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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국에 온 걸리버마냥 세상이 이상하게 커보였다. 다른 세계에 온걸까? 어디지? 두리번거리는데 손에 그러쥔 분홍색 풍선이 눈
에 들어왔다. 풍선..?
“효빈아, 너무 빨리 가지마!”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조종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저절로 뒤로 돌아갔다.
“엄마, 아빠는 늙어서 힘이 들어요.”
남자가 장난스레 혀를 빼죽 내밀며 웃었다. 초콜릿빛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한 그는 하얀 솜사탕과 하늘색 솜사탕을 양손에 쥐
고 있었다.
휘연. 눈을 부정하려 해봐도, 이렇게 이상하게 낮은 높이에서 올려다봐서 그렇지 다른 사람일거라고 자꾸만 말해봐도, 그것은 분
명히 휘연이었다. 휘연이 아빠라고?
“솜사탕보다는 아이스크림이 더 좋은데! 구슬 아이스크리임!”
귀엽고 높은 목소리가 몸에서 울려퍼져나갔다. 저게 내 목소리라고? 난 벌써 이십대인걸?
“엄마가 아이스크림 오늘 더 먹으면 배탈난다고 안된다고 그랬잖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사고칠 꿍꿍이를 하고 있는 두 어린아이처럼, 휘연이 ‘엄마’라고 불린 사람이 들을까 두렵기라도 하다는 듯 계
속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눈치를 봤다.
“치..아빠가 몰래 사주면 되잖아.”
“안돼, 들키면 아빠 혼나!”
“에이, 아빠는 맨날 져!”
의사와는 관계없이 몸은 계속 말을 하고, 휘연과 같은 몸짓으로 혀를 빼죽 내밀었다. 휘연은 삐진척, 나를 바라보며 마주 볼을 부
풀렸다. 이 상황에서도 묘하게 참 잘 어울리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자꾸 그러면 솜사탕도 안 준다? 아빠가 다아! 먹어버릴거야!”
“아냐아냐! 솜사탕도 좋아! 뽀송뽀송한 솜사탕!”
젖살이 포동포동하게 붙어있는 새하얀 손가락으로 휘연의 솜사탕을 향해 꼬물락, 꼬물락 움직여대는 손이 문득 낯익다고 생각됐
다.
휘연이..결혼을 했단 말이지. 거기다 애까지 낳았다. 가슴이 으레 아파와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너무 놀라
서 다른 반응은 아직 쏙 숨은채 나오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몸은 휘연이 건네주는 하얀 솜사탕을 받아 구름을 뜯어먹듯 정말 보는 사람까지 맛나게 냠냠거리고 있
었다.
“어? 엄마다! 엄마아!”
휘연의 얼굴에 미소가 잔뜩 떠오르고, 내 몸은 저쪽에서 다가오는 여자에게로 뛰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눈처
럼 하얀 피부, 멀리서봐도 사슴마냥 크고 동그란 눈망울.
“엄마아!”
“효빈아!”
주변 배경들이 휘익, 지나갔다. 이제서야 그렇게 커보이던 구조물들이 놀이공원의 기구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여자는 장난감같
이 꾸며진 놀이공원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는데도, 다들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마냥 반가워하고 있었다.
몸이 달리면서 여자가 가까워진다. 휘연의 그녀가, 아이의 엄마가.
그녀의 얼굴이 보일때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녀가 나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 아이가 내가 장래에 가질 딸이란 말이야?
“엄마! 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하나만 더어!”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긴 해도, 솜사탕을 한 손에 든채로 유난히 칭얼대는 아이의 목소리가 낯익다.
“안돼. 배탈나, 내일 줄게, 응?”
혼란스러운 머리와는 달리 ‘또다른 나’는 해봤자 스무살에서 서너살이나 더 먹었을까 싶은 얼굴과는 다르게 제법 엄마의 티를 내
며 단호히 말했다.
“그래도, 구슬 아이스크림은 아니잖아.”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더니, 그래도 좋다는 듯 아이의 몸은 ‘나’에게 폭 안기려 애쓰지만, 한 손에는 머리보다 큰 솜사탕을, 다
른 한 손에는 가녀린 아이의 몸을 달고서 하늘로 날아가버릴까 걱정될 정도로 큰 분홍색 풍선을 들고 있는지라 쉽지가 않다. 뒤에
서 휘연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꼬마 공주님, 그렇게 욕심 많게 다 들고 있으니까 엄마를 못 안는거야.”
