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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원기의 국악 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세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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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晉州劍舞)
*내용
궁중무용 계통인 민속무용의 하나. 진주 지방에서 연희되고 있는 춤으로서 연출형식·춤가락·칼쓰는 법 등 모든 기법이 과거 궁중에서 연희되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무용이다. 다른 검무와의 차이점을 들어보면, 다른 검무는 4인에 의하여 추어지나 이 무용은 8인의 舞員에 의하여 연희되며, 다른 검무는 타령장단으로 시작하여 타령곡 일색으로 추어지는 데 반하여 진주검무는 도드리장단으로 시작하며 타령곡을 혼용하고 몹시 빠른 타령곡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다른 검무에 없는 가락으로 숙은사위·입춤사위·읹은사위·방석돌이·연풍대 등 독특한 사위가 많이 있다. 또한 다른 검무에서는 처음 맨손으로 춤을 시작하여 칼을 어른 다음 칼을 들어 춤추지만, 진주검무는 한삼을 끼고 춤을 추다가 한삼을 빼고 맨손으로 다양한 舞態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도드리장단을 치면 舞人8인이 일렬로 입장하고 무대 중앙에 종대로 마주한 다음 양손에 들고 온 칼을 어깨넓이로 벌려놓은 뒤에 상대편과 춤추며 서로 앞으로 나아가 등지고 숙은사위로 춤추고 나서 중앙에서 만나 서로 상대편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얹고 어르며 춤춘 다음 갈라서서 한삼을 빼고 입춤사위를 춘다. 칼 앞에 모여 방석돌이를 춘 뒤에 칼 앞에 앉아 戰服자락을 양손에 잡고 일어나 2열이 상대한 채로 밀고 밀리는 舞作을 한 다음 8인이 원을 만들어 燕風臺를 돌고 무대 전면에 1열 횡대로 서서 좌우로 양칼질을 한다음 절하고 물러난다. 의상은 남색 갑사 전복에 붉은 전대를 띠고 검은색 전립을 쓰며 9색 한삼(백. 홍. 청. 분홍. 남. 녹. 황. 연두)을 착용한다.
1987년 12월 2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 12호로 지정된 민속무용으로서, 진주시 신안동 15-24에 있는 진주민속예술보존회에서 전승되고 있다.
진주 검무(劍舞)는 경상남도 진주지방에 전승되는 검무를 가리킨다. 칼춤은 여러 민족에 의해 연희되고 있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칼춤이 있었겠지만 상고시대 칼춤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동경잡기', '문헌비고'와 같은 문헌에는 가면을 쓴 채 칼을 들고 춤을 추는 창랑의 검무가 나오는데 이 검무가 '삼국사기'에 보이는 신라 품일장군의 아들 관창의 고사를 춤으로 엮은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검무는 여러 춤꾼들이 전복을 입고 전립을 쓴 채 서로 맞서서 양손에 갈라 쥔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으로 문헌에는 검기무로 나오고 속칭 칼춤이라 이르기도 한다.
검무는 진연의궤와 같은 궁중연향(잔치)에 관한 여러 문헌에 보이는 대로 궁중과
관아의 연향(잔치)에서 연행되었으나 궁중 검무는 지금 전승이 끊어졌고, 관아에서 연
행되던 것 가운데 진주와 통영지방의 검무가 전승되고 있을 뿐이다. 이 가운데 진주
검무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편 검무는 창우(倡優) 곧 광대들에 의하여 민간잔치의 판놀음에서 연행되었고 이
런 검무가 아직도 민간검무로 전승되고 있다. 또 무속의례에서 무당이 소박한 칼춤을
추고 있는데 이 춤이 어쩌면 칼춤의 고형의 한 형태인지도 모른다.
진주 검무는 8명의 춤꾼이 전복을 입고 남띠를 띠고 전립을 쓰고 손에 색동 한삼을
끼고 도드리장단에 늘어서서 느릿하고 장중하게 한삼을 뿌리며 시작된다.
그러다가 한삼을 빼어 맨손을 뿌리며 입춤사위로 추다가 이윽고 엎드려 숙인 사위로
어른다. 이윽고 앉은 사위로 춤을 추다가 땅에 놓았던 칼을 양손에 갈라 쥐고 씩씩한
타령 장단에 칼을 좌우 사위로 휘두르며 방석돌이로 돌아가며 장쾌하게 칼춤을 춘다.
진주 검무는 다른 고장의 검무에서는 보이지 않는 여러 화사한 춤사위가 보인다.
근래까지는 더러 굽은 칼을 썼으나 최근 보유자들이 고제대로 곧은 칼을 쓰고 있다.
장단의 흐름은 도드리⇒느린타령⇒빠른타령⇒느린타령⇒아주 빠른타령 순으로 구성
되어있다.
「인간문화재와의 토론」
-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성계옥 -
2000년 11월 3일 오후 2시 30분 서울무형문화재전수회관
발표자 -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성 계 옥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진주검무예능보유자 성계옥입니다.
