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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보다 몇 배 더 힘든 어제 였던것 같은데 일찍 잠도 안들었었지만 그런데 여느 날보다 더 일찍 눈을 뜨게 되어 기도하게 하심으로 알고 일어나 앉아 묵상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나가시는 길을 다시금 묻고 순종할 것을 마음에 다짐 하였다.
오늘은 나갈랜드에서 연결된 이 U.P지역에서 선교하는 아리 선교사를 만나기로 하였다. 우리가 어느 곳으로 가는 것보다 아리 선교사님이 이곳 아닐 집으로 오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어 아닐 집으로 오시라고 하였다.
원래 오늘은 어제 하리 집을 들렸을 때 하리가 아닐 집으로와서 우리와 함께 하리 집으로 가서 한국에 가서 일했던 모리아(파송선교교회 나왔던 형제)가 하리 집으로 오면 모리아 집과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맘야람과 굳드 그리고 소누 집을 방문하기로 했었다.
오늘 하루는 아닐 집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어제의 피로를 오늘 풀도록 은혜를 베추시는것 같았다.
오후5시경 약속대로 아리 선교사님이 아닐집으로 왔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기에 아리 선교사와의 대화는 저녁을 먹고나서 저녁에 나누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고난 후 나는 아리 선교사에게 물었다. 아리 선교사가 지금 어떤 사명감을 갖고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 지를 물었다. 현재 1991년도에 나갈랜드에서 U.P에 왔으며 church on the word 를 섬기고 있다고한다. 8명의 전도 사역자가 있고 1명의 목사(카티마 출신)와 3명의 선교사가 있으며 3천명의 성도가 모인다고 한다. 6월부터 학교 만들어 해보니 지역사회에 부작용이 없고 전도 효과를 크게 느끼고 있어 주변 지역으로 늘리고 싶다고한다.
현재 자신의 계획은 네팔 지역을 포함하여 학교를 세웠으면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 16명의 신학생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인데 2009년도에 졸업하는 학생들로 내년 4월부터 전도사역 계획을 갖고 있으면 현재 3명이 자비량 전도사역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우선 인도 법인을 만들기로 하였다. 7명 정도로 구성하고 교과 과목은 힌디어, 영어, 산수를 기본으로 시작하는데 교사는 우선 3명으로 구성하여 2개반으로 하면 되고 1명당 교사의 월급은 약 4,000Rs(한국돈으로 약 십만원정도) 정도로하고 유니폼과 책 그리고 학용품을 제공하고 중식제공을 하면 된다고 한다. 현재 나갈랜드에 있는 교회중 92개교회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원 요청을 하면 지원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아리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밤도 많이 깊어간다. 오늘뿐만 아니라 한국을 출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하심가운데 이끌어가시는 모습에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조용한 밤시간 아닐 집 건너편 들판에서 울려오는 여우의 울음소리와 동물의 왕국에서 자주 들어본 하이에나 짐승떼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마무리 기도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었다.
2008.10.11(토)
아리 선교사님은 오늘 계획이 있기에 아침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아침을 먹고 아리 선교사님을 배웅한 뒤 아닐이 구입하기로한 땅을 보러가기로 하였다. 아닐 집에서 약 1Km 떨어진 곳이었는데 T자 형으로난 도로 건너편인데, 200여m 떨어진 곳에 고등학교가 있었다. 이 집사님과 우리는 이곳에 학교를 지으면 어떻겠는냐고 했다. 대답을 안하는 아닐에게 우리가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얼굴의 화색을 띠우며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사실 그곳은 학교를 지을만한 그런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때가 지날 무렵 사실 이곳에선 점심이 없다. 이집사님과 이곳에와 하루 두끼만 먹게되어 처음엔 먹을 것을 수시로 달라고 하여 인도 티(짜이)로 배고픔을 달래고 미리 사간 과일로 허기를 조금씩 면하면서 지냈다.