휘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솜사탕과 풍선을 살며시 들어주자, 아이는 다른 아이들답지 않게 자기것을 빼앗아갔다고 울지 않고 곧
장 ‘나’에게 안겼다.
“초아야, 이번엔 놀이기구도 다 탔으니까 동물원 가볼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내 의견을 존중해줄줄 아는, 그렇지만 어물쩡어물쩡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짜증나는 시간만 보내지 않
게 언제나 선택의 여지를 주는 휘연. 변하지 않았구나, 아이가 이렇게 클 시간동안. 아이의 눈높이에서 봐서 착각하는 건지는 모르
겠지만, 휘연의 얼굴도 눈에 감지될 정도로 변한 것은 없어보였다.
“그래! 효빈아, 무슨 동물이 제일 보고싶어?”
“효빈이는 다아 보고싶어!”
동물을 보러간다는 말에 아이 특유의 벨소리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내 몸은 팔짝팔짝 뛰어올랐다.
“그네 탈거야?”
그네가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하는데, 휘연이 내 오른손을 잡고, ‘또 다른 나’가 내 왼손을 잡았다.
“위이이!”
효빈은 그 둘 사이에서 댕글댕글, 매달리며 정말 재밌는지 웃어제꼈다. 한 손엔 솜사탕 세개를 쥐고, 손목에 괴물사이즈 풍선을 묶
어놓기까지해서 어찌보면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이는 휘연은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교환했다.
“솜사탕 사왔어. 조금 있다가 효빈이 내려오면 뜯어서 줄게.”
“어우, 닭살.”
그러면서도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햇살을 받은 휘연의 머리가 부드럽게 녹은 밝은 초콜릿빛을 내자,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
라보았다.
“어? 또 반했어? 나 뚫어지는데.”
“맞아, 아빠 뚫어지는데!”
똑같은 말투로 둘이 말하고, 휘연이 짓고있는 개구진 미소와 똑같은 미소를 내 몸이 지으며 또 한번 둘 사이에서 매달려 위이
이, 하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
“우웅, 아빠 이제 효빈이한테 솜사탕 주세요!”
그네를 한참 타던 아이의 몸이 휙,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아이는 또 졸라댔다. 아이의 몸에 들어있는 내가 하얀 팔을 뻗자 휘연
이 하얀색 솜사탕을 건네주었다.
한입 가득 베어물은 솜사탕은 달콤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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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야, 이제 가자.”
부드럽게 안아드는, 이제는 ‘네프’가 아닌 ‘휘연’의 팔에 눈을 떠보니 아직도 검은 침대 위였다. 소혜와 태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
지 않았다.
“어? 소혜씨랑 태임씨는?”
“영업시간이 시작됐으니까 한참 전에 나갔지. 우리도 이제 가야돼. 방해되면 죄송스럽잖아. 안 그래도 우리 때문에 몇일 영업 말아
먹으셨다던데.”
“으응, 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되지 않을까?”
“다시 보게 될거야.”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휘연은 가볍게 나를 안아들었다.
“어..? 그런데 이제 너 다시 사람이잖아. 안 무거워?”
“응? 응, 무거워. 코끼리같아.”
초희를 떠올리는 개구진 웃음을 또 짓는데, 이제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이지 않았다. 금빛 눈동자도, 머리카락도 이젠 사라지
고, 초콜릿빛 눈동자와 머리를 한 그가 남았다. 인간으로 돌아온 휘연, 이제는 나를 해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휘연.
“뭐? 맞을래?”
뾰루퉁하면서도 정말 무거울까봐 내려오려고 낑낑거리는데 그가 큭큭거리며 낮게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내가 아무리 인간으로 돌아왔어도 약골은 아냐.”
그가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떼자, 아까까지만해도 보이지 않았던 자그마한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문 방금 생겨난거야?”
“그런것 같은데. 니가 깬거 눈치들 채셨나봐. 이제 가자, 벌써 영업도 시작했으니까 우리가 인사하러가도 어차피 방해만 될거
야. 인사는 나중에 하지 뭐.”
그는 자기 말대로 수상쩍을 정도로 힘들지 않아하며 나를 안아든채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은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상처
럼 붉은 비가 쏟아지는 스산한 곳이 아닌, 포근한 푸른빛의 새벽이었다.
“음..나 그 꿈 꿨어.”
그에게 소근거리자 그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의 눈가를 살짝 가리는 앞머리를 바라보면서 불편할테
니 머리카락을 자르러 같이 가줘야겠다고 마음속에 메모를 해두었다.
