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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좌판에 넘쳐나는 사연들 ~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狼皮的羊 추천 0 조회 57 11.07.20 16:0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좌판에 넘쳐나는 사연들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
  
  “아저씨 손 좀 만져 보자. 무슨 남자 손이 이리 보들보들하냐?” 
  
  매상을 꽤 올려주자 좌판 주인 오순네는 처음 봤을 때와는 영 딴판으로 살랑살랑 내 입안에 안주도 넣어 주고, “아저씨를 위하여”라며 정답게 건배도 청한다. 이럴 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화답으로 이 집에서 제일 고급 안주 격인 5000원짜리 새송이 버섯볶음을 호기 있게 추가한다.
  
  초여름 질긴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 올 때 나는 광장시장으로 들어갔다. 셀 수 없이 많은 좌판 대폿집이 환히 불을 밝힌 채 빈대떡이며, 순대, 머릿고기, 국수 등을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다.
  
  서울 종로5가 보령약국 건너편 광장시장 좌판 골목으로 들어서면 청계천로까지 약 240m에 이르는 종축, 또 중간을 가로지르는 횡축으로 무려 600여 개의 좌판들이 폭 10m 골목에 두 줄로 들어서 있다. 그중 300여 개의 좌판이 술과 음식을 팔고 있으니(나머지는 군용물품이나 옷가지, 외제물건 등을 판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좌판 ‘대포촌’이다. 그 역사가 100년이다.
  
질긴 해가 떨어질 무렵, 술꾼들이 하나둘 대폿집에 모여든다. 좌판 대폿집이 환히 불 밝힌 채 빈대떡이며 순대, 머릿고기, 국수 등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사진제공=이명조>
  따끈한 순대에서 김이 맛나게 피어 오른다. 58년 개띠, 우리 나이로 쉰셋인 오순네 주인 박오순씨는 볼수록 웃는 얼굴이 예쁘다. 전북 부안이 고향이고, 스물다섯 살 때부터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2남8녀 중 다섯째라 ‘오순이’란다. 서너 가게 뒤로 ‘사순네’란 상호가 보인다. 바로 위 언니네 좌판이다. 
  
  “언니 왔어? 우리 둘째언니예요.” 
  
  시장 근처에서 단란주점을 하는 ‘이순이’ 언니란다.
  
  내 옆에 비집고 끼어 앉은 손님이 안주를 독촉하자 “알아서 먹어요”라며 오순네가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러자 그 손님은 정말 알아서 손수 마가린 바르고 부침개를 이리저리 뒤적거린다. 그는 페인트공인데 중국 사람들이 우리 돈 다 가져간다며 몹시 못마땅해했다. “중국 사람들 보내야 돼!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 다 죽게 생겼어. 사정 봐줘선 안돼” 하면서 연방 “어이쿠, 다 타네”라며 중얼거리는 이 손님은 이곳 20년 단골이다.
  
  완도집 이쁜 언니는 돈 많이 벌어 완도에 전복 양식장 차려서 지금은 얼굴 보기 어렵다 하고, 광장시장 최고 미인이라 소문난 명자넨 남정네들로 들끓고, 그리고 ‘현태네’, ‘강경 할머니집’, ‘광주집’, ‘자선네’, ‘안나의 뜰’, ‘모녀집’…. 올망졸망한 간판들이 정겹다. 
  
  ‘기철이 엄마네’ 안주는 정말 푸짐하다. 큰 손으로 돼지껍데기와 머릿고기를 덥석덥석 담아 준다. 서른다섯 살 기철이가 아직 장가를 못 가 걱정이란다. 깍두기 국물 맛이 시원하다. 열여덟 살부터 40년간 줄곧 이곳에서 장사를 해 온 최고 고참 사장님이다.
  
