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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 - 行由品- 12
宗이 曰, 何不論禪定解脫이니꼬 能이 曰, 爲是二法이요 不是佛法이니 佛法은 是不二之法일새니라 宗이 又問, 如何是 佛法不二之法이니이꼬
能이 曰, 法師- 講涅槃經하야 明佛性이 是佛法不二之法하리니 如高貴德王菩薩이 白佛言하사되 犯四重禁과 作五逆罪와 及一闡提等이 當斷善根佛性否이까
佛言, 善根에 有二하니 一者는 常이요 二者는 無常이어니와 佛性은 非常이며 非無常일새 是故로 不斷을 名爲不二며 一者는 善이요 二者는 不善이어니와 佛性은 非善이며 非無善일새 是名不二라하시니 蘊之與戒를 凡夫는 見二어니와 智者는 了達其性이 無二하니 無二之性이 卽是佛性이니라하니
印宗이 聞說하고 歡喜合掌言하되 某甲의 講經은 猶如瓦礫이오 仁者論義는 猶如眞金이니다하고 於是에 爲慧能剃髮하고 願事爲師어늘 慧能이 遂於菩提樹下에 開東山法問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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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종)이 曰(왈),
何不論禪定解脫(하불론선정해탈)이니→ 왜 선정이니 해탈이니 그 아주 고급스러운 말. 불교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말인데, 선정을 닦는 문제, 생사를 해탈하는 문제, 그것을 왜 말하지 않습니까?
能(능)이 曰,
爲是二法(위시이법)이요 不是佛法(불시불법)이니→ 이것은 二법이 된다 이겁니다. 두 가지 법이 되고, 불법은 아니다. 그럼 불법은 뭐냐?
佛法(불법)은 是不二之法(시불이지법)일새→ 이것이 중요한 것이에요. 특히 육조스님. 특히 육조단경에서 見性(견성). 일체만법의 자성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각도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그 뒤에 인도의 뛰어난 조사스님들은 빙빙 돌려가지고 별별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그래서 수많은 경전과 어록이 나오긴 했는데, 육조스님은 어디에다가 중심을 두고 같은 견성의 문제. 마음의 문제를 설명을 하는가 하면, 불이. 둘이 아니다. 둘로 되어있는데 결국은 둘이 아닌 이치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이 결국은 中道(중도)의 가르침 이지요.
중도의 가르침입니다. 육조스님이 선종인데 무슨 중도는 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냐 하지만은 敎(교)고 禪(선)이고 불법인 이상은, 불교인 이상은 중도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벗어나면 선이고 교고 불교가 아닌 것이 되고, 제대로 불교를 간추릴 줄 아는 사람은 꼭 중도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사의 어떤 기상천외한 말씀이라 하더라도 중도의 이치에서 하나도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육조스님께서 선정이다. 해탈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요. 그걸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좋게 이야기를 잘 하고요.
그러나 그것은 중심 되는 가르침은 못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되면 두 가지로 이야기가 된다. 상대적인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지요.
선정을 통해서 해탈을 얻는다. 그래 버리면 상대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법은 둘이 아닌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마경에도 불이법을 최상의 법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고, 또 사찰에 들어가면 不二門(불이문) 이라고 하는 것이 의례히 있게 마련이지요.
둘이 아닌 법이다. 둘이 아닌 도리다. 세상은 전부 둘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거기에만 딱 봉착이 되어 있으면 그것은 치우치는 소견. 편견. 치우친 소견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둘로 이루어져 있지만 또 둘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차원까지 알아야 비로소 불법을 제대로 안다는 것입니다. 남녀. 시비. 선악. 여기 앞에: (12강)
不思善不思惡(불사선불사악). 그것이 벌써 중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中道(중도)!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그러니까 그것은 다 소위 부정을 뜻하는 것이거든요.
선과 악을 다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 부정 하느냐 하면, 그것이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 인간의 삶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생길 수 있다고 거기에 치우쳐 버리면, 거기에 떨어져 버리면 그것은 깨달음의 경지. 정말 圓融無碍(원융무애) 한 마음의 경지는 꿈에도 못 본다 이것입니다. 원융무애한 정말 위대한 마음의 경지를 이해하려면, 선도 악도, 시도 비도, 남도 여도, 동도 서도 거기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不思善不思惡.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는 그런 가르침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不二 라고 하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이것입니다.
