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가야하는 죠셉에게 우리나라를 같이 여행하며 그걸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었지요.
그는 여행을 잘 마치고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수학정석을 꺼내놓고 수학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다는 소문도... ^^
다들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맛이 어떤지 같이 한번 보자구요. ^^
버스가 달린다. 밖은 컴컴해서 풍경같은 것은 기대도 할 수 없고, 저 앞쪽의 아이는 컴컴하고 덜컹거리는 차안이 여간 못마땅한게 아닌지 연신 칭얼대며 엄마를 보채고 있었다. 심야버스를 타고 하는 두번째 여행... 적잖이 피곤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도 생기고... 이번에 한국을 떠나는 죠셉이 아름다운 추억을 한보따리 싸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예상시간보다 30분 일찍 통영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새벽 4시 30분. 늘 그렇듯 심야버스들은 빨리 달린다. 실비가 흩뿌리는 통영 버스 터미널. 마음이 조금 착찹했다. 우리는 7시 첫배가 떠날때까지 그렇게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 통영 여객선 터미널로 왔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10분거리다. 택시요금이 2000원이 나왔으니 넷이서 버스를 타는 것보다도 싼 요금이다. 이곳에서 소매물도와 비진도를 가는 배를 탄다. 지금 새벽 5시인데 물론 직원들은 아직 출근전이다. 오늘 아침도 어제 아침처럼 출항이 취소가 되면 어쩐다지...? 물어볼 데도 없고 답답했다. 하긴 이번 여행은 불안감의 연속이다. 출발하기 며칠전 날짜를 구성할때 일기예보를 참고해 비가 덜 내릴것 같은 날을 잡은게 오늘이었는데 막상 출발당일이 되자 이쪽지역에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정말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할때의 일이다. 주일학교에서는 여름이 되면 캠프를 가는데 항상 비가 내릴때를 대비해 프로그램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준비했다면서 얘기하는 것이 바로 '우천시 강행'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우천시 강행'을 해야 하나...? 막무가내로 진행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판단하는 게 가장 현명한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되물었다. 내 경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유사한 자료를 뽑아들려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실수하면 안되었다. 나 하나의 실수로 인해 몇명의 시간과 금전과 그밖의 무형의 것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가라고 생각할때 정말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책임은 언제나 힘들다. ... 다행이다. 배가 간단다. 표를 끊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마침내 배에 올랐다. 배는 예상했던 대로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그런대로 믿음직해보였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니 선실의 구명장비나 시설 등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아마도 내가 유럽여행에서 그쪽의 배시설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소매물도로 가는 배의 모습.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배였다] 배에 타고 뒷갑판에서 조금 구경을 하다가 하늘도 너무 찌푸리고 이슬비가 제법 내려 더이상 구경하기를 포기하고 선실로 들어왔다. 조금 앉아있자니 버스에서 시달리다 제대로 자지 못한 피로가 몰려와 나는 이내 곯아 떨어졌다. ... 갑자기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눈을 떠보니 배가 도착했단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배에서 선원의 도움을 받고 내리자 난생처음 구경하는 외딴 섬의 풍경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부두에는 섬 아주머니들이 나와 연신 민박을 하고 가라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민박 안할거라며 아주머니들을 지나왔지만 그래도 아주머니들은 굴하지 않고 우리를 따라왔다. 숙박을 안해도 좋으니 자신의 집에 짐이라도 맡겨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소매물도 부두의 풍경. 오른쪽 아래에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내 원래 생각은 소매물도에 작은 여객 사무실이라도 있으면 거기에 반나절만 짐을 맡겨 놓으려 했었다. 그런데 작은 부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섬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는데 짐을 놔둬도 된다는 아주머니의 제의에 사실 귀가 솔깃했다. 선뜻 결정을 못하는 우리를 아주머니는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며 '끌고' 집으로 가셨다. 섬 아낙들의 걸쭉한 입담에 '서울 촌놈'들은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면서도 흐뭇하게 이끌려갔다. 거기는 야무진 서울깍쟁이들이 사는 곳이 아닌 '외딴 섬' 소매물도였다. ... 짐을 풀고 섬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십여분 올라가자 제법 큰 산장이 나타났다. 뭔가하고 봤더니 티비에서 봤던 바로 그 소매물도 분교다! [소매물도 분교의 전경과 수국] 학교를 개조하여 카페로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가려하자 저쪽의 어떤 사람이 비가 와서 '더러워진다'며 못들어오게 했다. 