(1)진주검무
①지정년월일
1967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민속무용으로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즉 진주검무보존
회에서 전수하고 있습니다. 당초 진주검무보유자로 지정될 때의 인간문화재는 모두 8명이었으나
현재의 기능보유자는 저를 포함한 2명만 생존해 있습니다. 진주검무의 유래는 신라 삼국통일시대
부터 비롯됩니다. 진주검무는 화랑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한국무용사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무용이며, 궁중계열의 무용에서 지방민속무용으로 변화되어 왔습니다. 흔히 8명이 검무를 춘다하
여 진주팔검무라고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논개부인의 순국 이후 진주관기들이 논개영전에 칼춤
을 춤으로써 호국을 다짐해왔기에 진주검무의 원형보전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주검무
와 논개부인은 역사적으로 절대적인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진주검무의 내용
ㄱ. 의상은 조선시대의 군복, 전립, 전대, 색한삼입니다.
ㄴ. 소품은 백동검 1쌍입니다.
ㄷ. 반주음악은 본영상이 있었으나 너무 길어서 1921년경부터 없어졌습니다. 그밖에는 긴염불 27
장단을 비롯해 타령 58장단, 느린타령 5장단, 도드리 78장단, 자진모리 15장단으로 구성되어 있습
니다.
ㄹ. 춤사위는 한삼평사위, 숙인사위, 쌍어리, 입춤, 방석도리, 앉은가락, 손사위, 자락사위, 칼사
위, 연풍대가락이며 이 가운데 연풍대가락은 허리사위, 양칼사위, 외칼사위입니다.
③진주검무의 특징
ㄱ. 궁중에서 연희하던 검무의 원형을 완전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칼춤형태에 관한 중요한 자료
가 됩니다.
ㄴ. 오랜 역사와 전통성을 지니고 있어 예술적인 가치가 풍부하며 무용사적인 면에서도 근거가 정
확합니다.
ㄷ. 춤사위가 다양하고 칼쓰는 법이 독특하며 처음에 색한삼을 양손에 매고 추는 특성이 있습니
다.
ㄹ. 진주검무의 이수자나 전수자가 모두 다른 춤의 경험이 없는 주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춤사위에 잡티가 묻지 않아 순수성이 보유됩니다.
(2)보유자와 보존회
①보유자 약력
저는 1927년 경남 산청군 덕산골에서 남명 조식선생의 후학이신 유학자 서산 성갑주 선생의 딸로
태어나 엄격한 가문탓에 정규적인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향에서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그후
독학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했으나 태어난 환경이 가무를 접할 수 없는 조건이었
으므로 음악과 무용를 배울 기회도 없었고 이를 허락하는 집안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양반집 여
자들이 가·무를 가까이 하면 마음이 방탕해진다는 것이 아버님의 교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 세이바시 여자통신학교를 마
친 후 당시 몰아치던 일본 정신대 강제모집을 피하여 만 17세에 서둘러 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이 평탄치 못하여 일찍 남편과 사별하게 된 것이 바로 예술과 인연을 맺게 된 동기가 되었습
니다. 시부모와 4남매의 가장으로 고향에서 초등교사 봉직생활을 하다가 당시 봉급으로는 장차 자
녀교육 문제해결이 막연하여 생활토대를 진주시로 옮겨 직업전환까지 하였습니다. 식당업을 운영
한 결과 의외로 영업은 성업을 이루었으나 건강이 나빠지고 정서가 불안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진주검무와 진주한량무 등 전통무용을 옛 노기들로부터 틈틈이 배우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1967년 때마침 진주검무가 문화재로 지정되고 첫 전수생을 모집하므로 고 강귀래 선생에게 사
사받은 경력도 있고 하여 진주검무 전수 1기생으로 등록하여 10여년간을 열심히 공부한 결과 1978
년 6월에 검무예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1979년에 한량무 기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은 후 진주민속예술보존회 활동에 투신해 오늘날까지 45년간 진주의 전통춤을 계승, 발굴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논개를 기리는 가무제인 의암별제를 복원하기 위해 만학의 나이로 고려대
교육대학원 한문교육과를 수료했으며, 1986년에는 민속자료집 <의암별제지>를 펴낸데 이어 1992
년에는 의암별제를 복원해 지금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②보존회 연혁
진주검무보존회는 논개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진주의 전통어린 단체입니다. 저는 현재 진주검무
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진주검무보존회(진주민속예술보존회라고 한다)의 현재 활동 사항
은 전술한 바와 같이 진주검무가 진주논개와 절대적인 연관을 가져 왔습니다. 그 때문에 본회 사
업도 마찬가지로 논개정신(즉 민족정신)을 바탕한 전통예술을 계승발전시켜나가는 활동을 목적으
로 하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보존회의 무형문화재 보존사업은 크게 진주검무(국가문화재), 진주한량무(도문화재), 진주포구락
무(도문화재)에 대한 것입니다. 그밖에 진주 의암별제(논개의 충혼을 달래는 유일무이한 악.가.무
를 병행한 의의있는 독특한 종합예술의식)가 있으며 기타 국악교실(기악·창악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주한량무와 진주포구락무 등의 지방문화재 보유자들이 보존회에 소속되어 있
어 무형문화재 전승보존의 중심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회가 복원한 의암별제는 논개의 정신을 기리는 불멸의 제전입니다. 이것은 해마다 논개가
순국한 진주성 촉석루 일원에서 다채롭게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 의암별제는 1868년 창제된 유서
깊은 제전으로 애국여성 논개에 대한 제향 및 종합예술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의암
별제 기획팀과 일체가 되어 무형문화재 전승과 국악연주 및 강습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
다.
