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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8월 (1595년 8월)
8월 초1일 [양력 9월 4일]<신축> 비바람이 세게 일었다.
어사(신식)와 같이 식사하고, 곧 배로 내려가 순천 등의 다섯 고을의 배를 점검했다. 저물어
서 나는 어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같이 이야기했다.
8월 초2일 [양력 9월 5일]<임인> 흐렸다.
우도의 전선을 점고한 뒤에 그대로 남도포 막사에서 머물렀다. 나는 나가 앉아 충청수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8월 초3일 [양력 9월 6일]<계묘> 맑다.
어사는 느지막이 경상도 진으로 가서 점고했다. 저녁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같이 이야기하
는데, 몸이 불편하여 곧 돌아왔다.
8월 초4일 [양력 9월 7일]<갑진> 비가 내렸다.
어사가 이곳에 왔기에, 여러 장수들을 모아 종일 이야기하고서 헤어졌다.
8월 초5일 [양력 9월 8일]<을사>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사와 작별을 이야기하러 충청수사 있는 곳에 이르러 어 사를 전별(전별)하고 나니,
조방장 정응운(정응운)이 아뢰고 돌아 갔다.
8월 초6일 [양력 9월 9일]<병오> 비가 흠뻑 쏟아졌다.
우수사·경상수사·두 조방장이 모여 함께 종이 이야기하고서 헤 어졌다.
8월 초7일 [양력 9월 10일]<정미> 비가 내렸다.
아침에 아들 울(울)과 허주(허주) 및 현덕린(현덕린)·우후(이몽 구)가 같이 배를 타고 나갔
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충청수사가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표신을 가진 선전관 이광후
(이광후)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다. "원수가 삼도 수군을 거느리고 바로 적의 소굴로 들
어가라"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이야기하며 밤을 새웠다.
8월 초8일 [양력 9월 11일]<무신> 비가 내렸다.
선전관이 나갔다. 경상수사·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하다가 같이 저녁밥을 먹
었다. 날이 저물어서 저마다 돌아갔다.
8월 초9일 [양력 9월 12일]<기유>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8월 초10일 [양력 9월 13일]<경술> 맑다.
몸이 불편한 것 같다. 홀로 다락 위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 난다. 저녁나절에 대
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 다섯 순을 쏘았다. 정제(정제)와 결성현감(손안국)이
같이 배로 나갔다.
8월 11일 [양력 9월 14일]<신해> 비가 오락가락 했다.
종 한경(한경)도 본영으로 갔다. 배영수(배영수)·김응겸(김응겸) 이 활쏘기를 겨루었다. 김
응겸(김응겸)이 이겼다.
8월 12일 [양력 9월 15일]<임자> 흐렸다.
일찍 나가 공무를 봤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 다. 김응겸(김응겸)이 경상
우수사에게 갔다가 돌아올 때에 우수사 (이억기)에게 들러서 뵙고 활쏘기 겨루기를 했는데,
배영수(배영 수)가 또 졌다고 했다.
8월 13일 [양력 9월 16일]<계축> 종일 비가 내렸다.
장계 초고를 고치고 공문을 결재했다. 독수(독수)가 왔는데, 도양 장(고흥군 도양면)의 둔전
치는 일에 이기남(이기남)이 하는 짓이 괴상한 것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우후가 달려가 부
정사실을 조사하도록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8월 14일 [양력 9월 17일]<갑인> 종일 비가 내렸다.
진해현감 정항(정항) 및 조계종(조계종)(영등포만호)이 와서 이야기했다.
8월 15일 [양력 9월 18일]<을묘>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우수사(이억기)·가리포첨사(이응표)·임 치현감(홍견) 등 여러 장수
들이 함께 왔다. 오늘 삼도의 사수와 본도 잡색군을 먹이고, 종일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같이
취했다. 오늘 밤 으스름 달빛이 다락을 비치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새도록 휘파람불며 시
를 읊었다.
8월 16일 [양력 9월 19일]<병진> 궂은비가 걷히지 않고 종일 부슬부슬 내렸다.
생각이 몹시 어지럽다. 두 조방장과 같이 이야기했다.
8월 17일 [양력 9월 20일]<정사> 가랑비가 오고 샛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김응겸(김응겸)을 불러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두 조방장과 함
께 이야기하고 활 열 순을 쏘았다.
8월 18일 [양력 9월 21일]<무오>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신·박 두 조방장이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8월 19일 [양력 9월 22일]<기미> 날씨가 활짝 개었다.
두 조방장 및 방답첨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밤 열 시쯤에 조카 봉·아들 회·울(울)이 들어
왔다."체찰사(이원익)가 21일 에 진주성에 이르러 군사에 관한 일을 묻고자 체찰사의 군관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8월 20일 [양력 9월 23일]<경신> 맑다.
종일 체찰사의 전령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경상수사 권준(권준)· 우수사(이억기)· 발
포만호(황정록)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밤 열 시쯤에 전령이 들어왔다. 한밤 자정에 배를 타
고 곤이도(통 영시 산양면 곤리도)에 이르렀다.
8월 21일 [양력 9월 24일]<신유> 흐렸다.
저녁나절에 소비포(고성군 하이면 덕명포) 앞바다에 이르니, 전라 순찰사(홍세공)의 군관 이
준(이준)이 공문을 가지고 왔다. 강응표 (강응표)·오계성(오계성)이 같이 와서 함께 한 시
간 남짓이 이야 기했다. 경수(이억기의 자)·권언경(권언경)·자윤(박종남의 자)· 언심(신호
의 자)에게 편지를 썼다. 저물 무렵에 사천 땅 침도(침 도: 삼천포 신수도?)에 이르러 잤다.
밤에 몸이 몹시 차갑고 마음이 쓸쓸하다.
8월 22일 [양력 9월 25일]<임술> 맑다.
이른 아침에 각종 공문을 만들어 체찰사에게 보냈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걸어서 사천현에
이르렀다. 오후에 진주 남강 가에 이 르니, 체찰사는 벌써 진주에 들어왔다고 했다.
8월 23일 [양력 9월 26일]<계해> 맑다.
체찰사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사이에 백성을 위해 서 고통을 덜어주어야겠다
는 생각이 많이 났다. 호남순찰사는 헐 뜯어 말하는 기색이 많으니, 한탄스럽다. 저녁나절에
나는 김응서 (김응서)와 같이 촉석루에 이르러 장병들이 패전하여 죽은 곳을 보니,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윽고 체찰사가 나더러 먼저 가라고 하므로 배를 타고 소비포로 돌아와
정박했다.
8월 24일 [양력 9월 27일]<갑자> 맑다.
새벽에 소비포 앞에 이르니, 고성현령 조응도(조응도)가 와서 알 현하고서 소비포 앞바다에
서 잤다. 체찰사·부사(김륵)과 종사관 (노경임)도 잤다.
8월 25일 [양력 9월 28일]<을축> 맑다.
일찍이 식사를 한 뒤에 체찰사와 부사·종사관은 함께 내가 탄 배를 타고, 오전 여덟 시쯤
에 출항하여, 같이 서서 여러 섬들과 여러 진을 합병할 곳과, 또 접전할 곳 등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면서 종일 의논했다.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는 평산포 (남면 평산리)에 합
하고, 상주포(상주면 상주리)는 미조항(미조면 미조리)에 합하고, 적량(창선면 진동리 적량)
은 삼천포(사천시 삼 천포)에 합하고, 소비포(고성군 하이면 덕명포)는 사량(통영시 사 량면
금평리)에 합하고, 가배량(거제시 도산면 노전동)은 당포(통 영시 산양면 삼덕리)에 합하고,
지세포(일운면 지세포리)는 조라 포(일운면 구조라리)에 합하고, 제포(진해시 웅천 1동 제덕
동)는 웅천에 합하고, 율포(거제시 장목면 대금리)는 옥포(거제시 장승 포시 옥포동)에 합하
고, 안골포(진해시 안골동)는 가덕진(부산시 강서구 천가동)에 합치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진중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이 교서에 숙배하고 공사례를 한 다음 헤어졌다.
8월 26일 [양력 9월 29일]<병인> 맑다.
저녁에 부사(김륵)와 서로 만나 은밀히 이야기했다.
8월 27일 [양력 9월 30일]<정묘> 맑다.
군사 5480 명에게 밥을 먹였다. 저녁에 상봉에 이르러 적진이 있는 곳과 적이 다니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바람이 몹시 사납다. 밤을 틈타 도로 내려왔다.
8월 28일 [양력 10월 1일]<무진>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 및 부사·종사관이 같이 다락 위에 앉아 여 러 가지 폐단되는 점을 의
논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배로 내려와 서 배를 타고 나갔다.
8월 29일 [양력 10월 2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공무를 봤다. 경상수사가 체찰사 있는 곳에서 왔다.
을미년 9월 (1595년 9월)
9월 초1일 [양력 10월 3일]<경오>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우후가 도양장에서 와서 영에 이르러 공문을 가
치고 와 바치는데, 정사립(정사립)을 해 치는 뜻이 많이 있으니 우습다. 종사관(류공진)도
병을 돌아가서 조리하겠다고 하므로 결재해 보냈다.
9월 초2일 [양력 10월 4일]<신미> 맑다.
새벽에 지휘선(상선)을 출항시켰다. 재목을 끌어내릴 군사 1283 명에게 밥을 먹이고서 끌고
내려왔다. 충청수사·우수사·경상수 사·두 조방장과 함께 이르러 종일 이야기하고서 헤어
졌다.
9월 초3일 [양력 10월 5일]<임신> 맑으며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우 여필과 아들 울(울)과 유헌(유헌)이 돌아갔다. 강응호(강응 호)가 도양장 추수할 일로
같이 돌아갔다. 정항(정항)·우수(우 수)·이섬(이섬)이 정탐하고 들어와서, "영등포 적진은
초이틀에 소굴을 비우고 누각과 모든 소굴을 불살라 버렸다."고 했다. 웅천 의 적에게 투항
하여 붙었던 사람 공수복(공수복) 등 열일곱 명을 달래어 왔다.
9월 초4일 [양력 10월 6일]<계유)맑다.
경상수사가 와 보기를 청하여 종일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아우 여필·아들 울(울) 등이 잘
갔는지 알 수 없어 몹시 궁금하다.
9월 초5일 [양력 10월 7일]<갑술>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 권준(권준)이 소고기를 조금 보냈다. 충청수사 ·조방장 신호(신호)와 같이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신 조방장·충 청수사 선거이(선거이)와 함께 같은 배로 경상수사 있
는 곳으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이 날 체찰사의 공 문이 왔는데, 순
천·광양·낙안·흥양이 갑오년(1594년)의 전세 (전세)를 실어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답장했다.
9월 초6일 [양력 10월 8일]<을해>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충청수사가 술을 바치므로 우수사·두 조방장이 와서 같이 마셨다. 송덕일이 들어왔다.
9월 초7일 [양력 10월 9일]<병자>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경상수사가 왔다. 충청도 병영의 배와 서산·보 령의 배를 내어 보냈다.
9월 초8일 [양력 10월 10일]<정축> 맑다.
나라제삿날(세조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회와 송덕일이 같은
배로 나갔다. 충청수사·두 조방 장이 와서 이야기했다.
9월 초9일 [양력 10월 11일]<무인> 맑다.
우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일제히 모여서 영내의 군사들에게 떡 한 섬을 나누어 주고 초저녁
에 끝내고 돌아갔다.
9월 초10일 [양력 10월 12일]<기묘> 맑다.
오후에 나는 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과 함께 우수사 있는 데로 가 서 같이 이야기하고 밤에
돌아왔다.
9월 11일 [양력 10월 13일]<경진> 흐렸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못했다.
9월 12일 [양력 10월 14일]<신사> 흐렸다.
아침에 충청수사 및 두 조방장을 청해다가 같이 아침밥을 먹고 늦게 끝내고 돌아갔다. 저녁
에 경상수사와 우후 및 정항(정항)이 술을 가지고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서는 밤이 늦어서야
헤어졌다.
9월 13일 [양력 10월 15일]<임오> 맑다.
다락에 기대어 혼자 앉았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9월 14일 [양력 10월 16일]<계미>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경상우수사가 같이 와서 이별하는 술잔을 들고서 밤
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수사 선거이(선거이)와 작별하며 준 시는 이러하다. 북쪽에 갔을 때
도 같이 일하고, 남쪽에 와서도 죽사리 같이 하더 니, 오늘 밤 이 달 아래 한 잔을 나누면,
내일이면 우리 서로 헤어져야 하리.
9월 15일 [양력 10월 17일]<갑신> 맑다.
수사 선거이(선거이)가 와서 아뢰고 돌아가는데, 또 이별의 잔을 들고나서 헤어졌다.
9월 16일 [양력 10월 18일 ]<을유> 맑다.
나가 공무를 봤다. 장계 봉하는 것을 감시했다. 이 날 저물 무렵 일식을 하여 밤이 되어서야
밝아졌다.
9월 17일 [양력 10월 19일]<병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서울에 편지를 써 보냈다. 김희번(김희번)이 장계를 가지고 나갔다. 유자 서
른 개를 영의정에게 보냈다.
9월 18일 [양력 10월 20일]<정해>
저녁나절에 조방장 정응운(정응운)이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9월 19일 [양력 10월 21일]<무자> 맑다.
조방장 정응운(정응운)이 들어왔다가 돌아갔다.
9월 20일 [양력 10월 22일]<기축>
밤 두 시쯤에 둑제를 지냈다. 사도첨사 김완(김완)이 헌관으로 행사했다. 아침에 우수사가
와서 봤다.
9월 21일 [양력 10월 23일]<경인> 맑다.
박·신 두 조방장과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박 조방장을 작별하 려 했으나, 그대로 경상수사
를 작별하고서 갔다가 그만 날이 저 물었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저녁에 이종호(이종호)가
들어왔다. 다만 목화만 가져 왔기로 모두 나누어 주었다.
9월 22일 [양력 10월 24일]<신묘>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박자윤(종남의 자) 영감이 나갔다. 경상우 수사도 와서 전별했다.
9월 23일 [양력 10월 25일]<임진> 맑다.
나라제삿날(태조 신의왕후 한씨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웅천 사람인데 사로잡혔던
박록수(박록수)·김희수(김희수)가 와 서 알현하고 겸하여 적정을 보고했다. 그래서 무명 한
필 씩을 나누어 주어 보냈다.
9월 24일 [양력 10월 26일]<계사> 맑다.
아침에 각처에 편지 열 통 남짓 썼다. 아들 울(울)·면( )과 방 익순(방익순) 및 온개(온개)
등과 함께 나갔다. 이 날 저녁에 우 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9월 25일 [양력 10월 27일]<갑오> 맑다.
