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서 부딪히는
아픔과 좌절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수많은 오해와 반대와 거절이 도사리고 있는 길이지만,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가려는 당신을 위한
존 맥아더의 공감의 위로와 조언
목사라면 누구나 부름받은 특별한 순간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을 완주하려면 저마다 수많은 고비를 넘어서야 한다. 사역의 길에 도사리고 있는 거친 폭풍우는 언제든 그들을 덮쳐 길 밖으로 몰아내려 한다. 주 40시간의 설교 준비 시간이 부임의 조건이었던 존 맥아더는 50년 동안 평생 한 교회만을 섬기면서도 한결같은 존경을 받는, 이 시대 신실한 목회자의 표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흔들림 없이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이 남긴 모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존 맥아더는 목회를 시작하며 고린도후서 4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았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당시 그에게는 낙담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바울은 사역하는 내내 숱한 오해와 핍박에 시달렸고, 죽음까지도 불사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했다.
고린도후서 4장에는 바울을 향해 몰아친 맹비난과 공격에 맞선 그의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다. 존 맥아더는 이 고백에서 위기에 맞닥뜨린 목회자가 적용해야 할 9가지 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은 목회자의 가슴에 새기고 고백해야 할 확신이라고 말한다. 새 언약의 우월성, 하나님의 자비로 부름받음, 순결한 마음의 필요성, 신실한 말씀 선포,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께 있음, 목회자 자신의 무가치함, 고난의 유익, 용기의 필요성, 영원한 영광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바울이 자신에게 몰아친 거센 폭풍우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 견고한 확신 때문이었다.
목회의 실패와 사역에 대한 과중한 부담으로 목회자의 탈진이 점점 일반화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은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끝까지 인내로 사역하고, 맡은 역할을 건강하게 감당하며,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도록 목회자의 마음을 굳건히 세워줄 것이다.
<독자 대상>
목회의 소명에 관해 고민하는 목사 및 신학생
부르심의 첫사랑을 회복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사역이 가로막힌 어려움에서 길을 찾는 사역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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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장. 새 언약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
2장. 사역은 자비라는 확신
3장. 순결한 마음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
4장. 신실하게 말씀을 선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확신
5장.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확신
6장.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확신
7장. 고난의 유익에 대한 확신
8장. 용기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
9장. 장차 받을 영광이 이 세상의 어떤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확신
본문 펼쳐보기
바울은 어떤 후회나 두려움 없이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수많은 동역자와 제자들이 이미 그를 버리고 떠났고, 심지어 그와 신앙적으로 교제하였던 이들조차 그를 멀리하였지만, 그는 그 사실을 무시하지도 얼버무리려 하지도 않았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실제로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딤후 1:15)라는 말이 서두에 등장한다. -서론, p. 17
가망 없는 옛 언약에서 벗어나 확실하고 안전한 새 언약으로 들어간 한 남자가 있다. 바로 바울이다. 바울은 새 언약을 생각하면 늘 경이로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그가 이미 받은 구원을 생각하면 지금 겪는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를 섬기도록 부름받은 자체가 놀랍고 과분한 명예이자 특권이었고, 그는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1장, p. 43
순수한 마음을 지켜야 할 가치가 여기에 있다. 어떤 일을 겪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양심이 깨끗하다면 정죄당하지 않는다. 양심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양심은 등잔이 아니라 채광창이나 창문과 같다. 그 자체로는 발광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빛에 계속 노출되고 깨끗함을 유지하면 양심은 그 빛을 흡수한다. 심지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그 빛을 받아들인다. 말씀으로 일깨워지는 깨끗한 양심은 우리가 유죄인지 혹은 결백한지에 따라 우리를 정죄하든지 용서하든지 할 것이다.-3장. p. 63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경륜을 있는 그대로 조금도 축소하지 않고 담대하게 선언했다는 말이다. 21세기 교회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희귀하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이런 방식이 사역을 대하는 유일하고 본질적인 접근법이라고 생각했다. 종교 사기꾼들은 호소력을 더하도록 성경을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말씀을 마음대로 각색하고 구미에 맞는 내용만 전달한다. 입맛에 맞게 내용을 희석하기도 한다. 세속 문화의 가치와 신념에 어긋나지 않도록 진리를 왜곡하기도 한다.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이 말씀을 다룬다. 오늘날 이런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며 대중의 큰 인기를 누리는 설교자들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진리가 존재하는 목적 자체를 무너뜨린다.-4장, p. 73
무엇보다 먼저 바울이 복음을 선포한 뒤 심각한 부정적 반응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고 거의 죽게 되었다(행 14:19). 에베소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는 도시 전체에 폭동이 일어났다(행 19:23-39). 고린도 교회는 문제와 갈등으로 얼룩졌다. 소아시아 교회들은 너무나 쉽게 신적 은혜의 교리를 폐기했다(갈 5:4). 그러나 바울은 결과가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았다. -5장, p. 80
긍정적 반응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부정직한 방식으로 조작하거나 메시지의 내용을 순화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역자가 그 결과에 대해 최소한 일부라도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복음의 메시지를 수정한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다. 설령 이런 방식으로 긍정적 반응을 얻는 듯 보여도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필요에 맞게 가공된 가짜 ‘복음들’이 가짜 회심자들로 교회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죄책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운 것인지 혹은 예수를 주로 신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5장, p. 82
바울은 과장해서 말한 것이 아니었다. 완벽히 적절한 심상을 사용했다. 여타 사람들처럼 바울도 불완전한 존재였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바울이 스스로에 대해 말한 내용은 모든 목회자에게도 해당한다. A. T. 로버트슨(A. T. Robertson)의 말대로 “하나님이 볼품없는 악기와 가냘픈 목소리를 사용하실 수 없다면 어떤 음악도 만들지 않으실 것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연약하고 허점이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영웅은 모두 흙으로 만든 인간에 불과했다. 혹은 그보다 더 좋게 보아도 (바울의 메타포를 그대로 적용하면) 전적으로 흙으로 만든 그릇에 지나지 않았다.-6장, p. 93
바울은 새 언약의 진리, 새 언약의 사역, 신실하게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으로 무가치한 설교자의 삶에 풍성하게 나타나는 자비의 놀랍고 영광스러운 실체를 생각한다. 그리고 온갖 고난으로 멍들고 상한 와중에도 완전케 하는 고난의 힘을 받아들인다. 그는 이 모든 확신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생사의 위협을 당할 때 항상 부활을 확신한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이유는 장차 받을 중하고 영원한 영광 때문이다. -9장, p. 123-124
자료출처. 생명의 말씀사 life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