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다시나오기 출장으로 갔던 일본 최대의 호수 비파호 방문기 입니다
벌써 1년반 전이군요
지난 9월 중순에 일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중국 청도 출장에 이은 일본 출장으로 관서지방의 일본최대의 내륙호수인 비파호가 있는 시가현
나가하마란 곳으로
중국으로 파견 가기전 일본은 출장으로 참 많이 돌아다니던 곳이라서 어지간한 곳은 다 가본 편인데
비파호가 있는 시가현은 처음이었습니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고속도로로 2시간 반정도
일본에서 유명한 호수라서 한번 돌아보고 싶었는데 저녁 늦게 도착하다보니 호수가 보이질 않더군요
다음날 오전 9시부터 일본회사와 업무협의하고 저녁에는 다시 간사이로 이동해서 귀국하는 일정이다보니
짬을 낼 수가 없었음
그래도 동네 한바퀴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벽에 일어나서 호텔주위의 호수변과 공원, 나가하마성쪽으로
산보삼아 혼자 걸었더랬습니다
호텔 창가에서 바라본 새벽미명의 비파호 전경
호수 둘레가 200km 정도라고 하더군요 상당히 큰 호수
호텔 근처의 요트 정박장 (정박료가 비싸 끌고다니는 놈도 있다고.....)
요트 정박장 옆에 세워놓은 경고판 (낙시 금지)
다행히 호텔이 호수변에 있어서 새벽에 호수변을 산책하는 맛도 꽤 괜찮더군요
도시도 쬐끄만하고 조용한 호반도시라 아 정말 좀 쉬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하는…..
산책중 길가의 일본 전통가옥 일본은 대충 이런 집들이 많습니다
호텔의 호수변을 돌아 길가로 나오니까 이정표가 하나 보였습니다 근데 이정표에 국민숙사가 있고
국민숙사 이름이 풍공장(豊公莊)이라고
아니 일본에서 풍공이라면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말인데 여기가 토요토미 히데요시하고 관련이
있나? 오사카도 아니고 하긴 간사이 지역이니까 뭐 그렇기도 하겠다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조금더 가다보니 공원이 하나 나오더군요 근데 공원이름이 글쎄 풍공원(豊公園)….
풍공장 150메타앞 우회전 풍공원
풍 공원내 산책 길 ( 공원이 호숫가로 연결되어 있어 참 평안한 느낌 - 아침산책코스로 죽여주네요)
아니 히데요시 본거지도 아닌데 이렇게 그의 이름이 사용되는게 좀 신기했습니다 속으로 이지역이 혹시
히데요시의 충실한 가신의 영지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가면서 히테요시 가신중에 유명한 놈이
누가 있지? 하면서 그냥 떠올려 보았습니다
가토오 키요마사는 구마모도로 갔으니 아니고 천주교인인 고니시 유끼나가는 상인집안이고 사카이출신
이니까 아니고…..
그러다 문득 이시다 미쓰나리가 떠오르더군요
당연하겠지만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평가가 우리와 좀 다릅니다
일본전국시대에 비천한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오나 노부나가의 오른팔이 되기까지 성실하고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전쟁에서 가능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능력이
이주 뛰어났다고 합니다
또한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유명한 지식인이자 총애하는 부하인 아게찌 미쓰히데 에게 배신당하여
혼노지에서 자살하자 즉시 전장에서 회군하여 아게찌가 정신차리기도 전에 물리치고 정권을
잡게됩니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의 동맹으로 오다의 초청으로 교토로 왔다가 노부나가가 죽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본거지로 도망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후일 자기 부하의 마누라로 있던 누이를 빼앗아 도쿠가와에게 마누라로 보내면서까지 해서 거의
무혈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자기 품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뭐 우리정서로 보아 안 맞는 짓이긴 해도 .....)
싸워서 이길수도 있었지만, 어린시절 볼모로 가서 고난중에 성장하고 젊은 시절 당시 무적으로 꼽히던
다케다의 기마군단과 한판 뜰 정도의 도쿠가와와 그의 가신들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얘기가 옆길로 새네…..
우쨋든 히데요시는 좀 특이하고 뛰어났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집권후 힘들게 얻은 아들이 죽고나서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지만 …….