그렇다면 카페는 아니고 숙소개념인 모양인데 왜 밖의 간판은 식사, 커피같은 것을 적어놓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예전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교정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힐 하우스라는 산장으로 변신한 예전 소매물도 분교의 모습. '내실있는 교육, 정직한 사람'이라는 슬로건이 그곳이 학교자리였을 말해주고 있었다] [식사, 커피 라고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조금더 멀리서 바라본 소매물도 분교의 모습] ... 그곳을 떠나 우리는 등대가 있는 '등대섬'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잠시 등대와 유사하게 생긴 천문대같은 곳에 가게 되었다. 다들 등대가 이상하군..? 생각했는데 등대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고 결국 등대섬을 찾아 다시 출발했다. [소매물도의 폐허가 된 천문대 위에서.. 멀리 등대섬의 하얀 등대가 보인다] [죠셉과 대니. 이제 당분간 이런 사진은 못찍겠지?] ...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5분정도 걷자 이내 눈앞에 소매물도의 비경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었다... [초록 캔버스와 그위에 사람들이 두발로 그린 오솔길 데생] [파란색이 예쁜 '닭의 장풀'과 소매물도 단애(斷崖)] [소매물도 전경] [길에 까만 콩알같은 대변을 줄줄이 보고 다닌 주범, 흑염소들] [바위로 점점이 수놓은 소매물도 전경.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땅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 [혼자 '도사놀이'를 하고있는 죠셉.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그의 옷자락이 날리는데서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다] [소매물도 벼랑끝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기암괴석들] [소매물도의 전경] 소매물도 본섬 구경을 끝낸 우리는 옆에 붙어있는 작은 섬, 등대섬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등대섬은 그동안 이름이 특별히 없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명명되었다 한다, '등대섬'으로. 별다를 것이 없는 이름이라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부르는게 제일 좋은거다. 이 소매물도 등대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로 꼽힌다. 푸른 초원의 경사면에 세워진 등대는 영화와 CF에도 많이 등장했으며(필자 주: 크라운 제과의 '쿠크다스'가 여기서 촬영되었다) 관광사진이나 포스터에도 곧잘 소개된다. 등대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다행히 물이 거의 빠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건널수도 있겠건만 얼른 건너가고 싶다는 조바심때문인지 몰라도 물이 빠지는 속도가 너무나 더디다. 기다리기를 약 10분여, 지루함마저 느끼고 있던 우리는 결단을 감행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다 횡단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콜리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섬을 건너온 후, 무언가 이루어냈다는 성취감때문인지, 순간 긴장이 풀렸던 탓인지 몰라도 배고픔이 몰려왔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온 맛나는 '충무김밥'을 꺼냈다. 특히 이 충무김밥은 충무, 통영지역에서 만든 원조여서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나는 왜 충무김밥이 탄생되었고 어쩌다가 이 김밥이 유명해졌는지 애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충무김밥] 다음은 신문에서 발췌한 '충무김밥의 유래'에 관한 기사내용이다. ------------------------------- [한국의 맛](34)충무김밥 [속보, 생활/문화] 2003년 07월 10일 (목) 16:54 남해안의 대표적 수산도시인 경남 통영시는 ‘미항(美港)’으로 이름높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름다운 바다 등 자연환경 덕분에 윤이상·유치환·유치진·김춘수·박경리 등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이들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생멸치찌개·굴밥 등 남해안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들이다. 요즘은 어디에서라도 맛볼 수 있는 충무김밥도 통영 바다가 낳은 향토음식의 하나다. 충무김밥은 일반 김밥이 신세대의 취향에 따라 속 재료를 달리하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밥만 김으로 말아놓은 ‘말 그대로 김·밥’과 ‘따로 반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일반 김밥처럼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에 상하지 않게 분리- 충무김밥의 명칭은 충무시에서 비롯됐다. 통영군의 통영읍이 1955년 시로 승격되면서 이순신장군의 시호를 따 탄생한 충무시는 95년 통영군과의 재통합으로 통영시가 되면서 사라졌다. 충무시가 없어지자 충무김밥도 통영김밥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이름이 바뀔 수는 없었다. ◇충무김밥의 유래=상인들에 따르면 충무김밥은 대략 60~70년전쯤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통영(충무)은 부산·여수·거제 등을 오가는 뱃길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뱃머리 주변에는 광주리에 삶은 감자나 빵, 김밥 등을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여객선 등 손님들에게 파는 행상이 많았다고 한다. -고소한 김밥과 오징어무침 잘맞아- 하지만 일반 김밥은 바닷가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쉽게 쉬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김밥과 반찬을 분리해 판 것이 충무김밥이라는 설명이다. 