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장을 관람의 목적이 아닌 놀이터, 나들이 쯤으로 생각하던때가 있었습니다. 프로리그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택에 (더하기 포항스틸러스(아톰즈)와 해병대의 상관관계에 의해 아빠 부대로 날라오던 무수한 공짜표) 어릴적에 프로리그 경기가 있는날은 꼭 아빠손을 붙잡고 스틸야드로 향했었죠.
이미지 출처 = 포항스틸러스 홈피
학교 쉬는시간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축구를 하는게 아니고 친구들고 삼삼삼오오 모여 공기놀이를 하던 여자아이에겐 축구장에 가는것은 맛있는것 먹으러 나가기 위한 매개체였었죠.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밥이며 오뎅 등등의 간식거리와 아이들의 눈을 빼앗는 각종 장난감이 즐비하던 축구장입구에서 아빠를 졸라 먹을것과 장난감 한두개를 들고 축구장에 입장하면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았으니깐요.
그때의 스틸야드를 기억해 보자면... 지금의 축구장 문화에서는 절대 허용될수 없을만한게 있었습니다. 바로 치어리더 언니들이었죠. 그렇다고 치어리더 언니들이 경기 마다 모두 있었던건 아니에요. 있는날이 있었고 없는날이 있었고... 없는날엔 아빠 친구분들이 매우 아쉬워 하기도... 그러나 언니들이 있는 날에는 언니들이 있는 경기날에는 경기시작하기 꽤 이른시간에도 재빠른 아저씨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허용할 수 없는 구단의 이벤트이겠지만 그때 그 시절이었기에 행할 수 있었던 일들이 아닐까 해요.
아빠 손을 붙잡고 따라다니던 그때 전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많은 축구팬들이 그리워하고 멋졌어! 라며 회상하는 시절의 포항을 봤었으니깐요. (아쉽게도 많은 기억은 나지 않죠. ㅠ_- 제겐 순수한 축구관람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깐요;;) 지금은 거의 신격화 되어버린 홍명보선수와 황선홍 선수가 같이 뛰던 시절이었고 감히 k리그 최고의 용병선수라 말할 수 있는 (음..여기서 우리 나드손 선수는 잠시 제외! 제겐 라데보다 나드손선수가...) 라데선수가 뛰던 정말 흠잡을때 없던 포항이었거든요. 경기 있던날이면 NO.20 이라는 플랜카드를 걸고 꺅꺅- 거리는 언니들도 많이봤었었죠.
혹여나 사정이 있어 아빠 혼자경기장 가셨다가 돌아오신날이면 제일먼저 "다녀오셨어요?" 라는 인사보다 "이겼어요?!!!" 라고 먼저 묻기도 했었습니다. 이겼으면 그날 스포츠 뉴스는 꼭꼭챙겨보고 졌으면 그냥 일찍자고말았었죠.
그리고 그때 지금은 제가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 수원의; 몰수패도 봤었답니다.경기를 한참 보다가 왜 경기가 중간에 끝나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그래도 마냥 포항이 이겨서 좋아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김호감독님이 왜 착각하셨을까..하며 아쉬워하기만하죠. 아이러니하네요. 하핫;
▲프로 첫 몰수패〓96년 10월2일 포항에서 열린 포항-수원전에서 수원은 '외국 용병 상한규정'을 어겨 몰수패를 당했다. 1-1이던 후반 12분 수원 김호 감독은 전재복 대신 러시아 출신 데니스를 투입했다. 데니스가 그라운드에 들어선 순간 수원의 용병은 4명으로 불어났다. 프로축구연맹은 그해 8월 용병 출전을 3명 이하로 한다고 못박았다. 경기 감독관은 수원의 0-3 몰수패를 선언했다.
어릴적 제겐 팀을 선택하고 뭐고가 없었죠. 자연스레 내가 살고있는 곳의 팀을 응원하게 되는것. 그리고 그 팀을 좋아하는것. 이런것들이 연고의식의 기본이 되는듯합니다. 자연스럽게 축구장을 찾고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곳의 우리 팀을 응원하는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축구쪽으로 관해서 전 꽤나 행운아였나봅니다. 어린시절이나 지금이나 사랑해 마지 않는 팀이 바로 옆에 있고 경기보러 갈만한 환경이 잘 갖추어져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사온 97년 이전까지는 포항을 응원하고 이사온후 수원에 푹빠져버렸지요.! 수원을 응원하게 된건 아무래도 98월드컵의 영향이 크긴했지만요.)
그땐 포항스틸러스가 아니고 포항제철 아톰즈였었죠. 저에겐 스틸러스란 이름보다 아톰즈라는 이름이 너무 친근해요. 제 유년시절의 축구에 관한 기억은 포항 아톰즈를 빼면 아무것도 없거든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왠만한 남자애들은 아톰이 뒤에 그려진 빨간 패딩조끼(?)는 꼭 한벌씩 가지고있었구요. 꼭 자기가 포항의 누구 , 포항의 누구 선수라면서 이름을 달고 자기들끼리 게임을 하곤 했었죠. 늘 황선홍 선수를 두고 애들이 많이 다투었던거 같네요. 또 자기가 무조건 홍명보라고 우기면서 절대 자신 골문근처에는 없던 애들도 있었구요.
지금 이렇게 축구장에서 열정을 다하며 내팀을 사랑할 수 있는것도 어릴적 저렇게 부담없이 축구장을 다니며 즐길수 있었던 이유가 큰게 아닐까 해요. 나중에 결혼해서 꼭 내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 손 붙잡고 축구장 찾을겁니다. 어릴적 우리 아빠가 그랫듯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