“이젠 이해하지? 내가 초희 이름을 부른 이유를.”
“아니, 사실은 아직도.. 사실 그때 일이 너무 긴박해서 많이 잊기도 했고.. 알려줘.”
“곧 알게 될거야.”
소혜와 태임의 이야기가 나왔을때처럼 그는 또다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괜히 딴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뜨기 시작
한 해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볼이 약간 발그레해보였다.
“정말 나중에 알게 되는거야? 초희는, 그럼 안전한거지?”
“물론. 지금 알게되면 오히려 안 좋을지도 몰라. 나중에 알게될거야.”
그의 말을 믿기로 하고 그의 가슴에 다시 얼굴을 파묻은채 편안히 집까지 걸어 돌아왔다. 한번도 힘든 기색 없이, 아니 오히려 가
끔은 내 무게를 잊기까지 한듯 편안히 그 먼 거리를 보통 사람들이 조깅해야만 나올 수 있는 속도로 사자의 빠른 걸음을 구사하
는 그를 보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너, 이제 인간인데, 왜 이렇게 힘도 세고 속도도 남아있어?”
“글쎄..아직 악령이었던 잔여물이 남아있나보지 뭐. 나도 잘 몰라. 그래도 여기 주변 주택에 있는 사람들의 공포가 안 느껴지는걸
로 봐서 악령기는 다 사라진것 같으니까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아.”
집에 가면서도, 집에 도착해서도, 우리는 수많게 쌓였던 의문들을 풀고,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사실 그러고보면 아는게 참 없었
다. 첫 데이트같지도 않은 것만 하고 사랑에 빠지다시피한 것이니까.
“난 아이스크림이 좋아.”
어릴때의 추억을 서로 말해주다 불쑥 그가 말했다.
“녹차 아이스크림 말이야. 처음엔 쓴 것 같다가도 그 매력을 알게되면 결국은 너만을 위해 달콤해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될지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고민아닌 고민에 얕은 한숨을 내쉬자 그가 낮게 웃음을 흘려냈다. 그가 쥐고 있던 자그마한 사이즈의 초콜릿은 이내 껍질이 까내
어져 내 입으로 쏘옥, 하고 그의 손에 의해 들어왔다.
“그럼 가장 쉬운 것부터 하지 뭐. 이제 우린 시간이 많잖아.”
“음, 어떤 것부터?”
“글쎄..넌 무슨 색이 좋아?”
장난스럽게 윙크하는 그가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이제 가정부 아주머니도 계시지 않으니 장을 봐오자며 이끌었다.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인건 또 어떻게 알고.”
그가 큭큭, 웃으며 따스히 손을 잡아왔다.
차근차근 그를 알아가는 그 다음 몇 달은 어찌보면 정말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고, 정말 행복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악령으로 스카웃되어 질질 끌려가기 전에는 의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고 있었다고 했다. 인턴
을 몇달이나 빠져서 조금의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바쁜 와중에서도 서로 전화하는 것은 하루의 씁쓸한 피로의 맛을 녹이고도 남
을 설레는 일이었다.
그는 그대로 이미 잃어버린 세월을 만회하기 위해 바빴고, 나 역시 새로운 소설을 작성하느라 바빠서 매일 보지는 못했지만, 보
통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기 전에 수백번도 더 한다는 데이트를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시간만 나면 우리는 특이한 일을 하기에 바빴
다.
날개가 없어 허전하다는 그를 위해 스카이다이빙을 가보기도 했고,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바쁜 주입식 공부와 후에는 초희에 의
해 정말 바캉스 다운 바캉스를 가보지 못한 나를 위해 스쿠바다이빙을 하기도 했고, 뭐 이런저런 다이빙들과 함께 우리는 낯간지
럽지만 서로에게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가끔 시간이 날때면 카페 ‘네프’를 찾아 헤매이기도 했지만, 그 곳은 영업이 바쁜건지, 다만 랜덤으로 나타나는 건지는 모르겠지
만,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늘 친구한테 졸라서 배운 비밀의 레시피가 있는데, 그 요리 해줄게.”
아예 부엌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게 신신당부를 해놓고, 국가기밀이라며 집게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이라고 되풀이하는 그가 귀
여워 거실에 앉아 틀어놓을 음악을 고르고 있었다. 다행히 그와 나는 음악취향이 맞아 떨어져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가 제일 좋아
하는 음악을 틀려하는데, 그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초아야, 이리와봐, 빨리!”
