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마니아들의 추앙을 받는 3인조 헤비메탈 록 그룹 ‘마그마’. 서울대, 연대생으로 구성되었던 3인조 하드록 그룹이었다. 산울림, 송골매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떨어지지만 그들이 들여준 실험적이고 파괴적인 사운드는 대중 음악사에 특별한 존재의미를 부여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마그마는 단 한 장의 독집 앨범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록의 본고장 영국에서조차 중요 수집 대상 음반으로 찬사를 받을 만큼 한국 록 음악사의 숨겨진 전설이다.
리더는 록 발라드가수로 인기정상에 올랐던 조하문이었다. 그는 성산학원 이사장으로 배문중고 교장을 역임했던 부친 조서희씨와 모친 이정금씨의 엄한 집안의 4남 2녀 중 막내로 1959년 12월 24일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해 공부를 잘 했던 그는 장충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남 앞에 나서길 싫어하는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여자 같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셋째 형이 기타를 들고 와 '에델바이스'를 노래해 처음으로 기타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홀로 기타 배우기를 시작한 그는 대경중2학년 때부터는 연주는 물론 작곡까지 시작했다. 엄한 가정분위기와 각종 시험에 억눌린 사춘기의 그를 위로해 준 것은 음악이었다. 중3 때는 정신여고 문학의 밤등 다른 학교의 행사에 초대받을 정도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다. 오산고에 진학하면서 ‘딥 퍼플’ 등 하드 록에 매료되면서 그룹 ‘갤럭시’를 결성해 활동을 했다.
78년 연세대 지질학과에 진학하면서 공부보다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이때 만난 국악작곡가 김영동을 따라 경동교회의 창극공연에 참여했다. 이후 대학2학년 때 5인조 록그룹 '아스펜스'를 결성했다. 연세대 백양로를 상징하는 백양나무라는 뜻의 팀 명이었다. 이때의 라인업은 같은 과 친구였던 기타 정창호, 베이스 생물과 2학년 김영철, 드럼 경영과 4학년 박창모, 키보드 간호학과 3학년 어은실이었다. 대학가 최고의 밴드를 꿈꿨던 멤버들은 신촌로터리 부근의 음악학원에서 매일 연습을 했다. 당시 대학가의 유명밴드는 서울대 '엑스티스', '에코우즈', 홍익대 '블랙테트라', 건국대 '옥슨스', 연세대 '라이너스'였다. 직업가수의 꿈보다는 ‘퀸’, ‘레드 제플린’, ‘레인보우’ 등의 하드 록 음악을 남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79년 4월, 연대 교내의 무악극장에서 첫 콘서트를 열은 아스펜스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대학가의 스타로 떠오른 출중한 외모의 조하문은 여대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사기가 충천한 아스펜스 멤버들은 79년 한양대에서 열렸던 대학가요축제에 대상을 꿈꾸며 출전했다. 하지만 창작곡 연주 규정을 모르고 외국 곡을 준비해 예선 당일 날 실격을 당했다. 이때 작은 거인의 김수철은 '일곱 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했다. 이후 외국 곡만 연주하게 했던 연세대 주최 대학보컬그룹 경연대회에 참가해 딥퍼플의 'BURN'을 불러 대상을 거머쥐었다. 수상을 하자 TBC '밤을 잊은 그대' 프로에서 방송 출연교섭이 들어왔다. 당시 DJ 황인용은 "앞으로 대성할 수 있는 그룹'으로 칭찬을 했다. 이후 TBC TV '젊은이의 광장'에 출연제의를 받았지만 멤버가 많다는 이유로 녹화 당일 날 퇴짜를 맞았다. 리더 조하문은 담당PD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소동을 벌였다. 79년 가을,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 포크계열의 노래로 도전했지만 방송국 난동사건으로 2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함께 출전했던 연고대 혼합밴드 '라이너스'는 '연'을 불러 우수상과 작사상을 수상했다. 이후 79년 10.26날 이대 기린제에 출전이 예정되었던 멤버들은 대통령의 유고로 공연이 취소되면서 더욱 의기소침했다. 이후 4학년이던 드럼 박창모의 졸업과 함께 ‘아스펜스’는 해체를 했다.
‘마그마’를 태동시킨 계기가 된 것은 정기 연고전 응원연습. 밴드실에 들렸던 조하문은 불문학과 동급생 김광현을 만났다. 외제기타로 연주솜씨를 뽐내는 그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았다. 넋을 빼앗긴 조하문은 연대 앞 생맥주 집에서 김광현에게 새로운 록그룹 결성을 제안했다. 김광현은 '라이너스'의 리드기타리스트 출신이었다. 그는 의사인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을 떠나 미국, 유럽을 떠돌아다녔고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연세대 2학년에 편입을 한 동급생이었다. 힘이 장사이고 태권도 유단자였던 김광현은 "조하문처럼 목소리가 우렁찬 놈은 첨 보았다"고 말했다. 김광현은 드럼을 쳤던 라이너스의 베이스기타 문영삼의 동생 문영식을 합류시켰다. 또한 베이스는 연대 밴드부에서 한명을 스카우트해 4인조를 결성했다. 이화여대 앞에 70만 원 짜리 방을 전세 내 연습실을 마련했고 깁슨기타, 팬다베이스, 루딕 드럼등 최고급 악기도 장만했다. 이때가 대학 3학년 때인 1980년 6월. 매일같이 모여 음악연습을 했다.
어느 날 조하문은 실력이 처졌던 베이스 기타를 참다못해 부셔버렸다. 그 일로 베이스멤버는 탈퇴를 하고 조하문이 베이스를 맡게 되었다. 처음 4인조로 결성되었지만 작사작곡, 보컬, 베이스에 연세대 지질학과 2학년 조하문, 리드 기타에 연세대 불문학과 2학년 김광현, 그리고 드럼엔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문영식 3인조로 라인업을 재구성했다. 이들의 음악적 공통관심은 철저한 헤비메탈로 외국 곡 카피보다는 창작곡을 지향했다. 멤버 모두는 학업성적도 우수했다. 이들은 음악 할 때와 놀 때 공부할 때를 구분했던 현명한 대학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