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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두리쌤] 전국사회과교과연구회 - [세상을 보는 눈] 원문보기 글쓴이: 두리쌤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온화한 기후와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산티아고에 가다!
두리쌤
1. 산티아고의 지리
칠레는 위아래로 그 길이가 무려 4000km를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이다. 이 긴나라 한쪽 전부가 바다와 직면에 있으니 정말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다. 북쪽으로 페루, 북동쪽으로 볼리비아, 동쪽으로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 태평양, 남쪽으로는 남극해에 면한다. 다시 말해,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칠레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 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8.5 규모의 강진에도 아이티에 비해 피해가 적었던 이유는 그만큼 칠레가 지진에 내진 설계 등의 대비책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이제 칠레에서 필자가 알아보고 있는 산티아고를 소개해 보겠다. 산티아고는 칠레의 수도 로서 칠레 중앙부 안데스 산맥과 해안산맥 사이에 전개된 분지 위에 있으며, 높이450~650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1541년 에스파냐의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최초의 요새가 산타루시아 언덕에 구축되었다.
2. 산티아고의 역사
- 산티아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칠레의 역사를 간략히 보자. 칠레의 역사를 알아보면서 필자는 칠레도 우리나라와 같은 식민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16세기 초에 스페인 점령자들이 도착하였을 때 여러 인디언 미족들이 오늘의 칠레 땅에서 살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스페인으로부터 지배를 받는 17세기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18세기에는 보다 더 복합적이고 비교적 세련된 사회와 문화제도 생활이 형성되어 있었다. "끄리오요스"라는 칠레에서 태어난 스페인인 2세들은 스페인을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1810년에 시작하여 1818년에 독립에 이르게 된다. 짧은 혼동시대 이후 대통령제의 공화국으로 자리하게 된다. 강력한 행정부는 40년 동안 힘찬 경제, 시민 문화 성장을 이끌고 나아갔다. 태평양 전쟁 (1879-1883)에서 페루와 볼리비아에 맞서 싸운 뒤 귀족과 정치정당들은 차차 대통령제를 지지하여 이 제도가 자리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유공화국", 후에는 "반내각제"로 표현도니 이러한 추세는 1920년 중반기까지 계속된다. 다시 20년대 중반엔 대통령이 행정부의 중심이 되었다. 그 때 역시 사회적 욕구는 더 급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중산층의 등장과 민중 참여의 증가에 따라서 30년대 후반기 대통령인 아기르레 쎄르다 시대에는 중요한 개선방안들이 진행되었다. 프레이와 아옌데 대통령 정부(60년대와 60년대 초)가 지속 되었지만 1973 군사 혁명에 의해 사회주의 정부는 막을 내리게 된다. 1989년에 민주기독교당의 빠뜨리씨오 알윈 대통령이 선출되어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현재 칠레 대통령은 리까르도 라고스 (Ricardo Lagos)이며 임기년은 2000년에서 2006년까지이다.
이젠 구체적으로 산티아고의 역사를 보자. 1541년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델누에보엑스트레모라는 이름으로 세웠으며, 원주민인 피쿤체 인디언은 스페인 정착민들의 지배를 받았다. 원래의 도시는 모포초 강의 두 지류와 전망대로 쓰였던 동쪽의 우엘렌 (산타루시아라고 이름을 바꿈) 산을 경계로 했었다.