또 주먹밥과 반찬을 따로 팔다 주먹밥이 김밥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행상들은 이렇게 생긴 충무김밥을 처음에는 주로 대나무 꼬챙이에 김밥과 반찬(주꾸미·홍합·무김치 등)을 줄줄이 끼워 판매했는데 술꾼들이 안주로 반찬만 사가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충무김밥은 결국 50~60년대를 거치면서 이 지역 김밥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또 80년대 들어서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가요제·전통예술제 등으로 꾸며진 ‘국풍(國風)81’에 ‘원조 뚱보할매김밥’의 어두이 할머니(당시 74세·94년 작고)가 충무김밥을 갖고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통영 중앙동 문화마당 앞 충무김밥 거리에 있는 할머니의 김밥집은 현재 며느리 윤흥석씨(47)가 물려받아 운영중이다. ◇충무김밥 거리=통영 중앙동 문화마당 앞과 서호동의 여객선터미널 주변, 도남동의 유람선터미널 인근 등에 충무김밥집이 10여군데씩 줄지어 있어 충무김밥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과거 여객선터미널이었던 중앙동 문화마당 앞 충무김밥집들은 충무김밥의 탄생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너도 나도 ‘원조’ ‘할매’ ‘60년’ 등의 간판을 내걸고 24시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조 자리를 놓고 법적 다툼은커녕 특별한 싸움조차 전혀 없었다는 점이 넉넉한 인심을 짐작케 한다. 평균 규모가 7~8평에 불과한 이곳의 김밥집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충무김밥의 참맛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 맛있는 고성 쌀로 밥을 짓고 완도 등지의 좋은 김을 써 향긋하고 고소한 김밥 맛을 낸다. 여기에다 오징어와 어묵 등을 양념에 버무린 무침, 큼직큼직하게 썰어놓은 무김치 등의 반찬과 시래기국이나 조개국 등을 내놓는다. 1인분은 김밥 8조각에 적당한 양의 반찬과 국물을 곁들여 3,000원. 생산량과 가격 등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무침 재료는 한때 주꾸미, 참홍합, 갑오징어 등이 사용될 때도 있었다. -80년대 ‘국풍’축제때 선보여 유명- ◇충무김밥 축제=통영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는 통영국제음악제, 한산대첩제, 나전칠기축제 등이다. 이들 행사의 먹거리장터 등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간편한 충무김밥이다. 올들어서는 지난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부대행사의 하나로 충무김밥 축제가 마련되기도 했다. 당시 음악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도 제공된 충무김밥은 담백한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 통영시는 앞으로 경기 과천시 등 자매도시의 축제 등에 전통 충무김밥을 소개하기로 하는 등 향토음식 육성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통영 향토사를 연구한 도산면사무소 공무원 김성찬씨(45)는 “충무김밥 등 독창성이 돋보이는 향토음식과 관련, 상표등록 등을 통한 브랜드가치 창출에 소홀했던 점이 없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시가 향토음식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철기자 ycpark@kyunghyang.com/ --------------------------------------- 맛나는 식사를 마친 후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 등대로 향했다. 등대로 향하는 길에는 고운 빛깔의 목책(木柵)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주위에 야생화가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소매물도 등대섬은 정말 나의 마음을 한없이 맑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등대섬으로 건너와보니 어느새 바닷물이 다 빠져있다. 조금만 더 기다렸어도 좋았을것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소매물도 등대의 모습. 하이얀 빛깔의 아름다운 등대다] [등대섬의 전경] [등대섬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본 모습. 정말 이태리 카프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섬이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 무엇을 기원하며 저렇게 정성들여 쌓았을까?] [저멀리 보이는 이름모를 섬. 이글을 쓰면서 궁금해 지도책을 들춰보았더니 '소지도'라는 작은 섬이었다] 등대섬 구경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해녀아주머니께서 나타나시더니 우리를 부르신다. 처음에는 사투리가 너무 심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얘기를 듣다보니깐 '이 그물이 너무 무거우니 같이 좀 당겨주라.' 그런 얘기였다. 죠셉이 팔을 걷어부치고 돕기에 나섰다. [해녀아주머니와 그물망을 끌고있는 죠셉. 풍경도 풍경이지만 삶의 모습 찍기를 좋아하는 죠셉은 그렇지 않아도 몰래 해녀를 찍으라며 나에게 마구 손짓을 보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이렇게 부탁을 해오실 줄이야] 일을 끝내고 돌아온 죠셉,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끌기에도 벅찬데 이런거를 평상시에 저 아주머니들이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는 것이다. ... 소매물도로 돌아왔다. 죠셉과 나는 섬을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표지판을 보니깐 '일출/일몰 전망대'가 있었다. 기왕 여기까지 와서 그런걸 못보고 가면 곤란하지. 