유 간접 화법에 대한 명칭은 아직 굳어지지 못한 듯하다. 어떤 학자는 ‘제 3의 화법’이란 명칭을 쓰기도 하였다. 영어의 자유 간접 화법이 우리 언어에서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어서, 즉 우리의 어법, 혹은 화법은 영어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위의 예를 우리 말로 옮겨 보자.
직접 화법 “ (난) 시방 서울에 살고 있당께”(라고) 길동이가 외쳤다.
간접 화법 길동이가 외치기를 그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유 화법 시방 길동이는 서울에 살고 있었당께.
우리 말에서는 제 3의 화법(자유간접화법)이 매우 어색함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말에서는 시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서 영어식의 시제를 이용한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인용에서 보듯이 우리는 시 공간을 나타내는 부사가 아무리 허구적 서사물이라도 자유스럽게 과거의 의미와 섞여 쓰일 수가 없다. 단 특별한 서술어와 결합할 때는 문법적 틀을 깨면서 새로운 화법이 생긴다.
직접 화법 “난 빌어먹을 석유 냄새가 죽기보다 싫어”, 얼굴을 찌푸리며 명자가 말했다.
간접 화법 명자는 석유 냄새가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자유 화법 명자는 빌어먹을 석유 냄새가 죽기보다 싫었다.
직접 화법에서는 따옴표 다음에 ‘하고(라고)’등의 제한하는 성분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간접 화법에서는 ‘---는’, ‘---(라)고’등이 꼭 있어야 한다. 간혹 ‘명자는 석유 냄새가 죽기보다 싫다 했다’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때는 특별한 목적으로 생략했다고 보아야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직접 화법과 간접 화법에는 문법적인 과오가 없다. 그러나 제 3의 화법은 비문법적이다. ‘싫다, 좋다’ 등은 ‘나’라는 주어의 서술어로만 쓰일 수 있다. 이 말을 하는 화자는 명자라는 타인이 어떻게 싫은지 좋은지 알 수 있는가? 이 경우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전지적 화자라는 관습이 통용되는 허구적 서사물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화법을 굳이 사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화법은 긴장감을 더 고조시키거나, 현장감을 더 생생하게 하거나, 서술자의 신념과 사건과의 갈등을 드러내거나 하는 등등의 부가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체로 인물이나 서술자의 의식 세계를 그리려 할 때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대화와 관련된다기 보다는 서술자의 서술 상황 안에서 논의해야 할 성질이다.
우리 말은 시제의 제약이 적어서 위 예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명자는 석유 냄새가 싫다’, ‘명자는 석유 냄새가 싫을 것이다’, ‘명자는 석유 냄새가 싫음이 틀림없다’ 등. 그것은 서술자의 위치나 감각이나 의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싫었다’가 단순한 사실이라면, ‘싫다’는 단정이나 일반화, 혹은 특수한 감정적 상태, ‘싫을 것이다’는 추측을 담을 수 있다. 서술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서술자는 이야기의 성격과 상황에 맞추어 서술할 것이다. 영어보다 자유로운 우리 말의 변용 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자유 화법을 하나의 범주로 설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 말에서는 단지 인물의 말을 서술자가 변화시키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이 화법이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그래서 영어의 자유 간접 화법과 자유 직접 화법이 우리 말에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잠정적으로 자유 화법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 장에서는 서술자의 대화투 서술과 관련하여 이 문제의 논의를 한정하려고 한다. 우리 소설을 예로 들어 보자.
① 술 취한 P를 혼자 남겨둔 H와 M은 골목에 기다리고 서서 있었다. P가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우선 농을 건넨다.
“한 턱 하오.”
“장가 간 턱 하게.”
P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서서 생각을 하였다.
다분히 가면 밑에서 꿈틀거리는 인도주의에 몹시 증오를 느끼는 P는 이날 밤 자기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 괴로워 하였다.
내일을 굶어야 할 그 돈이지만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정조 값으로 이십전을 주어도 좋다는데 왜 정조는 퇴하고 돈만 있는 대로 털어주었는가? 왜 눈에 눈물이 고였는가?
② M이 <마꼬>를 꺼내놓고 붙여 문다. P는 <포켓> 속에 들어 있는 <해태>를 차마 내놓기가 낯이 따가워 M의 <마꼬>를 집어 당겼다.
P는 설명을 시작한다. P 자신 그러한 장난 비슷한 공상은 하면서 일단 해보라고 하면 주저할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랬으면 통쾌하리라는 것이다.
