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족(壯族)은 중국 최대 소수민족이다. 인구수 1617만명으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위다. 그중 99%에 달하는 1605만명가량은 중국 남부의 광서(廣西)장족자치구에 모여 산다. 과거 광서성(廣西省)으로 불렸던 광서자치구는 지난 1958년 소수민족 자치구로 공식 지정됐다. 자치구의 전체 면적은 23만㎢가량으로 중국 전체 면적의 2.5%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장족을 포함해 묘족, 이족, 둥족 등 약 12개 종족 1898만명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 소수민족은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 생활방식 자체가 한족과는 다르다. 하지만 소수민족이 자치구 전체 인구(5049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가량에 불과하다. 자치구 내 한족 인구(3027만명)는 장족(1605만명)의 거의 2배에 달한다. 한족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소수민족 자치구의 취지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 좡족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들.
지난 1948년 전까지만 해도 한족들은 장족을 퉁족( ·동족)으로 불렀다. 개견( )자 변이 붙은 ‘퉁( ·동)’자는 야생 들개를 상징하는 글자다. 전문가들은 한족이 장족을 천시한 가장 큰 이유로 한족과 상이한 문화를 들고 있다. 예컨대 장족의 자유로운 연애 결혼과 혼전의 자유로운 성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는 과거 한족의 전통적인 유교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948년에야 비로소 ‘ ’ 자 앞의 개견자 부수를 ‘사람 인( )자’ 부수로 바꿔 ‘퉁족( 族·동족)’으로 개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미흡했는지 1965년에는 한족 출신 주은래(周恩來) 총리의 제안으로 약 20가지로 중구난방 불러왔던 퉁족의 명칭을 모두 ‘장족(壯族)’으로 통일해 정리했다. ‘壯’자는 ‘강하다’ ‘억세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다.
인구 1617만명, 한족과 문화 달라 천대 받으며 자체 군벌세력 키워
강하고 억센 민족들이 주로 살다 보니 광시 자치구는 ‘반란’의 땅으로 이름이 높다. 대개 정권의 반역자들이 이곳으로 도망치거나 귀양을 온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됐다. 반역자의 자손들도 멸시와 차별대우를 받으며 대를 이어 사회불만세력으로 자라났다. 중국 역사상 최대 반란 가운데 하나인 태평천국의 난도 여기서 일어났다. 특히 이 반란에는 장족이 깊이 개입했다. 태평천국의 지도자 홍수전은 비록 광동성에서 태어난 한족이지만, 그 아래서 각각 군자금을 모으고 군사들을 지휘한 서왕 소조귀(蕭朝貴), 북왕 위창휘(韋昌輝), 익왕 석달개(石達開) 등은 모두 장족 출신이다. 이들 장족이 지휘하는 반란군은 북상을 거듭해 당시 중국 제2의 도시 남경(南京)을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장족인 위창휘와 석달개 사이에 내부 분란이 벌어지자 한족 홍수전은 석달개를 이용해 위창휘를 제거한다. 이후 석달개도 홍수전에게 버림을 받는다. 한족 특유의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 수법을 사용해 장족을 통제한 것이다.
▲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선정된 장족 출신 스포츠 스타 리닝.
중국의 최고권력자로 군림했던 등소평이 최초로 공산반란을 일으킨 곳도 광서장족자치구다. 파리와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29년 ‘등빈’이란 가명을 사용해 광서에서 농민폭동을 주도했다. 비록 폭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등소평은 광서에서의 폭동을 계기로 공산 혁명가로 두각을 나타낸다. 지금은 과거 등소평이 농민폭동을 일으킨 광서자치구 백색(百色)시에 등소평의 동상과 함께 공산반란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이후 그가 모택동의 뒤를 이어 최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광서자치구에서 종종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또 신해혁명을 일으키고 오랑캐 타도를 외친 중국의 국부 손문도 이곳을 북벌의 기지로 삼았다. 이들 외에도 광서에는 예로부터 자체적인 무력을 보유한 군벌세력이 항상 존재해 왔다.