우리는 전망대 방향으로 발길을 향했다. 엇, 그런데 가면 갈수록 길이 험해지더니 더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풀이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이길이 아닌데... 다시 길을 되짚어 나왔다. 그럼 전망대는 어디있는거야? 하고 있는데, 우리의 눈앞에 이것이 들어왔다. [소매물도의 '일출, 일몰 전망대'라고 추측되어지는 벤치의 모습. -_-;;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전망대보다도 간소하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소매물도 주민들이 기거하는 집에 우리의 눈길이 쏠렸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섬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주인잃은 집들. 거의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파란 지붕에 돌로 벽을 쌓은 소매물도의 가옥. 아직도 섬지방은 이런 흙벽속에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섬여행을 끝내고 나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엉망이 된 신발과 바지가 힘든 하루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섬여행을 끝내고 가려는데 하루종일 짐만 맡아주신 아주머니께 너무 미안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특유의 입심좋은 말투로, '느그 해산물 안하나? 이거좀 사가라!' 그러시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소라와 홍합을 '만원'어치 샀다. ^^ 그리고는 '아주머니, 이번에는 죄송하구요, 다음에 꼭 다시 올께요.' 그랬더니 아주머니 이번에는, '그라면서 한번도 안온다.' 하신다. 그말에서 섬 아낙의 억척스러움과 또한 섬사람들이 외지인을 어떻게 기본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소매물도 부두의 모습. 소박함이 물씬 느껴진다] ... 소매물도는 봄이나 가을철이 훨씬 더 돌아보기에 좋다한다. 여름에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 좋은 여행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 한다. 이제 얼마 안남은 가을이 오면 '가을의 소매물도'를 보러 다시 한번 가볼까? 아니면 또 다른 아름다운 우리 섬을 찾아 떠나가 보는것도 좋을 것 같고. ▒ ▒ C l u b M e d i t e r r a n e a n ▒ ▒
밖은 컴컴해서 풍경같은 것은 기대도 할 수 없고, 저 앞쪽의 아이는 컴컴하고 덜컹거리는 차안이 여간 못마땅한게 아닌지 연신 칭얼대며 엄마를 보채고 있었다.
심야버스를 타고 하는 두번째 여행...
적잖이 피곤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도 생기고...
이번에 한국을 떠나는 죠셉이 아름다운 추억을 한보따리 싸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예상시간보다 30분 일찍 통영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새벽 4시 30분. 늘 그렇듯 심야버스들은 빨리 달린다.
실비가 흩뿌리는 통영 버스 터미널. 마음이 조금 착찹했다.
우리는 7시 첫배가 떠날때까지 그렇게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
통영 여객선 터미널로 왔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10분거리다.
택시요금이 2000원이 나왔으니 넷이서 버스를 타는 것보다도 싼 요금이다.
이곳에서 소매물도와 비진도를 가는 배를 탄다.
지금 새벽 5시인데 물론 직원들은 아직 출근전이다.
오늘 아침도 어제 아침처럼 출항이 취소가 되면 어쩐다지...? 물어볼 데도 없고 답답했다.
하긴 이번 여행은 불안감의 연속이다.
출발하기 며칠전 날짜를 구성할때 일기예보를 참고해 비가 덜 내릴것 같은 날을 잡은게 오늘이었는데 막상 출발당일이 되자 이쪽지역에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고 정말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나를 괴롭혔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을 할때의 일이다.
주일학교에서는 여름이 되면 캠프를 가는데 항상 비가 내릴때를 대비해 프로그램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준비했다면서 얘기하는 것이 바로 '우천시 강행'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우천시 강행'을 해야 하나...?
막무가내로 진행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판단하는 게 가장 현명한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되물었다.
내 경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장 유사한 자료를 뽑아들려했지만 이번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실수하면 안되었다.
나 하나의 실수로 인해 몇명의 시간과 금전과 그밖의 무형의 것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가라고 생각할때 정말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책임은 언제나 힘들다.
다행이다. 배가 간단다.
표를 끊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마침내 배에 올랐다.
배는 예상했던 대로 크기는 조금 작았지만 그런대로 믿음직해보였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니 선실의 구명장비나 시설 등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아마도 내가 유럽여행에서 그쪽의 배시설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소매물도로 가는 배의 모습.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배였다]
배에 타고 뒷갑판에서 조금 구경을 하다가 하늘도 너무 찌푸리고 이슬비가 제법 내려 더이상 구경하기를 포기하고 선실로 들어왔다.
조금 앉아있자니 버스에서 시달리다 제대로 자지 못한 피로가 몰려와 나는 이내 곯아 떨어졌다.