3. 칠레의 정치
<산티아고 시내 - 출처:백과사전>
- 칠레는 세계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큰 활약을 해온 국가이다.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과 외교, 영사 관계를 맺고 있으며, UN(국제연합)과 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미주기구의 창설 멤버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전문기구들에 참여하고 있다. 칠레는 불간섭, 민족 자결주의, 분쟁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인권보호와 민주주의를 장려하며 환경보호, 사회, 경제 발전과 자유 무역을 추구한다. 1996년에 칠레는 2년 동안 UN안보리 비 영구 멤버로 채택되었다. 칠레 정부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자주적이고 분리되어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국민 투표로 선출된다. 행정부는 대통령과 내각의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법부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로 Valparaiso 항구 도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사법부는 대법원을 비롯하여 상도법원과 하급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산티아고의 경제 산업
- 산티아고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전, 칠레 전체 경제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칠레는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투자와 대외 무역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칠레경제는 안정된 성장과 낮은 실업률 (약 6%)을 보이며 인플레는 8% 정도 이다. 일인당 GNP는 약 4,500불이다.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해마다 국가 예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95년부터 칠레는 APEC의 가맹국이다. 앞서 말했듯, 산티아고는 칠레 경제의 중심이므로, 칠레 도시 중 최대 규모로 산업이 밀집해있다. 경제 활동 중 제조업체가 집중되어 있다. 주요생산품은 식료품, 섬유, 신발, 의복 등이며 야금업과 구리 채굴업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식거래소 한 군데와 보험회사, 수백 개의 지점을 갖춘 주요은행들이 있어 금융부문도 활발하다. 산티아고 시는 칠레의 철도 중심지이다. 서쪽에 있는 산안토니오의 여러 항구와 북서쪽에 있는 발파라이소에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철도 경유지로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철이 있으며 푸다우엘에 있는 국제공항과 로스세리요스에 있는 공항을 통해 항공교통도 이용할 수 있다. 군용비행장인 옐보스케뿐만 아니라 로카스티요와 토발라바라고 하는 소규모 민간용 공항도 2개 있다.
5. 산티아고의 문화
<시가 중심 지역>
- 우선 나라 전체의 문화를 통괄적으로 살펴보자. 한마디로 칠레문화는 다양하면서 역동적이다. 서구의 전통이 인디언의 토속적이고, 지역적, 국가적 요소들과 혼합되어 있다.
칠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아 산티아고에 대한 문화를 소개하기 전에 반드시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1945년 노벨 문학상) 그리고 빠블로 네루다 (1971년 노벨 문학상),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르라우와 화가 로베르또 마따가 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현대 작가 이사벨 아옌데 (Isabel Allende)와 호르헤 에드워드스 (Jorge Edwards), 호세 도노소 (Jose Donoso) 등이 있다. 끌라우디오 브라보, 마리오 또랄, 알프레도 하아르는 훌륭한 시각예술가들이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선 지취자 막스 발데스와, 소프라노 빅토리아 베르가라, 베로니카 비야로엘과 피아니스트 로베르또 브라보, 작곡가 후안 도르레고 살라스도 지적할 수 있다. 팝 뮤직문야에선 싱어송라이터인 비올레따 빠르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들을 남겼다.
이젠 구체적으로 산티아고에 문화를 살펴보자. 산티아고는 문화생활면에서도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준다. 여러 문화영역에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앞서 말했듯 음악 연극 미술 문학 분야에서는 메스티조의 재능이 강하게 발휘된다. 그리고 국립문헌보관소와 수많은 도서관과 박물관이 있다. 고등고육기관으로는 칠레대학교와 칠레가톨릭대학교, 주립공업대학교가 있다. 동물원과 야영지가 있는 산타루시아 산과 산크리스토발 산에 있는 공원은 휴양지로 이름이 나있다. 경기장뿐만 아니라 민간 및 공공 스포츠 클럽이 상당수 있어 여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파레요네스에는 스키장이 있으며 알가로보와 산토도밍고 사이에 있는 해안을 따라 휴양지가 몇 군데 있다.
6. 산티아고의 관광지
-산티아고 관광지는 안타깝게도 지진, 홍수, 대화재 등의 재해로 파괴가 많이 되었다. 하지만 경치가 아름답고 온화한 기후 때문에 관광객이 많다.
