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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Painting Gallery에서 만든 그림엽서 | 호텔 프런트 여직원이 방 열쇠와 함께 흰 봉투를 건네준다. 곧장 방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로비 오른 쪽에 붙어 있는 화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봉투를 뜯었다. 해피페인팅이란 갤러리의 이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봉투 속에는 그보다 약간 작은 직사각형의 초대장이 들어 있다.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의 동생인 노로돔 시리부드의 점심 초대다. 우린 그를 왕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간은 정오, 저녁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멋진 음식이 기대된다.
장소는 캄보디아나 호텔의 레스토랑 암브로즈, 고대 그리스 신들의 음식이거나 거기서 연유한 성 암브로시우스를 의미할 것이다. 마지막에 한 줄 더 있다. 복장은 정장, 바로 이 약속 때문에 배낭 대신 여행용 가방에 양복과 구두를 넣어와야 했다. 가벼움을 자랑으로 여기는 나그네에게 이런 짐은 거의 치욕에 가깝다.
남는 시간을 해피페인팅에서 보내기로 한다. 벽에는 온통 원색의 실크스크린, 캄보디아의 이모저모를 일회용 카메라로 찍어 놓은 듯하다. 오토바이 뒤에는 네 명, 시클로 앞쪽엔 여섯 명이 타고 있다. 뒷배경은 앙코르와트, 아니면 소도구로 앞쪽에 해골바가지를 배치한다. 뛰노는 아이들이나 과일 광주리를 이고 있는 여자들이나 모두 즐겁다. 해먹을 매단 나무 기둥에 거울을 달고 이발을 한다. 자르는 사람이나 잘리는 사람이나 모두 웃는다. 그래서 이 그림들을 그냥 해피 캄보디아라고 부른다.
스텝이란 애칭으로 통하는 스테판 들라프레는 1956년 파리에서 태어나고 캐나다와 세네갈에서 자랐다. 원시주의와 야성주의를 살리고 있다는 평을 받으면서, 몇 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정을 붙이게 됐다. 공포와 질식의 강을 건너고 빈곤과 무질서 속에서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는 크메르 인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징표를 태국 북부 지방에서 나는 뽕나무 껍질로 다듬은 종이에 옮겼다.
스텝의 그림은 만화처럼 재미있고 예뻐 꽤 인기가 있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기념품이 없으니 그 틈새에서 더 잘 팔릴 수도 있다. 이 나라는 관광상품마저 서양에 빼앗기고 있는가. 그림 하나를 골라 액자가 작은 가방에 들어 갈 수 있나 가늠하는데 벌써 12시 5분 전이다.
왕자는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왕실에 대한 불경죄로 곤욕을 치르지나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친다. 안경을 끼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모습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저런 차림으로야 어떻게 경찰이나 군대를 부르겠는가.
암브로즈 레스토랑의 한쪽을 나무 벽으로 막아 긴 방을 만들었다. 다시 강변 쪽 일부를 커튼으로 자르니 아늑한 밀실이 된다. 원탁에 둘러앉자, 왕자의 뒤로 길게 드리워진 단정한 레이스가 달린 흰 커튼이 제법 품격을 살려준다. 그 사이로 메콩 강이 얼핏 보인다. 호텔 지도에는 톤레삽 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메콩과 톤레삽이 만나는 곳이다. 캄보디아에서 정확한 정보란 드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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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교수가 노로돔 시리부드 왕자에게 고지도 달력을 증정하는 모습 | 음식을 주문하고, 왕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의 두 시간 동안 혼자 얘기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하였으나 영어는 유창하고 훌륭하다. 간혹 내용을 놓치기는 하지만, 그의 어조는 품위가 있다. 열심히 접시를 비우며, 부드럽고 진지한 영국 신사 같은 그의 목소리만 감상한다. 질문이 있어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안경환 교수가 도맡아 대답을 하니까.
프랑스 여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왕자의 현재 공식 직함은 두 개다. 캄보디아 평화협력연구소(CICP) 소장과 형인 국왕의 개인 자문역, 영국식으로 말하면 추밀원이다. 모든 활동은 연구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재원은 아마도 외국의 지원금임이 분명하다. 왕실의 돈도 더러 사용할 것이다. 연구소에서 낸 책자를 잔뜩 들고 왔는데, 캄보디아 홍보를 위해 진지한 자세를 보인다.
첨단공학 근방엔 가지도 못하지만, 한국에 없는 앙코르와트를 자랑한다. 농업은 상당한 잠재력을 지녔으며, 보석광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겐 언제든 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기미다. 왕실과 훈센 정권은 사이가 좋지 않지만, 그도 한때 외무장관이었다. 훈센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한 적도 있다.
우리가 차지한 원탁의 바깥쪽이 떠들썩하다. 왕자의 누이가 네덜란드 방문객들을 끌고 왔다. 겉차림은 계모임에 참석한 아줌마 같지만, 공주는 그래도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을 지역구로 한 국회의원이다. 왕자는 우리와 함께 흔쾌히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분명히 존재하는 현재의 고통은 어딘가에 감추고 있다. 영어식 표현이 있지 않는가, '왕자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안 교수는 잠이 들었다. 슬며시 일어나 방문이 잠기지 않게 걸쇠로 받쳐두고 나섰다. 강변의 상가로 가면 혹시 싸게 국제전화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 대사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프놈펜의 밤이지만, 나는 그처럼 잃을 게 없다. 오히려 살랑거리는 밤공기가 반겨주지 않는가.
기다리고 있는 건 바람뿐이 아니다. 호텔 정문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다. 시내버스나 택시를 대신한 캄보디아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이 곳 사람들은 고무줄처럼 늘여 다섯 명까지 타는 낡은 비닐로 덮힌 뒷좌석에 혼자 앉는 호사를 감행한다. 쉽지 않은 균형잡기라 무의식적으로 오토바이 택시 기사의 웃옷을 부여잡는다. 순식간에 강변도로를 돌파한다. 달리면서 나는 웃는다. 결코 스텝도 채색하지 못할 것이다, 이 어두운 밤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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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브로즈 레스토랑에서의 만남(좌측부터 차병직, 안경환, 왕자, 이정선, 옴 라사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