덩샤오핑이 혁명가로 이름 알린 곳 중국 최고의 체조스타 리닝 배출
중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케이스도 있다. ‘체조왕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중국 최고의 체조스타 리닝(李寧·46)은 좡족 출신이다. 1963년 광시 자치구의 한 좡족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8살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다. 키 164㎝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1984년 미국 LA 올림픽에서 자유체조, 링, 안마에서 모두 3개 금메달을 비롯해 단체전까지 합쳐 모두 6개의 메달을 석권했다. 지금까지 받은 금메달만 모두 106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성화 점화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와이어에 매달린 채로 공중으로 도약해 성화를 점화하는 장면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리닝이 최종점화자로 선정된 데는 와이어 연기를 할 수 있는 체조스타란 점 외에도 소수민족 출신이란 것도 고려됐을 것이란 후문이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야오밍(농구)과 류솽(육상), 덩야핑(탁구)은 모두 한족이다.
더욱이 그는 지난 1985년에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 199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리닝’이란 스포츠 의류 브랜드를 만들며 기업가로 변신했다. 중국 전역에 6245개의 대리점을 가지고 있는 ‘리닝’ 브랜드는 창업자의 명성에 힘입어 중국 최대의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품질로 중국 젊은층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개인재산만 10억위안(약 2000억원)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리닝은 지난해에는 ‘중국 10대 민영 기업가’ ‘CCTV 경제인물’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1993년에는 아시아 체조공주로 불리는 천용얜(陳永姸)과 10년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경영방식도 화제다. 한때 아디다스가 사용해 히트를 친 ‘Impossible is Nothing(불가능은 없다)’이란 슬로건을 약간 비틀어 ‘Anything is possible(모든 것은 가능하다)’이란 슬로건으로 맞불을 놓으며 아디다스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때 리닝이 성화 점화자로 선정되자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한 아디다스를 비롯한 나이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은 “자국 브랜드인 리닝을 밀어주기 위한 올림픽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했다. 실제 ‘리닝’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매출액이 53.8%가량 급증하는 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때문에 리닝은 좡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의 성공모델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광시 자치구의 수도는 남녕(南寧)이다. 남녕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와 더 가깝다. 남녕과 하노이 사이의 거리는 391㎞로 서울~부산보다 짧다. 광서자치구 계림(桂林)의 울룩불룩 솟은 산봉우리들은 베트남 하롱베이와 거의 완벽할 정도로 흡사하다. 본래 이 지역은 과거부터 낙월·백월·남월 등으로 불리던 곳이다. ‘월남(越南)’이란 이름은 남월(南越)을 거꾸로 읽은 이름이다. 남월의 수도는 광서자치구보다 더 동쪽인 광동성 광주였다. ‘양광(兩廣)’으로 부르기도 하는 광서자치구와 광동성 일대는 원래 베트남인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 지역의 언어인 광동어는 베이징어와 소통이 불가능하다. 현재도 광시성 계림에는 베트남을 치기 위해 출병했던 한족 복파장군 마원(馬援)의 주둔지와 유적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원은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도 제갈량의 남만(南蠻·남쪽 오랑캐) 정벌 때도 잠시 언급되는 인물이다. 광서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오늘날 베트남에 자리를 잡았다. 때문에 베트남인들 가운데 일부는 광서자치구의 영유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 장족 여자 어린이들
영유권 문제 때문에 중국과 베트남은 줄곧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베트남의 독립영웅이자 국부인 호찌민은 한때 국민당 장제스에게 잡혀 1년6개월 동안 광서성의 한 감옥에 갇혀 있기도 했다. 지난 1979년에는 양국간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화교(華僑)가 탄압받고 있다는 명분으로 중국군이 20만 대군을 동원해 베트남을 공격한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 간의 국경문제도 도화선이 됐다. 등소평의 주도로 벌어진 전쟁은 비록 중국의 승리로 끝났으나 사상자는 오히려 중국군에서 더 많이 나왔다. 중국과 베트남과의 국경 문제는 올해 초에야 양국이 국경선 확정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일단락 됐다. 하지만 지난해 9월에는 중국 인터넷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중국군의 베트남 침공 계획’이라는 괴문건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양측 간 긴장이 또다시 고조되기도 했다. 베트남 측은 중국 측에 강력한 항의를 표하기도 했으나 결국 이 문건은 한 군사 매니아가 벌인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권력서열 1위는 한족, 2위는 좡족 경제 발전 총력, GDP 13% 급성장
