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황산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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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전북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
개 요 :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 서쪽 해발 황수산(반월산) 남쪽에 우왕 6년(1380)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섬멸한 황산대첩을 기리기 위하여 비를 건립한 곳이다.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는 고
려 우왕 6년(1380)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섬멸한 황산대첩을 기리기 위하여, 선조 10년
(1577) 8월 당시 전라도관찰사 박계현이 고려사와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고증하여 조정에 상소
를 올려 윤허를 받아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운봉현감 박광옥이 모든 공사를 담당하여
비를 세웠다.
건립 당시에는 전각 3칸, 전문 1칸, 수직료 5칸, 직사 3칸이 있었고, 승장 1명과 의승이 1개월
씩 번갈아 가면서 관리하였다. 지금도 그 때 비각 지주 초석이 남아 있다. 대첩비는 높이
4.25m에 용각한 이수(용두관석-龍頭冠石)를 얹고 약 1.20m높이의 귀부 윙 세웠다. 서쪽에 어
휘각이 있는데 <운성지> 전편에 의하면 암벽에 "동고록(同苦錄)"과 "정왜경신이신(征倭庚申李
神)"이라는 아홉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당시 전투를 같이 했던 8월수와 4종사의 이름이 새겨졌
다고 전하나 나머지 글자는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1945년 1월 일제의 한
민족 말살정책에 따라 남원경찰은 소방대를 동원하여 이 비를 폭파한 뒤 비문 각자를 말소시
켜 버렸다.
1956년에 거국적으로 이의 복구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과 보조로 그 이듬
해 1957년(정유) 10월 27일에 옛 제도대로 마련하였다. 건국 후 1958년 사적 104호를 지정하
고 국고보조에 의하여 파괴된 귀부를 다시 맞추고 그 위에다 오석으로 된 비신을 재건하여 오
늘에 이르다가 정화계획에 의하여 단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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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 1944년 7월 15일 남원경찰은 전각과 대첩비, 어휘각의 8원수 4종사가 석각된 바위 파괴
1957년 10월 황산대첩비 복구위원회에 의해 대첩비 중건.
1958년 5월 대첩비지 경역 9,375평을 사적 104호로 지정. 황산대첩사적비 건립.
1971년 화수천 제방 및 교량 가설.
1973년 어휘각 건립 및 경내 조경과 황산대첩기념비 건립.
1977년 폭파된 파괴비를 안치할 파비각 건립.
1982년 비각 4동 및 부속건물 일체의 번안 공사와 안내판 이전 설치.
1986년 11월 1일 운봉애향회 주관으로 황산대첩제 행사 실시.
1989년 4월 남원 문화원에서 황산대첩과 피바위 표석 건립.
교통정보 : 1) 전주 IC → 남원(국도 17호선) → 고속터미널사거리(좌회전) → 장수함양방면 → 요천검
문소(우회전 함양방면) → 운봉삼거리(좌회전) → 전촌마을입구(좌회전) → 비전마을 →
황산대첩비지
2) 경부고속도로(서울 -> 대전) ->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진입 -> 함양 분기점 88고속도로
진입(광주방면) -> 지리산 IC → 인월초등학교 사거리(우회전) → 피바위 → 옥계타운 →
전촌마을입구(우회전) → 비전마을 → 황산대첩비지
3) 통영·대전고속도로 대전 방면 -> 함양분기점 88고속도로 진입(광주 방면) -> 지리산 IC
→ 인월초등학교 사거리(우회전) → 피바위 → 옥계타운 → 전촌마을입구(우회전) →
비전마을 → 황산대첩비지
4) 조조산동 → 광한루 → 남원대교삼거리(좌회전) → 선원사사거리(우회전) → 요천검문소
(우회전 함양방면) → 운봉삼거리(좌회전) → 전촌마을 입구(좌회전) → 비전마을 →
황산대첩비지
5) 지리산 IC → 인월초등학교 사거리(우회전) → 피바위 → 옥계타운 → 전촌마을입구(우회
전) → 비전마을 → 황산대첩비지
정보제공자 : 남원시청 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