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속 ‘情많은 한국軍’ 민심 얻어
-------------------------[2003년 11월 15일 기사]국방일보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을 앞두고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라크 추가파병을 공식
발표한 이후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고 국익과 한·미관계 등을 종합 고려,
대통령의 파병에 대한 최종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처럼 파병과 관련해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공공시설 복구와 의료지원 등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서희·제마부대의 활동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본지는 창간 39주년을 맞아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 동안 나시리야에서
성공리에 임무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서희·제마부대 1진 주요 장병들을 초청,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으로 특별 좌담회를 통해 독자들에게 파병과 관련된
폭넓은 인식과 이해를 돕고자 한다. 〈편집자〉
◇사회=지난 6개월 동안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서희·제마부대
1진을 대표해 스스로 평가를 내린다면.
◆김일영 중령=서희부대의 창설 모체부대는 190중야공대대입니다.
창설 전 인원 선발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창설일인 4월15일 전까지만 해도 종전이 선언되지 않은 전쟁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장병 본인의 의사와 부모님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 10%는 참가하지 못했죠.
나머지 90%는 간부들이 모두 간다고 하니까 믿음을 갖고 동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라크 나시리야는 안전지역으로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구 50만 명의 나시리야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바그다드 다음으로
많은 희생(미 해병대원 22명 전사)을 치른 곳입니다.
곳곳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 주민들의 적대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묵묵히 복구활동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을 계속했기 때문에 점차 안전지역으로 바뀌었고
또 많은 성과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홍성휘 소령=선발대로 가장 먼저 현지로 갔습니다.
처음 갔을 때 찌는 듯한 더위 속에 황량한 벌판에다 숙소를 차리는 문제를
비롯해 모든 것이 막막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대한민국 군인의 진실과 성실성을
주민들이 인정하고 또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6개월 동안 온갖 위험을 무릅쓴 헌신적 순회진료(주 2∼3회) 및 제마병원 개설
후 수준 높은 의료활동으로 총 4000여 명(수술 139건 포함)을 진료·치료했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에 많은 나시리야 주민은 전투병을 포함한 더 많은 한국군이
오기 바란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한국군은 최고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사회= 이라크 파병에 대해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 하는 문제와 국제사회에서의 명분,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등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임차혁 대위=서희·제마부대 병력의 약 5분의 1은 우리 특전사 요원들입니다.
주임무는 경계작전이죠.
현지에서 복구와 의료지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체안전을 위한
경계 및 경비활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라크에 간 것은 싸우러 간 것이 아닙니다. 이라크인들을 돕기 위해
간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 하는 구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목적 자체가 싸우기 위해서라면 공병부대나 의료부대도 크게는 전투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투를 위해 이라크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내에서 경계작전을
펼 때도 총구를 땅으로 향했습니다. 이라크 주민들에게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죠.
만약 상대가 기습공격하면 거의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할 때 당하더라도 철저히 경비하는 모습을 보이면 기습당할 일은 적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임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지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공병대원들이 방탄조끼를 벗고 작업할 때 우리는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약 10kg의 방탄조끼를 착용한 채 긴장을 풀지 않고
몇 시간씩 자리를 지킬 때였습니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귀국해 너무 기쁩니다.
◆구정아 소령=경비대 요원들이 너무 잘해줬기에 의료임무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경비대의 아이디어로 환자 대기 그늘막도 설치했고 또 경계작전 중 몰려드는
어린이들에게 사탕 등을 나눠 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초기에는 우리 차량에 돌을 던지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심껏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자 그들도 우호의
시선으로 바뀌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치핵수술을 받은 할아버지가 퇴원 후 과일(야자수)을
갖고 와 손을 붙잡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할 때였습니다.
우리가 이역만리 낯선 이라크에 간 것은 전쟁을 겪은 이라크인들의 피폐한 몸과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또 그들이 우리의 진심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야말로
인류애적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명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노영근 상사= 나시리야 시내로 처음 작전나갔을 때 대전차 로켓 RPG-7과
수류탄·AK소총 등으로 무장한 현지 민병대와 대치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긴장했지만 우리가 먼저 친근하게 다가서자 그들도 곧 우호적으로
대해줬습니다.
미군의 경우 언제 공격받을지 몰라 장갑차 등으로 무장하고 순찰을 돌지만 그런
것들은 오히려 주민들을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미군의 주요 부대가 철수하고 7월부터 군정책임을 맡은 이탈리아군도 대민관계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군은 세계에서 대민관계를 가장 잘하는 우수한 군대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워낙 크고 작은 대민지원에 익숙해 체질화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특전사 요원들은 철모와 방탄복 등을 착용한 상태에서 장시간 무더운
날씨에 경계근무할 때는 짜증도 나고 힘들었지만 주민들에게는 항상 친절한 모습과
미소를 유지할 수 있었죠.