오후 두 시쯤에 녹도의 하인이 실수로 불을 내어 대청 다락방 등이 모두 타버렸다. 군량·
화약·군기 등의 창고에는 불이 붙 지 않았으나, 다락 위에 있던 장전과 편전 이백 여 개가
모두 타 버렸으니, 애석하다.
9월 26일 [양력 10월 28일]<을미> 맑다.
홀로 온 종일 배 위에 앉아 있다가 앉았다 누웠다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언량(귀선장)
이 재목을 깎아 가지고 왔다.
9월 27일 [양력 10월 29일]<병신> 흐렸다.
안골포 사람으로 왜적에게 붙었던 자 이백서른 여 명이 왔다. 배는 스물두 척이라고 우수
(우수)가 와서 보고했다. 식사를 한 뒤 에 불난 데로 올라가 집 지을 만한 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9월 28일 [양력 10월 30일]<정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아들 회·울(울)
이 기별을 듣고 들어왔다.
9월 29일 [양력 10월 31일]<무술> 맑다.
9월 30일 [양력 11월 1일]<기해> 맑다.
을미년 10월 (1595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1월 2일]<경자> 맑다.
조방장 신호(신호)와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그대로 작별하는 술자리를 베풀었다. 저녁
나절에 신(신) 조방장이 나갔다.
10월 초2일 [양력 11월 3일]<신축> 맑다.
대청에 대들보를 올렸다. 또 지휘선(상선)을 연기로 그을렸다. 우 수사·경상수사 및 이정충
(이정충)이 와서 봤다.
10월 초3일 [양력 11월 4일]<임인> 맑다.
해평군 윤근수(윤근수)의 공문을 구례의 유생이 가지고 왔다. "김덕령(김덕령)과 전주의 김
윤선(김윤선) 등이 죄없는 사람을 쳐 죽이고 수군 진영으로 도망하여 진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을 수색해 보니 9월 10일경에 보리씨를 바꿀 일로 진에 왔다가 곧 돌아갔
다고 했다.
10월 초4일 [양력 11월 5일]<계묘> 맑다.
10월 초5일 [양력 11월 6일]<갑진>
이른 아침에 다락에 올라가 역사(역사)하는 것을 보고서 다락 위 바깥쪽 서까래에 흙을 치
올려 발랐다. 투항해온 왜놈들로 하여금 물건 나르는 일을 시켰다.
10월 초6일 [양력 11월 7일]<을사>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 및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저녁에 웅천현 감(이운룡)이 왔다. 그 편
에 명나라 사신(양방형)이 부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 날 사로잡혔던 사람
스물네 명이 나왔다.
10월 초7일 [양력 11월 8일]<병오> 맑다.
화창하기가 봄날 같다. 임치첨사(홍견)가 와서 봤다.
10월 초8일 [양력 11월 9일]<정미> 맑다.
조카 완(완)이 들어왔다. 진원(진원)과 조카 해의 편지도 왔다.
10월 초9일 [양력 11월 10일]<무신> 맑다.
각처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대청을 짓는 것을 다 마쳤다. 우우후 (이정충)가 와서 봤다.
10월 초10일 [양력 11월 11일]<기유> 맑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아울러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
다.
10월 11일 [양력 11월 12일]<경술> 맑다.
일찍 다락 방으로 올라가 종일 역사(역사)하는 것을 보았다.
10월 12일 [양력 11월 13일]<신해> 맑다.
일찍 다락 위로 올라가 역사(역사)하는 것을 보았다. 서쪽 행랑을 만들어 세웠다. 저녁에 송
홍득(송홍득)이 들어왔는데, 미친 듯이 망녕된 말이 많았다.
10월 13일 [양력 11월 14일]<임자> 맑다.
일찍 새로 지은 다락에 올라가 대청에 흙을 치올려 붙이는데 투항해 온 왜놈들에게 시켰다.
송홍득(송홍득)이 군관으로 따라 나갔다.
10월 14일 [양력 11월 15일]<계축> 맑다.
우수사·경상수사·사도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 등이 와서 봤다.
10월 15일 [양력 11월 16일]<갑인>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저녁에 달빛을 타고 우수사 이억기에게 가서 전별했다. 경상수사·
미조항첨사·사도첨사도 왔다.
10월 16일 [양력 11월 17일]<을묘> 맑다.
새벽에 새로 지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우수사·임치첨사·목포 만호 등이 나갔다. 그대로
새 다락방에서 잤다.
10월 17일 [양력 11월 18일]<병진> 맑다.
아침에 가리포첨사·금갑도만호가 와서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진주의 하응구(하응구)· 류
기룡(유기룡) 등이 계원미(계원미) 스무 섬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부안의 김성업(김성업)·
미조항첨사 성윤문(성윤문)이 와서 봤다. 정항(정항)이 아뢰고 돌아갔다.
10월 18일 [양력 11월 19일]<정사> 맑다.
경상수사 권준(권준)과 우우후(이정충)이 와서 봤다.
10월 19일 [양력 11월 20]<무오> 맑다.
아들 회( )·면( )이 나갔다. 송두남(송두남)이 장계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 김성업(김성업)
도 돌아갔다. 이운룡(이운룡)이 와서 봤다. 계향유사(양식 잇대는 책임자) 하응문(하응문)·
류기룡(유 기룡)이 나갔다.
10월 20일 [양력 11월 21일]<기미> 맑다.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금갑도만호·남도포만호·사도첨사·여 도만호가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저물 무렵에 영등포만 호도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갔다. 이 날 밤바람은
몹시도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은 대낮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리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민다.
10월 21일 [양력 11월 22일]<경신> 맑다.
이설(이설)이 휴가 신청을 했으나 허가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이정충(이정충)·금
갑도만호 가안책(가안책)·이진권관 등 이 와서 봤다. 바람이 몹시 싸늘하여 잠을 이룰 수
없어 공태원 을 불러 왜적의 정형을 물었다.
10월 22일 [양력 11월 23일]<신유> 맑다.
가리포첨사·미조항첨사·우후 등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희립(송희립)· 박태수(박태수)·
양정언(양정언)이 들어왔다. 전문(전문)을 모시고 갈 유생도 들어왔다.
10월 23일 [양력 11월 24일]<임술> 맑다.
아침에 전문(전문)을 보낸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10월 24일 [양력 11월 25일]<계해>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하응구(하응구)도 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박태수
(박태수)·김대복(김대복)이 아뢰고 돌아갔다.
10월 25일 [양력 11월 26일]<갑자> 맑다.
가리포첨사·우후·금갑도만호·회령포만호·녹도만호 등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저녁에 정
항(정항)이 아뢰고서 돌아가므로 전별했 다. 띠풀을 베어 올 일로 이상록(이상록)· 김응겸
(김응겸)· 하천수(하천수)· 송의련(송의련)· 양수개(양수개) 등이 군사 여든 명을 거느리
고 나갔다.
10월 26일 [양력 11월 27일]<을축> 맑다.
임달영(임달영)이 왔다고 한다. 불러서 제주도 가는 일을 물었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송홍
득(송홍득)·송희립(송희립) 등이 사냥 하러 갔다.
10월 27일 [양력 11월 28일]<병인> 맑다.
우우후·가리포첨사가 왔다.
10월 28일 [양력 11월 29일]<정묘> 맑다.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봤다. 띠풀을 베러 갔던 배가 들어왔다. 밤에 비가 오고 우레가 여
름철 같이 치니 괴상한 일이다.
10월 29일 [양력 11월 30일]<무진> 맑다.
가리포첨사(이응표)·이진권관가 돌아갔다. 경상수사(권준)·웅천현감(이운룡)· 천성보만호
(윤홍년)도 왔다.
을미년 11월 (1595년 11월)
11월 초1일 [양력 12월 1일]<기사>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가 나갔다. 함평·진도·무장
의 전선을 내어 보냈다. 김희번(김희 번)이 서울에서 내려 와서 조정의 공문과 영의정의 편
지를 바쳤다. 투항해 온 왜놈들에게 술을 먹였다. 오후에 방답첨사와 활 일 곱 순을 쏘았다.
11월 초2일 [양력 12월 2일]<경오> 맑다.
곤양군수 이수일(이수일)이 와서 봤다.
11월 초3일 [양력 12월 3일]<신미> 맑다.
황득중(황득중)이 들어와서, "왜선 두 척이 청등(거제시 사등면 청곡리)을 거쳐 흉도(거제시
동부면)에 이르렀다가 해북도(통영시 용남면)에 정박하여 불을 지르고 돌아가서는 춘원포
(통영시 광도면 예승포) 등지에 이르렀다."고 전하고서 그는 새벽에 지도로 돌아갔다.
11월 초4일 [양력 12월 4일]<임신> 맑다.
새벽에 이종호(이종호)·강기경(강기경) 등이 들어와서 봤다. 변 존서(변존서)의 편지와 조
카 봉·해 형제가 본영에 이르 렀다고 했다.
11월 초5일 [양력 12월 5일]<계유> 맑다.
남해현령·금갑도만호·남도포만호·어란포만호·회령포만호 및 정담수(정담수)가 와서 봤
다. 방답첨사·여도만호를 불러 와서 이야기했다.
11월 초6일 [양력 12월 6일]<갑술> 맑다.
송희립(송희립)이 들어왔다. 띠풀 사백 동·칡 일백 동을 베어서 실어 왔다.
11월 초7일 [양력 12월 7일]<을해> 맑다.
하동현감(최기준)이 교유서에 숙배했다. 경상우수사가 순찰사 있 는 곳에서 왔다. 미조항첨
사·남해현령도 왔다.
11월 초8일 [양력 12월 8일]<병자> 맑다.
새벽에 조카 완(완)과 종 경(경)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김응겸(김응겸)· 경상도
순찰사의 군관 등이 왔다.
11월 초9일 [양력 12월 9일]<정축> 맑다.
여도만호 김인영(김인영)이 들어왔다.
11월 초10일 [양력 12월 10일]<무인> 맑다.
새벽에 경상도순찰사의 군관이 돌아갔다.
11월 11일 [양력 12월 11일]<기묘> 맑다.
새벽에 선조임금의 탄신 축하례를 행했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 다. 주부 변존서(변존서)·
이수원(이수원)·이원룡(이원룡) 등이 왔는데, 그 편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
고 다행이다. 저녁에 이의득(이의득)이 와서 봤다. 금갑도만호·회령포만호가 나갔다.
11월 12일 [양력 12월 12일]<경진> 맑다.
발포가장(발포가장)으로 이설(이설)을 정하여 보냈다.
11월 13일 [양력 12월 13일]<신사> 맑다.
도양장에서 거둔 벼와 콩이 팔백스무 섬이었다.
11월 14일 [양력 12월 14일]<임오> 맑다.
11월 15일 [양력 12월 15일]<계미> 맑다.
아버지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앉았으니 그리워서 마음을 달랠 길 없다.
11월 16일 [양력 12월 16일]<갑신> 맑다.
투항해온 여몬레니(여문련이)·야지로(야시로) 등이 와서,"왜놈들 이 도망가려 한다."고 보고
했다. 그래서 우우후를 시켜 잡아다가 그 주모자 준시(준시) 등 두 명의 머리를 베었다. 경
상수사·우후 ·웅천현감·방답첨사·남도포만호·어린포만호·녹도만호가 왔 는데, 녹도만
호는 곧 내어 보냈다.
11월 17일 [양력 12월 17일]<을유> 맑다.
11월 18일 [양력 12월 18일]<병술> 맑다.
어응린(어응린)이 와서,"소서행장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바다로 나갔는데 거처를 알 수 없
다."고 전했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전 령하여 이를 수륙으로 정탐케 했다. 저녁나절에 하
응문(하응문)이 와서 군량 잇대는 일로 보고했다. 조금 있으니 경상수사·웅천현 감 등이 와
서 의논하고 갔다.
11월 19일 [양력 12월 19일]<정해> 맑다.
이른 아침에 도망갔던 왜놈이 제발로 와서 현신했다. 밤 열 시쯤 에 조카 분(분)·봉·해와
아들 회가 들어왔다. 어머 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하응문(하응문)이 돌
아갔다.
11월 20일 [양력 12월 20일]<무자> 맑다.
거제현령·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11월 21일 [양력 12월 21일]<기축> 맑다.
된바람이 종일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송희립)을 내 보내어 견내량에 있는 왜적선을 찾아내
게 했다. 이 날 저녁에 반대좀(벽어) 일만 삼천 이백 마흔 두름을 곡식과 바꾸려고 이종호
(이종호)가 받아 갔다.
11월 22일 [양력 12월 22일]<경인> 맑다.
새벽에 동지 하례로 북향하여 임금께 숙배했다. 저녁나절에 웅천현감· 거제현령· 안골포
만호· 옥포만호· 경상우후 등이 왔다. 변존서(변존서)와 조카 봉이 모두 갔다.
11월 23일 [양력 12월 23일]<신묘>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종호(이종호)가 하직하고 나갔다. 이 날 견내량 순찰하는 일로 경상수사를 정하여 보냈으
나, 바람이 몹시 사나와 출항하지 못했 다.
11월 24일 [양력 12월 24일]<임진> 맑다.
순라선이 나갔다가 밤 열 시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변익성(변익 성)이 곡포권관이 되어 왔
다.
11월 25일 [양력 12월 25일]<계사>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곡포권관의 공식 신고를 받았다. 저녁나절에 경 상우후가 와서 투항해온 왜
놈 여덟 명이 가덕도에서 왔다고 전했 다. 웅천현감·우우후·남도포만호·방답첨사·당포
만호가 와서 봤다. 조카 분(분)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 열 시쯤이 되었다.
11월 26일 [양력 12월 26일]<갑오> 아침에는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광양도훈도가 복병하러 나갔 다가 도망간 자들을 잡아와
서 처벌했다. 오정 때에 경상수사가 와서 투항한 왜놈 여덟 명 및 그 인솔자 김탁(김탁) 등
두 명이 왔다. 그래서 술을 먹이고 김탁(김탁) 등에게는 각각 무명 한 필 씩을 주어서 보냈
다. 저녁에 류척(유척)과 림영(임영) 등이 왔다.
11월 27일 [양력 12월 27일]<을미> 맑다.
김응겸(김응겸)이 두 해 먹은 나무를 베어 올 일로 자귀장이(이 장목수) 다섯 명을 데리고
갔다.
11월 28일 [양력 12월 28일]<병신> 맑다.
나라제삿날(예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류척(유척)과 림영(임영)이 돌아갔다. 조
카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이 깊어졌다.
11월 29일 [양력 12월 29일]<정유> 맑다.
나라제삿날(인종 인성왕후 박씨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1월 30일 [양력 12월 30일]<무술> 맑다.
