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사진 의병장유적 / 효령면 오천리 554번지
#장사진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사진 장군은 구미 인동 출생으로 어릴 때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로 이사 왔는데 선조 25년(1592년 9월) 경북지방에 주둔한 왜적은 제3차 경주전투 참패로 경주성을 버리고 서생포로 퇴각하는 등 우리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는데 대구에 본 군을 두고 있던 왜군이 인동부근에도 주둔하고 있어서 군위 경계까지 침범하여 약탈과 살인 등의 만행을 저지를 때 장사진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복수군(復讐軍)이라 하여 왜적을 물리치고 적 복병에 포위당하여 전사하고 말았지만 그 때까지 군위 지역의 백성들은 안전하였다고 합니다. 선조께서 그 충성을 높이 사서 수군절도사(水軍節都使)의 벼슬을 내렸으며, 지금도 오천리에는 그 당시 장사진장군이 만든 장군천(將軍泉)이 있으며, 인근 6개 성씨의 주민들이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당(祠堂)을 지어 충렬사(忠烈社)라 하고 매년 한식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1753년(영조 29년)에 당시 군수 남태보가 지은 "국상증수사 장사진 고리비"의 비문에 의하면 장사진은 인동 장씨로 죽정 장잠의 손자이며 담략과 무용을 갖추어 임진왜란 때 군위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고, 오천리에 있는 충렬사와 병수리에 있는 고리비(故里碑)는 1997년에 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3. 제동서원 / 효령면 장군리 624번지
#고려 말에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장군당을 건립하고 단오날마다 제사를 올렸는데, 1850년 무렵 화재가 일어나 모두 소실되었다. 그 뒤 김해 김씨 후손들이 다시 사당을 지어 보존해 왔으나, 건물이 너무 낡아 1946년 옛 사당터에 새로운 서원을 창건하였다. 건물은 사당 숭무전(崇武殿)을 비롯하여 총 3동이 있으며, 해마다 단오절(음력 5월 5일)에 제사를 올린다. 서원 뒤쪽으로 계단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1칸 정도의 작은 규모인 장군당이 있으며, 안에는 장군당 유허비가 남아 있다.
4. 불로리 전통마을 / 효령면 불로리마을
#불로리전통마을은 대구에서 안동간 5번 국도로 50분 정도 거리(효령면 소재지에서 2km)의 좌측일대입니다. 불로리 전통마을은 산 아래턱에 위치한 아담하고 소박한 마을로서 행주 은씨와 김해 김씨가 3:1의 비율로 집단 거주하는 전통마을입니다. 행주 은씨는 소보면 화실에도 집단 거주하는데 약 300년 전 은종 진씨께서 이곳으로 이거하면서부터 불로리에 행주 은씨가 많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치 이 마을을 지켜주는 듯한 자태로 우뚝 서 있고 오이 밭과 산, 위천강 줄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중심에는 행주 은씨 재실 4개와 김해 김씨 재실 1개가 있는데 각 재실에서는 매년 시사 때(음력 10월 15일)마다 모여 제사를 드리며 친목도 다집니다. 은씨의 재실은 군위에서는 보기 드문 크고 화려한 것으로 기둥과 기와 등이 옛날 행주 은씨 선조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짐작케 합니다.
마을에는 도로 건너편 바위에 새겨진 마애보살입상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옛날 남양홍씨가 불로리 북쪽지점에 많이 살았는데 아주 부자라 흉년임에도 불구하고 밤낮 찾아오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하루종일 손님대접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어떻게 하면 손님이 줄어들겠냐고 여쭈었더니 건너편 산 암벽에 미륵불을 새기라하여 그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3년 이내에 망하여 모두 떠나고 이곳을 지금은 남양홍씨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로리 전통마을은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어른들의 평균수명은 평균 85세 이상으로 장수하고 계시며 옛 선조들의 삶의 정신을 배우고 계승할 수 있는 전통마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