“먼첨 경무국에 들어가서 아주 까놓고 이야기를 한단 말이야. 우리가 지금 대상으로 하는 것은 총독부가 아니라 조선의 소위 민간측 유지들이니까 간섭을 말아 달라고.”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채트먼이 도식화하고 있듯이 화법은 사고 방식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야.
그는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위의 세 예는 앞에서 든 화법의 예와 정확할 정도로 대응한다. 따라서 화법의 문제를 생각 작용과 유기적인 관련성을 지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서술자가 ‘그는 석유 냄새가 싫다’라고 서술할 때는 내포작가의 입김이 스며 들어서 어떤 의식 작용을 포함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단순히 그가 싫어한다라는 사실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과 연결되는 다른 의식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제 3자의 의식을 서술하는 서술자는 인물의 의식 깊숙히 파고 들어서 자기의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다. ①의 장면은 주인물인 P가 사창가에 가서 창녀에게 돈만 주고 그냥 나온 뒤의 광경이다. P와 마찬가지로 룸펜들인 친구들은 P 를 놀리지만 그로서는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대화로 바꾼다면(친구들은 끈질기게 관심을 가질 것이니)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친구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 더 문제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묘한 상황을 서술자는 자기의 직접적 설명으로도, 간접적 묘사로도 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서술자는 인물의 내면 의식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할 방법으로 자유 화법을 쓰고 있다. 인물로 하여금 그의 고민을 자유롭게 털어 놓게 하고 서술자는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감춘 채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의 의식(곧 인물의 설명, 인물의 말)을 간접적으로 서술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간접적 서술의 영역에서 의식 드러내기의 기능을 여기서 재확인할 수 있다.
②에서는 순수하게 대화로 전달해야 할 것을 서술화한 경우이다. P는 설명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니 P의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서술자는 P에게 그 설명을 맡기지 않고 개입한다. 이 내용은 다른 인물인 친구들에게 전달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 난처한 의식 작용을 직접 말하게 할 수도 없고, 간접 화법으로도 피서술자(독자)에게 적당하게 전달할 수 없어서 자유 화법을 사용하였다.
P는 자신이 하는 말이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총독부에 들어가서 간섭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만큼 배짱있는 지식층 룸펜은 없다. 인물의 말은 풍자적이다. 인물은 풍자적 태도로 저항성을 숨기고 있다. 서술자는 그 모든 것, 인물이 그런 실천 가능성이 없으면서 풍자적인 의미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저할 것이지만’ 부분은 서술자가 직접 설명한다면, 주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 못할 것이지만’으로 바뀔 것이다. ‘주저할 것이지만’은 인물의 생각(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난’이란 언술은 서술자의 것이다. 인물이라면 ‘이러한 장난’이라고 말할 것이다. 자유 화법에는 인물의 목소리와 서술자의 목소리가 겹쳐 있다. 겹침으로써 장난같은 공상이라도 해야 속이 풀릴 듯한 인물의 의식과 그 지식인의 자기 만족, 자기 안위를 비웃는 서술자의 의식이 갈등을 일으킨다.
이 긴장과 갈등은 여러가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첫째, 발언자(여기서는 P 혹은 서술자)의 자질이나 태도를 규정한다. 발언자가 거짓말이나 용납할 수 없는 태도를 갖더라도 서술자가 개입하므로 피서술자(독자) 입장에서는 그 의미를 알아 차릴 수 있다. 둘째, 발언의 내용이나 발언자, 또는 그 태도가 복수성을 지닌다. 셋째, 그 복수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미론적 농도를 더해 준다. 넷째, 서술자의 언어 속에 인물의 지각, 감정, 사고를 담을 수 있으므로 의식의 표현을 심도있게 해 준다. 다섯째, 작중 인물에 대한 내포작가의 태도를 피서술자(독자)가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인물과 다른 생각을 가진 서술자가 존재하므로 아이러니 효과가 생길 수도 있고, 반대로 피서술자(독자)의 감정 이입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인물과 서술자의 목소리 겹침을 바흐찐은 다성화라 하였다. 그러나 바흐찐의 다성화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 대화의 사회성과도 관련된다. 대화와 대화에 대한 서술자의 개입에 따른 목소리의 겹침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분명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서술에 대한 논의로 국한하려는 이 책의 목적상 목소리와 관련되는 다른 자질을 알아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목소리의 의미화를 뒷받침하는 음성학적, 물리적 자질들이다.
출전 : 조정래, 소설과 서술..
첫댓글 답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