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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함안조가 감찰공파 하림유사(遺事)
 
 
 
카페 게시글
함안조가의 역사 및 인물 판서공과 감찰공, 두 형제 할아버지의 족보 번역 및 해설
조성래 추천 0 조회 433 20.06.29 18:1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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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6.29 19:46

    첫댓글 관정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ㅡ민도할아버지께서 형인 신도할아버지 보다 3년이나 먼저 돌아가신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그 시대의양심이요 선구자 입니다.

  • 20.06.30 13:16

    1942년생 조우제 입니다. 감찰공 할아버지가 그 시대의 양심이요, 선구자라는 조직래 님의 글에 대해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비록 사과라는 낮은 직급이지만, 그 죽음을 각오한 용맹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명장(유명한 장수)입니다. 그 당시의 왜놈은 쳐죽여야 마땅한 처사였습니다. 어찌 의분이 솟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조성래 님이 이 글을 작성하는데 1주일이 걸렸는데, 아마도 옥편도, 사전도, 역사도, 인터넷 검색도 했겠지만, 기본적인 실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판서공 및 감찰공 할아버지에 대한 이렇게 알기쉽게 자세히 기록한 내용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함안조씨 감찰공파, 우리는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 작성자 20.07.02 05:46

    조우제 아제님은 선조(先祖)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셔서 잘 알고 계십니다. 사실 족보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한문이 된다고 족보를 잘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한문 뿐만 아니라 인물, 역사, 관직명, 지리, 시대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족보에 내포되어 있는 정보를 다 읽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헌 해석학이 바탕이 되어 있으면, 족보 번역 및 해설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사전이 잘 나와 있어서 인물이나 관직명은 크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명사전에 나와 있지 않는 인물은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정자(正字)로 되어 있지 않는 한자의 판독입니다. 옥편에 나와 있지 않는 글자를 만나면, 침침한 시력이 더욱 나빠져서 두통을 일으키고, 탈진 상태에까지 가기도 합니다. 족보상에 중요인물 몇 분은 힘이 들드라도 작업을 해놓을 작정입니다. 자신의 조상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몇몇 후손들을 위하여

  • 작성자 20.07.08 04:02

    조직래(1947년생)형님께서 위의 글을 읽고, 저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관정 연일 고생이 많구나 ㅡ눈도 침침하고 머리도 띠잉 할기다 ㅡ글중에 남계공 수만 할배부분이 잘못된듯 ㅡ할배는 23세에 죽었고 그때 아들 응경과 딸이1명 있었다ㅡ그래서 동생 절도공 수천할배가 고생을 많이했을기라 ㅡ참고하시길 바라네.

    조성래 왈, 네, 형님. 육십갑자로 년대를 표기해 놓은 것은 까딱하면, 60년 오차가 나기 쉽습니다. 다시 확인 후 오류가 확실하면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일 내 남계공 조수만(趙壽萬) 할아버지 족보를 번역해 올리겠습니다.

  • 작성자 20.07.08 03:59

    조직래(1947년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남계공 조수만(趙壽萬) 할아버지 생몰년대를 수정하였습니다. 남계공 조수만(趙壽萬) 할아버지 족보에는 "예종己丑(기축)생, 辛亥(신해)七月十一日卒"이라고 되어 있어서 그 생몰년대가 1469-1491년 23세亡과 1469-1551년 93세亡 둘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계공할아버지는 하림 윗재실 주인공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설마 23세에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93세까지 사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계공 조수만(趙壽萬) 할아버지는 23세에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 되었다. 족보책 앞에 실린 남계공할아버지 언행록을 보니 "成宗(성종)辛亥(신해)七月十一日卒"이라고 되어 있어서 1491년에 돌아가신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23세까지밖에 못 살은 분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재실을 지어드렸을까? 이해하기 쉽지 않다.

  • 20.07.07 08:16

    남계공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아쉬움으로 후손들이 재실을 지었을듯.남계공이 돌아가셨을때 부친 금호할아버지는 생존해 계셨고 동생이신 절도공 수천할아버지가 부모님 형님댁 조카들을 돌보고 부양 했겠죠.절도공은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 우애가 엄청 돈독하신 분이니까.13충중 최고 윗선조가 절도공이죠.고향 하림에 계시는 절도공파 친족과 잘지내야 합니다.옛날에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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