“응?”
요리를 잘한답시고 언제나 묘기를 부리고 위험한 요리만 골라하는 그가 이번엔 정말로 다쳤나싶어 불붙은 만화캐릭터처럼 부리나
게 달려갔더니, 그는 다친 기색 하나 없이 내게 등을 보이며 뭔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뭔데 그래! 너 장난쳤으면 죽는다? 걱정했잖아!”
“아냐아냐, 이거봐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위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
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손가락 위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방울.
거대한 물방울 하나가 그의 손가락 위에서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는대로 마주 따라오고 있었다.
“그거..”
“응, ‘유프’를 마셨을때 있었던 능력..”
“하지만 너 이제 사람인데..어떻게?”
“모르겠어. 처음에 너 안고 집에 왔을땐 그냥 능력의 잔재물이 남은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새 점점 다시 돌아오고 있는것 같아.”
그가 물방울을 장난스럽게 틱, 하고 허공에서 튕겨내자 물방울이 내 볼에 맞았다.
“아, 진짜, 너 혼나!”
싱크대에서 손을 물에 적시고 휘연에게 뿌리기 위해 스퍼트를 올려 한껏 달리는데 그는 초인적인 속도로 마구 피하며 잡힐듯, 잡
히지 않을듯 큭큭거리며 웃어댔다.
“잡히기만해!”
어쩌면 심각했어야할 일인데도 그와 함께라면 혹시 그것이 또다른 불행의 시작이라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것 같았다. 그 날 저
녁 그가 대령해 바친 미지의 저녁은, 재료를 물어보는 내 물음에 ‘사랑’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농담과 함께 달짝지근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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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깊은 새벽에 들리는 봄비같은 노크소리에 졸린 두 눈을 비비며 고개를 빠꼼 내밀어보니, 휘연이 우리가 첫키스를 나누었
던 바로 그 밤과 같은 푸른 달빛에 휩싸여 미소짓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한참 밖에 나와있던 사람처럼 얼굴이 평소보다 창백했지만,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추워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두 눈
이 나른한 듯, 어떤 감정에 젖어 빛났다.
“으응? 이 시간에 왠일이야?”
“밖을 잘 봐봐.”
그의 어깨를 유심히 살펴보니 눈송이들이 내려앉고 있었다. 올해의 첫눈. 구름의 조각들이, 천국의 조각들이 송이송이 방울져 내
려앉는 모양새에, 벌써 꽤나 함박눈에 두껍게 쌓여, 흰 색과 달빛으로 치장한 세상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와아..”
저절로 튀어나오는 소리에 참을 수 없어 휘연을 곁눈질하는데,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키스라도 할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
리 그는 코트를 벗으며 등에 업히라는 신호를 보냈다.
폴짝, 타고 오르니 그가 내 몸 위로 코트를 덮어주고,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눈송이들을 바
라보고 있었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절대 어색한 침묵은 아니었다. 포근한 마음에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자 그가 낮
게 웃는 진동이 그의 등을 타고 전해져왔다.
“눈 떠봐, 다 왔어.”
잠이 들었는지도 몰랐는데, 그의 따스한 온기와 그저 새하얀 색이 아닌, 푸른 빛이 깃든 신비롭고 안정되는 색에 휩싸여 분위기
를 즐기며 눈을 감은 것이 화근이었나보다. 그가 부드럽게 부르는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떠보니, 신기한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이게..뭐야?”
“글쎄..”
다시 장난스럽게 말을 주욱, 늘여내며 그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의 숨결에서 첫키스할때 맛보았던 초콜릿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
지기 전에 고개를 홱, 돌리고 다시 앞에 있는 광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얼음조각들의 전시였다. 투명하다 못해 푸른 달빛을 여과없이 받아내어 눈꽃이 잔뜩 피어있는 바닥 위에서 새로운 조명이라도 되
는것마냥 새로운 정원을 만들어내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미(美)였다.
“이거..설마..?”
우리를 감싸고 있는 원모양의 얼음조각들은 모두 쌍으로 되어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왼쪽에 있는 얼음커플
은 손을 잡고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고, 오른쪽에 소혜와 태임과 똑같이 생긴 커플은 서로에게 악기를 연주해주고 있었
다.
그리고..가장 정면에 위치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커다란 얼음조각은, 실물사이즈의 남녀를 보여주고 있었다.