(3)의암별제
1868년 진주목사 정현석에 의해 창제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중단된 뒤 1992년 제례부분이 복원되
어 해마다 실시되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는 음복연도 재현되어 2000년 의암별제는 전통과 현대
의 만남이란 주제로 열린 바 있습니다. (웹사이트 논개.오알지<www.nongae.org>와 소식지 의암
별제 참조)
(4)진주검무 보존활동 현황
①정부의 지원현황(재정지원 이외의 지원도 포함)
문화재청 전승비 월 60만원(단체 전승비)
무형문화재발표회 지원 년 250만원
보유자 지원 월 90만원(2명 총 180만원)
조교 지원 월 30만원(3명 총 90만원)
공연지원금 - 유사시 약간의 금액을 별도 지원
②검무보존 활동(공연)
의암별제 제향 헌무(1992년부터 현재까지)
개천예술제 서제식 헌무(1969년부터 1996년까지 30여년간)
공연횟수 : 연간 약 35회(중앙, 지방, 외국)
공연수입 : 지방 사람들은 문화재로 지정된 단체에는 정부의 많은 예산 지원이 있는 줄로 알고 특
별행사 초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로 공연요청이 많습니다. 그러나 홍보적 차원에서 기꺼이 응
해주기 때문에 이러한 공연수입으로는 진주검무 보존활동에 큰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③전수활동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주당 4시간이며, 신입 전수자에 대해서는 별도로 수시 지
도를 하고 있습니다.
보존회에서 활동중인 진주검무 기능자(보유자 1명, 조교 3명, 이수자 19명 총23명)이외에도 전수
자가 40명이고 경상대 민속무용학과 학생전수자들까지 포함할 경우 모두 84명에 이릅니다.
현재 진주검무 전수 수는 경상대 민속무용학과 학생이 20명 있고, 삼현여고 학생이 20명있으며,
기타 초중등학교 학생도 200여명이 되는 등 피전수자의 합계는 28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④예능보유자 의견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적 측면에서 진주검무 전수교육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예술이란 아름다운 내면 세계를 밖으로 표출시키는 작업이기에 먼저 그 심성이 순수하지 못하다
면 기교만으로 볼거리는 될지언정 사람에게 아름다운 순수성은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
술을 가르치기 이전에 마음 바탕을 깨끗이 가지는 교양 교육이 앞서야 하며 예의법도를 익히는 과
제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본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로 심성교육을 우선하여야 올바른 예능인으
로 성장할 것입니다.
(5)제도상 개선안
①문제점
첫째, 이수자 대책문제가 되겠습니다. 현행 무형문화재 제도는 보유자와 조교만 금전적인 지원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수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가 없는 등 경제적인 대책과 활동대책이 보장
되지 않아 기능이수 후 이들이 대부분 흩어지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효과적인 진주검무 전승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도 힘들게 익힌 예능이 별 쓸모없게 되어 배출시킨 숫자에 비
해 진주검무가 이들을 통해 확산, 전승되는데 미약한 실정입니다.
둘째, 최근 3년 전만 하더라도 진주에 무용전공학교나 학과가 없어 현재 검무이수자의 대부분이
춤전공자들이 아닌 평범한 가정주부들이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이수시키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교
육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수자들이 검무에 대한 열정과 이해도가 낮아 검무를 배우는 동기
가 희박하고 취미생활이나 소일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점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들이 무
용이나 춤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진주검무의 원형보존에는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몸에
어떤 춤도 익히지 않았기에 옛날 선생님들의 춤사위를 그대로 배울 수 있어 진주 춤의 특성을 보
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②개선안
첫째,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와 젊은이들의 참여가 시급합니다. 진주검무의 대중화와 세
대간의 격차를 줄이고 검무보유자의 재생산을 위해 초·중등학교와 대학의 연계가 필요합니다.
특히 대학의 민속무용학과 학생들의 졸업후 참여를 보장하는 국악학교 및 국악단의 기능이 필요
하며 이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상설무대나 공간도 요구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의 육성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진주검무와 같은 이러한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화가 절대로 필요합니
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등학교와 연계해 진주검무를 생활무용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교육당국
의 정책적인 배려와 이를 주관할 통일적인 단체도 요구됩니다. 현재 저희단체에서는 이러한 부분
에 대한 고민과 발전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