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서울 삼각지 옛 고가입체교차로 배경
비오는 날 연인 생각나 찾은 사연
가수 배호 대표곡으로 크게 히트
(1절)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2절)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에 가면 <돌아가는 삼각지>노래비가 서 있다. 서울역(동쪽), 한강대교(서쪽), 반포대교(남쪽), 용산구청(북쪽)으로 가는 네거리 한 모퉁이 길옆에 세워져있는 이 비는 지난해 11월 7일로 건립 4주년을 맞았다.
노래는 삶과 세월을 담는다고 했던가. 요절한 대중가수 배호(본명 배신웅/호적명 배만금)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기념비로 11년 전까지 만해도 있었던 삼각지 입체교차로에서의 그 옛날 추억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이인선 작사, 배상태 작곡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7년에 발표돼 지금껏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4분의 2박자 트로트풍으로 리듬이 흥겹고 멜로디가 부드러워 누구나 부르기 쉬운 까닭이다. 게다가 세상을 살면서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사랑과 이별의 사연을 새긴 가슴 찡한 노랫말도 맛깔스러움을 더해준다. 비오는 날 헤어진 연인이 그리워 추억의 삼각지로터리를 찾아왔다 못 만나고 쓸쓸히 돌아가는 한 남자의 애틋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이 노래는 배호의 대표곡이라 할만큼 유명세를 탔다. 25살의 젊은 나이로 혜성처럼 나타난 배호의 특유한 저음으로 구슬프지만 힘있게 넘어가는 창법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노래가 히트하자 각 방송사에서 집계, 발표하는 가요순위 1위를 20여 주 동안 차지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노래가 나온 이듬해 MBC라디오 10대 가수상, TBC(동양방송) 가요대상 등 언론사들의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66년 4월. 노래제목에 나오는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7년 12월 30일 국내 최초로 개통된 네방향 회전 입체고가차도를 말한다. 이 교차로는 서울의 교통발전을 상징하는 곳으로 한동안 관광명소가 됐을 만큼 이름났었다.
필자도 중학교 2학년 가을 서울로 온 수학여행 때 막 개통된 삼각지로터리를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고가도로를 만들어 길 아래 위, 동서남북으로 자동차가 사통팔달 오갈 수 있게 돼있어 그때로선 신기하기까지 했다.
노래사연은 가사내용 그대로다. 다만 ‘현실 속에 있을 수 있는 일’을 상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특이하다. 만남과 사랑, 그리움과 이별의 애틋함을 비오는 날 삼각지란 배경을 설정해 노랫말로 엮어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노랫말에 나오는 그 때의 삼각지는 어땠을까. 그곳엔 뭣보다도 선술집들이 많았다. 국방부, 미8군, 계룡대로 옮겨간 육군본부 등 군부대와 관련기관들이 몰려있었고 인사동에서 옮겨온 액자제작소, 상업화랑과 인쇄소, 상가들도 적잖았다. 자연히 부근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술집이 즐비했고 대구탕, 고깃집, 막걸리집 등 식당을 겸한 술집들도 덩달아 재미를 봤다.
술집색시를 비롯한 유흥업소아가씨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일. 삼각지에서 한강대교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오른쪽에 홍등가가 있어 삼각지는 이래저래 사나이들의 발길이 잦았다. 최근 된서리를 맞았지만 용산역 앞 집창촌은 삼각지에서 한 잔한 뒤 2차‘즐기는 코스’였을 만큼 호색한들의 구미를 당긴 곳이기도 했다.
술과 여자가 있으니 숱한 사연들이 생겨나는 건 인간지사 당연한 일. 노랫말처럼 어느 비오는 날 한 젊은 남자가 연인을 만나러 삼각지를 찾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쓸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작사가는 노랫말로 잘 그려냈다.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돌아가는 삼각지>의 입체고가차로는 1994년 7월 8일 철거되고 이젠 지하철이 그 밑을 지나고 있다. 가까이엔 서울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삼각지역이 있고 노래비가 선 곳은 아담한 숲 속의 쉼터로 꾸며져 있다.
관할관청인 용산구청에선 배호가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된 2001년 11월 7일 노래 속의 장소에 노래비를 세웠다. 또 로터리부근 500여m(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 121번지에서 221~228번지까지)의 도로를 대중가수 이름을 딴 최초의 ‘배호길’로 이름 붙였다.
‘교통섬’으로 불리는 쉼터녹지대에 세워진 노래비는 환희의 여인상이 하늘에서 땅으로 사뿐히 내려서는 자세로 돌아가는 삼각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두 손을 양옆으로 높이 들고 오른쪽 다리를 뒤로 쭉 뻗어 위로 쳐든 모습이 그 옛날 삼각지로터리를 돌아 쌩쌩 달리던 자동차들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노래주인공 배호는 1942년 4월 24일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부친(배국민)과 모친(김금순)의 4대 독자로 1958~1962년 김광빈 악단,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쳤다. 1962년 예명을 배호로 짓고 21살 때인 1963년 가수로 데뷔, 아세아레코드 소속으로 <두메산골>을 발표했다. 1964년엔 첫 앨범 <황금의 눈>을 내놓았고 ‘배호와 그 악단’도 운영하는 등 본격 가요활동에 나섰다.
인기가수대열에 들면서 그는 서라벌가요대상(1970년) 등 29개 부문의 가요상을 받으며 상종가를 쳤다. <파도>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 내리는 명동거리> <누가 울어> <안녕> 등 취입곡마다 히트했다. 배호의 취입곡은 줄잡아 300여 곡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다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로 그렇게 잘 나갔던 배호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긴 것. 노래애착이 강했던 배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무대에 서다 쓰러졌다. 1971년 11월 7일 신장염으로 투병 중 만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추모행사가 이어져 노래로 환생되고 있다. 1993년 제1회 배호가요제가 열렸고 2001년 12월 21일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 모임’(www.baehofan.com)도 창립됐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가수는 세상을 떠나도 자신이 부른 노래를 남긴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