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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야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고령'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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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고령'을 찾아서
타인에 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박식한 것이지만 자신에 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 노자
# 고령에서
1. 첫째 날
고령 도착 - 중식(고령휴게소식당 : 고등어정식, 낙지전골, 갈치정식) 개실마을 입소(전통 찻집 뒤 한옥 독채 현감댁: 10만원), 여장을 풀고 - 대가야박물관 관람(관람료 성인 1인 : 2,000원)-대가야왕릉전시관 관람- 지산동 고분군 답사-양전동 암각화 답사-숙소에서 저녁식사 후 토의 및 휴식
1) 개실마을
<개실마을>은 김종직의 5대손이 1650년 경에 이곳으로 피신와서 살다 보니 꽃이 피면 너무 아름다운 마을로 변하는지라 '가곡' 또는 '개화실'이라고 부르 다가 음이 변하여 '개애실'로 하다가 오늘 날 '개실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 으며, <2008년 도농교류엑스포> 에서 인기 있는 마을 중의 하나였다. 도연 재와 점필제 등 마을을 둘러보며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개실마을의 문화재와 유적 : 용강재, 고령 합가리 유물산포지①, 점필재 종택, 점필재 종택 내 우물, 점필재 종택 내 사랑채, 문충공사당, 도연재, 화산재, 추 우재, 노동재, 모졸재, 고령 합가리 유물산포지②, 고령 합가리 사지, 고령 합가 리 사지 내 석불, 고령 합가리 우물, 고령 합가리 성황당, 고령 합가리 도요지
*점필제 종택(민속자료 제62호) : 점필제 김종직(1431~1492) 선생은 영남학 파의 종조로서 성리학의 종착과 후진 양성에 힘쓴 학자 겸 문장가였다. 개실 마을에 위치한 종택은 1800년 경에 건립되어 몇 차례 중수하였다. 사랑채와 안채 등,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유품으로는 당 후 일기, 교지, 호구단자, 상아홀, 유리병, 벼루 등이 있으며 대가야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
- 개실마을 안내도
- 단체로 현장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곳
- 앞의 현감 댁 뒤로 점필재 종택이 보임
- 점필재 선생 종택
- 점필재 선생 종택 설명
- 모졸재
2) 대가야박물관
지산동 고분군 및 고령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 곳에 전시함으로써 대가야 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가야사 전문박물관으로 찬란한 대가야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대가야박물관 전경
- 대가야유물전시관 입구의 야외에 있는 고령의 불교문화재
- 12현의 가야금
- 일본에 있는 대가야 금관
- 일본에 있는 대가야 금관에 대한 안내
- 대가야 유물
- 반룡사 다층석탑 (경북 유형문화재 제117호)
- 개포리 석조관음보살좌상 (경북 유형문화재 제113호)
- 점필재 김종직 선생 연보
- 교지
- 대가야시대의 한 근의 무게와 대가야시대 아이들 장난감.
3) 대가야왕릉전시관
고령지역 및 사적 제79호인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가야시대 유물을 중심 으로 300여 점을 전시 및 보관 규모와 구조면에서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돔식 구조로 발굴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여 당시의 대가야 역사와 순장 풍습 등에 관하여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최첨단 이미 지 터널, 영상물, 정보검색 코너 등을 통해 대가야의 찬란했던 철기와 토기 문 화가 일본 고대국가의 철기와 토기문화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접할 수 있다.
4) 지산동 고분군 (사적 제79호)
고령읍 뒤편 주산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고분 200여 기가 위치하고 있으며, 주능선상에는 지름이 20m가 넘는 대형 고분이 있고, 중형고분은 고령읍내 쪽으로, 산 아래로는 소형 고분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 남쪽의 제일 큰 무덤이 금림왕릉이라 전하고 있으며, 이외의 대형 고분 들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제44호 고분은 중앙에 주석실이 있고 남쪽과 서쪽에 부석실을 두고 그 둘레에 32개의 순장을 위한 소석곽이 발견되어 순장제도를 실증적으로 밝히는데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로 확인된 순장묘이다.
- 지산동 44호분
- 지산동 47호분
- 고분군이 있는 산 위에서 바라본 고령군 읍내 모습
- 산 뒤로 내려앉는 저녁 노을
5) 양전동 암각화 (보물 제605호)
이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되었다. 높이 3m, 너비6m의 산비탈면에 위치 하며, 그림의 내용은 겹둥근무늬(동심원)와 십자무늬, 탈모양(가면형)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 유적은 당시 주민들의 농경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했던 장소로 추정되며, 이곳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 고령 양전동 암각화 설명
- 가운데 성혈을 중심으로 동심원
6) 개포나루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깜깜하여 제대로 볼 수 없었다.