선도 악도 아니다. 이것은 불교의 宗旨面(종지면)에, 근본취지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있어야 되고, 이런데 대해서 좀 생각을 많이 해야 납득이 될 그런 대목입니다. 그러나 납득이 되고 안 되고 간에, 불법의 바른 이치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는, 불이의 법. 중도의 이치. 이것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다른 인과 문제라든지 다른 방편의 이야기가 많지만, 최소한 육조단경을 앞에 놓고는, 달리 딴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육조스님은 뒤에 유언이 있어요. 유언이 있는데 자기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둘이 아닌 도리. 상대 하나하나가 전부 상대로
되었는데, 상대를 초월한 중도의 이치를 가지고
법을 펴라.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건 나의
제자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럴 정도로, 특히 육조단경에서는 우리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간에 불이의 도리! 중도의 도리를 이야기 안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뒤에 가면 36계라고 하는 것. 서로서로 상대되는 도리를 36가지로 분류를 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불법은 불이의 법이다.
佛法은 不二의 法일새.
宗이 又問(우문),→ 인종 법사가 또 묻기를,
如何是 佛法不二之法(여하시 불법불이지법)이니이꼬→ 불법이 둘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불법으로서 둘이 아닌 법입니까?
能이 曰, 法師-講涅槃經(법사-강열반경)하야→ 법사가 열반경을 강해서
明佛性(명불성)이 是佛法不二之法(시불법불이지법)하리니→ 불성을 밝히는 것이 불이의 법이니라.
여기 불성이라고 했지요? 불법은 둘이 아닌 법이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둘이 아닌 법이냐? 열반경은 내가 듣기로 불성을 드러내는 경전인줄 알고 있다. 그 불성이 바로 불법이 둘이 아닌, 불이의 법이다. 불성이란 곧 마음이거든요. 앞에서: (13강) 자성. 법성. 불성 그렇게 했는데, 다른 말로, 쉬운 말로하면 마음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열반경에서 불성을 왜 그렇게 치우쳐서 이야기했느냐? 부처님이, 그 위대하신 인격자가 보통 사람들처럼 이 육신이 소멸로 들어가니까 거기에 대한 제자들의 실망이 너무 크지요. 육신은 누구나가 다 죽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부처님 같이 위대한 분은 안 죽었으면 싶은데, 죽으니까 얼마나 실망이 크겠어요?
불성은 영원하다. 常住不滅(상주불멸)한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열반경에서는 주로 많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성을 밝히는 쪽으로 되어 있지요. 열반경은요.
如高貴德王菩薩(여고귀덕왕보살)이 問佛言(문불언)하사대→ 예컨대 열반경에, 육조스님이 무식하다고 해도 15년 동안 사냥꾼들 밑에 있으면서, 아마 경전도 많이 보고, 충분히 그럴 시간이 있었으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뒤에 보면 어떤 경우는
“경을 읽어라. 내가 한번 들어보고 그 이치를 설명하겠다.” 처음 대하는 경은 그렇게 해요.
금강경 같은 것도 금강경주해가 있는데, 그것을 구결이라고 그러거든요.
육조스님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그 대목이 끝나면 말로 하는 거예요.
말로 했다고 해서 입 口(구)자. 비결 이라는 訣(결)자. 그래 금강경에는 구결이라고 그래요. 말로 설명을 하는 그런 형식을 취했지요.
열반경에 高貴德王菩薩(고귀덕왕보살)이라고 하는 품이 있는데,
白佛言(백문불언)하사대 犯四重禁(범사중금)과 作五逆罪(작오역죄)와
及一闡提等(급일천제등)이 當斷善根佛性否(당단선근불성부)이까→ 고귀덕왕 보살이 부처님께 물었어요.
四重禁. 계를 범한 것. 이것은 불교에서 250계. 348계. 또는 48계. 10중대계 그렇게 하는데, 그 중에서 제일 엄격하게 말하는 계율이 殺(살). 盜(도). 淫(음). 妄(망). 네 가지를 이야기해요.
살생. 도적질. 음행. 망어. 망어는 대망어 라고 그래요. 깨닫지 못 했는데 깨달았다고 하는 것을 그 망어를 여기서는 대망어 라고 하는데, 그것을 범하고, 또
五逆罪를 짓고... 오역죄라고 하는 것은 다섯 가지 해서는 안 될 일인데, 이것이
殺父殺母(살부살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고 성인을 죽이고,
出佛身血(출불신혈)이라.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것.
조달이라고 하는 사람이, 제바달다지요? 제바달다가 언덕위에 있다가 돌을 굴려서 그 파편이 부처님 발에 떨어져 가지고, 피가 많이 났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원인이 돼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것.