남해의 투항해온 왜놈 야에몬(야여문:미우위문)·신지로(신시로: 신차랑) 등이 왔다. 경상수
사가 와서 봤다. 체찰사의 전세(전세)로 군량 서른 섬을 경상수사가 받아 갔다.
을미년 12월 (1595년 12월)
12월 초1일 [양력 12월 31일]<기해>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12월 초2일 [양력 1월 1일]<경자> 맑다.
거제현령·당포만호·곡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술을 먹였더니 취하여 돌아갔다.
12월 초3일 [양력 1월 2일]<신축> 맑다.
12월 초4일 [양력 1월 3일]<임인> 맑다.
순천 2호선과 낙안 1호선의 군사를 점검하고 내어 보냈으나 바람 이 순조롭지 못하여 출항
하지 못했다. 조카 분(분)·해가 본 영으로 갔다. 황득중(황득중)·오수(오수) 등이 청어 칠
천 여 두 름을 싣고 왔다. 그래서 김희방(김희방)의 곡식 사러 가는 배에 계산하여 주었다.
12월 초5일 [양력 1월 4일]<계묘> 맑으나 바람이 순조롭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것 같아 종일 나가지 않았다.
12월 초6일 [양력 1월 5일]<갑진> 맑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저녁에 아들 울(울)이 들어왔 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
니, 기쁘고 만번 다행이다.
12월 초7일 [양력 1월 6일]<을사> 맑으나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다.
웅천현감·거제현령·평산포만호·천성보만호 등이 와서 보고 갔다. 청주 이희남(이희남)에
게 답장을 써 부쳤다.
12월 초8일 [양력 1월 7일]<병오> 맑다.
우우후·남도포만호가 와서 봤다. 체찰사의 전령이 왔는데, 가까운 시일안으로 만나자는 것
이었다.
12월 초9일 [양력 1월 8일]<정미> 맑다.
몸이 불편하여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거제현령(안위)·안골포만호 우수(우수)가 와서 왜적
들이 물러갈 뜻이 없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응구(하응구)도 왔다.
12월 초10일 [양력 1월 9일]<무신> 맑다.
충청도순찰사(박홍로) 및 충청수사(선거이)에게 공문을 작성하여 보냈다.
12월 11일 [양력 1월 10일]<기유>맑다.
조카 해( )·분(분)이 탈없이 본영에 이르렀다는 편지를 보니 기쁘고 다행이지만, 그 고생스
러웠던 형상을 무었이라 말로 나타낼 수가 없다.
12월 12일 [양력 1월 11일]<경술>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우후도 왔다.
12월 13일 [양력 1월 12일]<신해> 맑다.
왜놈 옷 쉰 벌과 연폭(연폭)(이 곳에 원문의 글이 빠졌음). 초저 녁에 종 돌세(돌세)가 와서
말하기를, "왜선 세 척과 소선 한 척 이 등산(마산시 합포구 진동면) 바깥바다에서 합포에
와 정박해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사냥하는 왜놈인 것 같아 곧 경상수사·방답첨사·우
우후에게 찾아 보게 했다.
12월 14일 [양력 1월 13일]<임자> 맑다.
경상수사 및 여러 장수들이 합포로 나아가 왜놈들을 타일렀다. 미조항첨사 및 남해현령·하
동현감이 들어왔다.
12월 15일 [양력 1월 14일]<계축> 맑다.
체찰사에게로 갔던 진무(진무)가 와서, "18일에 삼천포에서 만나 자"고 하므로 달려가기로
했다. 초저녁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12월 16일 [양력 1월 15일]<갑인> 맑다.
새벽 네 시쯤에 출항하여 달빛을 타고 당포(통영시 산양면 삼덕 리) 앞바다에 이르러 아침
밥을 먹고 사량도(통영시 사량면) 뒷바 다에 이르렀다.
12월 17일 [양력 1월 16일]<을묘> 비가 뿌렸다.
삼천포진 앞에 이르니, 체찰사(이원익)는 사천에 이르렀다고 한 다.
12월 18일 [양력 1월 17일]<병진>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삼천포진으로 나아갔다. 오정 때에 체찰사가 보(보)에 이르러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초저녁에 체찰사가 또 같이 이야기하자고 청하므로 이야기하는 데, 밤 두 시
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12월 19일 [양력 1월 18일]<정사>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군사들에게 음식을 실컷 먹이고 난 뒤에 체찰사가
떠나갔다. 나는 배로 내려오니 바람이 몹시 사나와 출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서 밤을
지냈다.
12월 20일 [양력 1월 19일]<무오> 맑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 1596년(병신) 1월 1일의 바로 앞에 한 장으로 다섯 줄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다.)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임정로) 1 마리, 박
사명(박사명)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정명열)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장첩)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정경달)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송한).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
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없음)
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무진>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오위의 정6품
의 군사직이며 부사직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
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다. 부장(부
장) 이계(이계)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경오>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 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 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
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
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신미>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 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
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 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거
망포)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 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송한련)·송한(송한)
등이 말하기를, 청어(청어) 천 여 마 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기효근)과 김축(김축)이 휴가
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임신>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 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
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성윤문)·우후 이정
충(이정충) ·웅천현감 이운룡(이운룡)·거제현령 안위(안위)·안골포만호 우 수(우수)·옥
포만호 이담(이담)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 다. 이몽상(이몽상)도 경상수사 권준(권
준)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계유> 비가 내렸다.
오수(오수)는 청어(청어)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박춘양)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
데, 하천수(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렸 다. 황득중(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갑술>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이영남)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권삽)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권
준)·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권삽)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
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애산)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
만호 우수(우수)·공 태원(공태원)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
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을해>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
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
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
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심안둔:도진의홍)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병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오수)가 청어(청어)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하 천수)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정축>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
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
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무인>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
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 도 수 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
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기묘>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
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 이 억세게 퍼
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 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 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
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
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 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
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
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 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
이 와서 거제 금이 포(금이포)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경진>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
균관의 학 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 으니, 마
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신홍수)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
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신사>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정사립)·
김대복(김대복)이 들어왔다. 조기(조 기)·김숙(김 )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연
안옥)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 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임오>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
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 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
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
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계미>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
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갑신>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변존서)·조카 분(분)·김숙(김 )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성윤문)
과 변익성 (변익성)이 와서 보고느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강대수)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김)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경)
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 )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을유>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
격 심유 경(심유경)(심유경)이 행장(소서행장)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
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
에 들 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심유경)과 소서행장(소서행장)· 현소
(현소)· 정성(사택정성)· 소서비(소서비 :내등 여안)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
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박자방) 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정해>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무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 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
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
절에 대 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기축>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 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
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
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경인>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
인복(김 인복)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완) 및 최대성(최대성)·신여윤(신여윤)·박 자방(박자방)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 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종 경(경)도 왔다. 종 금(김)은 애수(애
수)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한성)·공석(공석)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신묘>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 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 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임진>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계사>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갑오>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
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 (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
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진무)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을미>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
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병신>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김대복)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
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정유>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
(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이희남)이 종 네 명과 준복
(준복) 이 들어왔다.
(** 1596년(병신) 1월 1일의 바로 앞에 한 장으로 다섯 줄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다.)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임정로) 1 마리, 박
사명(박사명)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정명열)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장첩)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정경달)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송한).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
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없음)
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무진>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오위의 정6품
의 군사직이며 부사직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
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다. 부장(부
장) 이계(이계)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경오>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 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 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
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
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신미>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 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
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 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거
망포)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 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송한련)·송한(송한)
등이 말하기를, 청어(청어) 천 여 마 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기효근)과 김축(김축)이 휴가
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임신>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 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
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성윤문)·우후 이정
충(이정충) ·웅천현감 이운룡(이운룡)·거제현령 안위(안위)·안골포만호 우 수(우수)·옥
포만호 이담(이담)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 다. 이몽상(이몽상)도 경상수사 권준(권
준)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계유> 비가 내렸다.
오수(오수)는 청어(청어)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박춘양)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
데, 하천수(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렸 다. 황득중(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갑술>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이영남)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권삽)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권
준)·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권삽)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
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애산)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
만호 우수(우수)·공 태원(공태원)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
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을해>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
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
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
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심안둔:도진의홍)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병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오수)가 청어(청어)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하 천수)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정축>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
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
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무인>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
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 도 수 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
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기묘>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
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 이 억세게 퍼
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 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 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
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
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 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
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
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 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
이 와서 거제 금이 포(금이포)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경진>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
균관의 학 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 으니, 마
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신홍수)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
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신사>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정사립)·
김대복(김대복)이 들어왔다. 조기(조 기)·김숙(김 )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연
안옥)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 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임오>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
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 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
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
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계미>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
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갑신>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변존서)·조카 분(분)·김숙(김 )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성윤문)
과 변익성 (변익성)이 와서 보고느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강대수)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김)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경)
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 )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을유>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
격 심유 경(심유경)(심유경)이 행장(소서행장)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
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
에 들 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심유경)과 소서행장(소서행장)· 현소
(현소)· 정성(사택정성)· 소서비(소서비 :내등 여안)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
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박자방) 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정해>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무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 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
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
절에 대 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기축>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 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
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
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경인>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
인복(김 인복)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완) 및 최대성(최대성)·신여윤(신여윤)·박 자방(박자방)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 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종 경(경)도 왔다. 종 금(김)은 애수(애
수)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한성)·공석(공석)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신묘>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 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 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임진>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계사>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갑오>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
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 (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
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진무)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을미>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
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병신>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김대복)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
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정유>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
(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이희남)이 종 네 명과 준복
(준복) 이 들어왔다.
병신년 2월 (1596년 2월)
2월 초1일 [양력 2월 28일]<무술>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권숙(권삽)이 이곳에 왔다가 취해서 갔다.
2월 초2일 [양력 2월 29일]<기해> 맑고 따뜻하다.
울(울)과 조기(조기)가 같은 배로 나갔다. 우후도 갔다. 저녁에 사 도첨사가 와서 어사의 장
계에 따라 파면되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곧 장계를 초잡았다.
2월 초3일 [양력 3월 1일]<경자>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혼자 앉아서 자식의 떠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침에 장계를 수정했다. 경
상수사가 와서 봤다. 그 편에 적량만 호 고여우(고여우)가 장담년(장담년)에게 소송을 당하
여 순찰사가 장계를 올려 파면시키려 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둘 무렵 어란만 호가 견내량
복병한 곳에서 보고하기를, "부산의 왜놈 세 명이 성주에서 투항해 온 사람들을 데리고 복
병한 곳에 이르러 장사하 겠다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장흥부사에게 전령하여 내일 새
벽에 가서 타일러 보라고 시켰다. 이런 왜적들이 어찌 장사를 하고자 하겠는가. 우리의 허실
의 정형(정형)을 엿보려는 것이다.
2월 초4일 [양력 3월 2일]<신축>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하여 사도 사람 진무성(진무성)에게 부쳤다. 영의정과 신식(신식) 두 집에
문안 편지도 부쳤다. 저녁나절에 흥 양현감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
다. 여도만호· 거제현령·당포만호·옥포만호도 왔다. 저녁에 장흥부사가 복병한 곳에서 돌
아와 왜놈들이 도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2월 초5일 [양력 3월 3일]<임인>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사도첨사·장흥부사가 일찍 왔다. 그래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권숙(권삽)이 와서 돌아가
겠다고 하므로 종이·먹 두 개와 대 검(패도)을 주어 보냈다. 저녁나절에 삼도의 여러 장수
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는 음식을 먹이고, 겸하여 활을 쏘고 풍악을 잡히다 가 취하여 헤어
졌다. 웅천현감(이운룡)이 손인갑(손인갑)의 애인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과 함
께 가야금을 몇 곡조 들었다. 저녁에 김기실 (김기실)이 순천에서 돌아왔다. 그 편에 안부를
물었더니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고도 다행이다. 우수사의 편지가 왔는데 기한을
늦추자고 하니 우습고도 한탄스럽다.
2월 초6일 [양력 3월 4일]<계묘> 흐렸다.
새벽에 자귀쟁이(이장목수) 열 명을 거제로 보내어 배를 만드는 일을 시켰다. 이 날 침방에
천장 흙이 떨어진 곳이 있어서 수리 했다. 사도첨사 김완(김완)은 조도어사의 장계로써 파면
되었다 는 기별이 또 이르렀다. 본디의 포구(골사도)로 내어 보냈다. 순천별감 유(유)와 군
관 장응진(장응진) 등을 처벌하고 곧 수루로 들어갔다. 송한련(송한련)이 숭어를 잡아서 왔
기에 여도·낙안· 흥양을 불러 같이 찢어 먹었다. 적량 고여우(고여우)가 큰 매를 가지고
왔으나 오른쪽 발가락이 다 얼어서 무지러졌으니 어찌하랴! 초저녁에 잠깐 땀이흘렀다.
2월 초7일 [양력 3월 5일]<갑진> 아침에 흐리다가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좋지 않다. 저녁나절에 나가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장흥부사· 우후· 낙안군수·
흥양현감을 불러 이야기하다가 날이 저 물어서야 헤어졌다.
2월 초8일 [양력 3월 6일]<을사> 맑다.
이른 아침에 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아침에 벚나무 껍질을 마 름질했다. 저녁나절에 손인갑
의 애인이 들어와 한참을 있었다. 오 철(오철)·현응원을 불러 군사에 대한 일을 물었다. 저
녁에 군량 에 대한 장부를 만들었다. 흥양현감이 둔전의 벼 삼백쉰두 섬 을 바쳤다. 하늬바
람이 세게 불어 배를 다니게 할 수가 없었다. 류황을 내보내려 했는데 떠나지 못했다.
2월 초9일 [양력 3월 7일]<병오>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 사 권준(권준)이 와서 이야기
하고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바 람이 잤다. 견내량과 부산의 왜적선 두 척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웅천현감 및우후를 탐색하러 보냈다.
2월 10일 [양력 3월 8일]<정미> 맑고 따사했다.
이 날 일찌기 박춘양(박춘양)이 대를 실어 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태구생의 죄
를 다스렸다. 저녁에 몸소 곳집 짓는 곳을 보았다. 아침에 웅천·우우후가 견내량에서 돌아
와 서, 왜놈들이 겁에 질려 두려워하는 모양을 보고했다. 어두울 무 렵 창녕사람이 술을 가
져왔다.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2월 11일 [양력 3월 9일]<무신>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보성의 계향유사(군 량보급 책임자) 림찬(임찬)이
소금 쉰 섬을 실어 갔다. 임달영(임 달영)이 논산(논산)에서 돌아왔다. 논산(논산)의 편지와
박종 백(박종백)·김응수(김응수)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장흥부사와 우우후가 왔다. 또 낙
안군수와 흥양현감을 불러 활을 쏘았다. 막 해떨어질 무렵 영등포만호가 그 소실을 데리고
술을 들고 와서 권했다. 나이 젊은 계집도 왔는데 놔두고 돌아갔다. 땀을 흘렸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기유>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전 죽)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
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흥양현감도
같이 쏘 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은 초저녁에 돌아갔다.
