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들 주세요> 앤드루 클레먼츠. 햇살과 나무꾼 옮김. 사계절
‘프린들 주세요’의 주인공은 ‘닉’이라는 아이다. 링컨초등학교 5학년 아이인데, ‘못된 아이’도 아니고 ‘똑똑한 아이’도 아니고 ‘착한 아이’도 아닌‘기발한 아이’이다. 그 예로 3학년 때 교실을 열대 섬으로 만들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고, 또 4학년 때에는 검정지빠귀처럼 수업시간에 ‘삐리릿’소리를 내서 매처럼 생긴 에이버리 선생님을 1년 내내 골탕 먹인 아이이다.
닉이 5학년이 되면서 악명 높은 그레인저 선생님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레인저는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아이들은 그녀 앞에서면 왠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주는 선생님이다.
지겹고 빡빡한 첫 수업시간 닉은 다른 시간과 마찬가지로 선생님 수업에 틀을 깨려고 했다. 바로 엉뚱한 질문하기.
“선생님, .... 그 많은 낱말들은 다 어디에서 온 거예요?...”(P30)
닉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선생님은 걸려들기는커녕 닉에게 숙제로 떠넘긴다. 닉은 집에서 숙제로 내준 발표준비를 위해 고민하다가 작전을 세운다. 바로 발표를 명목으로 한 시간 끌기 작전. 그래서 수업시간 10분을 남겨둔 시간까지 열심히 발표를 마쳤지만 닉의 예상과는 달리 그레인저 선생님은 매우 만족스런 모습이었다. 여기에 당황한 닉은 마지막 질문미끼를 하나 더 던진다.
“왜 이런 낱말은 이런 뜻이고 저런 낱말은 저런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개’라는 말이 꼬리를 흔들며 왈왈 짖는 동물을 뜻한다고 누가 정했나요? 누가 그런 거죠?”(P50)
이 질문에 선생님은,
“누가 개를 개라고 했나고? 네가 그런거야. 니콜라스. 너와 나와 이 반에 있는 아이들과 이 학교와 이 마을과 이 주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모두 그렇게 하자고 약속한 거야.”(p50)라고 대답한다. 덧붙여 “사전에 나오는 말은 바로 ‘우리’가 만드는 거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닉은 ‘펜’을 ‘프린들’이라고 말하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어 문방구에 가서 ‘펜’대신 ‘프린들 주세요.’라고 했고, 친구들도 덩달아 ‘프린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닉이 쓰기 시작한 프린들이라는 낱말은 곧 학교 전체 아이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국어를 사랑하시는 그레인저 선생님과의 낱말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레인저 선생님은 문법에 맞게 써야한다고 주장했고, 프린들이란 낱말을 쓰는 사람에게 벌을 주었는데, 그럴 수록 아이들은 더욱 더 프린들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이 일은 지방신문사 기자에게 알려져 기사화 되었고, 그 신문을 본 방송국에서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전국적으로 ‘프린들’과 ‘닉’의 명성이 날리게 된다. 결국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프린들’이란 말은 유행을 하게 되어 프린들 볼펜, 프린들 옷, 프린들 공책 등 아이디어 상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고, ‘프린들’을 맨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닉은 큰 부자가 된다.
결국 프린들이란 낱말도 모자나 나무처럼 보통의 낱말이 되었고 사람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여 그레인저 선생님이 진 것으로 이야기는 일단락 지어진다.
한편 그레인저 선생님은 프린들 사건이 완전히 끝나면 닉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는데 10년 뒤 닉이 대학 3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의 진심이 담긴 편지와 최신 개정판 왭스터 대학 사전이 배달되어왔다. 사전에는 “프린들-잉크로 글씨를 쓰거나 표시를 하는 데 쓰는 도구.(임의로 만든 신조어:1987년 미국의 니콜라서 앨런이 처음 쓴 말-(참고) 펜)
이라고 쓰여있다. 결국 그레인저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줄곧 프린들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진 것이다.
참, 재미있다. 아이들의 희망이나 바램이 막연한 환상이나 몽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비록 가상의 현실이지만) 보여주니 통쾌하고 시원했다.
나또한 예전에 세상의 규율과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당연하게 알고 있던 것에 생소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아이들은 왜 숙제를 해야만 할까?”
“왜 학교는 가야하는가?”
“왜 내 머리를 맘대로 할 수 없을까?”
“공부는 왜 해야 할까?”
"달은 왜 달이고 해는 왜 해일까?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을까?"
등등.
하지만 생각으로만 묶어두고, 실천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거침없이 자기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닉이 부러웠다. 닉을 비교적 너그럽게 받아주는 사회분위기도 보기 좋았다.
그레인저 선생님이 처음부터 반대편으로 그려졌는데 마지막에가서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하나의 반전이다. 즉, 역사 발전의 원리로 '정반합'이 있듯이 닉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레인저 선생님은 열렬한 반대자의 위치에 섰고, 선생님의 반대가 결국 격렬한 논의를 엮어내어 닉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조력자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스케일이 커서 읽기에 시원스러운 점도 있다. 학교에서 시작된 일이 마을로 번지고 방송을 통해 전 나라로 발전되며, 세계적 유행까지 창조한다. 다소 황당하지만 한 아이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큰일을 겪고난 닉의 심리 변화를 포착한 것도 작가의 세심한 시각이 느껴진다. 닉은 “여전히 기발한 생각들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조금 겁이 나‘(P130)는 것을 느끼고. 그 사실을 느낀 그레인저 선생님은 닉에게 ”멋진 생각을 해냈고 네 행동도 무척 자랑스럽다“고 격려해 주신다. 더불어 선생님은 ”조금 힘든 일이 있었다고 해서 입을 꾹 다물고 지내서는 안“된다는 충고까지 주신다. 우리나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고, 작가가 창출한 이야기 속 세계가 참 재미나게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