아닐이 볼일이 있어 고락부르 시내로 나갔다. 오후 5시경 하리가 아닐 집으로 왔다. 친구차로 함게 우리를 데리러 왔다. 아닐이 없는 사이 우리는 가볍게 가방을 챙겨 나오니 아닐 어머니와 가족들이 서운한 모습으로 우리를 배웅했다. 더군다나 내일(주일) 아닐의 바로 밑 동생이 두바이로 일하러 간다고 했다. 우리도 하리 집으로가 북적대던 집이 고요해지는 데 작은 아들을 두바이로 떠나보내는 아닐의 어머니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을 한 뒤 하리의 친구 차를 타고 하리 집으로 향하였다. 날은 곧 저물었다. 비포장 도로를 포함하여 형편없는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제법 커보이는 시장을 지나오면서 과일을 넉넉하게 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과자도좀 샀다. 하리 집으로 오면서 하리가 나에게 말을 꺼냈다. 자신의 땅이 있는데 작지만 그곳에 학교와 교회를 세우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리 집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인사를 나눈뒤 하리와 구체적으로 땅 이야기와 학교와 교회를 건축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길 하였다.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이곳에 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하여 미리 이야기를 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나는 예전에 한국에 있을때(파송선교교회에 나올때)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 났다. 목사님 나중에 자기 고향에다가 교회를 만들어요 라고 했던 말. 이미 하나님은 이 하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어가실 일들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계획된 일을 이제 이루시려고 나를 이곳 하리가 사는 곳을 들르게 하셨고 지금 이 하리의 집에 오게 하셨다. 하리는 한수 더 떠서 나에게 말을 하였다 다음에 오실때는 CD나 DVD 예수님에 관한 영화를 가져 오셔서 보여 주시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하리를 복되게 하심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2008.10.12(주일)
어제밤 나의 잠은 이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깊은 잠과 그리고 눞자 마자 잠든 것이 처음 인듯하다. 이 집사님의 말도 같은 말이었다. 아마 아브람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들었을때의 심정과 야곱이 숙곳에 머물렀다가 하나님을 뵈옵고 그곳을 벧엘 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놓고 길을 갔을때의 심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제 하리가 말한 땅을 살펴 보았다. 살펴보니 학교와 교회를 세우기에는 좀 작은 부지였다. 나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땅을 살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리에게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 땅을 구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어제밤 하리 형님이 우리를 위하여 농수로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왔다 그 물고기가 우리의 아침 메뉴가 되었다. 오늘은 주일 예배를 하리 집에서 드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늘 이곳 5개마을 을 대표하는 (촌장이라고 설명하는게 좋겠다) 촌장이 하리 집으로 오기로 하였다. 이미 하리가 이곳에 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놓은 것을 다시 우리에게 확인해 주기 위해서 오기로 했단다. 오전 11시가 되어 하리 가족과 더불어 이 집사님과 인도에서 나의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장소 : 하리 집
시간 : 오전 11시
인도 : 문순복 목사
찬송 : 36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기도 : 이호한 안수집사.
성경 : 창 12:1- 창 28:10-
말씀 :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 문순복 목사.
축도 : 문순복 목사.
이것이 인도에서 드린 첫 예배 순서였다.
감격의 첫 예배를 마친 후 교회와 학교를 세울 부지를 밟았다. 넓지않은 땅이지만 이 땅을 시작으로 아브람이 밟는 땅을 그에게 주심 같이 그 땅도 주실것을 믿고 밟았다. 그 옆에 붙어있는 땅 주인에게 하리가 말을 하였더니 지금 두바이에 나가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 물어보고 결정을 할 것이라고 했단다.
오후 무렵 이곳 마을 주변을 돌아 보았다. 손으로 볏집을 들어 메치어 알곡을 떠는 옛날 한국 시골에서 있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다가가 볏집을 들고 알곡을 떨었다. 이곳에서 일하던 아낙들과 많은 아이들이 웃어 죽는다고 배꼽을 잡는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음식을 만드는 집을 가게 되었다. 알고보니 사람이 죽고난 뒤 14일째 되는 날 음식을 만들어 나누면서 잔치를 한다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밀가루로 우리의 호떡 크기만큼 반죽을 밀어서 얊게 만들어 튀기는 것인데 튀기기전 만들어 놓은 반죽에 파리떼가 새까맣게 않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을 돌아 보았더니 두꺼운 종이가 있어서 그것으로 파리를 쫓았다. 그것을 본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여기면서 파리를 쫓아댔다. 그런데 이곳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거의 어린 여자 아이들이란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시히 물어보니 어린 여자 아이들이 음식을 만드는것은 어려서부터 음식만드는 법을 이런때 배워 두었다가 시집을 가면 음식을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이해사 되었다. 이곳은 18세정도면 시집을 간다. 하리는 14살 때 장가를 갔다고 한다 믿기지가 않았었는데 14살 때 장가를 들고 5년후 아내와 함게 살았다고 한다. 이것이 이곳 인도의 풍습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리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하리가 아까 음식을 만들던 집에서 저녁을 먹으라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하리 집에서 먹자고 했더니 이곳은 이럴때 동네 모든 사람들이 와서 음식을 먹어주는 것이 풍습이라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늦은 저녁을 그 집에가서 먹고 돌아왔다.