破和合衆(파화합중). 화합한 어떤 단체를 이간질을 해가지고 그 화합한 대중을 깨뜨리는 것. 이것은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아버지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과 맞먹는 죄가 됩니다. 화합하고 있는 단체를 깨뜨리면... 그건 이간질 시키든지 뭘 하든지, 불란을 일으켜서 화합을 깨뜨리는 것. 이것은 아주 단체생활 하는데 정말 그거는... 개인적으로 어디 가서 무슨 다른 살 도 음 망 을 저지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죄가 되는 것이지요.
일천제. 일천제라고 하는 것은, 단선근이라 해서 크게 나쁜 짓을 많이 해서라기보다는, 불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 그걸 선근을 끊은 사람이라고 그래요. 이 일천제라는 말은 인도 말입니다.
선근이 끊어진 사람. 이 세 종류등이 마땅히 선근 불성을 끊은 것입니까? 불성이 아예 없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佛言(불언),→ 부처님의 대답이
善根(선근)에 有二(유이)다→ 선근이라고 하는 것. 거기에 두 가지가있을 수 있다.
一者(일자)는 常(상)이요 二者(이자)는 無常(무상)이다→ 하나는 영원한 것. 하나는 영원 하지 않은 것. 무상한 것이다.
佛性(불성)은 非常(비상)이며 非無常(비무상)일새→ 이것 중요한 말이에요. 불성은 항상 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항상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중 부정이니까 항상 하다는 뜻이 되겠지요?
이것이 불교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항상 하다고 하든지, 아니면 항상 하지 않다고 無常하다고 하든지,
그래야 되는데 이렇게 나오니까 여기에 그만 부딪히는 거예요.
그러나 불성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 이상은 달리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마음이라고도 합시다.
우리 마음이 항상 한 것 같기도 하고 어때요?
朝夕之變(조석지변). 조석지변 같기도 하고, 그냥 뭐 조석지변이 뭐요.
금방 일초 매분 매초마다 변하는 것은 그건 또 어떻게 된 거냐? 이겁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보면 또 계속 되는 것 같고...
뭔가 뿌리는 계속 되는 것 같아요. 계속 되는 것이 뭐지요? 비무상 이지요. 계속 안 되는 것은 비상 이지요. 항상 하지 않다 이것이지요.
是故(시고)로 不斷(부단)을→ 그런 까닭에 끊어지지 않는다. 하는 것을, 名爲不二(명위불이)며→ 이름 해서 不二라고 한다. 둘이 아니라고 이름 한다. 끊을 수 없는 겁니다. 본래 이 불성이라고 하는 것은, “불성을 끊는다.” 이런 말을 썼는데,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을 수 없는 그것이 一者는 善(선)이요 二者는 不善(불선)이다→ 하나는 선일 수 있고, 하나는 불선일 수 있다. 우리 마음이 선한가 하면 악 하고, 악한가 하면 또 선하고... 그래서
佛性(불성)은 非善(비선)이며 非無善(비무선)일새→ 선도 아니고, 선하지 아니한 것도 아니지요.
是名不二(시명불이)라→ 이것이 이름이 둘이 아닌 도리다. 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뭐 말장난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둘이라고 이렇게 나누어서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이건가 하면 저거고, 저건가 하면 이거니까요.
때로는 둘이고, 때로는 하나이니까 이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蘊之與戒(온지여계)를 凡夫(범부)는 見二(견이)어니와→ 온. 오온 이예요. 色(색). 受(수). 想(상). 行(행). 識(식). 이것을 우리 몸과 마음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 몸 하나.
수= 感受(감수)하는 것.
상= 생각하는 것.
행= 생각이 자꾸 변화해 가는 것.
식= 認識(인식)의 主體(주체). 수 상 행 식 이렇게 몸과 마음을 蘊이라고 그러고, 그리고 戒(계) 는 18계지요. 眼(안). 耳(이). 鼻(비). 舌(설). 身(신). 意(의). 五官(오관)에서 意識(의식)까지.
그래서 불교에서는 오관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 오관 을 해서 의식까지 육관을 말하지요.
육관의 대상은 색. 성. 향. 미. 촉. 법입니다.
거기서,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눈은 사물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듣고,
혀는 맛을 보고,
코는 냄새를 맡고,
몸은 촉감을 감지하고, 이런 상대적인 여섯 개와 여섯 개를 상대해서 어떤 인식작용이 또한 여섯 개가 있지요. 그래서 삼 육 십팔 해서 18계라 그럽니다.
