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연은 필연으로, 엘캡을 오르다
2017년 8월 정년퇴직을 하고 틈틈이 산에 다녔다. 선배들을 따라 주로 인수봉의 몇몇 루트를 등반하였다. 암벽등반에 대해 더 배우고자 2018년 8월 설악산에서 실시한 한국등산학교 암벽반 47기 교육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요세미티를 가려면 암벽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인공등반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Extreme Rider Climbing School) 44기로 등록하여 2018년 10월 6일부터 11월 4일까지 6주간의 교육을 마쳤다. 등반 지식과 기술이 너무나도 부족한 나로서는 교육 하나하나가 무모한 도전이었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ER교육을 받으면서 고경한 선생을 포함한 5명이 「2019 요세미티원정팀(독수리5형제팀)」을 결성하고 2019. 6. 4 ~ 7. 2의 기간 요세미티에 가기로 약속하였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ER 등산학교 교육을 마친 후 바로 원정을 위한 훈련을 시작하였다.
2018년 12월 1일부터 시작한 원정 훈련은 2019년 5월 25일까지 13회에 걸쳐 계속되었다. 양주 유양리 채석장, 삼성산 무당바위, 설악산 적벽 등에서 함께 한 야영훈련은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다. 등반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평생 말로만 떠들던 양보와 배려, 협동과 헌신을 체험하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때에도 대학과 연수원의 강의, 연구회 활동 등으로 무척 바빠서 훈련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등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이해도 훈련도 부족하여 번번히 엉뚱한 실수를 반복하였다. 동료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치게 되고 과연 엘캡에 함께 오를 수 있을까, 적당한 때에 빠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반복되는 훈련으로 조금씩 기본적인 등반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그러나 등반 전체적인 시스템과 그때그때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출발한 요세미티 원정은 힘들고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성공이었다. 대장을 제외한 팀원들은 모두 등반경험이 적은 초보자들이었다. 무모하게 시작한 엘캡의 조디악(Zodiac) 등반은 고선생의 지속적인 지도와 헌신으로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전원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조디악은 출발점에서 정상까지의 높이가 거의 800m에 가깝다. 루트의 정상에서 출발점이 보일 정도이니 수직의 거대한 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프로치(approach)가 짧고 홀링(hauling)이 쉬워서 거벽등반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은 곳이다.
푸르스름하게 새벽이 열리고 동쪽의 바위 그림자와 강렬한 햇빛으로 명암이 선명한 때 출발하여 하루종일 암벽을 오르고 밤이 되어 겨우 몸을 뉘는 4박5일의 여정 끝에 정상에 올랐다. 나로서는 총 16피치의 조디악에서 1차 등반에서는 블랙타워(Black Tower), 니플(Nipple)을 선등하였고, 2차 등반에서 출발점의 막막한 직벽 1, 2피치를 등반하는 자랑스러운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고선생은 나에게 조디악 니플을 선등한 최고령자라고 추켜세우기도 하였다. 기록의 사실 유무를 떠나 적지 않은 나이에 짧은 등반 경험을 가지고 엘캡의 주요 루트를 등반했다는 사실이 내 나름으로는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퇴직 후 위축되어 있던 생활에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였다. 환갑이 넘어 처음 산을 배우고 뒷짐을 질 나이에 감행한 초보 등반가의 좌충우돌 조디악 등반기는 따로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요세미티 밸리의 아름다운 풍광, 자유로운 분위기와 생활, 4박5일간 엘캡 조디악에 오르고 매달렸던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이런저런 소회 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할 기회는 달리 있을 것이다.
엘캡 조디악 등반을 마치고 돌아와서 미루어 두었던 일, 학기말 업무처리와 개강 준비로 바쁜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틈틈이 지난 조디악 등반이 무엇인가 미진했었다는 아쉬움이 떠오르고 다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고선생이 메스칼리토(Mescalito) 루트를 함께 등반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왔다.
메스칼리토는 엘캡의 전면에 있는 30피치 정도되는 수직의 긴 루트이다. 거벽등반가들도 신의 영역이라고 하여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7~8일이 걸리며 비교적 난이도도 높고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루트라고 한다. 단순히 등반기간이 긴 만큼 짐도 많고 두 사람이 반씩 나누어 등반한다고 해도 적어도 각자 15피치를 선등해야 하는 어려운 루트이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가기로 하고 항공권을 예약하였다. 원정기간은 2020년 6월 14일부터 7월 10일까지로 하고 메스칼리토를 등반하고 몇 개의 짧은 루트를 더 등반하기로 하였다. 2020년 3월 초부터 매 주말 훈련하던 중 코로나의 확산으로 원정등반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도 예정했던 7회의 주말 훈련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설악산 장군봉과 홍순바위에서 등반 훈련을 하였다. 그러고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어 가는 올해는 다시 메스칼리토 등반을 계획하고 있다. 또 건강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엘캡의 다른 루트들에도 계속 도전할 것이다.
첫댓글 니플 사진을 보니~~
형님이 최고령에
최다 확보물 설치자 인것 같습니다.
캠훅을 사용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