2월 13일 [양력 3월 11일]<경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강진현감(이극신)이 기일 어긴 죄를 처벌했다. 가리포첨사는
보고하고 늦게 왔으므로 타일러 내보냈 다. 영암군수(박홍장)를 파면시킬 장계를 초잡았다.
저녁에 어란포만호가 돌아갔다. 임달영(임달영)도 돌아갔다. 제주목 사(이경록)에게 청어(청
어)·대구(대구)·화살대(전죽)·곶감 (건시)·삼색부채를 봉하여 보냈다.
2월 14일 [양력 3월 12일]<신해>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동복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
(김덕린)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수사 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 왔다. 새로 지은 곳집에 지
붕을 이 었다. 낙안군수·녹도만호 등을 불러서 떡을 먹었다. 조금 있으 니 강진현감이 와서
인사하므로 위로하고 술을 먹였다. 저녁에 물을 부엌가로 끌여들이는데 물 긷는 수고를 편
하게 했다. 이 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은데 홀로 높은 수루에 기
대어 있으니 마음이 무척 어지럽다. 밤이 깊어서야 잠 자리에 들었다. 흥양의 계향유사 송상
문(송상문)이 와서 쌀과 벼를 합해 일곱 섬 을 바쳤다.
2월 15일 [양력 3월 13일]<임자>
새벽에 망궐례를 하려 했으나, 비가 몹시 내려 마당이 젖었기 때 문에 거행하지 않았다. 어
두울 무렵 전라우도의 투항해 온 왜 놈과 경상도의 투항해 온 왜놈이 같이 짜고 도망갈 꾀
를 낸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령을 내어 알렸다. 아침에 화살대를 가려내어 큰 살대 백열한
개와 그 다음 대 백쉰 네 개를 옥지(옥지)에게 주었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는데, 웅천현감·거제현령·당포 만호·옥포만호·우우후·경상
우후가 아울러 와서 보고 돌아갔 다. 순천 둔전에서 거둔 벼를 내가 직접 보는 앞에서 받아
들이게 했다.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김덕린)·흥양의 계향유사 송상 문(송상문) 등이 돌아
갔다. 저녁에 사슴 한 마리, 노루 두 마리를 사냥하여 왔다. 이 날 밤 달빛은 대낮 같고 물
결은 비단결 같아 자려 해도 잠잘 수가 없었 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마시고 노래했다.
2월 16일 [양력 3월 14일]<계축>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부사·우우후·가리
포첨사가 와서 같이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지난날 승부내기에서 진 편이 한턱 내었는데 몹
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은 너무 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봄철 노곤한 기운이 벌써 이렇구나.
2월 17일 [양력 3월 15일]<갑인> 흐렸다.
나라제삿날(세종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면( )이 본영으로 갔
다. 박춘양(박춘양)과 오수(오수)가 조 기 잡는 곳으로 갔다가 어제의 취기가 아직도 심하니
불안했다. 저녁에 흥양현감이 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 식사를 같이 했 다. 미조항첨사 성윤
문(성윤문)의 문안 편지가 왔는데, "방금 관 찰사(방백)의 공문을 받고 진주성(진성)으로 부
임하게 되어 나아 가 인사드리지 못한다. 자기 대신으로 황언실이 되었다"고 했다. 웅천현감
의 답장이 왔다. 임금의 유서(유서)는 아직 받지 못했다 고 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하늬
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떠나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을 걷잡을 수
가 없다. 아픈 가슴을 말할 수 없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몹시 노곤하다.
2월 18일 [양력 3월 16일]<을묘>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 나절에 체찰사의 비밀 공
문이 세 통 왔다. 그 하나는 제주목에 게 계속하여 후원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등포만
호 조계종(조 계종)을 심문하는 일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도 전선(전 선)을 아직은
독촉하여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저녁에 김국(김 국)이 서울에서 들어와서 비밀 공문 두
통과 역서(역서) 한 건 을 가지고 왔다. 승정원의 기별도 왔다. 황득중(황득중)은 쇠를 싣고
와서 바쳤다. 절(절)이 술을 가지고 왔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2월 19일 [양력 3월 17일]<병진>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면( )이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몰라서 밤새도록 무척 걱정 했다. 이 날 저녁 소문에 낙
안의 군량선이 바람에 막혀 사량에 대었다가 바람이 자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이 날 새벽
에 경상 도의 진(진)에 남아 있는 투항한 왜놈을 이곳에 있는 왜놈 난에 몬(난여문 :남여문)
등을 시켜 묶어 와서 목을 베게 했다. 경상수 사 권준(권준)이 왔다. 장흥부사·웅천현감·
낙안군수·흥양현감 ·우우후·사천현감 등과 같이 부안에서 온 술을 끝까지 다마셔 없앴
다. 황득중(황득중)이 가져온 총통 만들 쇠를 저울로 달아 서 보관했다.
2월 20일 [양력 3월 18일]<정사> 맑다.
일찌기 조계종(조계종)이 현풍수군 손풍련(손풍련)에게서 소송을 당했으므로 서로 마주하여
공술하려고 여기에 왔다가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공문을 적어 나누어 보
냈다. 손만세(손만세)가 사사로이 입대(입대)에 관한 공문을 만들었기에 그 죄를 처벌했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낙안군수·녹도만 호가 같이 왔다. 비가 올 것만 같다. 새벽에
기운이 노곤했다.
2월 21일 [양력 3월 19일]<무오>
궂은비가 새벽부터 세차게 오더니 저녁나절에야 그쳤다. 그래서 나가지 않고 혼자 앉아 있
었다.
2월 22일 [양력 3월 20일]<기미> 맑고 바람이 없다.
일찌기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 있으니, 웅천현감·흥양현감이 와서 봤다. 흥양현감은 몸이
불편하여 먼저 돌아갔다. 우우후·장흥부사·낙안군수·남도포만호·가리포첨사·여도만호
·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나도 활을 쏘았다. 손현평(손현 평)도 와서 몹시 취하여 헤
어졌다. 이 날 밤 땀을 흘렸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노곤하게 한다. 강소작지(강소작지)가 그
물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충청수사가 화살대를 와서 바쳤다.
2월 23일 [양력 3월 21일]<경신> 맑다.
일찍 식사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되어 세 곳간에 백예순일곱 섬을 쌓
았다. 없어진 것이 마흔여덟 섬이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고성현감·하동현감·강진현감·
회령포 만호가 와서 봤다. 하천수(하천수)·이진(이진)도 왔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2월 24일 [양력 3월 22일]<신유> 맑다.
일찍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서, 둔전의 벼를 다시 되는 것을 감 독했다. 우수사가 들어왔다.
오후 네시쯤에 비바람이 세게 일었 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된 수량 백일흔 섬을 곳간에 넣었
다. 없 어진 것이 서른 섬이다. 낙안군수(선의경)가 갈렸다는 기별이 왔다. 방답첨사·흥양현
감이 와서 모였다. 배를 본영으로 보낼려 할 적에 비바람 때문에 그만뒀다. 밤내내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오래도록 노곤하다.
2월 25일 [양력 3월 23일]<임술> 비가 오다가 오정 때에 개었다.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왔다. 나주판관도 왔다. 장흥부사가 와서,
"수군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관 찰사가 방해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진(이진)이 둔전
으로 돌아갔다. 춘절(춘절)·춘복(춘복)·사화(사화)가 본영으로 돌아갔다.
2월 26일 [양력 3월 24일]<계해> 아침에 맑았는데 저물 무렵에는 비가 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여도만호·흥양현감이 와서 영리들 이 백성을 점점 움켜잡는
폐단을 말했다. 극히 해괴한 일이다. 양 정언(양정언)과 영리 강기경(강기경)·이득종(이득
종)·박취(박취) 등을 중죄로 다스리고 곧 경상·전라수사가 있는 영리를 잡아들 이라고 전
령을 내렸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조금있으니,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왜
적선 한 척이 견내량을 거쳐 들어와 해평장에 이를 적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다. 둔
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 서른 섬을 고쳐 일백아흔여덟 섬으로 바로 잡아 서른두 섬이 줄
었다고 했다. 낙안에게 이별 술을 대접해 보냈다.
2월 27일 [양력 3월 25일]<갑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이 날 녹도만호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 아 돌아갔다. 둔전에서 거둬
들인 벼 이백스무 섬을 고쳐서 바로 잡으니 줄은 것이 여러 섬이었다.
2월 28일 [양력 3월 26일]<을축> 맑다.
일찍 침을 맞았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장흥부사와 체찰사의 군관이 이곳에 이르
렀는데, 장흥부사는 종사관이 발행 한 전령으로 자기를 잡아러 온 일 때문에 왔다고 했다.
또 전라도 수군 안에서 우도의 수군이 전라좌·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성
원한다고 했다. 우습다. 조정에서 꾀하는 정책이 이럴 수가 있나! 체찰사가 꾀를 내는 것이
이렇게도 알맹이가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 니 어찌할꼬! 어찌할꼬! 저녁에 거제현
령을 불러 와서 일을 물어보고 나서 돌려 보냈다.
2월 29일 [양력 3월 27일]<병인> 맑다.
아침에 공문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및 경상수
사·장흥부사·체찰사의 군관이 왔다. 경상우도 순찰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2월 30일 [양력 3월 28일]<정묘> 맑다.
아침에 정사립(정사립)으로 하여금 보고문을 써서 체찰사에게 보 냈다. 장흥부사도 체찰사에
게 갔다. 해가 뉘엿할 때 우수사가 보 고하는데, "벌써 바람이 따뜻해졌으니 협동작전할 계
획이 시급하 여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본도(전라우도)로 가고자 한다"는 것이 었다. 그 마음
가짐이 몹시도 해괴하여 그의 군관 및 도훈도에게 곤장 일흔 대를 때렸다. 저녁에 송희립
(송희립)·노윤발(노윤발) ·이원룡(이원룡) 등이 들어왔다. 희립은 또 술을 가지고 왔다. 몸
이 몹시 불편하여 밤새도록 식은 땀을 흘렸다.
병신년 3월 (1596년 3월)
3월 초1일 [양력 3월 29일]<무진>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해남현
감 류형(유형)·임치첨사 홍견(홍견) ·목포만호 방수경(방수경)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
했다. 해남현감은 새로 부임해 왔으므로 곤장을 치지는 않았다.
3월 초2일 [양력 3월 30일]<기사>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보성군수가 들어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이 노곤하고 땀이 배니, 이건 병이 날 원인이다.
3월 3일 [양력 3월 31일]<경오> 맑다.
이원룡(이원룡)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반관해(반관해) 가 왔다. 정사립(정사립)
등을 시켜 장계를 썼다. 이 날은 명절(삼 짇날)이라 방답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 및 남도
포만호 등을 불러 술과 떡을 먹였다. 일찌기 송희립(송희립)을 우수사에게 보 내어 뉘우치는
뜻을 전하니, 은근하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땀이 배었다.
3월 4일 [양력 4월 1일]<신미>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했다. 느지막이 보성군수 안홍국을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오정 때에
출항하여 곧바로 소근포 끝으로 돌아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이르니, 좌수사 이운룡(이운
룡)도 왔다. 조용히 이야기하고서 그대로 자리도(좌리도:진해시 웅천동) 바다 가운데서 같이
잤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임신> 맑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
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
기)는 사 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이정충)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 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
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 워서 정신을 못
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해·면·울(울) 및 수원(수원)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김혼)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
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덕금)·한대 (한대)· 효대(효대)와 은진(은진)의 계집종이 왔
다.
3월 6일 [양력 4월 3일]<계유>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새벽에 한대(한대)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아침에 몸이 불편했 다. 식사를 한 뒤에 하동현감
(신진)·고성현령(조응도)·함평현감 (손경지)·해남현감(류형)이 아뢰고 돌아갔다. 남도포만
호(강응표) 도 돌아갔는데, 기일을 5월 10일로 정했다. 우우후와 강진현감(이 극신)에게는 8
일이 지난 뒤에 나가도록 일렀다. 함평현감(손경지)·남해현감(박대남)·다경포만호(윤승남)
등이 칼을 썼다. 땀이 이토록 흘렀다. 사슴 세 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7일 [양력 4월 4일]<갑술> 맑다.
새벽에 땀이 흘렀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리포첨사 ·여도만호가 와서 보고 돌
아갔다.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빗었다. 녹도만호가 노루 두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8일 [양력 4월 5일]<을해> 맑다.
아침에 안골포만호(우수)·가리포첨사(이응표)가 각각으로 큰 사슴 한 마리씩을 보내 왔다.
가리포첨사도 보내 왔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경상수사· 좌수사·
가리포첨사· 방답첨사· 평산포만호· 여도만호· 우우후· 경상우후·강진 현감 등이 와
서 같이 종일 몹시 취하여서 헤어졌다. 저녁에 비가 잠시 왔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병자>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 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
에서 엎어져 잤 다. 개(개?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3월 10일 [양력 4월 7일]<정축> 비가 내렸다.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했더니 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니 온종 일 무척 취하여 나가지 못
했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1일 [양력 4월 8일]<무인> 흐렸다.
해·회·완(완) 및 수원(수원)은 계집종 세 사람과 더불어 나갔다. 이 날 저녁에 방답첨사
(장린)가 성낼 일도 아닌데 공연히 성을 내어 상선(상선)의 물긷는 기전자(전자)에게 곤장
을 쳤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곧 군관과 이방(이방)을 불러 군관에게는 스무 대, 이방(이
방)에게는 쉰 대를 매로 볼기쳤다. 저녁나절에 구 천성보만호가 하직하고 돌아가고, 새 천성
보만호는 체찰사의 공문으로 병사에게 잡혀 갔다. 나주판관도 왔기에 술을 먹여서 보냈다.
3월 12일 [양력 4월 9일]<기묘> 맑다.
아침 밥을 먹은 뒤에 몸이 노곤하여 잠깐 잠을 잤더니 처음으로 피로가 가신 듯하다. 경상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여도 만호·금갑도만호·나주판관도 왔다. 군관들이 술을 내
었다. 저녁에 소국진(소국진)이 체찰사에게서 돌아왔는데, 그 회답에 우도의 수군을 합하여
본도로 보내라는 것은 본의가 아니라고 하 였다. 우습다. 그 편에 들으니 원흉(원균)은 곤장
마흔 대를, 장흥 부사는 스무 대를 맞았다고 했다.