  
  단골이 무려 ‘1000명’
  
  ‘할머니집’의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는 불티나게 팔린다. 그 자리에서 먹는 사람, 포장해 가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다. 할머니는 8년 전 여름에 돌아가시고, 17년 전부터 같이 해 온 외며느님이 대를 이어 장사하고 있다. 며느님은 명문여대 출신이고 할머니 아드님도 명문대 출신이라 결혼할 때 시장 안이 떠들썩했다고 주위에서 귀띔해 준다. 단골이 무려 ‘1000명’이라고 아주머니는 단언한다.
  
  머릿고기가 냄새도 안 나고 맛도 깊이가 있다. 돼지 얼굴 부위 중 쫄깃한 뺨과 오도독거리는 귀가 특히 맛있다. 홀로 막걸리잔을 마주하고 앉은 손님은 25년째 단골. 대학생 때 술과 고기를 먹고 돈이 없어 도망갔다가, 후일 돈 벌어 외상값도 갚고 단골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광장시장 한가운데엔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던 죽집이 아직도 그대로 있고, 즉석에서 만드는 ‘이북 할머니 녹두빈대떡집’도 있었다. 횟집도 서너 군데 있다. IMF 때 많이 없어졌다는데, 지금은 ‘회 원조집’, ‘이모횟집’, ‘강원횟집’ 등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한여름에도 좋지만, 추운 겨울날 차가운 바람 맞아 가며 살얼음 끼어 있는 차가운 회를 먹는 맛이 일품이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회 원조집’ 주인 아주머니는 20대 후반부터 42년째 이곳에서 횟집을 하고 있다. ‘선임하사’란 별명답게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수완도 보통이 아니다.
  
  시장 한가운데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좌판에 올라서서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는 손님들을 살피고 있으니, 혹여 다른 안주가 먹고 싶더라도 뻔히 얼굴을 알고 있는 주인아줌마의 눈길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고 회 원조집의 손님들은 너스레를 떤다. 1인분에 1만원짜리 모듬회에는 “배에서 급랭해서 1년 동안 숙성해 내왔다”는 아주머니식 자랑이 이어지며 문어며 참치며 고등어며 붕장어들이 소복이 쌓여 나온다. 얼음상자에 놓인 생선들의 잇몸이 시려 보인다.
  
  이때 하얀 얼굴의 색소폰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여든일곱 살 백연화 할아버지는 반짝반짝 별을 붙인 마술사 모자에 가슴에는 커다란 가짜 나리꽃을 꽂았다. 여기에 긴 가죽 부츠까지, 복장이 심상치 않다. “차렷, 경례, 오케바리!” 그러고는 색소폰을 신나게 불어댄다. 레퍼토리는 ‘목포의 눈물’, ‘아내의 순정’, ‘내 마음 별과 같이’, ‘장록수’. 일어나 춤추는 손님, 박수치는 손님…, 광장시장에 넘쳐 흐르는 색소폰 멜로디를 타고 사람들이 흔들거린다. 각종 전이며 머릿고기를 담은 비닐봉지가 전리품인 양 흐뭇하다. 
  
  청계천이 새롭게 단장되고 나서 광장시장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도란도란 늘어선 좌판들이 칸 하나하나마다 소중한 사연들을 가득 실은 열차처럼 하얀 김을 내뿜는다. 100년 역사의 광장시장은 그렇게 또 한 살을 더 먹어 가고 있다...
  
  

월간조선 / 화가 사석원의 대폿집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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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21 21:53

    첫댓글 무지하게 큰 녹두 빈대떡.. 잊지못하죠~ 지리산 무박산행 하려고 동대문에서 버스기다리며 먹었던 그맛을 어찌 잊겠어요.. 딸이 좋아해서 포장도 해가고.. 친구들의 수다와 시장 풍경과 같이 먹던 그 맛이 그립네요..

  • 작성자 11.07.22 16:31

    마포 공덕 시장 "족발"도 좋지요,,,가격 대비하면 장충 족발보다 오히려 더 나은 듯합니다...
    대자 27000원에 순대 한접시 + 순대국 무한리필 ~~전 소문난집"이 단골~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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