갑자기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눈을 떠보니 배가 도착했단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배에서 선원의 도움을 받고 내리자 난생처음 구경하는 외딴 섬의 풍경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부두에는 섬 아주머니들이 나와 연신 민박을 하고 가라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민박 안할거라며 아주머니들을 지나왔지만 그래도 아주머니들은 굴하지 않고 우리를 따라왔다.
숙박을 안해도 좋으니 자신의 집에 짐이라도 맡겨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소매물도 부두의 풍경. 오른쪽 아래에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내 원래 생각은 소매물도에 작은 여객 사무실이라도 있으면 거기에 반나절만 짐을 맡겨 놓으려 했었다.
그런데 작은 부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섬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는데 짐을 놔둬도 된다는 아주머니의 제의에 사실 귀가 솔깃했다.
선뜻 결정을 못하는 우리를 아주머니는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며 '끌고' 집으로 가셨다.
섬 아낙들의 걸쭉한 입담에 '서울 촌놈'들은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면서도 흐뭇하게 이끌려갔다.
거기는 야무진 서울깍쟁이들이 사는 곳이 아닌 '외딴 섬' 소매물도였다.
짐을 풀고 섬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십여분 올라가자 제법 큰 산장이 나타났다.
뭔가하고 봤더니 티비에서 봤던 바로 그 소매물도 분교다!
[소매물도 분교의 전경과 수국]
학교를 개조하여 카페로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가려하자 저쪽의 어떤 사람이 비가 와서 '더러워진다'며 못들어오게 했다.
그렇다면 카페는 아니고 숙소개념인 모양인데 왜 밖의 간판은 식사, 커피같은 것을 적어놓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예전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교정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힐 하우스라는 산장으로 변신한 예전 소매물도 분교의 모습. '내실있는 교육, 정직한 사람'이라는 슬로건이 그곳이 학교자리였을 말해주고 있었다] [식사, 커피 라고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식사, 커피 라고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조금더 멀리서 바라본 소매물도 분교의 모습]
그곳을 떠나 우리는 등대가 있는 '등대섬'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잠시 등대와 유사하게 생긴 천문대같은 곳에 가게 되었다.
다들 등대가 이상하군..? 생각했는데 등대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고 결국 등대섬을 찾아 다시 출발했다.
[소매물도의 폐허가 된 천문대 위에서.. 멀리 등대섬의 하얀 등대가 보인다]
[죠셉과 대니. 이제 당분간 이런 사진은 못찍겠지?]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5분정도 걷자 이내 눈앞에 소매물도의 비경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었다...
[초록 캔버스와 그위에 사람들이 두발로 그린 오솔길 데생]
[파란색이 예쁜 '닭의 장풀'과 소매물도 단애(斷崖)]
[소매물도 전경]
[길에 까만 콩알같은 대변을 줄줄이 보고 다닌 주범, 흑염소들]
[바위로 점점이 수놓은 소매물도 전경.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땅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
[혼자 '도사놀이'를 하고있는 죠셉.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그의 옷자락이 날리는데서 바람의 세기를 알 수 있다]
[소매물도 벼랑끝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기암괴석들]
[소매물도의 전경]
소매물도 본섬 구경을 끝낸 우리는 옆에 붙어있는 작은 섬, 등대섬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등대섬은 그동안 이름이 특별히 없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명명되었다 한다, '등대섬'으로.
별다를 것이 없는 이름이라고? 그냥 있는 그대로 부르는게 제일 좋은거다.
이 소매물도 등대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로 꼽힌다.
푸른 초원의 경사면에 세워진 등대는 영화와 CF에도 많이 등장했으며(필자 주: 크라운 제과의 '쿠크다스'가 여기서 촬영되었다) 관광사진이나 포스터에도 곧잘 소개된다.
등대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다행히 물이 거의 빠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건널수도 있겠건만 얼른 건너가고 싶다는 조바심때문인지 몰라도 물이 빠지는 속도가 너무나 더디다.
기다리기를 약 10분여, 지루함마저 느끼고 있던 우리는 결단을 감행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다 횡단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콜리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섬을 건너온 후, 무언가 이루어냈다는 성취감때문인지, 순간 긴장이 풀렸던 탓인지 몰라도 배고픔이 몰려왔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온 맛나는 '충무김밥'을 꺼냈다.
특히 이 충무김밥은 충무, 통영지역에서 만든 원조여서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나는 왜 충무김밥이 탄생되었고 어쩌다가 이 김밥이 유명해졌는지 애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충무김밥]
다음은 신문에서 발췌한 '충무김밥의 유래'에 관한 기사내용이다.