3월 13일 [양력 4월 10일]<경진>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 아뢰기를, "왜적선이 연이어 나 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도만호·금갑도만호 등을 뽑아 보냈다. 봄비가 오는 가운데 몸이 노곤하여 누워서 앓았다.
3월 14일 [양력 4월 11일]<신사> 궂은비가 걷히지 않는다.
새벽에 삼도에서 급한 보고가 왔는데, "견내량 근처의 거제땅 세 포(사등면 성포리)에 왜적
선 다섯 척과 고성땅에 다섯 척이 정박 하여 뭍에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여러 장수
들에게 배 다 섯 척을 더 뽑아 보내도록 전령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 고 각 처에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아침에 군량 회계하는 것을 마쳤다.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봤
다. 체찰사에게 공문을 보낼려고 서류를 만들었다. 봄철 노곤함이 이에 이르니 밤새도 록 땀
이 흘렀다.
3월 15일 [양력 4월 12일]<임오>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가리포첨사·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 서 참례했는데, 우수사와 다
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함께 술에 취하여 가면서
덕(덕)과 아랫방에서 수군거렸다고 했다. 이 날 저물 무렵 바다에 달빛이 어슴푸레 밝았다.
몸이 노곤하여 축 갈아 앉는다. 밤새도록 식 은 땀이 흘렀다. 한밤에 비가 몹시 왔다. 낮에
는 노곤하여 머리를 빗었는데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6일 [양력 4월 13일]<계미> 비가 퍼붓듯이 내리며 종일 그치지 않았다.
오전 여덟 시쯤에 시마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이 뒤집힌 곳이 많고 문과 창이 깨지고 창호지
도 찢어져 비가 방안으로 새어 들어 와서 사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정 때에야 바
람이 잤다. 저녁에 군관을 불러 와서 술을 먹였다. 한밤 한 시쯤에 비가 잠깐 그쳤다. 흐르
는 땀이 어제와 마찬가지다.
3월 17일 [양력 4월 14일]<갑신> 종일 가랑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나주판관이 와서 봤다. 그래서 취하게 하여 보냈다. 어둘 무렵에 박자방(박자방)
이 들어왔다. 이 날 밤에 식은 땀이 등에까지 흘러 두겹 옷이 흠뻑 다 젖고, 자는 이부자리
도 젖었다. 몸이 불편하다.
3월 18일 [양력 4월 15일]<을유> 맑다.
샛바람이 종일 불고 날씨는 몹시 싸늘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솟장을 처리해 주었다.
방답첨사·금갑도만호·회령포만 호·옥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이 어슴푸레 비치고 밤기운이 몹시 차다. 자려해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기도 불편하고 다시 몸이 불편 해졌다.
3월 19일 [양력 4월 16일]<병술>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는 몹시도 싸늘했다. 아침에 새로 만든 가야금에 줄을 매었다. 저녁
나절에 보성군수가 부침하는 것을 살펴볼 일로 휴가를 받았다. 김혼(김혼)이 같은 배로 나갔
다. 종 경(경)도 같이 돌아갔다. 정량(정량)은 볼일이 있어 여기 왔다 가 돌아갔다. 저녁에
가리포첨사·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술을 취 하도록 먹여서 보냈다. 어두울 무렵부터 바람이
몹시 사나왔다.
3월 20일 [양력 4월 17일]<정해> 종일 바람불고 비가 내렸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비가 와서 종일 나가지 않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바람막이를 두 개
를 만들어서 걸었다. 밤새도록 비가 왔다. 땀이 옷과 이불을 적셨다.
3월 21일 [양력 4월 18일]<무자> 종일 큰 비가 내렸다.
초저녁에 도와리를 만나 구토를 한 시간이나 했는데, 자정이 되 니 조금 가라앉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앉았다 누웠다 하 며 괜스레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 날은 너무 심심해서 군관 송희립(송희립)·김대복(김대복)·오철(오 철) 등을 불러 종정
도(종정도)를 내기했다. 바람막이 세 개를 만들어 걸었는데, 이언량(이언량)과 김응겸(김응
겸)이 감독했다. 한 밤이 지나서 비가 잠깐 그쳤다. 밤 세시에 이지러진 달빛이 비치어 방
밖으로 나가 거닐었다. 그래도 몸은 몹시 노곤했다.
3월 22일 [양력 4월 19일]<기축> 맑다.
아침에 종 금이(금)를 시켜서 머리를 빗게 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는 경상수사와 같이 와서
보므로 술을 먹여 보냈다. 그 편에 들으니 작은 고래가 섬위로 떠밀려와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자방(박자방)을 보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3월 23일 [양력 4월 20일]<경인> 맑다.
새벽에 정사립(정사립)이 와서 물고기 기름을 많이 짜서 가져 왔다고 했다. 새벽 세시에 몸
이 불편하여 금이(금)를 불러 머리를 긁게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각 곳의 공문을 처
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조방장 김완(김완) 및 충청수 군의 배 여덟 척이
들어오고 우후도 왔다. 종 금이(금)가 편지를 가져 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초저녁이 지나 영등포만호가 그의 어린 계집을 데리고 술을 가져 왔다고 했다. 나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밤 열시쯤이 지나서 되돌아갔다. 이 날에 비로소 미역을 땄다. 한밤에 잠이 들
었다. 땀이 흘러 옷을 적셨다. 그래서 옷을 갈아 입고 잤다.
3월 24일 [양력 4월 21일]<신묘> 맑다.
아침에 미역을 따러 나갔다. 헌 활집은 베로 만든 게 여덟 장, 솜 으로 만든 게 두 장인데,
활집 한 장은 고쳐서 만들려고 감을 내어 주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서, 마량첨
사 김응황 (김응황)·파지도권관 송세응(송세응)·결성현감 손안국(손안 국) 등을 처벌했다.
저녁나절에 우후가 가져온 술을 방답첨사·평 산포만호·여도만호·녹도만호·목포만호 등
과 같이 마셨다. 나주판관 어운급(어운급)에게는 4월 15일로 기한으로 휴가를 주었다. 몸이
몹시 노곤하여 흐르는 땀이 예사롭지 않다. 이 날도 비가 올것 같다.
3월 25일 [양력 4월 22일]<임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종일 퍼부어 잠시도 비가 끊이지 않았다. 수루에 기대어 저녁 까지 보내니 마음이 언짢았다.
머리를 한참동안 빗었다. 낮에 땀이 옷을 적셨다. 밤에는 두겹 옷이 젖고 방 구들막까지 젖
었 다.
3월 26일 [양력 4월 23일]<계사> 맑고 마파람이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조방장 및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경상수사
가 와서 이야기했다. 체찰사의 전령 이 왔는데, "전일(12일)에 우도의 수군을 돌려 보내라고
한 것은 회계(회계)를 잘못 본 탓이다."고 하였다. 우습다.
3월 27일 [양력 4월 24일]<갑오> 맑다. 마파람이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우후·방답첨사도 왔다. 충청도 마량첨사· 임치첨사· 결성
현감· 파지도권관이 함께 왔다. 술을 먹여서 보냈다. 저녁에 신 사과와 아우 여필이 들어왔
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고 다행하기 이를 데 없다.
3월 28일 [양력 4월 25일]<을미> 궂은비가 몹시 내리며 종일 개지 않았다.
나가 앉아서 공문을 만들어 나누어 보냈다. 충청도 뱃사람들이 다시 울짱을 설치하여 방비
했다.
3월 29일 [양력 4월 26일]<병신>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부찰사(한효순)의 통지문이 먼저 이곳에 왔는데, 성주에서 진으로 온다고 했다.
병신년 4월 (1596년 4월)
4월 초1일 [양력 4월 27일]<정유> 비가 많이 내렸다.
신사과와 함께 이야기했다. 종일 비가 내렸다.
4월 초2일 [양력 4월 28일]<무술> 저녁나절에 개었다.
저물녘에 경상수사가 부찰사를 마중하는 일로 나갔다. 신사과는 같은 배로 갔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했다.
4월 초3일 [양력 4월 29일]<기해> 맑고 마파람에 종일 불었다.
어제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긴급보고한 내용에, "왜놈 네 명이 부산에서 장사하며 이익을
늘리려 나왔다가 바람에 표류되었다." 고 했다. 그래서 새벽에 녹도만호 송여종(송여종)을
보내어 그렇게 된 까닭을 묻고 빼내오려고 보냈는데 그 정형(정적)을 살펴 보니, 정탐한 것
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목을 베었다. 우수사에게 가 볼려고 하다가 몸이 불편하여 못 갔다.
4월 초4일 [양력 4월 30일]<경자> 흐렸다.
아침에 오철(오철)이 나갔다. 종 금이(금이)도 같이 갔다. 아침에 체찰사의 공문에 도장을
찍어 벽에 붙였다. 여러 장수가 표신을 고쳤다. 우수사에게 가 보고는 취하여 이야기하고서
돌아왔다. 충청도의 군대에 울짱(목책)을 쳤다. 초저녁이 지나서 저녁밥을 먹었다. 속이 덥고
땀이 났다. 밤 열시쯤에 잠깐 비가 그쳤다.
4월 초5일 [양력 5월 1일]<신축> 맑다.
부찰사(한효순)가 들어왔다.
4월 초6일 [양력 5월 2일]<임인>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부찰사가 활쏘기를 시험했다. 저녁에 나는 우수사 등과 들어가 앉아서 군사들에게 같이 마
주하여 음식을 먹였다.
4월 7일 [양력 5월 3일]<계묘> 맑다.
부찰사가 나가 앉아서 상을 나누어 주었다. 새벽에 부산 사 람이 들어왔는데, "명나라 사신
(이종성)이 달아났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부찰사가 입봉(입봉)에 올라갔다. 점심
을 먹은 뒤에 두 수사와 더불어 같이 이야기했다.
4월 8일 [양력 5월 4일]<갑진>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나절에 들어가 마주 앉아 부찰사와 같이 마주하여 술을 마 시니 몹시 취하였다. 초파일
이라 등불을 켜 달고 헤어졌다.
4월 9일 [양력 5월 5일]<을사> 맑다.
이른 아침에 부찰사가 나갔다. 그래서 배를 타고 포구로 나 가 같이 배에서 이야기하고 헤
어졌다.
4월 10일 [양력 5월 6일]<병오> 맑다.
아침에 들으니 암행어사가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수사 이 하 포구로 나가 암행어사를 기
다렸다. 조붕(조붕)이 와서 봤다. 그 모습을 보니 학질을 오래 앓아 주린 모습이 무척 야위
었다. 참으로 딱했다. 저녁나절에 암행어사가 들어 와서 같이 내려가 앉아서이야기했 다. 촛
불을 밝혀주고 헤어졌다.
4월 11일 [양력 5월 7일]<정미> 맑다.
아침을 먹고 어사와 같이 마주하여 조용히 이야기했다. 저녁나 절에 장병들에게 음식을 먹
였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 12일 [양력 5월 8일]<무신> 맑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 어사가 밥을 지어 군사들에게 먹이게 한 뒤에 활 열 순을 쏘고 종일
이야기했다.
4월 13일 [양력 5월 9일]<기유> 맑다.
아침을 먹고 어사와 함께 마주해 있다가 느지막이 포구로 나갔더니, 마파람이 세게 불어 출
항하지 못했다. 선인암(선인암)으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질 때 서로 헤어졌다. 저물
어서야 거망포(거망초)에 이르렀는데 잘 갔는지 모르겠다.
4월 14일 [양력 5월 10일]<경술> 흐렸다가 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을 먹고 나가 앉아서 홍주판관(박륜)·당진만호(조효열)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충청우
후 원유남(원유남)에게 곤장 마흔 대를 쳤다. 당진포만호도 같은 벌을 받았다.
4월 15일 [양력 5월 11일]<신해> 맑다.
단오절의 진상품을 봉해서 곽언수(곽언수)에게 받아다 내보냈다. 영의정(류성룡)·영부사 정
탁(정탁)·판서 김명원(김명원)· 지사 윤자신(윤자신)·조사척·신식(신식)·남이공(남이공)
에게 편지를 썼다.
4월 16일 [양력 5월 12일]<임자> 맑다.
아침을 먹고나서 나가 앉아서, 난에몬 등을 불러다가 불지른 왜 놈 세 놈이 누구누구인지를
물어본 뒤에 붙들어다가 죽여버렸다. 우수사·경상수사도 같이 앉아서 아우 여필이 가져온
술로 취 했다. 가리포첨사·방답첨사가 같이 마셨는데,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이 날 밤
바다에는 달빛이 차겁게 비치고 잔 물결 한 점 일지 않았다. 다시 땀을 흘렸다.
4월 17일 [양력 5월 13일]<계축> 맑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아우 여필 및 아들 면( )이 종을 데리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각 공문
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이 날 저녁에 울(울)이 안위(안위)에게 가서 보고 왔다.
4월 18일 [양력 5월 14일]<갑인> 맑다.
식사하기 전에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 및 솟장을 처리해 주었다. 체찰사에게 갈 공문을 내
보냈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경상우후·방답첨사·조방장 김완(김완)과 더불어 활 스무 순
을 쏘았다. 마도(마도)의 군관이 복병한 곳에서 투항해 온 왜놈 한 명 을 잡아 왔다.
4월 19일 [양력 5월 15일]<을묘> 맑다.
습열(습열: 습기로 일어나는 열)로 침 스무 여 곳을 맞았다. 몸 에 번열(번열:열이 나고 가슴
이 답답함)이 나는 것 같아 종일 방 에서 나가지 않았다. 어두울 무렵 영등이 와서 보고 돌
아갔다. 종 목년(목년)과 금화(금화)·풍진(풍진) 등이 와서 인사했다. 이 날 아침에 난에몬
(남여문) 편에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 었다. 뛸 것 처럼 기쁘지만 믿을 수는 없다. 이
말은 진작부터 퍼졌었지만 아직은 확실한 기별이 온 것은 아니다.
4월 20일 [양력 5월 16일]<병진>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내일 만나자고 청했다. 활 열 순을 쏘고 헤어졌다.
4월 21일 [양력 5월 17일]<정사>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경상도의 진으로 가는 길에 우수사의 진에 들러 같이 갔다. 경상수사를
맞아 주며 종일 활을 쏘았다. 잔뜩 취해서 돌아왔다. 조방장 신호(신호)는 병으로 자기 집으
로 돌아갔다. 영인(?영인)이 왔다.
4월 22일 [양력 5월 18일]<무오>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부산 허낸만(허내은만) 이 보낸 편지(고목)에 이르기
를, 명나라 사신(이종성)이 달아 나고 부사(부사:양방형)는 여전히 왜놈의 진영에 있는데, 4
월 초8일에 달아난 까닭을 상부에 아뢰었다고 했다. 김 조방장이 와 서 아뢰기를, 노천기(노
천기)가 술을 먹고 주책없이 굴다가 본영 진무 황인수(황인수)·성복(성복) 등에게서 욕을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곤장 서른 대를 때렸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 23일 [양력 5월 19일]<기미> 흐렸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아침에 첨지 김경록(김경록)이 들어왔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앉아 같이 술을 마셨다.