2. 둘째 날
7시 기상 : 개실마을 산행 - '도연재'와 김종직 선생의 '점필재' 및 한옥 마을 답사 - 산림녹화 기념 숲 산책 - 벽송정 - 고령요 관람 - 계명대 한학촌 산책 - 대구 계산성당에서의 결혼식 축하 - 귀로
1) 산림녹화 기념 숲
낙동강 유역 산림녹화비가 건립되어 있는 이곳을 산림녹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념숲과 기념관, 수석관, 향기체험관, 등산로 등을 갖추고 있 다. 대가야문화유적과 연계하여 지역민은 물론 도시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국내에 유일하고 차별화된 숲으로 자연 휴양 코스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2) 벽송정
통일신라 때부터 유래되었다는 <벽송정>은 정자에서 바라보는 운치있는 전망이 일품일 뿐만 아니라 고운 최치원, 일두 정여창,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시를 새긴 현판이 걸려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이 정자는 멀리보이는 산과 앞의 논 사이를 흐르는 <안림천>건너편에 있었다. 1920년(경신년) 대홍수 때 크게 파손 되어 떠내려간 후 현재의 산 아래 높다란 위치로 옮겨서 중건했다고 한다. 홍수 때 고운, 일두, 한훤당선생 시(詩)도 함께 떠내려간후, 현판 자리가 장기간 비어 있자 1945년 이곳 선비 '최순철(字: 敬一, 號:愚堂)'이 백당선생께 글씨를 청하여 현판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고령의 어르신들이 계(契)를 모아서 벽송정 을 관리하고 있는데, '벽송정 유계'를 이끌고 계신분은 '고령 개실마을', 점필제 김종직선생의 17대 종손이신 김병식 어르신이라고 한다.
- 벽송정
- 벽송정 설명
- 벽송정 옆의 자연석에 새겨진 위창 오세창의 글씨인 '암벽정'
3) 고령요
대가야 고령토기 재현에 성공한 고령요의 도인 백영규 씨(60세). 그는 대가야 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세월의 뒤안길에 사장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전통도 예가로써 40년 경륜을 걸고 고령토기 재현에 몰두해 왔다고 한다. '고령토기는 내화도가 강하여 실생활 용기로 사용할 수 있으며, 신라나 백제 토기에 비해 다소 억센 흙을 사용하는 경질 토기로 적갈색을 띠고 있는 게 특징이며, 가야 토기의 질박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 속에는 옛 조상들의 꾸밈없는 성품이 담 겨 있다'고 한다. 이에 가야토기야 말로 전통 도예문화의 원조라고 한다. 전통 도예원인 '고령요'는 운수면 도로변에 있는데 토기 재질로 만든 다기 등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 고령요의 도인, 백영규 선생님 (읍내에서 일을 보고 온 백 선생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 신문에 게재된 모습
- 전통도예원의 벽에 걸린 소품
- 전통도예원에서 전시 판매되고 있는 고령요
4) 계명대 한학촌 사랑채와 계산동성당(사적 제290호)
계명대 서당촌과 사랑채를 둘러보고, 가우 님 둘째 따님의 예식이 있을 계산동 성당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이었다.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있는 대구대 교구 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 1886년(고종 23) A.P. 로베르신부가 경상도지역 의 전교책임을 맡고 대구로 부임하여 성당신축을 계획, 3년 만인 1899년에 한 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신축하였으나, 이듬해 화재로 소실되었다. 곧 재건계 획에 착수, 로베르 자신의 설계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자재는 홍콩과 프랑 스에서 가져다가 1902년 대구 최초의 서양식 성당을 준공하였다. 2개의 종각이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뒤 1911년 대구교구 설정과 더 불어 증축을 시작하여 1918년 완공, 오늘에 이르렀다. 성당건축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양식이며, 평면은 라틴십자형의 삼랑식(三廊式)이다. 종탑부 에는 각각 팔각의 높은 첨탑(尖塔)을 두었다. 화강석초석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의 이형(異形) 벽돌로 고딕적 장식을 한 이 성당은 대구지방의 유일한 1900년대 초기의 성당건축물(聖堂建築物)이다. (참고 자료)
- 계명대 한학촌 '계정헌' 전경
- 연못 내 정자, '익청정' # 귀로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과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매콤한 날씨 속 계산동성당에서 시하늘 지인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기차 시간 때문에 오래 지체할 수 없어 밖으로 나와 두부요리와 황태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근방의 전통찻집에서 대 추차를 마시며 뜻 깊었던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세미나에는 모두 함께 하여 더 욱 알찬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 | |
첫댓글 고령에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한번들러 구경좀 하고와야겠네요... 내고향성주하고도 근접한 곳이라 .... 멋진 소개 잘보고갑니다
헉~~~내가올릴려고했는데 기찬씨가 올려주어 고맙습니다 , 이밖에 쌍림달기 , 우곡그린수박,개진감자, 성산 멜론 등 먹거리도 다양하게 있답니다 , 4월에는 대가야 축제가 있어 그때 구경가면 볼거리도 참많치요 , 우리향우회 전체가 동행해도 거리가 가까워 당일치기로 갓다오기 괜찮은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