그것을 범부는 견이 전부 둘로. 상대적인 것으로 보지만,
智者(지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了達其性(요달기성)이 無二(무이)하니→ 그 성품. 그 본질을 깨달아 알아 기성이 무이한 것을 요달한다 본 성품은 둘이 없다고 하는 것을 안다.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본다. 사물을 보고 거기서 “아, 어둡다 밝다, 희다 검다.” 라고 인식하지요?
그러면 세 가지 아닙니까? 여기 “見二. 둘로 본다.”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입니다. 하나에서 눈도 인식이 되고, 눈이 상대하는 사물도 인식이 되고,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인식 작용도 거기서 하나의 뿌리에서 일어난다 이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라고 하면 안 되지요. 왜냐? 눈 따로 있고 사물 따로 있으니까요.
또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인식이 따로 있고요.
또 그 인식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고요.
그것을 셋이라고도 못하고 둘이라고도 못하고, 그렇다고 꼭 하나라고 고집도 못해요. 고집도 못한다고요.
그래서 “善(선)도 아니고, 不善(불선)도 아니다.”
“常(상)도 아니고, 無常(무상)도 아니다.” 이런 표현을 하게 됩니다.
無二之性(무이지성)이 卽是佛性(즉시불성)이다→ 둘이 아닌 성품이 곧 불성이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둘이 아니지만, 둘이 아니면 하나냐? 그렇지만 하나라는 말은 안 쓰잖아요. 이것이 둘 이라고 치우쳐서 생각하는 그 집착을 깨뜨려 주는 말입니다.
둘 이라고 집착을 하는 말을 깨뜨려 주는 말이라고요.
하나라고 하면 하나에 또 집착을 해버리지요. 이것은 불교의 아주 근본가르침이 돼가지고, 처음 듣는 분들은 좀 어렵게 생각이 들어요.
또 이것이 어려운 거예요. 이 이치에 꿰뚫어 알아버리면, 이 중도 사상. 중도의 공식을 꿰뚫어 알면 불교 다 아는 것이지요. 불교의 근본취지는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니다.” 하면 하나라는 말을 안 쓰는 이유.
둘인데 왜 둘이 아니냐? 둘이라고 보고 있는 우리의 집착을 깨뜨려 주어야 그것이 재대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거기서 圓融無碍(원융무애)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남 여” 라고 이렇게 우리가 꼭 그렇게 線(선)을 그어놓고 생각하면, 집안과 삶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럼 뭐 예를 들어서 “집안일은 여자가 한다.”라고 그렇게 딱 정해놓고, 치우쳐놓고 딱 그렇게 선을 그어놓고 생각하면 밥 안 해주면, 평생 열흘이 가도 밥 안 해먹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밥해 먹어야지, 없으면 밥해 먹어야지요. 청소도 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된다고요. 그리고 또 남자가 돈 못 벌어오면 여자가 벌어야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그 사람이 원융무애하게 바로 인식하고 사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남자가 돈 벌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 산다.” 딱 그래 놓으면, 여자가 죽어버리면 남자도 죽는 거예요 그냥...
바로 따라 죽어야 된다고요.
여자가 어디 볼일 보러 가 버리면, 남자가 밥 못 해먹으니까 죽어야 되잖아요?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렇듯이 모든 존재를, 모든 것을 선이다 악이다. 시다 비다. 라고 딱 고정시켜 놓고 보면, 그것은 백이면 백. 다 틀리게 되어 있어요. 다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善할 때, 딱 “선이다”라고 우리 기준으로 “선이다”해 놓으면, 어디가도 선 이라야 되는데 그것이 아니거든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요.
우리는 된장찌개가 얼마나 구수하고 입맛을 돋웁니까?
예를 들어서 미국이나 저기 유럽. 아파트 같은데서 된장찌개 끓였다간 당장 쫓겨나요. 서양에선 똥 냄새 보다도 훨씬 못 맡는 것이 된장 냄새예요.
차라리 대변 냄새는 맡을 수가 있는데, 된장 냄새는 못 맡는다는 것입니다. 한 번 끓였다가 혼이 났다는 겁니다. 반상회인가 뭐 붙여가지고 공사를 붙여가지고, 시말서 쓰고 절대... 다 갖다버리고... 그런 예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한 번 된장 먹으려고 아파트 안에서 된장 끓였다가 먹지도 못하고 바로 쫓겨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도 우리 상식으로, 우리 기준으로 그냥 선이다 악이다 하고 그래요.
