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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답사 코스:경기전 →태조어진→사고→예종태실→최명희문학관(혼불의 저자)→한옥마을→이목대,오목대→전주박물관→전주발물관특별전 호생관 최북 전시관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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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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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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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주 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가 26 전주한옥마을의 상징인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됐다. 경기전에는 두 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요,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이다.
하마비에는“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진전에는 거북이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전에서 보이는 앞산 승암산이 화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다운 경기전, 경기전은 주변 경관이 수려해 역사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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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입구에서 부터 그곳 해설사의해설을 들을수있었답니다 ♧경기전앞의 하마비 서수암수한쌍이 받친고 있는 모양이다른곳과달랐다 .
♧진전에 거북이 붙어있었는데 특이했다. 아래서올려보니 처음엔 무슨복숭아 씨인가 거북이란 설명듣고 보니 역시고개가 끄덕여젔다. 알고보니 거북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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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어진 ♣어진박물관 ♣전주사고 |
경기전(慶基殿)에 봉안된 어용(御容)은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한 것이었는데, 세종 24년(1442) 7월에 집경전의 어용과 함께 개화하여 동년 10월에 봉안했다.
현재 경기전 어진(御眞)은 고종 9년(1872) 9월에 개화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별전(別殿)에 봉안되었다. 그후 어용은 여러번의 수난을 겪었는데 즉 인조 14년(1636)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년(1767) 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한 일이 있으며 고종 31년(1894)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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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본 태조어진 보다 색이 짙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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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태실 |
예종대왕 태실 및 비 주 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 경기전 완주군 구이면에 있던 것을 1970년 경기전으로 옮겼다. 이 태실은 부도와 같은 형태로 전체 높이는 2.35미터이다. 예종대왕의 태를 묻은 것으로, 비석전면에 [睿宗大王胎室]이라 새기고, 뒷면에는 [万曆六年十月初二日建]이라 보인다. 선조 12년(1578)에 세웠는데, 그후 156년이 지난 영조 10년(1734)에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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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분의 태실보다 매우 아름답고 탐스럽고 선명한 이수 를 볼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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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이목대 |
주 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가 산 53-2 외 18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태조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오목대이며, 오목대와 연결되어 있는 구름다리를 따라 내려가면 이목대가 나온다.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의 이곳에서 야연(野宴)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여기에서 이성계는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었다.
즉 자신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비쳤다. 그러자 이를 모를리 없는 종사관 정몽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 말을 달려 남고산성 만경대에 올라 비분강개한 마음을 시로 읊었다. 현재만경대에는 그 시가 새겨져 있다. 오목대와 이목대에는 고종의 친필로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각이 건립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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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관계로 못갔던곳 ☆전주향교 주 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경기전)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건물은 조선 선조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대성전 중앙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다섯 성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전주향교의 현존 건물의 배치형태를 보면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서무가 있고, 정면에 일월문, 그앞에 만화루가 있으며, 대성전 뒷담을 사이로 명륜당이 있고, 서쪽으로 장서각, 계성사, 양사재 와 사마재, 그리고 주위에 교직사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이곳 배향위패는 서울의 성균관과 같이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으로 사성 과 십철 송대 육현을 배향하고 있으며, 동서 양무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의 유학자 7인과 우리나라 18현 등 총 25인을 배향하고 있다.
특히 계성사에는, 5성(오성)의 위패가 있으며, 대성전은 효종4년(1653)에 부윤 심택과 판관 한진기가 중건하였는데, 이기발이 중건기를 남겼다. 명륜당은 광무 8년(1904)에 군수 권직상이 중수하였다. 또한 대성전은 융희 원년(1907)에 당시 군수였던 이중익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향교에는 다섯 그루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향교 내 서문 앞 은행나무 수령이 400년이나 된다.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은 뜻이 은행나무가 벌레를 타지 않듯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향교 내 대성전 우측 은행나무는“수컷이 암컷으로 변하여 은행이 열게 되었다”하여 자웅나무라고 부르는데, 이 은행을 따서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또한 일월문 앞 250년 된 은행나무는 은행을 따서 공을 빌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
☆풍납문 주 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83-4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 건축양태는 조선 후기의 문루 형식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원래 도성이나 읍성, 산성 등은 으레 성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형식이자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영조 43년(1767)에 당시 성내를 휩쓴 정해년 대화로 불타버려 영조 44년(1768)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증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1978년 문루 보수과정에서 옹성의 기단이 풍남문 홍예문으로부터 12m 지점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기단대로 연장 97.5m의 여담쌓기와 치석 6,856개로서 옹성 1,933㎡를 축조하여 복원하였다. 전주 풍남문의 누대를 겸한 석문은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내밀게 구형을 쌓고, 이 석축 중앙에 통로를 뚫고 통로 내외면에 무지개끝 석물을 쌓아 윗면에 문루를 설치한 것이다. 이 누대는 너비는 동서 23.6m, 남북 10.6m이며 높이는 17.2m에 이른다. 문루의 서편에는 종각이 있고 좌편에는 포루가 있었다. 문루는 2층의 팔각지붕인데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윗층의 정면은 3칸이나 측면은 1칸이다. 1980년 종각과 포루, 전주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전주 풍남문은 전주사람들에게는 전주를 대표하는 일종의 상징물이다. 전주 풍남문에는 풍남문이라는 고유의 이름 외에 "명견루"라는 별호가 있다. 전주 풍남문을 중심으로 전주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연결된다. ☆동고사 주 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가 산 10 이 절은 기린봉 기슭에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확실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후백제 견훤이 이 곳에 도읍을 정하기 이전, 즉 신라 경문왕(景文王)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그 후 허주화상(虛舟和尙)이 중건했다고 하는 설이 있으며, 전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동고사라 칭하였다 한다.동고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그 후 현종 10년(1844) 허주대선사(虛舟大禪師)가 현 위치에 중창한 후 소실되었던 동고사의 이름을 따서 동고사라 하였다. 1946년 영담(暎潭) 김용욱(金容郁)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요사 및 부속건물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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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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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문학관 관람(혼불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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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박물관과특별전호생관 최북전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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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님 사진 찍느라 수고 하셨습니다^^*출연 :박상인, 정애숙 ,진정임,김경희,김용교, 박정임, 이순옥,정진모,윤여덕, 진샘지인두분, 11기 박한나, 용교샘 따님, 여러샘들 과 더불어 의미있고 즐거운 날이 었답니다 |
오늘 들어와보았더니 온통 여러 반들일지마다 악성음란댓글로 도배되있어 우선 하나만 다시 올렸답니다 사무국에서 음란댓글 지워주시고 빨리 조치해 주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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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발 악성 음란 댓글은 사양입니다 지 마세요 please
음란 댓글 퇴치중입니다.ㅠㅠ 곳곳에서 튀어나오네요.ㅠㅠ
모이가 악성댓글인데요?
그림이 더 컸음 좋겠 따.
우리 명총무님, 오늘도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절대 저렇게 정리못하지요.
간사님 수고 하셨네요감사 지금 인 해보니 없어졌네요^^*저도 몰랐는데 갑자기 반일지마다잔뜩크크
영자샘은 악성 못 보셨군요
함께 하지못해 아쉬웠는데 사진으로나마 보니 반갑네요.
네선생님 다음엔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