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천주교의 설립사
1) 김범우(金範禹)토마스의 순교와 단양
1751. 5.22. 출생-1787.9.14. 순교/ 한국천주교의 첫 순교자
▨김범우(토마스)
김범우(토마스, 1751~1786?)는 중인 역관 출신으로 서울 명례방(현 서울 명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124위 복자 가운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김이우(바르나바)와 김현우(마태오)가 그의 이복동생들이다. 또 정약용(요한) 형제들과 먼 인척이었다. 이 때문에 김범우는 중인이지만 이벽(요한 세례자),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승훈(베드로) 등과 가까웠다. 그는 이벽에게서 가톨릭 교리를 배웠고, 1784년 겨울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입교 후 신자 모임에 적극 참여해 1784년 말에서 1785년 봄까지 자신의 명례방 집을 신자들의 집회소로 제공했다.
1785년 봄, 김범우는 자신의 명례방 집에서 이벽의 주도하에 신앙 집회를 열다 형조 관원들에게 체포됐다. 이를 을사추조적발사건이라 한다. 의금부로 압송된 이들 가운데 양반들은 모두 훈방됐으나 중인인 그는 형조판서 앞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는 거듭된 강요와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해 결국 유배지에서 노역하는 ‘도배형’(徒配刑)에 처해졌다.
김범우는 충청도 단양 유배지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교우들을 가르치는 등 공공연하게 신앙생활 실천했다. 그러다 형벌로 생긴 상처 때문에 몸이 약해져 1786년(또는 1787년)에 선종했다. 선종 뒤 김범우의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해 그들이 이주해 살던 경상도 밀양에 안장했다. (2019.04.14/ 카톨릭 평화신문에서)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산 중턱에 묘가 있음.
2)1827년 봄, 정해박해 때 경상도에서 피신해온 유순지와 교우들이 단양의 깊은 골,
대강면 신구리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20여명이 체포되어 고문과 혹형을 받았다.
3)1880년 말 대강면 직티리 교우들이 원주교구 용소막 본당의 공소로 활동했고 1940년부터 제천본당 관할로 편입되었다.
4)1957년 1월 24일 본당으로 승격
(2020년은 그 때로부터 63년이 됨)
청주 감목대리구에서 단양지역을 본당으로 설정, 한요한(JOHN HEISSE M. M)신부님을
본당 신부로 파견했다. 1969년 청주교구에서 다시 원주교구로 편입되었다.
5)1957년 7월 대강면(구단양) 하방리에 부지를 매입, 1958년 3월 32평의 성당을 건축했다.
이후 1965년까지 사인암, 매포, 정정, 수산, 대대리, 올산, 영춘, 덕산 공소를 차례로 설립했고 1968년 60평 성당을 증축했다.
6)1972년 단양신협, 1973년 영춘신협을 설립하여 지역의 경제활동을 돕는 일도 했다.
1984년 충주댐 건설로 신단양 별곡리로 임시 이전 했다가 곧 상진리에 성당부지를 확보하고 현재의 성당을 건립했다.
* 매포성당
매포성당은 단양성당 매포공소로 시작하여 1979년 3월 13일 매포본당으로 승격했고
이영섭신부님이 초대신부로 부임했다. 1984년 10월 현재의 성당을 신축했다.
(자료출처:단양군지 하권 2005.12.15.출간/ 183쪽-185쪽)
첫댓글 벌써 단양성당 63주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