때 늦은 저녁 하리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사실 한국에서 일하다가 강제 출국을 당한 사람들인데 한국 사람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자기 동생이 땅을 기부하여 그곳에도 학교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에 내키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내일 그들 집을 방문하고 기부 부지를 살펴보고 아닐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오늘 주일 하루가 지나갔다.
2008.10.13(월)
얼마쯤 잠을 잤을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하리집의 버팔로 고삐 말뚝이 뽑혀 썰어놓은 여물통앞에와 여물을 먹는 소리였다. 하리를 깨워 버팔로를 끌어다가 제자리에 말뚝을 고정시킨후 다시 잠이 들었다. 오늘은 하리집을 출발하여 어제 찾아왔던 형제들이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출발하기 전에 나는 하리 집앞에 있는 템풀 지붕에 올라가 하리가 기부한 땅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려온 나에게 목사님 마음이 흐뭇하세요 라고 한다. 흐뭇하기만 하겠습니까? 앞으로 이루어나가실 하나님의 일을 보면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우리를 데리러온 형제들이 한 가정을 방문후 가족들 모두 함께 사진을 찍고 다른 가정으로 가는 도중 한 강가(사르주)를 들리게 되었다. 이곳은 힌두 사원이 있는 것이며 모든 강가가 다 이런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강가를 살펴보니 지금 화장을 하는 불꽃이 보여 다가가 사진에 담았다. 뜨거운 태양열기도 열기이지만 시체를 화장하는 열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타다남은 나무라든지 타고난 시체의 뼈들을 바로 강에다가 밀어 떠내려 버리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정서와는 너무 다른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사원을 돌아보고 나오니 다른 시체를 가져다가 나무를 쌓고 그 위에 시체를 올려놓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곳 사르주 강을 벗어나 한 형제의 집으로 달려 가는데 몇백 Km를 달린듯 하다. 너무 멀고 긴 시간을 달렸다. 알고 보니 하리가 살고 있는 주를 벗어나 칼릴라바르주 라는 곳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 한 형제의 집에 도착하여 음료를 나눈뒤 기부한다는 땅을 살펴 보았다. 이미 나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처럼 이들의 속셈이 다른곳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현제가 이곳에서 골재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골재를 팔아먹기위한 제스처가 보였다. 그리고 오늘 아닐 집에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였던 그들의 태도가 바뀌어 오늘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가자는 것이다. 하리에게 우리는 오늘 아닐집으로 가야한다고 했더니 그들이 택시를 불러 주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부른 택시가 도착을 하였는데 그들이 하는 말, 택시비는 아닐보고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리가 화를 내며 우리는 이 택시를 타지 않겠다 우리(하리)형님을 불러 그 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그들이 택시비를 주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그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아닐 집으로 오면서서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택시 기사가 자기 배고프다고 밥을 먹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그가 밥을 먹고 나오기만 한참 기다린 후에 출발하여 물어물어 아닐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닐집에 도착하니 모두 잠자리에 들어갔고 아닐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도 먹지않은 상태라 아닐 동생을 깨워 저녁을 만드는 사이 우리는 뒤집어쓴 흙먼지를 샤워로 씻어낸후 저녁을 먹고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나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깨는대로 일어나 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사단의 장난도 틈을 주지 않고 시험을 하는것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다시금 경험하게 되었다.
