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적인 논리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화성법과 낯선 느낌을 주는 새로운 선율, 운율적이며 유연한 프레이징, 무한한 음향을 새롭게
조합해고자 한 진취적인 착상, 형식면에서의 새로운 자유로움 등을 통해, 드뷔시는 신비스러운 것에 대한 선호와 세련된 박취(剝取),
지속적인 암시와 불연속적인 유동성, 반어적인 표현 등을 그려내고자 했다. 소우주적인 수준에서 대우주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세포의 수준에서 구조나 형식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드뷔시의 연습곡은 단순히 연습곡의 차원을 뛰어넘어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인식 자체를 새로이 변화시킨 혁신적인 작품이다. 드뷔시의 이러한 급진적인 개념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에 이르러서야 비
로소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었다.
1권 (Premier Livre)
3,4,6도, 여덟 손가락, 옥타브, 른 스케일 등의 손가락의 기교를 강조한 연습곡으로서 교육적 목표가 강하게 드러난다.
I. 5개의 손가락을 위하여, 체르니에 의거하여 (Pour les cinq doigts: d'après Monsieur Czerny)
첫 마디의 왼손은 체르니 연습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부분으로서 옛거장에 대한 존경을 담은 오마쥬라고 볼 수 있다. 몇 차례
동기가 반복한 뒤 갑작스러운 멈춤과 복조성의 기운이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데, 조성은 강조되는 동시에 파괴되기도 한다.
II. 3도를 위하여 (Pour les tierces)
전통적인 3도 병행으로 시작하며 새로운 음향과 배열 방식을 실험한다.
III. 4도를 위하여 (Pour les quartes)
드뷔시가 즐겨 사용하던 음정이 바로 4도로서, 음절마다 끊어져 연주되는 소리를 통해 당혹스러울 정도의 새로운 음향 효과가
인상적이다. 교회선법과 온음계도 엿보인다.
IV. 6도를 위하여 (Pour les sixtes)
신중하고 명상적인 시작부와 고통에 가까운 듯한 발전을 거치며 활성화한다.
V. 8도를 위하여 (Pour les octaves)
교차리듬과 옥타브가 섞인 왈츠의 화음을 통해 유쾌함과 양식적인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VI. 8개의 손가락을 위하여 (Pour les huit doigts)
전적으로 음색을 위한 연습곡으로서 엄지 손가락을 제외한 여덟 손가락의 균일하면서도 통제된 진행을 통해 음색의 다양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2권 (Deuxième Livre) 반음계, 꾸밈음, 화성의 울림과 음색, 음량의 탐구와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우회하여 보여준다.
VII. 반음계를 위하여 (Pour les degrés chromatiques)
저음의 스타카토와 신비스럽게 표류하는 듯한 단편적인 테미들이 대위법적으로 처리된다.
VIII. 꾸밈음을 위하여 (Pour les agréments)
수직 또는 수평의 음괴(tone cluster)의 구축과 강도의 내적인 분할이 시도되는 곡으로서, 하프시코드와 관련된 전통의 희화적 모습
들이 드뷔시의 천재적인 상상력을 통해 펼쳐진다.
IX. 반복음을 위하여 (Pour les notes répétées)
불확실한 조성을 바탕으로 토카타풍의 화려함이 묵직하면서도 희화적으로 펼쳐진다.
X. 대비적인 음향을 위하여 (Pour les sonorités opposées)
뉘앙스의 강약 및 템포의 대위법을 통해 밝고 어두운 음향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특히 다양한 음색이 형성하는 폴리포니에 몰두함으
로써 음역, 강도, 어택이 음악적 공간 속에 신선한 방식으로 펼쳐져 있다.
XI. 조립된 아르페지오를 위하여 (Pour les arpèges composés)
6잇단음표의 아르페지오가 펼쳐지며 섬세하게 다듬어진 무지개 빛 음색의 아라베스크가 인상적이다.
XII. 화음을 위하여 (Pour les accords)
마지막으로 작곡된 곡은 아니지만 드뷔시의 의도에 따라 마지막에 배치된 이 곡은,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고집스러운
집요함에서 기인하는 공격성과 환상적인 중간 부분에서 등장하는 주술적이고도 신비스러운 몽환성이 충돌하며 불안함을 생성해내
는 직설적인 표현력이 압권이다.
추천음반 드뷔시 연습곡은 작품 자체의 현대성 때문에 이전 시대의 연주가들보다는 현대 연주가들에게 그 가치가 뒤늦게 발견되어 녹음이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테크닉상의 난해함이 더해져 이를 녹음하는 연주자들은 극히 드문 편이다. 이 가운데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연주(DG)가 가장 정석적인 해석과 모던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대를 초월한 명연으로 손꼽을 만하고, 그 다음으로 미쯔코 우찌다의
연주(Philips) 또한 음색과 구조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보여준 훌륭한 연주로 평가할 만하다. 여기에 장-이브 티보데의 연주
(DECCA)는 낭만적인 색채감과 환상적인 볼륨감이, 피에르-로랑 아이마르의 연주(Warner)는 새로운 음향 구축력과 신선한 표현력
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