그것은 아주 지극히 표면적인 이야기인데, 된장 문제니 善 문제니 하는 것은 지극히 표면적인 문제인데, 모든 존재의 근본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이렇다.”라고 딱 집착해서 봐 버리면 그것은 바로 못 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마음은 더욱 말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마음은 더 그래요. 마음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는 정말 이거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지요. 그래 不思善不思惡하라. 그랬을 때 당신의 참 생명이 어디 있느냐? 참 생명은 무엇이냐? 이거지요.
우리는 늘 선이다 악이다. 시다 비다. 치우쳐서 있거든요. 그 치우쳐 있으면 완전한 생명의 존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無二之性(무이지성)이 卽是佛性(즉시불성)이다→ 둘 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성품이 불성이다.
印宗(인종)이 聞說(문설)하고→ 인종 법사가 설하는 것을 듣고는,
歡喜合掌言(환희합장언)하되→ 화~ 정말, 정말 기가 막힌 소리를 하거든요. 그래도 이분은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큰 법사라고 해서, 열반경도 강했던 사람이니까 말도 잘 알아들었겠지요. 이런 아주. 아주 간결한 뼈대뿐이잖아요. 보면 뭐 긴 설명 없거든요.
某甲(모갑)의 講經(강경)은 猶如瓦礫(유여와력)이오→ 마치 내가 열반경응 강의한 것은 기와 쪼가리 같고,
仁者論義(인자론의)는→ 그대가 그 의미를 론의하는 것.
의미를 논하는 것은,
猶如眞金(유여진금)이다→ 마치 진금과 같다.
나는 그 동안 헛소리 했다 이겁니다. 기왓장 쪼가리. 저기 뭐 조약돌 보여줬고, 그대는 진금을 우리에게 선사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於是(어시)에 爲慧能剃髮(위혜능체발)하고→ 혜능을 위해서 머리를 깎아주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머리를 못 깎은 것이지요. 아직까지 행자지요.
15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願事爲師(원사위사)라→ 대중들이 전부 스승 되기를, 스승으로 섬길 수 있기를 원하거늘,
慧能(혜능)이 遂於菩提樹下(수어보리수하)에
開東山法問(개동산법문)하니라→ 혜능이 드디어 보리수 아래서, 보리수가 꼭 있었다기보다, 거기도 보리수가 있었다고 봐야 되겠지요. 동산 법문을 열게 되었다.
인종법사가 원하니까 동산 법문을 열게 되었다. 거기 아마 동산이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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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드디어 혜능스님 머리깎으시고 법문하신 내용이군요. 중도(中道)의 가르침....감사드립니다. 대원성님_()()()_
치우쳐 있으면 완전한 생명이 못 된다... 無二之性이 卽是佛性이다... 둘 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성품이 "불성"이다...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 _()()()_
智者는了達其性이 無二하니...지혜로운 사람은 성품의 본질을 깨달아 본성품은 둘이 없다는 것을 안다...대원성님, 고맙습니다. _()()()_
無二之性(무이지성)이 卽是佛性(즉시불성)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 대원성님. 고맙습니다. _()()()_
無二之性이 卽是佛性이다..대원성님 수고하셨습니다.._()()()_
대원성님 수고 많으셨습니다..無二之性이 卽是佛性...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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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음지와 양지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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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대원성님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마하반야바라밀()()()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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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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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是不二法 不二門 中道의 가르침 佛性은 非善(常)이며 또한 非無善(常)이다.
어떤 선사의 어떤 기상천외한 말씀이라 하더라도 중도의 이치에서 하나도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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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思善不思惡........ 고맙습니다.
無二之性(무이지성)이 卽是佛性(즉시불성)이다→ 둘 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성품이 불성이다.고맙습니다_()()()_
無二之性 卽是佛性 ... _()_
우리는 된장찌개가 얼마나 구수하고 입맛을 돋웁니까? 미국이나 저기 유럽. 아파트 같은데서 된장찌개 끓였다간 당장 쫓겨나요. 서양에선 똥 냄새 보다도 훨씬 못 맡는 것이 된장 냄새예요. 차라리 대변 냄새는 맡을 수가 있는데, 된장 냄새는 못 맡는다는 것입니다. ...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無二 ...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明佛性(명불성)이 是佛法不二之法(시불법불이지법)하리니→ 불성을 밝히는 것이 불이의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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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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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