그리고 수시로 현지인들은 물론 미군·이탈리아군·루마니아군 등에 태권도와
특공무술 시범을 보이며 유대를 돈독히 한 점도 나시리야에서 한국군이 유독
인기를 끈 비결인 것 같습니다.
◆김종섭 병장=운전병으로서 나시리야 시내로 하루 1회 이상 공병부대 병력을
이동시키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처음에는 현지 주민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민 대다수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대해줘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한국군을 친구처럼 대해주는
점이 미군·이탈리아군과는 확실히 다른 차이점이었죠.
처음에는 나시리야 시내에 일제 도요타 중고차가 많이 눈에 띄었지만 몇 개월
지나고부터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부쩍 늘어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이라크로 들어가기 전 현지교육을 받는 쿠웨이트의
캠프 코만도 기지의 에어컨은 모두 한국의 LG 제품이어서 자부심마저 들었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 도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 꼬마
여자애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정말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사회= 이라크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또 파병과 관련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중령=귀국해서 보니 현재 우리 한국군의 추가파병에 대해 많은 국민이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 하는 문제
▲병력 규모와 장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만큼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라크에
가는 것은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재 나시리야의 경우 치안 책임은 지난 7월 미 해병대가 철수하고 이탈리아군
3000여 명이 들어와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여론이나 반응은 썩 우호적인 편이 아닙니다.
반면 우리 한국군에는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군정, 즉 치안을 맡는 민사작전에 있어 우리 한국군만큼 뛰어난 군대는 없습니다.
이것은 미군을 비롯한 각국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병력의 규모는 어느 특정지역 군정을 책임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장소 또한 바그다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생각만큼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에 가든 파병부대가 현지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맺느냐에 있습니다.
나시리야도 처음에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었지만 적어도 우리 한국군에 있어서
만큼은 지금 이라크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 된 것도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홍소령=창설과 함께 제일 먼저 선발대(20명)로 갔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지난 4월17일 오후 10시 비행기 편이었는데 파병 반대 집회가 심하다는 연락을
받고 5시간 빠른 오후 5시에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가족들 대부분이 오후 7시쯤 마중 나오는 바람에 장병 상당수가 제대로 가족
얼굴도 못보고 떠났습니다.
처와 자식, 그리고 부모님을 못보고 떠날 때의 심정은 착잡했죠. 우리 군인들은
국가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오직 명령에 의해 위험과 고생을 각오하고 가는데 왜 죄인처럼 쫓기듯 가야
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파병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결정돼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그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장병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국민적 공감대와 이해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라크 파병 장병들도 대한민국의 귀중한 아들·딸임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희·제마부대 주요 일지
▲ 3월19일 이라크 전쟁 발발
▲ 4월2일 이라크 국군파병동의안 국회 통과
▲ 4월15일 서희부대 창설
▲ 4월17일 제마부대 창설
▲ 4월17일 서희·제마부대 1진 선발대(20명) 이라크 파병 위해 출국
▲ 4월30일 서희·제마부대 1진 1제대 출국(326명)
▲ 5월1일 부시 미 대통령 이라크 전쟁 종전 선언
▲ 5월11일 제마부대 현지에서 진료 시작
▲ 5월14일 서희·제마부대 1진 2제대 출국 및 이라크 도착. 현지 전개 완료(총 675명)
▲ 5월19일 서희부대 전후복구 임무 시작
▲ 6월15일 서희부대 태권도교실 운영 시작(~10월18일)
▲ 6월18일 현지인과 함께 ‘한국의 날’행사 개최
▲ 6월28일 서희부대 현지 알하디디 마을과 자매결연
▲ 7월14일 제마부대 병원 개소
▲ 8월4일 서희부대 현지 어린이 대살 한국어 교육과정 시작(~9월4일),
현지인 대상 사랑의 기술 학교 개소(~ 10월2일)
▲ 10월15일 서희·제마부대 1진 1제대 귀국, 2진 1제대 이라크로 출국
▲ 10월16일 미국의 이라크 결의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통과, 1진과 2진 업무 인수인계 및 합동 근무(∼20일)
▲ 10월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라크 추가파병 공식발표
▲ 10월20일 2진 지휘교대식. 현지서 본격활동 시작
▲ 10월22일 서희·제마부대 1진 2제대 귀국, 파병 이후 서희부대 1진 총64개
건물·시설 복구 및 건설(예산사업 13개·비예산사업 17개·미군 관련 34개),
파병 이후 제마부대 1진 현지인 6500명 진료(수술 139회 포함)
▲ 11월11일 현재 서희·제마부대 1진 1제대 소속부대 복귀, 2제대 휴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