2008.10.14(화)
아침 눈을 떠 밖으로 나왔다. 한 두명씩 동네 청년들이 모이더니 몇 명의 청년들이 우리 곁에 모였다. 우리가 떠님을 아쉬워하면서 여러 가지 부탁들을 늘오 놓는다. 어떤이는 벨트와 지갑을 부탁하고 어떤이는 한국에 자기와 같이가자고 하는 이도 있다. 그렇게 한국을 동경하고 가고 싶은 나라, 일하고 싶은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두바이를 가는 것은 쉽지만 돈벌이가 안된. 그저 먹고사는 수준이라면 한국에 한번 나가 몇 년 일하고 돌아오면 평생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고 새로 큰 집을 만들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닐도 역시 잘 사는 부자로 큰 집을 짖고 또한 어려운 사람이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닐 어머니는 어제저녁 우리의 행적에 많이 걱정을 하셨었고 아침상 앞에서 우리에게 많이 먹으라고 하신다. 이곳 시간 아침 10시반 이제 시간반정도 있다가 우리는 아닐집을 출발한다. 하리는 어제저녁의 피곤도 잊은채 아침도 먹기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돌아갈 차비를 챙겨 주었다. 요사이 한참 집 공사를 하기에 바쁘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큰 집을 지었는데 아직 마무리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하리말로는 2층의 방 하나를 나의 방으로 꾸미겠다고 한다. 여름에 많이 더우니까 에어컨까지 달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만 해주는 것으로도 나는 고맙다. 아닐 가적과 마지막 촬영(사진찍기)을 끝으로 한사람 한 사람 인사를 나누는데 아닐의 어머니가 나의 작별 포옹에 눈시울을 붉히며 울음을 참으며 흐녀꼈다. 내년 봄에 다시 오다고 하고 우리는 오토릭샤 보다는 비싸지만 너무 먼 거리에 피로가 누적된 우리의 상태를 감안하여 택시를 불러 탔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인도 풍습의 새댁 아닐동생의 와이프 사트나마가 집안에서 창문사이로 얼굴을 보이며 웃음으로 손은 흔들어 배웅에 함께 하였다. 길목까지 따라나온 동네 사람들과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고 고락부르 기차역으로 향하였다. 아닐보고 나는 우리와 함께 델리 비행장까지 같이 갔다가 돌아오라고 하고 미리 기차표까지 구입하였었다. 2시간여달려 나야크동생이 운영하는 PC방에 도착하였다. 여유있게 나왔기에 인터넷 항공표를 복사하고 한국 소식을 보려고 인터넷 뉴스를 보려하였더니 얼마니 속도가 느린지 열려지질 않았다. 옛날 286, 386 속도 정도이다. 아니 지금 우리 파송선교교회에 설치되어있는 386 컴퓨터 속도보다 더 늦다. 지금 한국에서 386 컴퓨터를 누가 사용하겠는가? 하지만 우리 인도 형제들이 유일하게 인도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이 아직 386 속도이다. 한 대 한 대 바꾸어 나가는 중이지만 그래도 인도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수준보다는 낫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시간의 흘러 역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촉박한 시간에 나야크 동생이 자리를 비우고 보이질 않는다. 알고 보았더니 형에게 가져다줄 물건을 집으로 가질러갔다는 것이다. 기차역으로 가야할 시간이 촉박해도 오질 않아 나는 밖으로 가방을 들고나와 오토릭샤를 찾았다. 그런데 PC방에서 일하는 형제가 사이클릭샤를 불러 우리를 태워 주었다. 나놔 아닐은 젊은 친구가 운전을 하였고 이 집사님과 아닐의 친척 조카가 탄 사이클릭샤 운전자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였다. 할아버지 같이 보여도 내 나이 수준 정도이다.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이 집사님을 태운 사이클릭샤는 우리가 도착한 후 한참을 지나 도착하였다. 오후 기차를 탄 우리는 내일 밤 11시30분에 싱가폴을 경유하여 고국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기차를 탄 이집사님이 몸이 안좋다고한다. 내가 경험 하였던터라. 기차안 우리칸의 에어컨 나오는 송풍구를 막아 찬 바람을 막아주었고 옷을 끼어입고 이불을 덮어 보온에 신경을 쓰라고 하고 나는 집사니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다행히 감기증세가 있었었는데 그것을 이겨냈다. 나는 다시 한국을 출발하여 나갈랜드를 거처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계획하신 일들을 경험하며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 처음엔 아닐이 사는 곳에 학교를 세울 계획 이었었는데, 하나님은 이미 하리지역에 땅까지 준비해놓고 계셨다. 적은 부지이나 부족한 부분도 넖게 채워주시고 앞으로 지어나갈 학교와 교회도 이미 누군가의 손길로 채워주실것도 의심치 않고 믿어진다. 이 가슴벅찬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아가페선교회 회원들을 생각하니 단숨에 돌아 가고픈 생각을 하는 이시각 차창밖은 어둠에 쌓여 지나치는 불빛이 뛰엄 뛰엄 나타났다 지나간다.