저녁나절에 군사들 중에서 힘센 자 들을 뽑아 씨름을 시켰더니, 성복(성복)이란 자가 판을
독차지 하였다. 그래서 상으로 쌀 말을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충청우후 원유남(원유
남)· 마량첨사(김응황)· 당진만호(조효열)· 홍주판관(박윤)· 결성현감(손안국)· 파지도
권관(송세응)· 옥포만호(이담) 등과 같이 쏘았다. 한밤에 영인(영인)이 돌아갔다.
4월 24일 [양력 5월 20일]<경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목욕을 하고 나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4월 25일 [양력 5월 21일]<신유>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일찌기 목욕하러 들어갔다가 한참 있었다. 저녁에 우수사가 와서 보
고 돌아갔다. 또 목욕탕에 들어갔 는데 물이 너무 뜨거워 오래 있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
4월 26일 [양력 5월 22일]<임술> 맑다.
아침에 체찰사의 군관이 경상도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밥을 먹 은 뒤에 목욕했다. 저녁나절
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체찰사의 군관 오(오)도왔다. 김양간(김량간)이 소를 싣
고 올 일로 본영으로 갔다.
4월 27일 [양력 5월 23일]<계해> 맑다.
저녁에 한 번 목욕했다. 체찰사의 공문 회답이 왔다.
4월 28일 [양력 5월 24일]<갑자> 맑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 목욕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와서 봤다. 경상수사는 뜸뜨느라고 오
지 않았다.
4월 29일 [양력 5월 25일]<을축> 맑다.
저녁에 한 번 목욕했다. 투항해온 왜놈 사고에몬(사고여문)을 난에몬(남여문)에게 시켜 목을
베었다.
4월 30일 [양력 5월 26일]<병인> 맑다.
저녁에 한번 목욕했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가 봐서 보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부
산의 허낸만(허내은만)의 편지 (고목)가 왔는데, 소서행장(소서행장)이 군사를 철수할 뜻이
있 는 것 같다. 김경록(김경록)이 돌아갔다. 어머니께서 무사하다는 편지가 왔다.
병신년 5월 (1596년 5월)
5월 초1일 [양력 5월 27일]<정묘>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한 번 목욕했다.
5월 2일 [양력 5월 28일]<무진> 맑다.
일찍 목욕하고 진으로 돌아왔다. 총통 두 자루를 부어 만들었다. 조방장 김완(김완) 및 조계
종(조계종)이 와서 봤다. 우수사가 김인복(김인복)의 목을 베어 효시했다. 이 날은 공무를
보지 않았 다.
5월 3일 [양력 5월 29일]<기사> 맑다.
가뭄이 너무 심하다. 근심되고 괴로운 맘을 어찌 다 말하랴!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우후
가 와서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저물어서 들어왔다. 총통 두 자루를 녹여 만들었다.
5월 4일 [양력 5월 30일]<경오> 맑다.
이 날은 어머니 생신인데 헌수하는 술 한 잔도 올려 드리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나가지 않았다. 오후에 우수사가 사무보는 집에서 불이 나서 다 탔다. 이 날 저녁에 문충공
(문촌 공)이 부요(부요)에서 왔다. 조종(조종)의 편지를 가져 왔는데, 조 정(조정)이 4월 초
하루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슬프고도 애달프다. 우후가 앞산마루에서 여귀(제사 못받은
귀신)에게 제사지냈다.
5월 5일 [양력 5월 31일]<신미> 맑다.
이 날 새벽에 여귀에게 제사를 지냈다. 일찌기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앉아 있고, 회령포만호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여러 장수 들이 와서 모였다. 그대로 들어가 앉아서 위로하고 술을 네
순 배를 돌렸다. 경상수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했으므로 씨름을 시켰더니, 낙안군수 림계형
(임계형)이 으뜸이다. 밤이 깊도록 이들로 하여금 즐겁게 마시고 뛰놀게 한 것은 내 스스로
에게 즐겁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것이었다.
5월 6일 [양력 6월 1일]<임신> 아침에 흐렸다가 저녁나절에 큰 비가 왔다.
농민의 소망을 흡족하게 채워주니 기쁘고 다행한 마음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비가 오기 전
에 활 대여섯 순을 쏘았다. 비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땅거미질 무렵 총통 만들 때에 쓰
는 숯을 쌓아두는 창고에 불이 일어나 홀랑 다 타버렸다. 이는 감독관(감 관) 놈들이 삼가지
않은 탓이다. 새로 받아들인 숯에 묵은 불이 있는지 살피지 않아 이런 재난을 보게 된 것이
다. 참으로 한탄스럽다. 울(울)과 김대복(김대복)이 같은 배로 나갔다. 비가 엄청 나게 쏟아
져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모르겠다. 밤새도록 앉아서 걱정했다.
5월 7일 [양력 6월 2일]<계유> 비가 내렸다. 저녁나절에 개었다.
이 날 걱정한 것은 울(울)이 가다가 잘 도착했는지 아닌지 였다. 앉아서 밤새도록 걱정하고
있을 적에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가 나기에 열고서 물어보니, 이영남(이영남)이 들어왔
다. 불러 들여 조용히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5월 8일 [양력 6얼 3일]<갑술> 맑다.
아침에 이영남(이영남)과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봤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
다. 활 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두 번이나 구토했다. 이 날 영산 이중(이중)의
무덤을 파낸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조카 완(완)이 들어왔다. 김효성 (김효성)도 왔다. 비
인현감(신경징)이 들어왔다.
5월 9일 [양력 6월 4일]<을해>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이영남과 함께 서관(서관: 황해도와 평안도) 의 일을 이야기했다. 초저
녁에 비가 뿌리더니 새벽까지 왔다. 부안 전선에서 불이 났으나, 심하게 타지 않았다니 다행
이다.
5월 10일 [양력 6월 5일]<병자> 맑다.
나라제삿날(태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도 불편하여 종일 끙끙 앓았다.
5월 11일 [양력 6월 6일]<정축> 맑다.
새벽에 앉아서 이정(이정)과 함께 이야기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비인현감
신경징(신경징)에게 기일을 어긴 죄 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또 순천 격군과 감관 조명(조
명)의 죄 를 곤장쳤다. 몸이 불편하여 일찍 들어와 끙끙 앓았다. 거제현령 ·영등포만호는
이영남(이영남)과 같이 잤다.
5월 12일 [양력 6월 7일]<무인> 맑다.
이영남(이영남)이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김해 부사(백사림)의 긴급보고가
왔는데 "부산에서 왜놈에게 붙었던 김필동(김필동)의 편지(고목)도 온 것에도 풍신수길이 비
록 정 사(정사)는 없다지만 부사(부사)가 그대로 있으니, 곧 화친하고 군사를 철수하려고 한
다"고 했다.
5월 13일 [양력 6월 8일]<기묘> 맑다.
부산의 허낸만(허내은만)의 편지(고목)가 왔는데, 가등청정이란 놈이 벌써 초10일에 그의 군
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고, 각 진의 왜놈들도 장차 철수해 갈 것이요, 부산의 왜놈은
명나라 사신을 모시고 바다를 건너 가려고 아직 그대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 날 활 아홉
순을 쏘았다.
5월 14일 [양력 6월 9일]<경진> 맑다.
김해부사 김사림(백사림)의 긴급 보고 내용에도 허낸만(허내은 만)의 편지(고목)와 같다. 그
래서 순천부사에게 통보하여 그 로 하여금 차례로 통보하게 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결성
현감 손안국(손안국)이 나갔다.
5월 15일 [양력 6월 10일]<신사>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우수사는 오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서 앉아 있다가 들으니
한산도 뒷산 마루로 달려 올라 가 다섯 섬과 대마도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말
을 타고 올라가서 이를 보니 과연 다섯 섬과 대마도가 보였다. 저녁나절에 작은 개울가로
돌아왔다. 조방장· 거제현령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진으로 돌아왔다. 어
두워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서 잤다. 밤바다에 달은 밝고 바람 한 점 없다.
5월 16일 [양력 6월 11일]<임오> 맑다.
아침에 송한련(송한련)의 형제가 물고기를 잡아 왔다. 충청우후 (원유남)· 홍주판관(박
륜)· 비인현감(신경징)·파지도권관(송세응) 등이 왔다. 우수사(이억기)도 와서 보고 돌아갔
다. 이날 밤 비가 많이 올 것 같더니 한밤에 비가 왔다. 이 날 밤 정화수(정화 수)를 마시고
싶었다.
5월 17일 [양력 6월 12일]<계미> 종일 비가 내렸다.
농사에 아주 흡족하다. 점을 쳐보니, 풍년이 들것 같다. 저녁나 절에 영등만호 조계종(조계
종)이 들어와 봤다. 혼자 읊조리며 수루에 기대어 있었다.
5월 18일 [양력 6월 13일]<갑신> 비가 잠깐 개긴 했으나, 바다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체찰사의 공문이 들어왔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나가 앉았다가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 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그러나 진지를 전보다 줄어들었
다고 하니 걱정되어 눈물이 난다. 봄철 누비옷을 가지고왔다.
5월 19일 [양력 6월 14일]<을유> 맑다.
방답첨사(장린)가 모친상(모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우후를 가 장(가장)으로 정하여 보냈
다. 활을 열 순을 쏘았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5월 20일 [양력 6월 15일]<병술> 맑고 바람도 없다.
대청 앞에 기둥을 세웠다. 자녁나절에 나가니 웅천현감 김충민 (김충민)이 와서 봤다. 양식
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벼 두 휘(스무 말)을 체지(영수증)로 써 주었다. 사도첨사가 돌
아왔다.
5월 21일 [양력 6월 16일]<정해> 맑다.
나가 앉았다가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5월 22일 [양력 6월 17일]<무자> 맑다.
충청우후 원유남(원유남)·좌우후 이몽구(이몽구)·홍주판관 박륜(박륜) 등과 함께 활을 쏘
았다. 홍우(홍우)가 장계를 가지고 감사(감사)에게 갔다.
5월 23일 [양력 6월 18일]<기축>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충청우후 등과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아침에 미조항첨사 장의현(장의현)이 교서에 숙
배한 뒤에 장흥으로 부임했다. 춘절 (춘절)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이 날 밤 열시쯤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이 날 저녁 새 수루의 지붕을 다 잇지 못했다.
5월 24일 [양력 6월 19일]<경인> 아침에 찌푸린 걸 보니 비가 많이 올 것 같다.
나라제삿날(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저녁에 나가 활 열 순을 쏘았다. 부산 허
낸만(허내은만)의 편지(고목)가 들어왔다. 좌도의 각 진의 왜놈들이 몽땅 철수하고, 다만 부
산에만 머물러 있다고 했다. 명나라 수석 사신이 갈려서 새로 정해진 사람이 온다는 기별이
22일 부사에게 왔다고 한다. 허낸만(허내은만)은 술쌀 열 말, 소금 열 말을 주고서 맘껏 정
보를 잘 탐지하라고 했다. 어두워서 비가 오더니 밤새도록 퍼부었다. 박옥(박옥)· 옥지(옥
지)·무재(무재) 등이 화살대 백쉰 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5월 25일 [양력 6월 20일]<신묘> 종일 비가 내렸다.
홀로 다락 위에 앉아 있으니, 온 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우리나 라 역사를 읽어 보니 개탄
할 생각이 많이 난다. 무재(무재) 등에 게 흰 굽으로 활을 바룬 것이 천 개, 흰 굽 그대로
인 것 팔백일 흔 개
5월 26일 [양력 6월 21일]<임진>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안장 있다가 충청우후 및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쏠
적에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활 열 순 을 쏘았다. 이 날 어두울 무렵 날씨가 찌는 듯했다. 땀
이 줄줄 흘렀다.
5월 27일 [양력 6월 22일]<계사> 가랑비 종일 그치지 않았다.
충청우후·좌우후가 이곳에 와서 종정도를 내기했다. 이 날 어두 울 무렵에도 찌는 듯하여
답답했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5월 28일 [양력 6월 23일]<갑오>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전라감사(홍세공)가 파면되어 갈렸다고 한 말을 들었다. 가등청정 (가등청정)이 부산으로 도
로 왔다고 한다. 모두 믿을 수 없다.
5월 29일 [양력 6월 24일]<을미> 궂은비가 저녁 내 내렸다.
장모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고성현령·거제현령이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5월 30일 [양력 6월 25일]<병신> 흐렸다.
곽언수(곽언수)가 들어왔다. 영의정(류성룡) 및 상장군·우참찬 판부사정탁·지사 윤자신(윤
자신)· 조사척· 신식(신식)· 남이공(남이공)의 편지가 왔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에게 가서
보고 종일 무척 즐기다가 돌아왔다.
병신년 6월 (1596년 6월)
6월 초1일 [양력 6월 26일]<정유> 종일 궂은비 내렸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원유남) 및 본영우후(이몽구)·(홍주판관)박륜(박륜)· (비인현감)신경
징(신경징)을 불러 와서 술 마시며 이야기했다. 윤련(윤련)이 자기 포구로 간다고 했다. 그
래서 도양장의 콩 씨앗이 모자라거든 김덕록(김덕록)에게서 콩 씨앗을 가져 가라고 체지(영
수증)을 써 주었다. 남해현령이 도임장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6월 초2일 [양력 6월 27일]<무술> 비가 그치지 않았다.
아침에 우후가 방답첨사에게 갔다. 비인현감 신경징(신경징)이 나갔다. 이 날 아랫도리 속옷
을 벗겨서 아래에다 넣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활 열 순을 쏘았다. 편지를 써서 본
영으로 보냈다.
6월 초3일 [양력 6월 28일]<기해> 흐렸다.
아침에 제포만호 성천유(성천유)가 교서에 숙배했다. 김량간(김량 간)이 농사짓는 소를 싣고
나갔다. 새벽 꿈에 어린 아이가 태어난 지 겨우 대여섯 달인데 몸소 안았다가 도로 내려 놓
았다. 금갑 도만호가 와서 봤다.
6월 4일 [양력 6월 29일]<경자>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았는데, 가리포첨사·임치첨사·목포만호·남도포만호·충청우후 및
홍주판관 등이 왔다. 활 일곱 순을 쏘았다. 우수사가 와서 다시 과녁을 그리고 활 열두 순을
쏘았다. 술에 취하여 헤어졌다.
6월 5일 [양력 6월 30일]<신축> 흐렸다.
