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만 마을에 4월이면 펼쳐지는 여인네들만의 행사가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진달래 축제’라고 이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는 진달래꽃을 창꽃이라고 불렀다.
사월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꽃을 꺾으러 친구와 함께 두려움 없이 쏘다녔다. 진달래꽃 중에서도 더 색깔이 진하고 꽃이 다닥다닥 많이 붙어있는 소담한 꽃을 꺾으러 온 산을 헤매어 다녔다. 그러다가 땀이 뻘뻘 나고 목이 탈 땐 시원한 진달래꽃을 한 줌씩 따 입에 털어 넣고 씹어 먹었다. 조금은 쌉싸래하고 달콤한 물이 생겨나며 목을 축여 주었다.
진달래가 어우러진 야산 밑에는 개나리도 뒤질세라 방싯방싯 웃으며 반겼고 버들강아지도 살랑살랑 꼬리치다 봄 피리로 변신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어른들은 왜 그랬는지 우리를 겁먹게 하는 말을 종종했다.
“얘들아! 꽃 문둥이가 산에 숨었다 나와서 애들을 잡아 간을 빼 먹는단다. 조심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꽃을 꺾으려는 다부진 마음을 사그라트리기엔 역부족의 말이었다. 성장해서 생각해보니 ‘문둥병(나병)은 인(人)고기를 먹으면 고친다더라.’ 는 속설이 있어서 그런 사건들이 실제로 일나기도 했던 것 같았다.
사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 어머니는 물론, 친구엄마도, 마을 모든 엄마들이 보이 질 않고 마을 위 대접봉산 골짜기, 내가 엄마와 같이 늘 산나물을 뜯으러 가 가재도 잡고 하던 진골골짜기에서 호호 하하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에서 정보가 새나왔는지, ‘마을 아줌마들이 거기에서 창꽃 철엽을 한다. 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와 함께 단걸음에 올라가 보니 마을 여인네들이 모두 여기 에와 모여 앉아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 나눠먹으며 진달래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빙 둘러서서 ‘쾌지나 칭칭’ ‘노들강변’ 노래를 부르며 흥겨워 춤을 추고 있었다. 겨우내 잠자던 개구리 눈비비고 나오듯이 겨우내 안방에서 노닥거리던 여인네들이 새봄을 맞아 진달래축제로 한 마당을 벌인 것이었다.
누구의 제안으로 이런 축제가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그가 좀 배웠다면 여성 운동가 내지는 여성해방을 위해 한 몫을 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얼마나 즐겁고 정겨운 소중한 하루였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처럼 따뜻하고 정겨운 분홍빛 보드라운 마음들이 함께 모여 담합하는 화합의 장이었다.
요즈음엔 황사 비, 농약, 중금속 오염으로 망가진 환경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좋은 꽃을 창조주가 인간에게 허락해 주셨건만 먹지도 못하고 보고만 즐기는 그림에 떡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 사월이면 벚꽃 축제가 한 창이고 많은 사람들이 봄나들이로 이동을 하지만 그 옛날 진달래 축제(창꽃 철엽)만큼 순수하고 정겨운 우정의 마을이 어디에 있을까……?
아쉬움과 그리움이 엇갈리는 사월의 중턱에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2007. 4. 13.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