피아노에 앉은 두 사람. 남자는 낮은 음쪽을 치고 있었고, 여자는 높은 음쪽에서 연주하고 있었는데, 얼음인데도 서로를 보고 웃
는 것이 선명했다.
“한 쪽만 들어도 정말 괜찮은 음악이겠지만, 심금을 울릴 수 있는건 화음이야.”
그의 속삭임이 그의 온기를 타고 전해져왔다.
“가까이서 보고싶어. 잠깐만 내려줘.”
폴짝, 다시 뛰어내려놓고서는 왠지 경건한 마음에 그 피아노를 연주하는 커플에게 다가가자, 그들이 굉장히 낯익다는 것을 느꼈
다.
얼음조각인데도 눈가를 살짝 가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와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를 지닌 여자.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투명
한 휘연과 나였다.
“우리가 첫눈을 함께 보는건 처음이잖아. 앞으로는 첫눈마다 너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초콜릿빛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얼굴이 처음에 창백해보였던 이유를 그제서야 눈치챘다. 얼음가루들. 요새들어 되찾기 시작한 그
의 속도를 이용해서 이것을 이렇게 먼 곳에 있는 들판을 찾아 첫눈을 기다렸다가 조각을 해놓고, 다시 눈 깜짝할 새에 나를 이곳으
로 데려와준 것이었다.
“영원히 듣고 또 들어도 더 사랑할수밖에 없는 화음을 지녔으니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투명한 휘연과 내 약지가 살짝 들어올려져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들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휘연이 푸르게 빛나고 있는, 실물 사이즈의 우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라보고 있는 내 어깨를 살며시 잡아 자신쪽으로 돌렸다.
“결혼해줘, 초아야.”
그와 함께 그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단번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던 내 투명한 손가락에 끼워져있던 반지를 빼내어, 반지만큼 빛
나는 첫눈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내 손을 따스히 잡아왔다.
“아..”
얼음정원부터 시작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머뭇머뭇거리는데, 마음은 입보다 더 먼저였는지 한방울, 두방울, 얼음만
큼 빛나는 눈물방울들을 첫눈 위로 떨구기 시작했다.
휘연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눈물을 닦아주려는듯 내 얼굴로 손을 뻗는데, 이번엔 내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아 그의 손바닥에 내 얼굴
을 살짝 기대었다.
“내 대답은 이거야.”
한쪽 손을 뻗어 얼음 휘연의 손에 끼워져있던 다른 반지를 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잔잔히 미소짓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는 결국 참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듯 하얗게 웃음을 지었다.
휘연은 소중하게 내 왼손을 감싸쥐더니 첫눈의 색을 지니고 얼음의 투명함을 갖춘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를 살며시 끼워넣기 시작
했다.
“천번이라도, 만번이라도 더 말할 수 있어. 내 대답은, 너라면 언제나 ‘물론이야’ 라고..”
더 속삭이려는데, 그가 굽혔던 무릎을 펴고 똑바로 서더니 내 허리를 강하게 그러잡고 초콜릿 맛 입술을 맞춰왔다.
첫눈은 우리들의 얼음정원 위로, 우리의 새로 맺어진 마음 위로, 끊임없이 소담스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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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신혼여행이라더니, 정말이지 좋은 것은 허니문뿐, 정작 결혼은 눈 코 뜰새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아
서, 혹은 후회되서 울 시간도 없었다. 아니, 아예 결혼한다는 실감도 나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휘연
을 마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한 기억밖에는 나지 않는다.
자꾸만 식물에서도 음악이 들린다며 글도 쓸 줄 모르는 애가 악보를 작성하려는 걸 보고 기겁한 친적들 사이에서 (공교롭게도 그
의 부모님 역시 휘연이 아주 어렸을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잘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집이라 단칸방에서 셋이서 보통 잤는데, 휘연
이 친구 집에 놀러가 자던 날 모르고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주무셨다고..) 짐짝처럼 옮겨다니며 살아온 그도, 나도, 초대할 어르신
들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지인들과 친구들만 초대하면 되었지만, 그가 인턴을 하고 있는 병원 분들과 내 출판사 쪽 분들이 모두 우
르르 몰려오신데다, 육아일기로 한번 히트를 쳤던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데도 언론에서 어쩌다 내 결혼 소식을 흥미롭게 생각
하는 바람에 예전 팬들까지 진을 쳐서 진땀을 빼야만했다. 휘연의 비인간적인 속도와 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즉 지쳐 결혼
식 도중에 복도를 밟지도 못하고 지쳐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를 휘연에게 넘겨줄 아버지가 내겐 없었기 때문에, 예전 그 부끄러웠던 사인회에 계셨고 휘연에게 내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던 출
판사 매니저분이 대신 나를 휘연에게 건넸다.