------------------------------- [한국의 맛](34)충무김밥 [속보, 생활/문화] 2003년 07월 10일 (목) 16:54 남해안의 대표적 수산도시인 경남 통영시는 ‘미항(美港)’으로 이름높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름다운 바다 등 자연환경 덕분에 윤이상·유치환·유치진·김춘수·박경리 등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이들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생멸치찌개·굴밥 등 남해안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들이다. 요즘은 어디에서라도 맛볼 수 있는 충무김밥도 통영 바다가 낳은 향토음식의 하나다. 충무김밥은 일반 김밥이 신세대의 취향에 따라 속 재료를 달리하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밥만 김으로 말아놓은 ‘말 그대로 김·밥’과 ‘따로 반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일반 김밥처럼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에 상하지 않게 분리- 충무김밥의 명칭은 충무시에서 비롯됐다. 통영군의 통영읍이 1955년 시로 승격되면서 이순신장군의 시호를 따 탄생한 충무시는 95년 통영군과의 재통합으로 통영시가 되면서 사라졌다. 충무시가 없어지자 충무김밥도 통영김밥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이름이 바뀔 수는 없었다. ◇충무김밥의 유래=상인들에 따르면 충무김밥은 대략 60~70년전쯤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통영(충무)은 부산·여수·거제 등을 오가는 뱃길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뱃머리 주변에는 광주리에 삶은 감자나 빵, 김밥 등을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여객선 등 손님들에게 파는 행상이 많았다고 한다. -고소한 김밥과 오징어무침 잘맞아- 하지만 일반 김밥은 바닷가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쉽게 쉬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김밥과 반찬을 분리해 판 것이 충무김밥이라는 설명이다. 또 주먹밥과 반찬을 따로 팔다 주먹밥이 김밥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행상들은 이렇게 생긴 충무김밥을 처음에는 주로 대나무 꼬챙이에 김밥과 반찬(주꾸미·홍합·무김치 등)을 줄줄이 끼워 판매했는데 술꾼들이 안주로 반찬만 사가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충무김밥은 결국 50~60년대를 거치면서 이 지역 김밥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또 80년대 들어서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가요제·전통예술제 등으로 꾸며진 ‘국풍(國風)81’에 ‘원조 뚱보할매김밥’의 어두이 할머니(당시 74세·94년 작고)가 충무김밥을 갖고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통영 중앙동 문화마당 앞 충무김밥 거리에 있는 할머니의 김밥집은 현재 며느리 윤흥석씨(47)가 물려받아 운영중이다. ◇충무김밥 거리=통영 중앙동 문화마당 앞과 서호동의 여객선터미널 주변, 도남동의 유람선터미널 인근 등에 충무김밥집이 10여군데씩 줄지어 있어 충무김밥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과거 여객선터미널이었던 중앙동 문화마당 앞 충무김밥집들은 충무김밥의 탄생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너도 나도 ‘원조’ ‘할매’ ‘60년’ 등의 간판을 내걸고 24시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조 자리를 놓고 법적 다툼은커녕 특별한 싸움조차 전혀 없었다는 점이 넉넉한 인심을 짐작케 한다. 평균 규모가 7~8평에 불과한 이곳의 김밥집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충무김밥의 참맛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 맛있는 고성 쌀로 밥을 짓고 완도 등지의 좋은 김을 써 향긋하고 고소한 김밥 맛을 낸다. 여기에다 오징어와 어묵 등을 양념에 버무린 무침, 큼직큼직하게 썰어놓은 무김치 등의 반찬과 시래기국이나 조개국 등을 내놓는다. 1인분은 김밥 8조각에 적당한 양의 반찬과 국물을 곁들여 3,000원. 생산량과 가격 등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무침 재료는 한때 주꾸미, 참홍합, 갑오징어 등이 사용될 때도 있었다. -80년대 ‘국풍’축제때 선보여 유명- ◇충무김밥 축제=통영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는 통영국제음악제, 한산대첩제, 나전칠기축제 등이다. 이들 행사의 먹거리장터 등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간편한 충무김밥이다. 올들어서는 지난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부대행사의 하나로 충무김밥 축제가 마련되기도 했다. 당시 음악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도 제공된 충무김밥은 담백한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 통영시는 앞으로 경기 과천시 등 자매도시의 축제 등에 전통 충무김밥을 소개하기로 하는 등 향토음식 육성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통영 향토사를 연구한 도산면사무소 공무원 김성찬씨(45)는 “충무김밥 등 독창성이 돋보이는 향토음식과 관련, 상표등록 등을 통한 브랜드가치 창출에 소홀했던 점이 없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시가 향토음식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철기자 ycpark@kyunghyang.com/ ---------------------------------------
[한국의 맛](34)충무김밥
[속보, 생활/문화] 2003년 07월 10일 (목) 16:54
남해안의 대표적 수산도시인 경남 통영시는 ‘미항(美港)’으로 이름높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아름다운 바다 등 자연환경 덕분에 윤이상·유치환·유치진·김춘수·박경리 등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이들의 또 다른 자랑거리가 생멸치찌개·굴밥 등 남해안의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들이다.