2008.10.15(수)
열차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녁에 델리에 도착 하였다. 아닐이 동행하여줌으로 쉽게 가방을 기차역에 있는 짐 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오토릭샤를 타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남은 시간 델리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나는 지난 5월달 가 보았지만 이 집사님을 위하여 레드하우스(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지은 왕궁)와 우리나라 현충원 같은 곳을 들려 대통령이 살고있는 곳을 지나 플라워하우스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상의 장소를 들려 인도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스와미나라얀 이란 템플을 구경하고 다시 델리역 근처로와 시장구경을 하였다. 델리에 가면 한국 사람을 쉽게 볼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역시 이곳에 오니 한국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여행을 온 사람들로부터 어학 공부를 하기위해 또는 비즈니스로 온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식당을 찾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역으로 가서 가방을 찾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달렸다. 마침 퇴근길이라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한참을 거북이 걸을을 하여야 하였다. 그래도 넉넉한 시간에 도착하여 아닐과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쉬움의 작별 인사를 했다. 아닐은 이곳에서 하루밤을 지난 후 고락부르 기차에 몸을 실을 것이다. 그간 우리를 선대하며 모든 것에 배려를 아끼지 않은 아닐에게 적은 돈을 쥐어주며 어머니의 약값에 보태쓰라고 하였다. 받지 않으려는 아닐을 달래 보내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전 하루종일 흙먼지에 뒤덮인 머리를 델리항공 화장실에 들어가 개운치는 않지만 머리도 감고 그나마 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싱가폴로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니 저녁 식사가 주어졌다. 식사르 마친 후 골아떨어졌는데 눈을 뜨고나니 새날이 되었다.
2008.10.16(목)
몸은 많이 지쳐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한국에 가 있었다. 언제 17박 18일의 시간이 벌써 다 지나갔나 싶게 빨리 지나갔다. 하나님은 이 종에게 너무 큰 감사거리를 안겨 주셨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이 집사님과의 동행 과정으로부터 매 순간 순간 이 어린자의 손을 잡아 인도하시듯 인도하시며 앞으로 이루어 나가야 할 일들을 손에 쥐어 주셨다. 지금까지 인도 방문을 할 때 마다 지원어린들을 늘려가는 수준에 머물렀었는데 이제 이번 다섯 번채 방문을 통하여 그간 지속하여 기도해 왔던 교회와 학교를 인도땅에 세울 계획이 구체화화 되었다는 것에 이 집사님은 왜 하나님은 목사님말만 들어주고 자기말은 안들어 주는거냐고 농담같은 이야길 수차례 하였다. 하나님은 누구의 소원만 들어주는 불공평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이 집사닙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집사님의 지금 어려운 이 터널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벗어나길 바라고 하나님과 약속된 선교 계획대로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아울러 딸이 지금 처하여 있는 건강 상태도 온전하게 하시어 그를 통하여 받으실 영광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이심을 알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인도 U.P 하리의 땅위에 아니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준비해 주신 땅 위에 지어나갈 학교와 교회 설계도를 그리며 아가페선교회가 그리고 어떤 후원자 들을 세우셔서 이루어나가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기도하며 지나가는 이곳은 대만 하이페이 상공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우리는 한국땅을 밟을 것이다.
※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좀더 자세하게 옮기지 못한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표현력이 잛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점도 있는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과정이 있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이어져 나갈 것입니다. 위하여 많은 기도를 부탁 드리면서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자면 주변 많은 분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함께 동참해 주셔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 함께 동역해 나가시는 주인공이 되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오직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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