동남아 같은 열대지방을 여행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들려야 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그 나라 재래시장에 가면 열대과일이 넘쳐나고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하게 진열되어 있으니, 구경하기도 좋지만 돈 얼마 안들이고 제대로 된 열대과일이나 해산물 심지어 랍스타까지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칠레 전 지역의 특산물이 모이는 산티아고 중앙시장은 상당히 유명한 관광지다. 열대지방은 아니지만, 칠레도 해산물은 세계 그 어디와 비교해도 지지않을만큼 풍부하고,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과일 또한 아주 저렴하고 풍부하다. 갖가지 생선들과 조개, 게, 문어, 새우, 성게 등이 얼음 위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생선 위에는 대개 Kg 당 가격이 붙어 있는데, 연어나 명태는 1Kg에 1800페소(약 3,200원) 정도 한다. 대부분의 생선이 3~4Kg은 너끈히 나갈 정도로 커다란 것이 특징. 상점마다 커다란 저울을 매달아놓고 바쁘게 손을 놀리며 무게를 다는 모습이 이채롭다. 시장 한쪽으로는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들도 자리하고 있지만 어시장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다. 칠레의 농산물은 그 질에 비해 가격이 놀랄 만큼 싸다. 수입 농산물이 우리 밥상을 차지해가는 주원인이 바로 낮은 가격.
<상점의 와인들>
천혜의 기후 조건 덕분에 양질의 농산물을 풍부하게 생산해낼 수 있어 세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 한 예가 바로
<아르마스 광장>
산티아고 역시 칠레의 수도이지만, 아르마스 광장에서 보면 산티아고의 자유분방한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광장에 들어서면, 칠레의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 입구에는 원주민 흉상이 있다. 곳곳에는 화가, 조각가들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거리의 악단들의 모습이 보인다. 군부 쿠테타 당시 피로 얼룩진 모네다 광장이 이 인근이지만, 지금 보면 언제 그런 굴곡의 역사가 있었는지 감조차 오지 않을 정도다. 위치는 마포초강과 오이긴스 거리 사이에 있는데, 공원 안에는 16세기 산티아고의 개척자 발디비아의 동상과 독립기념비가 서 있다. 주위에 시청사, 중앙우체국, 국립역사박물관, 대성당, 산티아고 박물관 등이 있기 때문에 시 중심부라 할 만하다. 시가의 중심부에는 근대적인 고층건물이 많으며, 1647년 파괴되었다가 1748년에 재건된 카테드랄을 비롯한 많은 교회, 남아메리카 최대를 자랑하는 국립도서관·국회의사당·관청·대통령관저·국립박물관·칠레대학·가톨릭대학·시립극장·금융기관 등이 있고, 북쪽의 크리스토발 언덕에는 22m의 성모 마리아상(像)이 세워져 있다. 또한 칠레에는 식민지시대에 있었던 건축물이 남아있어 관광지로서 뼈아픈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총독 관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조폐국, 영사 재판소, 산프란시스코 교회, 산토도밍고 교회, 레콜레타 프란시스카나, 자비의 교회 등이 남아 있다. 코우시뇨 궁전이 대표적인 19세기 건축물이며 미술 궁전, 독립도서관, 연합 클럽 등에 20세기 초의 양식들이 반영되어 있다. 현대식 건축물 들은 비타쿠라, 산루이스 산, 로쿠로에 있는 주거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산타루시아 언덕은 스페인 출신의 침략자 발디비아가 칠레 정복을 위해 군사요새를 쌓았던 곳이다. 16세기 중반 페루를 점령한 스페인군은 칠레로 남하하여 이곳 원주민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주변지역이 한 눈에 관찰되는 언덕에 정복자들의 요새를 만들었다. 이 요새를 주변으로 작은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산티아고 구, 시, 가지를 이루게 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지금까지 칠레,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대하여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느낀 건 칠레의 사고방식이 분명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식민지 생활을 겪었었고, 일본에 지배에서 벗어난 지 오래된 우리는 일본이 미쳤던 영향들을 없애고, 뼈아픈 기억들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조사하면서 느낀 칠레, 그 속에서 나타나는 산티아고에서의 문화에서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스페인의 지배 속에 있은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예전부터 스페인어를 계속 사용해왔고, 스페인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를 지우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발자취를 자신들의 문화로 수용하고 있는 듯하였다. 스페인들이 아르마스 광장에 남기고 간 아픔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은 광장 속에서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생활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문화에 대한 약간의 배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칠레 사람들의 과거는 과거로 넘기는, 유연한 생각은 분명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