광서자치구의 최고권력 역시 다른 소수민족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한족이 쥐고 잇다. 광서자치구의 1인자는 한족 출신 곽성곤(郭聲琨·55) 공산당 서기다. 1954년생으로 강서(江西)성에서 태어난 곽서기는 광서자치구의 행정권과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광서장족자치구의 총책임자다. 1979년 강서(江西)성의 야금학원 광업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로 줄곧 국영기업인으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최근 전세계 M&A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알루미늄공사(차이날코)의 최고경영자(CEO) 등을 지냈다. 또 기업활동과 함께 한편으로는 중남공업대학에서 공정관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에는 베이징과기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구파형 행정가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부터 광서장족자치구 공산당 서기를 맡고 있다. 경제활동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 중국 최대 스포츠 기업 리닝의 광고와 상표(오른쪽 위)
반면 다른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소수민족 대표는 한족 당 서기에 이은 자치구의 2인자에 불과하다. 장족 출신 마퍄오(馬 ·55)는 자치구 공산당 부서기이자 자치정부 주석으로 자치구 행정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1954년 광서장족자치구에서 태어난 마 주석은 1978년 중앙민족학원에서 정치학과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2004년 자치구 부서기로 일하기 시작해 2008년 자치구 정부 주석으로 임명됐다. 특히 그는 낙후된 장족 자치구의 경제건설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GDP 성장률은 13.5%를 기록해 전국 성급 행정구역 가운데 4위에 올랐다. 이는 중국 전체 올 상반기 GDP 성장률 6.4%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또 그는 지난 5월 중국의 성급 자치구 주석급으로는 최초로 경제문화대표단을 이끌고 대만 타이베이를 방문해 광서자치구에 대한 투자와 경제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와 곽성곤 서기가 동갑인 점은 한 가지 특징이다. 대개 당 서기와 자치정부 주석은 5~10살가량의 나이 차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이 주수입… 한국 관광객 몰려 매춘·에이즈·마약 등 부작용 몸살
관광산업은 이들 콤비가 큰 관심을 두는 부분이다.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란 말처럼 광서자치구 계림(桂林)의 풍경은 천하제일이란 평을 듣는다. ‘계림’이란 지명은 계수나무가 늘어선 풍경에서 나온 이름이다. 특히 계림에서 양삭(陽朔)로 이어지는 83㎞가량의 리강(麗江)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와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계림산수를 배경으로 ‘리강에서’라는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또 소수민족들이 경작하는 계단식 논은 영화 촬영지로도 종종 선택된다. 산기슭 일부만을 계단식 논으로 조성하는 우리와 달리 이 지역에서는 산 전체를 계단식 논으로 조성해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광서자치구는 중국 남부지방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중국 방문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과거 대우그룹은 광서자치구 계림에 대우 브랜드를 사용한 5성급 호텔을 세우기도 했다. 이 호텔은 현재 금호아시아나에서 쉐라톤계림이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 통킹만과 맞닿아 있는 베이하이(北海)도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 광시 좡족 자치구 구이린의 자연.
하지만 관광객이 몰려들다 보니 각종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관광객을 상대로 한 매춘산업이 발달하자 에이즈(AIDS)도 널리 퍼지고 있다. 광서자치구는 운난성, 하남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지와 함께 중국 위생당국의 에이즈 요주의 감시지역이다. 또 베트남과 라오스 등 동남아 국가와 가깝다 보니 마약이나 위조담배의 제조도 널리 퍼져있다. 광서자치구에서 만들어진 마약, 위조담배, 짝퉁물품은 가까운 홍콩이나 심천·마카오 등 대도시로 유입되고 있다. 마약과 위조품의 밀반입에는 홍콩과 마카오 등지의 조폭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광서자치구는 세계 3대 폭력조직인 ‘삼합회(三合會·트라이어드)’의 조직원 공급지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에는 자치구 수도 남녕에서 7개의 지하공장을 가진 43명 규모의 거대 마약조직이 경찰에 일망타진되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해 9월에는 광서자치구 내에서 불법 제조된 군사용 어뢰를 만들어 밀수출하려던 일당이 경찰의 불심검문에 붙잡히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