요즘은 어디에서라도 맛볼 수 있는 충무김밥도 통영 바다가 낳은 향토음식의 하나다.
충무김밥은 일반 김밥이 신세대의 취향에 따라 속 재료를 달리하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밥만 김으로 말아놓은 ‘말 그대로 김·밥’과 ‘따로 반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일반 김밥처럼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에 상하지 않게 분리-
충무김밥의 명칭은 충무시에서 비롯됐다.
통영군의 통영읍이 1955년 시로 승격되면서 이순신장군의 시호를 따 탄생한 충무시는 95년 통영군과의 재통합으로 통영시가 되면서 사라졌다.
충무시가 없어지자 충무김밥도 통영김밥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이름이 바뀔 수는 없었다.
◇충무김밥의 유래=상인들에 따르면 충무김밥은 대략 60~70년전쯤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통영(충무)은 부산·여수·거제 등을 오가는 뱃길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뱃머리 주변에는 광주리에 삶은 감자나 빵, 김밥 등을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여객선 등 손님들에게 파는 행상이 많았다고 한다.
-고소한 김밥과 오징어무침 잘맞아-
하지만 일반 김밥은 바닷가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쉽게 쉬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김밥과 반찬을 분리해 판 것이 충무김밥이라는 설명이다.
또 주먹밥과 반찬을 따로 팔다 주먹밥이 김밥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행상들은 이렇게 생긴 충무김밥을 처음에는 주로 대나무 꼬챙이에 김밥과 반찬(주꾸미·홍합·무김치 등)을 줄줄이 끼워 판매했는데 술꾼들이 안주로 반찬만 사가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충무김밥은 결국 50~60년대를 거치면서 이 지역 김밥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또 80년대 들어서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가요제·전통예술제 등으로 꾸며진 ‘국풍(國風)81’에 ‘원조 뚱보할매김밥’의 어두이 할머니(당시 74세·94년 작고)가 충무김밥을 갖고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통영 중앙동 문화마당 앞 충무김밥 거리에 있는 할머니의 김밥집은 현재 며느리 윤흥석씨(47)가 물려받아 운영중이다.
◇충무김밥 거리=통영 중앙동 문화마당 앞과 서호동의 여객선터미널 주변, 도남동의 유람선터미널 인근 등에 충무김밥집이 10여군데씩 줄지어 있어 충무김밥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과거 여객선터미널이었던 중앙동 문화마당 앞 충무김밥집들은 충무김밥의 탄생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들은 너도 나도 ‘원조’ ‘할매’ ‘60년’ 등의 간판을 내걸고 24시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조 자리를 놓고 법적 다툼은커녕 특별한 싸움조차 전혀 없었다는 점이 넉넉한 인심을 짐작케 한다.
평균 규모가 7~8평에 불과한 이곳의 김밥집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충무김밥의 참맛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 맛있는 고성 쌀로 밥을 짓고 완도 등지의 좋은 김을 써 향긋하고 고소한 김밥 맛을 낸다.
여기에다 오징어와 어묵 등을 양념에 버무린 무침, 큼직큼직하게 썰어놓은 무김치 등의 반찬과 시래기국이나 조개국 등을 내놓는다.
1인분은 김밥 8조각에 적당한 양의 반찬과 국물을 곁들여 3,000원.
생산량과 가격 등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무침 재료는 한때 주꾸미, 참홍합, 갑오징어 등이 사용될 때도 있었다.
-80년대 ‘국풍’축제때 선보여 유명-
◇충무김밥 축제=통영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는 통영국제음악제, 한산대첩제, 나전칠기축제 등이다.
이들 행사의 먹거리장터 등에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간편한 충무김밥이다.
올들어서는 지난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부대행사의 하나로 충무김밥 축제가 마련되기도 했다.
당시 음악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도 제공된 충무김밥은 담백한 맛으로 호평을 받았다.