아침에 박옥(박옥)·무재(무재)·옥지(옥지)) 등이 연습용 화살 백쉰 개를 만들어 바쳤다. 나
가 앉았다가 활 열 순을 쏘았다. 경상우도 감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져 왔는데, 감사는 혼사
가 있어 서울로 올라 갔다고 했다.
6월 6일 [양력 7월 1일]<임인> 맑다.
사도(사도)의 여러 장수들이 모두 모여 활을 쏘고 술과 음식을 먹였다. 또 활쏘기 내기를 하
여 승부를 가리고서 헤어졌다.
6월 7일 [양력 7월 2일]<계묘>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충청우후 등과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이 날 왜놈의 조총값을 주었다.
6월 8일 [양력 7월 3일]<갑진> 맑다.
일찍 나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남도포만호의 본포 첩이 허씨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강
짜 싸움을 했다고 한다.
6월 9일 [양력 7월 4일]<을사> 맑다.
일찍 나가 충청우후·당진만호·여도만호·녹도만호 등이 활 을 쏠 때에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활 스무 순을 쏘았다. 경상 수사가 잘 맞혔다. 이 날 일찌기 종 금이(김이)가 본영으로
갔다. 옥지(옥지)도 갔다.이 날 어두울 무렵 몹시 열이 나고 땀이 예사롭지않게 흘렀다.
6월 초10일 [양력 7월 5일]<병오> 비가 종일 쏟아지듯이 내렸다.
오정 때에 부산에서 편지가 와서 바치는데, 평의지(평의지)가 초9일에 대마도로 들어갔다고
했다.
6월 11일 [양력 7월 6일]<정미>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맑게 개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6월 12일 [양력 7월 7일]<무신> 맑다.
심한 더위가 찌는 것 같다. 충청우후 등을 불러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남해현감의 편지가
왔다.
6월 13일 [<양력 7월 8일]<기유> 맑으며, 몹시 더웠다.
경상수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가 잘 맞혔는데 김대복(김대
복)이 으뜸이었다.
6월 14일 [양력 7월 9일]<경술> 맑다.
일찍 나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아침에 아들 회와 이수원 (이수원)이 같이 왔다. 어머니
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6월 15일 [양력 7월 10일]<신해>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우수사·가리포첨사·나주판관 등은 배 탈이 났는지 병으로 말미
를 청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충청우후·우후·조방장 김완(김완) 등 여러 장수들을
불러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이 날 일찌기 부산 허낸만(허내은만)이 와서 왜놈의 정보를 전
하기에 군량을 주어서 돌려 보냈다.
6월 16일 [양력 7월 11일]<임자> 맑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나가 앉았다가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김붕만
(김붕만)· 배승련(배승련) 등이 자리를 사가지고 진에 왔다.
6월 17일 [양력 7월 12일]<계축> 맑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왔다. 활 열다섯 순을 쏘고 헤어졌다. 수 사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충
청수사는 그 아버지의 제삿날이라 아뢰고 거망포(거망포: 걸망포)로 갔다.
6월 18일 [양력 7월 13일]<갑인>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6월 19일 [양력 7월 14일]<을묘> 맑다.
체찰사에게 공문을 써 보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이설(이
설)에게서 황정록(황정록)의 형편없는 말과 발포 보리밭에서 스무여섯 섬이 났다고 하는 말
을 들었다.
6월 20일 [양력 7월 15일]<병진> 맑다.
어제 아침 곡포권관 장후완(장후완)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평산 포만호에게 진작 진에 도착
하지 않은 까닭을 문책할 적에, 기 일을 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50여 일이나 물리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그 해괴하기 짝이 없어 곤장 서른 대를 쳤다. 바로 이 날 오정에 남해현령
이 들어와서 숙배한 뒤에 이야기하고 서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왔다. 열다섯 순을 쏘고
안으로 들 어가 남해현감 박대남(박대남)와 자세히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 서야 헤어졌다.
임달영(임달영)도 왔는데, 소를 무역한 발기(견적 서)와 제주목사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6월 21일 [양력 7월 16일]<정사>
내일이 제삿날이므로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침에 남해현령을 불러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서 남해현령은 경상수사에게 갔다가 저녁에 되돌아와서 이야기했다.
6월 22일 [양력 7월 17일]<무오> 맑다.
할머니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남해현령과 종일 이야기했다.
6월 23일 [양력 7월 18일]<기미> 밤 두시쯤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남해현령과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남해현령은 경상수사에게 갔다.조 방장 및 충청우후·
여도만호· 사도첨사 등을 불러 술과 고기를 먹였다. 곤양군수 이극일(이극일)도 와서 봤다.
저녁에 남해현감이 경상수사에게서 왔다.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다. 하동현감도 왔는데 본
현으로 도로 보냈다.
6월 24일 [양력 7월 19일]<경신> 초복이다. 맑다.
아침에 나가 충청우후와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 도 와서 같이 쏘았다. 남해
현감은 자기 고을로 돌아갔다. 투항 해 온 왜놈 야에몬(야여문) 등이 그의 또래 신시로(신시
로: 신 차랑)를 죽이자고 청했다. 그래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남원의 김 굉이 군량을 축낸
데 대해 증빙자료를 얻으러 여기 왔다.
6월 25일 [양력 7월 20일]<신유> 맑다.
일찍 나가서 서류를 처리해 보내고서 조방장 및 충청우후·임치첨사· 목포만호· 마량첨
사· 녹도만호· 당포만호·회령포만호 ·파지도권관 등이 왔다. 철전(철전) 다섯 순, 편전
(편전) 세 순, 활 다섯 순을 쏘았다. 남원의 김굉이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몹시 더워 땀을 흘렸다.
6월 26일 [양력 7월 21일]<임술> 바람이 세게 불고 잠시 비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철전(철전) 및 편전(편전)을 각 다섯 순씩 쏘았다. 왜놈 난에몬
(난여문) 등이 말하는 자귀쟁이(이장목 수)의 아내에게 곤장을 쳤다. 이 날 낮에 망아지 두
필에 떨어진 편자 네 개를 갈아 박았다.
6월 27일 [양력 7월 22일]<계해> 맑다.
나가 앉았다가, 조방장 김완(김완)·충청우후·가리포첨사·당진 포만호·안골포만호 등과
함께 철전(철전) 다섯 순, 편전(편 전) 세 순, 활 일곱 순을 쏘았다. 이 날 저녁에 송술(송
술)을 가두었다.
6월 28일 [양력 7월 23일]<갑자> 맑다.
명종의 나라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침에 고성현령 이 달려 와서 보고하기를, "순
찰사의 행차가 어제 벌써 사천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니 오늘은 응당 소비포에 이를 것
이다. 수원(수원)이 돌아갔다.
6월 29일 [양력 7월 24일]<을축>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는 개었다.
주선(주선)이 받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무를 본 뒤에 조방장·충청우후·나주통
판과 함께 철전(철전)·편전(편전)· 활(후)을 아울러 열여덟 순을 쏘았다. 무더위가 찌는
듯하다. 초저녁에 땀이 줄줄 흘렀다. 남해현감의 편지가 왔다. 야에몬(야여문)은 돌아갔다.
병신년 7월 (1596년 7월)
7월 초1일 [양력 7월 25일]<병인> 맑다.
인종의 나라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우순찰사(서 성)가 진에 이르렀으나, 이 날
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의 군관 라굉이 그의 장수의 말을 전하러 이곳에 왔다.
7월 초2일 [양력 7월 26일]<정묘>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경상순찰사영의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함께 같이 이야기했다. 한
참 시간이 지나서 새 정자로 올라가 앉 았다. 편을 갈라 활을 쏘았는데, 경상순찰사 편이 진
것이 백예 순두 점(획)이다. 종일 몹시 즐거웠다. 등잔불을 밝히고서 돌아왔다.
7월 초3일 [양력 7월 27일]<무진>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순찰사와 도사(도사)가 이 영에 와서 활을 쏘았다. 순찰사 편이 또
진 것이 아흔여섯 점이다. 밤이 깊 어서야 돌아갔다. 아침에 체찰사의 공문이 왔다.
7월 4일 [양력 7월 28일]<기사>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경상도 영으로 가서 순찰사와 서로 만 나 이야기했다. 조금 있다
가 배로 내려가 같이 타고 포구로 나가 니, 여러 배들이 밖으로 줄지어 있었다. 종일 이야기
하고 선암(선 암) 앞바다에 이르러 닻을 걷고 출항하여 나뉘어 가면서 바라 보며 서로 읍했
다. 그 길로 우수사·경상수사와 함께 같은 배로 들어왔다.
7월 5일 [양력 7월 29일]<경오>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와서 같이 쏘았다.
7월 6일 [양력 7월 30일]<신미> 맑다.
일찍 나가 각 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저물 무렵 에 거제현령·웅천현감·삼
천포권관이 와서 봤다. 이곤변(이곤 변)의 편지도 왔다. 그 사연 속에는 입석(입석)의 잘못
을 많이 말했다. 우습다.
7월 7일 [양력 7월 31일]<임신> 맑다.
경상우수사 및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아울러 와서 잠깐 활 세 쾌(관)를 쏘았다. 종일 비는
오지 않았다. 활장이 지이(지이)· 춘복(춘복)이 저녁에 본영으로 돌아갔다.
7월 8일 [양력 8월 1일]<계유> 맑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체찰사의 비밀 표험(표험?) 을 받으러 갔다고 한다.
7월 9일 [양력 8월 2일]<갑술>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서 이전(이전)이 받아 갔다. 저녁나절에 경상
수사가 이곳에 와서 통신사가 탈 배에 풍석(풍석: 돛만드는 돗자리)이 마련하기 어렵다고
여러번 말했다. 빌려 쓰고자 하는 뜻이 그 말하는 속에 보였다. 박자방 (박자방)을 물을 끌
어들일 대나무와 서울가는 사람이 요구하는 부채만들 대나무를 얻어 올 일로 남해로 보냈
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7월 10일 [양력 8월 3일]<을해> 맑다.
새벽 꿈에, 어떤 사람이 멀리 화살을 쏘았고,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었다. 스스로
이것을 점쳐 보니, 멀리 활쏘는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삭을 차서 부누는 것은
갓은 머리 위에 있는데 발길에 차 보이는 것으로서 이는 적의 괴수를 모조 리 잡아 없앨 징
조라 하겠다. 저녁나절에 체찰사의 전령에, "첨지 황신이 이제 명나라 사신을 따라가는 정사
(정사)가 되고, 권황 이부사(부사)가 되어 가까운 시일에 바다를 건너 갈 것이니, 타고 갈 배
세 척을 정비하여 부산에다 대어 놓아라."고 했다. 경상우후가 여기 와서 흰 무늬 돗자리 백
쉰 닢을 빌려 갔다. 충청우후· 사량만호· 지세포만호· 옥포만호· 홍주판관·전 적도만
호 고여우(고여우) 등이 와서 봤다. 경상수사가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춘원도(통영시 광도
면)의 왜선 한 척이 도착하여 정박하 였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을 뽑아 보내어 샅
샅이 찾아내라고 전령했다.
7월 11일 [양력 8월 4일]<병자>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행정선(통문선) 일로 공문을 써 관인을 찍 어보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
사가 와서 바다를 건너 갈 격군과 뒤 따라 갈 것을 의논했다. 바다를 건너갈 양식이 스무세
섬인데, 새로 찧으니 스무한 섬이라 두 섬 한 말이 줄었다. 나가 앉았다가 몸소 활 세 쾌를
쏘는 것을 보았다.
7월 12일 [양력 8월 5일]<정축> 새벽에 비가 잠시 뿌리다가 곧 그치고 무지개 가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후 이의득(이의득)이와서 뜸 열다섯 번을 빌려 갔다. 부산으로 실어 보낼
군량 흰쌀 스무 섬·중쌀(중미) 마흔 섬을 차사원 변익성(변익성)과 수사(수사)의 군관 정존
극(정존극) 이 받아갔다. 조방장이 오고, 충청우후도 와서 활을 쏘았다. 같은 해에 과거에 급
제한 남치온(남치온)도 왔다.
7월 13일 [양력 8월 6일]<무인> 맑다.
명나라 사신을 따라 갈 우리나라 사신들이 탈 배 세 척을 정비하 여 낮 열 시쯤에 떠나 보
냈다. 저녁나절에 활 열세 순을 쏘았 다. 어두울 무렵 항복해온 왜놈들이 광대놀이를 차렸
다. 장수된 사람으로서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만, 붙좇은 왜놈 들이 놀이를 간
절히 바라기에 못하게 하지 않았다.
7월 14일 [양력 8월 7일]<기묘> 새벽에 비가 뿌렸다.
이 날도 벌써 보름날이다. 저녁에 고성현령 조응도(조응도)가 와서 이야기했다.
7월 15일 [양력 8월 8일]<경진> 새벽에 비가 뿌렸다.
망궐례를 행하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활짝 개었다. 경상수사· 전라우수사가 함께 모여 활을
쏘고서 헤어졌다.
7월 16일 [양력 8월 9일]<신사> 새벽에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북쪽에 툇마루 세 칸을 만들었다. 이 날 충청도 홍주 격군으로 신평에 사는 사삿집 종 엇복
(어질복)이 도망가다 붙잡혔으므로 목베어 내다 걸었다. 하동현감·사천현감이 왔다. 저녁나
절에 활 세 쾌를 쏘았다. 이 날 어두울 무렵 바닷달이 너무도 밝아서 혼자 수루 위에 기대
었다. 밤 열 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7일 [양력 8월 10일]<임오> 새벽에 비가 뿌렸다가 곧 그쳤다.
충청도 홍산에서 큰 도둑들이 일어나서 홍산현감 윤영현(윤영현) 이 잡히고, 서천군수 박진
국(박진국)도 잡혀갔다고 한다. 바깥 도 둑도 없애지 못한 이 마당에 나라 안의 도둑들이 이
러하니, 참으 로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남치온(남치온) 및 고성현령·사천 현감이 나갔다.
7월 18일 [양력 8월 11일]<계미> 맑다.
각 곳에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보냈다. 충청우후 및 홍주 반자가 충청도 도둑들의 일을
듣고 와서 아뢰었다. 저녁에 투항 해 온 왜놈 레나기(연은기)·야이(여이)·야몬(여문) 등이
난야몬 (남여문)을 해치려고 흉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였다.
7월 19일 [양력 8월 12일]<갑신> 맑으나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난야몬(남여문)이 레나기(연은기)·야이(여이)·야몬(여문) 등을 목베었다. 우수사가 와서 보
고 돌아갔다. 경상우후 이의득(이의득) 및 충청우후(원유남)·다경포만호 윤승남(윤승남)이
왔다.