매니저분은 정말 자신이 내 아버지라도 되는마냥 나를 휘연에게 건네면서 소매로 눈가를 훔치셨다. 참 좋은 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은채 나란히 서로 기대서서 우리를 보며 미소짓고 있는 소혜와 태임 커플에게 부케를 던지려했는
데, 소혜가 장난스럽게 윙크하더니 손을 휘휘 저어 부케가 다른 쪽으로 가게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들은 이미 악령들의 방법으
로 결혼식을 치룬 사이라했다).
결국 공교롭게도 그 부케를 받은것은 한때 내게 데이트를 하자고 말하다, 결국은 나와 휘연과의 교제소식을 듣고 꽤나 깔끔하
고 기품있게, 그답게 포기하며 행복을 빌어주던 초희의 의사, 남궁공유였다. 그가 부케를 얼떨결에 받자 주변에서 사람좋은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고, 그는 그래도 우리에게 여유있게 웃음을 지으며 부케를 흔들어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눈꽃색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바닥에 좀 끌려야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휘연의 고집으로 들고 다
닐수도 없어 하루종일 낑낑대야했다.
휘연은 신부화장까지 끝낸 내 모습을 보고 한참동안 입을 딱 벌리고 있어서 주례사가 헛기침을 할때까지 사람들에게 시선집중
을 받았다. 나란히 주례를 들으려고 서있는데 ‘못 죽인게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이걸 놓칠뻔했네’하고 장난스레 웃는 그에게 나
는 신부 하이힐로 발을 찍겠다고 속삭이며 엄포를 놓았다.
얼음정원에서 서로 끼워주었던 반지에 장식을 몇개 더 한, 더욱 우아해진 반지를 다시 서로에게 끼워주며 우리는 백년가약을 맺었
고 (백년으로는 택도 없다고 나중에 신혼여행 도중에 투덜거리긴 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 어색한 키스를 나눈 후 사람들
의 배웅을 받으며 허니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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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정말 예쁘다. 내 책에도 이 장면 넣으면 좋을텐데.”
팔레트에 빛을 뿌려놓은 듯, 황홀하기만 한 야경을 테라스에서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휘연이 뒤에서 다가와 드러난 목덜미
에 살며시 입을 맞춰왔다.
“넣게 될거야. 지금 보여줄게 있어.”
“응? 뭔데?”
“결혼 선물 중 하나라고 할까. 일부러 확실해질때까지 말 안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뭔데 그래?”
몇년동안이나 원하던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휘연의 눈이 보석처럼 빛났다. 문득 초희 역시 내가 인형을 하나 사주었을
때 저 눈을 했었던 게 생각났다. 초희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는걸까. 휘연은 걱정말라 했지만, 생각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보면 알아, 이리와봐.”
그가 한 손을 잡고 이끄는대로 방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놀라도 좋아! 자, 숙녀분, 기대해주세요. 두두두!”
그가 장난스럽게 드럼소리를 입으로 내며 기대감으로 한번 몸을 경직시켰다가 다시 활짝 펼치자, 그의 어깨에서 무언가가 실타래
처럼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아..설마..”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와중에도 날개는 계속 자라났다. 그림자로 만들어진, 액체 다이아몬드의 날렵함을 자랑하는 투명한 날
개. 이미 한번 고통을 겪어봐서인지 왠지 모르게 예전보다 더 강인해보이는 날개가 순식간에 방의 길이를 가득 채웠다.
“사실 그 반지를 만들 때부터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어. 그 보석이 다이아몬드라고 하기엔 속에서 뭔가 다른게 보이는것 같지 않았
어?”
그것은 사실이었다. 반지에 박혀있는 보석은 다이아몬드 같으면서도 오팔처럼 빛을 다른 각도로 받으면 속에서부터 새로운 경계
가 생겨나곤 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보석이었다.
“다이아몬드에 내 그림자를 하나씩 심어놓은거야. 우리 웨딩 전날 날개가 드디어 완벽히 자라났어.”
그가 환히 웃었다. 야경을 받아 도심의 불빛으로 매끄럽게 빛을 발하고 있는 그의 날개만큼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나를 안아들
었다.
“신혼여행의 첫날밤은 항상 놀라운거라잖아.”
