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탐구주제:1)선사 시대 우리 조상들의 생활 모습 2)한강 유역을 둘러싼 삼국의 항쟁
■ 암사동 선사주거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은 한강가 아차산성을 강 건너 바라보는 왼쪽 대지위에 위치합니다. 유적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25년에 내린 큰 비로 한강이 넘쳐 유적이 잘려나가면서 거기서 토기, 석기 등 유물이 나타나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를 거쳐 드러난 유물, 유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 중서부 지방 신석기 시대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20여 채의 신석기 시대 움집터와 딸린 시설, 돌무지 구조 등이 드러났고 여러 가지 무늬 질그릇, 석기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움집형식은 둥근 집이 있으며 모를 죽인 네모꼴도 있습니다. 크기는 한쪽 길이가 5~6m쯤 이고 깊이는 70~100cm쯤 됩니다. 집자리 가운데에 강돌을 돌려놓은 불 땐 집자리가 있고 나들이(입구)는 남쪽에 있는 것이 많습니다. 기둥 구멍은 집 한 채에 네 개가 있어 네 모서리에 기둥을 곧게 세우고 도리를 얹고서 서까래를 서로 기대어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질그릇은 계란을 반쪽 갈라놓은 모습의 뾰족밑, 둥근밑 모양으로 질그릇의 입술, 몸체, 밑 부분으로 나누어 무늬를 새겼는데 입술에는 짧은 빗금무늬, 점무늬를 새기고 몸체에는 물고기 등뼈 무늬를 주로 새겼습니다. 무늬가 없는 납작밑 질그릇도 더러 나왔습니다. 무늬를 새긴 부분에 따라 이른 시기에는 질그릇 전체에 새긴 것이 많고 늦은 시기로 오면서 입술부분에만 무늬를 새긴 것이 늘어납니다. 석기는 주로 강자갈로 만든 도끼와 화살촉, 그물추 등 뗀석기가 많았고 간석기도 있습니다. 농사에 쓰이는 괭이, 돌낫, 보습과 갈돌, 갈판도 있어 암사동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한 곳에 모여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밖에 도토리와 같은 자연 열매를 따서 음식을 만들어 먹은 자취도 남아 있습니다.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로부터 늦은 시기에 걸치며 연대는 대체로 7000년부터 3000년 전으로 볼 수 있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6400년부터 3500년 전에 걸쳐있습니다.
■ 한강 유역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의
한강이 흐르고 있는 서울 지역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아주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사시대부터 민족 문화 형성의 중심지가 되어 왔습니다.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한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지입니다. 일찍부터 백제는 이곳 위례성에 나라를 세우고 성장, 발전하여 삼국의 중심세력이 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서울의 한강유역을 차지한 나라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빼앗긴 나라는 쇠퇴하였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방어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를 하였습니다. 서울의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것은 영토를 확장하고 문화와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준비물:필기도구,풀,가위, 색싸인펜, 약간의 간식,물,쓰레기 봉투
만나는 장소 및 시간:영통 토마토 부동산 앞 8시 30분 송파 중학교 건너 맥도날드 앞 9시 30분
인솔교사:윤영선(011-9142-5778) 담임교사:박헌정(011-440-7159) 보조교사:심순철(010-7700-35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