7월 20일 [양력 8월 13일]<을유>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 안하시다니 기쁘고 다행이
다. 그 편에 충청도 토적(이몽학)이 이 시발(이시발)(순안어사)의 포수에게 총맞아 즉사했다
고 한다. 다행이다.
7월 21일 [양력 8월 14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거제현령·나주판관·홍주판관과 옥포만호·웅천현감·당진
포만호가 왔다. 옥포에는 배 만드는데 쓸 양식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체찰사에 관계된 군량
스무 말을 주고, 웅천·당진포에는 배 만들 쇠 열다섯 근을 함께 주었다. 이 날 아들 회가
방자 수(수)에게 곤장쳤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을 붙들어다가 뜰 아래에서 잘 타일렀다. 밤
열 시쯤에 땀이 줄 줄 흘렀다. 통신사가 청하는 표범 가죽을 가지고 올려고 배를 본영으로
보냈다.
7월 22일 [양력 8월 15일]<정해>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종일 나가지 않았다. 홀로 수루 위에 앉아 있었다. 종 효대(효대) ·팽수(팽수)가 나가서 흥
양의 군량선을 탔다. 저녁에 순천 관 리의 통지문(문장)에, "충청도 도둑들이 홍산에서 일어
난 것을 곧 죽였다고 하는데, 홍주 등 세 고을이 포위를 당했다가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참으로 한심타. 한밤에 비가 많이 왔다. 낙안의 교대할 배가 들어왔다.
7월 23일 [양력 8월 16일]<무자> 큰 비가 내렸다.
오전 열 시쯤에 맑았다가 이따금 쏟아졌다. 저녁나절에 홍주판 관 박륜(박륜)이 휴가를 얻어
서 나갔다.
7월 24일 [양력 8월 17일]<기축> 맑다.
현덕왕후(현덕왕후:문종의 왕후 권씨의 제사) 나라제삿날이다. 이 날 우물을 고쳐 파는데로
갔다. 경상수사도 왔다. 거제현령· 금갑도만호·다경포만호가 뒤따라 왔다. 샘줄기가 깊이
들어가 있고 물의 근원도 길다. 점심을 먹은 뒤에 돌아와 활 세 쾌(관) 를 쏘았다. 어두울
무렵 곽언수(곽언수)가 표범가죽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날 밤 마음이 답답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인기척은 고요하여 앉 았다 누웠다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들었다.
7월 25일 [양력 8월 18일]<경인> 맑다.
아침에 공리(공리)가 사냥한 것을 헤아리니 뿔이 열 개라 창고에 넣게 했다. 표범 가죽 및
꽃돗자리를 통신사에게 보냈다.
7월 26일 [양력 8월 19일]<신묘> 맑다.
이전(이전)이 체찰사에게서 와서 표험(표험) 세 벌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경상수사에게 보
내고, 하나는 전라우수사에게 보냈다. 의금부의 나장이 윤승남(윤승남)(다경포만호)을 잡아
갈 일로 내려왔다.
7월 27일 [양력 8월 20일]<임진> 맑다.
저녁나절에 활터로 달려가서 길 닦는 일을 녹도만호에게 일러 주 었다. 종 경(경)이 아팠다.
다경포만호 윤승남(윤승남)이 잡혀 갔다.
7월 28일 [양력 8월 21일]<계사> 맑다.
종 무학(무학)·무화(무화)·박수매(박수매)·우롬금(우로음금) 등 이 스무엿새 날에 여기
왔다가 오늘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와 더불어 활 세 쾌를 같이 쏘았다. 철전 서른여
섯 푼, 편전 예순 푼, 보통 화살 스무여섯 푼 모두 백스무 세 푼(계산 착오인 듯. 합이 백스
무둘임)이었다. 종 경이 많이 앓 았다고 한다.무척 걱정이 된다. 고향 아산으로 한가위 제물
을 보낼 때에 홍·윤·이 등 네 군데에 편지를 부쳤다. 밤 열시쯤에 꿈속에서까지 땀을 흘
렸다.
7월 29일 [양력 8월 22일]<갑오> 맑다.
경상수사 및 우후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도 아울러 와서 활 세 쾌를 쏘았는데, 내가 쏘던 활
은 고자가 들떠서 곧 수리하라 고 하였다. 체찰사에게서 과거보는 자리를 설치한다는 공문
이 와 닿았다. 저녁에 점장이의 집을 맡아 지키던 아이가 세간을 몽땅 훔쳐 달아나버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7월 30일 [양력 8월 23일]<을미> 맑다.
새벽에 갈몰(갈몰)이 들어왔다. 밤 꿈에 영의정과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침에 이진(이
진)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춘화(춘화) 등도 돌아갔다. 김대인(김대인)은 담제( 제)를 지낸다
고 휴가를 받아갔다. 저녁나절에 조방장이 와서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
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 임금의 분부가 두 통이 내려 오고 싸움에 쓸 말과 면의 말도
들어왔다. 지이(지이)와 무재(무재)가 함께 왔다.)
병신년 8월 (1596년 8월)
8월 초1일 [양력 8월 24일]<병신>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충청우후·금갑도만호·목포만호·사도 첨사·녹도만호가 와서 참
례했다. 저녁나절에 파지도권관 송세응(송세응)이 돌아갔다. 오후에 활터로 가서 말을 달리
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부산에 갔던 곽언수(곽언수)가 돌아와서 통신사의 회답 편지를 전
했다. 어두울 무렵 비올 징후가 많았다. 그래서비오기 전에 장만할 것들을 시켜놨다.
8월 초2일 [양력 8월 25일]<정유> 아침에 비가 몹시 왔다.
지이(지이) 등에게 새로 만든 활을 폈다가 굽혔다가 하게 했다. 저녁나절에 광풍이 세게 일
어 빗줄기는 삼대 같아서 대청 마루에 걸어 둔 바람막이가 날라가 방 마루 바람막이에 부딪
쳐 한꺼번에 두 바람막이가 깨어져 조가조각 나버렸다. 아까웠다.
8월 초3일 [양력 8월 26일]<무술> 맑다가 이따금 비가 뿌렸다.
지이(지이)에게 새로 만든 활을 펴게 했다. 조방장·충청우후가 와서 보기에 그대로 나가 활
을 쏘았다. 아들들이 육냥궁(육양궁)을 쏘았다. 이 날 저녁나절에 송희립(송희립)과 아들들
이 이름이 적힌 황득중(황득중)·김응겸(김응겸)의 통행을 허락하는 증명서를 써서 주게 했
다. 초저녁에 비가 오다가 밤 두 시쯤에야 그쳤다.
8월 초4일 [양력 8월 27일]<기해>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회·면·조카 완(완) 등이 아내의 생일술을 올리려고 나갔다.
정선도 나갔다. 정사립(정사립)이 휴가를 받아서 갔다. 저녁나절에 수루에 앉아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보느라고 술잔이 시어지는 줄도 몰랐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활 두어 순
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활 쏘는 것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얼어 터지는듯
떨려 곧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냈다. 저물 무렵 경상수사가 와서 문병하고 갔다. 밤에는 낮
보다 갑절이나 아팠다. 끙끙 앓으며 밤을 지냈다.
8월 초5일 [양력 8월 28일]<경자> 맑다.
몸이 불편하여 나가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의득(이의득) 가리 포첨사가 와서 봤다.
8월 초6일 [양력 8월 29일]<신축>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조방장 김완(김완)·충청우후·경상우후 등이 문병을 왔 다. 당포만호는 그 어머니의
병환이 심하다고 와서 알렸다. 경 상수사 및 우수사 등이 와서 봤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
이 들어왔다.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밤에 비가 많이 왔다.
8월 초7일 [양력 8월 30일]<임인>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서울에 편지를 썼다. 이 날 밤 땀이 위·아래 두 옷을
적셨다.
8월 초8일 [양력 8월 31일]<계묘>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박담동(박담동)이 서울로 올라가는데 혼수를 승지 서성(서 )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강희로
(강희로)가 이곳에 와서 남해현령의 병이 차즘 나아진다고 했다. 그와 함께 밤이 되도록 이
야기했다. 중 의능(의능)이 날삼(생마) 백스무 근을 가져와서 바쳤다.
8월 9일 [양력 9월 1일]<갑진>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중 수인(수인)에게서 날삼(생마) 삼백서른 근을 받아들였다. 하동현감이 종이를 다시
두드려 만든다고 도련지 스무 권, 주 지 서른두 권, 장지 서른한 권을 김응겸(김응겸)· 곽
언수(곽언수) 등에게 주어 보냈다. 마량첨사 김응황(김응황)이 직무평가에서 하등급(거하)을
맞고 나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밤 열 시쯤 되니 땀이 흘렀다.
8월 초10일 [양력 9월 2일]<을사> 맑다.
아침에 충청우후가 문병을 왔다가 그대로 조방장과 함께 같이 아 침식사를 했다. 아침에 송
한련(송한련)에게 날삼(생마) 마흔 근을 그물을 만들도록 주어서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
여 한참동안 이나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 및 충청우 후를 불러다
가 상화(상화)를 만는데 이를 같이 했다. 저녁에 체 찰사에게 보낼 공문에 관인을 찍었다.
어두워지니 달빛은 비단같고, 나그네 회포는 만갈래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
에 방에 들어갔다.
8월 11일 [양력 9월 3일]<병오> 맑으나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 내보냈다. 조 방장 배흥립(배흥립)과 함께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나절에 그와 같이 활터(사장)에 가서 말달리는 것을 구경하고서
저 물 무렵에 영으로 돌아왔다. 초저녁에 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 고한 내용에, "왜적서 한
척이 등산(등산: 마산시 합포구 진동 면)에서 송미포(송미포: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로 들어
온다."고 했다. 밤 열 시쯤에 또 보고하기를, "아자포(아자포)로 옮겨 대었 다."고 했다. 배를
정하여내어 보낼 즈음에 또 보고하여 말하기를, "견내량을 넘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복병
장이 찾아서 잡았다.
8월 12일 [양력 9월 4일]<정미>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어 동쪽으로 가는 배는 도저히 오갈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안부
를 알지를 못했으니, 몹시도 답답하 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땀이 두겹 옷을 적셨다.
8월 13일 [양력 9월 5일]<무신> 맑다가 흐리며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을 쏘았다. 이 날 밤 땀이 흘러 등을 적시었다. 아침에 우(우)씨가 곤장
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장사지낼 물건을 약간 보냈다.
8월 14일 [양력 9월 6일]<기유>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샛바람이 계속 불어 벼가 상했다고 한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 과 충청우후와 같이 이야기
를 중지시켰는데 땀나지는 않았다.
8월 15일 [양력 9월 7일]<경술> 새벽에 비가 내렸다.
망궐례를 못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경상수사 및 두 조방 장과 충청우후· 경상우후· 가
리포첨사· 평산포만호 등 열아홉 명의 여러 장수들이 모여서 이야기했다. 비가 종일 그치
지 않았다. 초저녁이 지나니 마파람이 불면서 비가 많이 왔다. 밤 두 시 쯤까지 세 번이나
땀을 흘렸다.
8월 16일 [양력 9월 8일]<신해> 잠깐 맑다가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강희로(강희로)가 남해로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누워 끙끙 앓았다. 저녁에 체찰사가
진주성(진성)에 왔다는 공문이 왔다. 다시 비 갠 뒤의 달빛이 너무 밝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
였다. 밤 열 시쯤에 누워서 가랑비가 또 내리다가 잠시후에 그치는 걸 봤다. 땀이 흘렀다.
8월 17일 [양력 9월 9일]<임자> 맑고 흐림이 서로 섞여서 개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거제현령이 아울러 와서 봤다. 이 날 샛바람이 그치지 않
았다. 체찰사 앞으로 사람을 찾으러 내 보내었다.
8월 18일 [양력 9월 10일]<계축>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한밤 자정에 죄인에게 특사를 내리는 조칙문을 가지고 온 차사원 구례현감(이원춘)이 들어
왔다. 땀을 흘리는게 예삿 일이 아니다.
8월 19일 [양력 9월 11일]<갑인> 흐리다가 맑다가 했다.
새벽에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죄인에게 특사내리는 조 칙문에 숙배하고 그대로 그들
과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구례현 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송의련(송의련)이 본영에서 아들
울(울)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다 행이다. 저녁나절
에 거제현령과 금갑도만호가 이곳에 와서 이야 기했다. 초저녁부터 한밤까지 땀에 젖었다.
어두울 무렵 자귀쟁이 (이장) 옥지(옥지)가 재목에 치어서 중상을 입었다고 보고 받았다.
8월 20일 [양력 9월 12일]<을묘> 샛바람이 세게 불다.
새벽에 전선(전선)을 만들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로 우도군사 삼 백 명, 경상도군사 백 명,
충청도군사 삼백 명, 전라좌도군사 삼 백아흔 명을 송희립(송희립)이 거느리고 갔다. 늦은
아침에 조카 봉·해와 아들 회·면·조카 완(완)과 최대성(최 대성)·윤덕종(윤덕종)·정선
등이 들어왔다.
8월 21일 [양력 9월 13일]<병진>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에 가서 아들들에게 화살 쏘는 연습 과 말달리며 활을 쏘는 것을
시켰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조 방장 김완(김완)과 충청우후가 아울러 왔다. 같이 점심
을 먹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8월 22일 [양력 9월 14일]<정사> 맑다.
외조모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8월 23일 [양력 9월 15일]<무오> 맑다.
활터에 가 보았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보았다.
8월 24일 [양력 9월 16일]<기미> 맑다.
8월 25일 [양력 9월 17일]<경신> 맑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8월 26일 [양력 9월 18일]<신유>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사천에 이르러 머물러 잤다. 충청우후와 함께 종일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8월 27일 [양력 9월 19일]<임술> 맑다.
일찍 길을 떠나 사천현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그대로 진주성(진성)으로 가서 체찰사
(이원익)를 뵙고 종일 의논했다. 저물 무렵에 진주목사(나정언)의 처소로 돌아와서 잤다. 김
응서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이 날 어두울 무렵 이용제(이용제) 가 들어왔는데, 역적 도당의
편지를 지녔었다.
8월 28일 [양력 9월 20일]<계해>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 앞으로 가서 종일 여쭙고 의논하여 결정하 고, 초저녁이 지나서 진주목
사의 처소로 돌아왔다. 진주목사와 함 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청생(청생)도
왔다.
8월 29일 [양력 9월 21일]<갑자> 맑다.
일찍 떠나 사천현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은 뒤에 그대로 가서 선 소리(사천시 용남면 선진
리)에 이르렀다. 고성현령(조응도)도 왔 다. 삼천포권관과 이곤변(이곤변)이 술을 가지고 뒤
따라 도착했 다. 밤들도록 같이 이야기하고 구라량(구라량)에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