그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수많은 도심의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놀라운 속도로 나를 안고 테라스 밖으로 날아올랐다.
스쳐지나가는, 땅에 붙어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반가움을 표하는 달,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장막을 드리울만
큼 수많은 별들, 그의 품의 온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한기 속에 솜사탕처럼 떠 있는 구름들.
그것을 보는 것보다도 달콤한 그의 입술이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허공에 떠 있는채 내 이곳저곳을 훑고 지나갔다. 정신을 차
릴 새도 없이, 숨도 돌릴 틈도 없이 나 역시 마주 키스하려는데,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여지껏 본 적 없던 거친 동작으로 이
리저리 움직이는 손길에, 더 이상 별은 하늘에 떠 있는 존재만이 아니게 되었다.
내 입에서 드디어 작은 한숨이 스며나올때, 그의 거대한 날개는 우리를 다시 별장 안으로 인도했다.
감미로움에 눈조차 뜨지 못하고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내 위로 그의 수많은 키스가 쏟아지고, 그에게 온기뿐만 아니라 열기 역
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날 밤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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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이네요! 축하드려요.”
환히 웃는 간호사와 눈을 마주챌새도 없이 나는 서둘러, 그러나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아이를 안았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예정일
보다 이주일 일찍 태어난 아이. 다행히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만 아니라 놀랄 정도로 예쁘기까지 하단다.
“아..”
내 품에 안긴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초희야..”
눈은 뜨지 않았지만, 벌써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는 초콜릿빛 머리카락, 다른 아기들과는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눈처럼 뽀얀 살결.
고등학교때 처음 초희를 맞이하면서 본 모습에서 조금 더 건강하다뿐이지 정말 판박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똑같은 아이..
“나타날 효, 인도할 빈. 효빈이.”
역시 숨죽이고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앉아있던 휘연이 속삭였다. 흰 백(白)이 세개 모여 만들어진 ‘효’..
“걱정말라던게..이거였어?”
초희, 아니 효빈이를 어루만지며 묻자, 휘연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거린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부모님과는 묘하게 닮지 않고 오히려 나를 더 닮았던 초희, 사소한 말투 하나하나 휘연과 닮았던 초희, 이
방인들에겐 낯가림을 하면서도 휘연에게는 처음부터 몇년이나 친해왔던 것처럼 살갑게 굴고 투정까지 하던 초희, 휘연과 똑같
은 초콜릿 빛 머리카락과, 눈을 뜨면 보일게 분명한 같은 색의 눈동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버릇이 있는 초희, 같은 버릇을 가진 휘연. 내 살결을 꼭 빼닮은 초희. 계속 쳐다보면 뚫어진다고 말하면서 혀
를 빼죽 내미는 초희, 똑같은 말을 똑같은 말투로 말하던 휘연. 휘연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기며 왕자님이라고 부르던 초희. 휘연
이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사람에게서 음악이 들린다는 사실을 알려주자마자 아이라서 순수하기 때문에 그렇다
고 치기에도 지나치게 빠르게 그것을 들은 초희.
나를 위한 왕자님은 그라는 것을 확신한다 말하던 초희, 죽기 직전의 날에도 왕자님이 보고싶다고 말하던 초희. 한번밖에 보지 않
았을 때에도 그와 나 사이에서 그네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던 초희.
자신의 진짜 이름을 부르라고 죽어가던 네프에게 외친 초희, 완치율이 높은데도 백혈병으로 거짓처럼 쉽게 사라져버린, 유난히 몸
이 약하던 초희.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리고 죽은 후에 ‘언니’가 아닌 “엄마”로 더 잘 부르던 초희.
분명 소멸되었어야 하는데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원래 자신의 진정한 삶인 지금에 태어나기 전에 잠시 우리
에게 머물렀었던 것뿐이기 때문이었을까..
나타나 인도하다..그리고 이제는 진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온 초희. 이제는 우리가 더 사랑을 받을 수도 없을 정도로 좋은 부
모님이 되어줄게. 이번에는 우리가 인도해줄게, 이번에는 기나길고 행복할 네 삶을.
“꿈을 꿨어.”
이번에는 초희도, 네프도 아닌 내가 말을 떼었다. 휘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설효빈의 아빠가 된 설휘연.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었고, 지금 여기 이렇게 함께 있어.”
그가 무게가 가지 않게 내게 머리를 기대며 초희, 아니 효빈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우리의 꼬마공주님.”