도요토미 수하에는 동고동락했던 무신그룹과 문신그룹이 있었는데 무신은 지가 키웠고 문신은
스카우트했다고 봐야죠
무신의 대표주자가 가토오 기요마사고 문신의 대표주자가 이시다 미쓰나리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두그룹은 사이가 아주 나빴습니다
특히 이들 사이가 벌어진 것은 임진왜란 부터인데 당시 조선으로 책사겸 감독관으로 나온 이시다는
무관들을 졸로 여겼고 무관들은 이시다를 도요토미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간신배으로 여겼습니다
결국 이러한 불화는 히데요시가 죽고나서 이놈 첩에게서 난 아들 히데요리를 옹립한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과 도쿠가와의 동군이 싸운 유명한 세키가하라 대전의 승패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첩 요도에게서 난 이 아들이 실제는 다른놈 씨라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가문의 존속을 위해서 형님은 동군에 아버지와 동생은 서군에 참가한 사나다 가문 등 치열한 눈치 싸움
속에서
이시다와의 불화로 인해 가토오 기요마사와 같은 정말 탁월한 도요토미가의 충실한 무장들이
도쿠가와의 동군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일본역사는 어찌됬을지 모르죠
250여년간의 에도막부가 열리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각설하고 이시다 미쓰나리는 차석잔으로 히데요시에게 스카웃되어 이러한 포용력 부족의
흠결에도 불구하고 백성에서 존경받는 탁월한 성주였으며 토요토미 뿐아니라 그 아들에게 까지
마지막 충성을 다하고 패전후 형장이 이슬로 사라진 충신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
문득 바로 그 비운의 이시다 미쓰나리가 생각이 나더군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가하마 성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나가하마성은 천수각만 남아있더군요
후대에 다시 건립한 것으로 판단되는……
풍공원에서 바라다 본 나가하마 성의 천수각
일본성은 보통 소또보리, 우찌보리라고 해서 성내외에 해자를 파고 물을 넣어 둡니다 적군이 들어오기
어렵게….. 성도 그리 크지가 않습니다
만약 도요토미가 세운 오사카성이 원형 그대로 남았다면 무지 큰 성이었겠지만…..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와의 오사카 여름싸움, 겨울싸움하면서 성이 다 무너졌죠
지금도 일본에 남아있는 성들 중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성은 많지 않습니다
일본사람들은 히메지성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가토오 기요마사가 지은 구마모도
성과 나가노의 마쓰모도성이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 오사카성도 기요마사가 설계한 것입니다만
특히 무뚝뚝하고 전형적인 무인인 기요마사가 건축한 구마모도성의 무뚝뚝함을 참 좋아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이 기요마사 (가등청청)군대의 용맹 때문에 우리나라 조선군이 참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적이긴 해도 의리있고 충직하고 용감한 기요마사는 후일 이에야스에 의해 독살되고
구마모도 지역은 호소가와 가문으로 넘아가게 되지만 탁월한 성 건축가이자 진정한 군인이라 봐야죠
그런데 나가하마성은 성 흔적지만 남아있고 후대에 세운 천수각만 공원쪽에서 보였습니다
불타고 나서 좀 아쉬워서 천수각 만 세웠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천수각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나가하마성 천수각
멀리서 보니 천수각 옆에 뭐가 붙어있는데 무슨 역사관 비슷하게 쓰여있는 것 같더라구요
가까이 가서 보니 세상에……
이시다 미쓰나리 역사관이라고…….
갑자기 일본 전국시대의 역사가 눈앞에 짠하고 나타나는 느낌
여기가 천재이자 비운의 충신 이시다 미쓰나리의 .........
이른 아침이라 기념관 내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기념관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성을 돌아서
호수변으로 그리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오후에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길의 이정표에 세키게 하라 뱡항이라는 표시가 세삼스럽더군요
|
첫댓글 멀리서 혼자서 고생하는 동생 ..오랜만에 좋은 사진 올려 놨네..
창보오빠 얼굴보기 힘드네요..눈구경 잘하게 해줘서 감사해요...ㅎ
멀리 계시지만 맘만은 한국땅에 늘 계실텐데 바울이땜에 힘이 불끈 나시죠.?
창보오빠....힘내세요...
오늘 여러어른신얼굴들도 보고 오빠 사진과 글 재미있게읽어보았네요.바울이 일도축하하며 큰일에 변함없이 보이는 오빠의큰마음이보이네요. 항상 한결같은 넓은마음 닮고싶네요.덕포은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