눈도 아직 뜨지 않은 효빈이 살며시 미소짓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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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 썼어?”
“응, 이제 이거 다 쓰고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육아일기를 같이 써보는거야.”
“아, 육아일기. 그걸로 만났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가 큭큭, 웃으면서 데워온 우유병에서 우유를 한방울 짜서 팔에 떨어뜨려보았다.
“딱 알맞네, 이제 주면 되겠다. 넌 책 마지막 장이라며. 그것까지 다 완결짓고 와. 효빈이는 내가 우유줄게.”
“응, 알았어.”
키보드 앞에 앉기전에 살며시 휘연과 효빈이를 바라보자, 그들은 똑같은 미소를 하얗게 보내왔다. 효빈이는 아직 말도 못하면서
도 유난히 다른 아기들보다 빠른건지, 나만 보면 볼살을 포옥 패어가며 생글거리곤했다. 휘연과 나는 효빈이의 첫 단어가 ‘아
빠’가 될 것인지 ‘엄마’가 될 것인지 자주 싸우긴 했지만, 그것 역시 행복한 고민일뿐이었다.
“이번엔 그 하얀 원피스 꼭 입히자. 그리고 조만간 카페 ‘네프’에도 들려서 우리 효빈이 인사시켜야지.”
휘연이 살며시 웃었다.
“아, 그런데, 그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야경 책에 쓴다더니 정말 넣었어?”
“응, 그럼. 그리고 그 이후 일도 넣었지.”
휘연이 급작스레 휘파람을 불며 괜히 집중을 요하지 않는 우윳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풉, 하고 웃으며 책의 마지막 장을 쓰기 시
작했다.
“그래서 책 제목은 정했어? 너무 선택이 많아서 뭐해야될지 모르겠다며.”
그의 그림자가 들어간 반지를 낀 손으로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며 그가 자주 하듯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차마 죽일 수 없는 너.”
이리하여 우리의 책은 이번 장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러나 책이 멈추더라도, 우리들의 화음만큼은 멈추지 않고 우리들의 이야기
를 끊임없이 풀어나갈것이다.
[차마 죽일 수 없는 너]
The End.
첫댓글 오.. 그런 거였군요.. ㅎㅎㅎ 암튼 수고하셨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Deathrasher님 :) 여기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해피엔딩이네요.. 끝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ㅎㅎㅎ
댓글 감사드립니다, 사악한 702님. 끝까지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소혜와 태임이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해피엔딩 잘 봤어요. ㅎㅎ
감사해요, 준&건 맘님! 흉가로의 초대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 정말 감미롭운 로맨스 호러 소설이였습니다 ㅎㅎ 기분좋은 엔딩이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안녕하세요, 호러™님! 완결까지 달려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힘이 되는 댓글 감사드려요 :D
마지막까지 너무 고생많으셨어요^^ 해피엔딩 좋아요.ㅋ 마지막까지 달달했고요-ㅋㅋ 서로에게 다이빙> ㅅ<
고생은 뭘요, *ㅁ* SINJI님의 댓글에 힘입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답니다. SINJI님의 지속적인 응원 감사드려요 :)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도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크흑~ 불가능 하겠죠? 부러워요.^^
복주머니님의 [릴리투]가 얼마나 재밌는데요! :) 잘 읽고 있습니다. 벌써 오늘편까지 올리셨더군요. 지금 보러 갈게요, 수고하셨어요 :D
달달한 로맨스가 참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저는 세상 이 일 저 일에 치여 약간은 염세주의자가 되고 말았는데, 행복해지는 초아와 휘연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연애가 하고 싶어지네요. ^^;;
세상일에 치이다보면 정말 생존하는 일 외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은것 같아서 씁쓸하긴 해요. super21s님 언제나 힘이 되는 댓글 감사합니다 :)
아..어쩌면좋아 퇴근하고 완결편을보려고 집에서 봤네요. 해피엔딩이라 더더더더 좋았던 글이네요. 너무 잘 읽고 갑니다.
힘이 되는 댓글 감사합니다, 세바라기님. 저도 해피엔딩이라서 좋았어요 :D
한편의 몽환적인 로맨스 판타지를 보는것 같았습니다. 보는 내내 파스텔풍의 노을빛 사랑에 점점 물들어가는 느낌에. 마지막에는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나오는 멋진 작품이였습니다. 참 아름답군요
앗 . . .눈물까지 ㅋㅋ 감사합니다, 괴상망측님 :) 초아와 휘연의 사랑이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고 이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