통영시는 앞으로 경기 과천시 등 자매도시의 축제 등에 전통 충무김밥을 소개하기로 하는 등 향토음식 육성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통영 향토사를 연구한 도산면사무소 공무원 김성찬씨(45)는 “충무김밥 등 독창성이 돋보이는 향토음식과 관련, 상표등록 등을 통한 브랜드가치 창출에 소홀했던 점이 없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시가 향토음식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철기자 yc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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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는 식사를 마친 후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 등대로 향했다.
등대로 향하는 길에는 고운 빛깔의 목책(木柵)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주위에 야생화가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소매물도 등대섬은 정말 나의 마음을 한없이 맑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등대섬으로 건너와보니 어느새 바닷물이 다 빠져있다. 조금만 더 기다렸어도 좋았을것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소매물도 등대의 모습. 하이얀 빛깔의 아름다운 등대다]
[등대섬의 전경]
[등대섬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본 모습. 정말 이태리 카프리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섬이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 무엇을 기원하며 저렇게 정성들여 쌓았을까?]
[저멀리 보이는 이름모를 섬. 이글을 쓰면서 궁금해 지도책을 들춰보았더니 '소지도'라는 작은 섬이었다]
등대섬 구경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해녀아주머니께서 나타나시더니 우리를 부르신다.
처음에는 사투리가 너무 심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얘기를 듣다보니깐 '이 그물이 너무 무거우니 같이 좀 당겨주라.' 그런 얘기였다. 죠셉이 팔을 걷어부치고 돕기에 나섰다.
[해녀아주머니와 그물망을 끌고있는 죠셉. 풍경도 풍경이지만 삶의 모습 찍기를 좋아하는 죠셉은 그렇지 않아도 몰래 해녀를 찍으라며 나에게 마구 손짓을 보냈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이렇게 부탁을 해오실 줄이야]
일을 끝내고 돌아온 죠셉,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왜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끌기에도 벅찬데 이런거를 평상시에 저 아주머니들이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는 것이다.
소매물도로 돌아왔다.
죠셉과 나는 섬을 좀더 둘러보기로 했다.
표지판을 보니깐 '일출/일몰 전망대'가 있었다.
기왕 여기까지 와서 그런걸 못보고 가면 곤란하지. 우리는 전망대 방향으로 발길을 향했다.
엇, 그런데 가면 갈수록 길이 험해지더니 더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풀이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이길이 아닌데...
다시 길을 되짚어 나왔다. 그럼 전망대는 어디있는거야? 하고 있는데, 우리의 눈앞에 이것이 들어왔다.
[소매물도의 '일출, 일몰 전망대'라고 추측되어지는 벤치의 모습. -_-;;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전망대보다도 간소하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소매물도 주민들이 기거하는 집에 우리의 눈길이 쏠렸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섬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주인잃은 집들. 거의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파란 지붕에 돌로 벽을 쌓은 소매물도의 가옥. 아직도 섬지방은 이런 흙벽속에서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섬여행을 끝내고 나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엉망이 된 신발과 바지가 힘든 하루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섬여행을 끝내고 가려는데 하루종일 짐만 맡아주신 아주머니께 너무 미안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특유의 입심좋은 말투로, '느그 해산물 안하나? 이거좀 사가라!' 그러시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소라와 홍합을 '만원'어치 샀다. ^^
그리고는 '아주머니, 이번에는 죄송하구요, 다음에 꼭 다시 올께요.' 그랬더니 아주머니 이번에는, '그라면서 한번도 안온다.' 하신다.
그말에서 섬 아낙의 억척스러움과 또한 섬사람들이 외지인을 어떻게 기본적으로 생각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소매물도 부두의 모습. 소박함이 물씬 느껴진다]
소매물도는 봄이나 가을철이 훨씬 더 돌아보기에 좋다한다.
여름에는 햇살이 너무 강렬해 좋은 여행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 한다.
이제 얼마 안남은 가을이 오면 '가을의 소매물도'를 보러 다시 한번 가볼까?
아니면 또 다른 아름다운 우리 섬을 찾아 떠나가 보는것도 좋을 것 같고.
▒ ▒ C l u b M e d i t e r r a n e a n ▒ ▒
첫댓글 호호...여기도 글남겨야짐~~ ^^ 저도 남이섬 무지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가울낙엽 떨어질때나 아님...눈이 소복소복 쌓일때 갈려구요... ^0^ 생각만해도 조아조아~~
아-가보고싶네요....ㅠ.ㅜ예전에 SBS 동물농장에 나온곳 아닌가요??음..
눈송이님,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느라고 바뿌시네염~~ ^^ 남이섬이라... 남이섬이 많이바뀌어서 좋아졌다던데...
지존님, 좋져? 나중에 함 가보셔요. 그리고 동물농장이었나? 그건 몰겠는데 암튼 최근에 티비에 나왔었져.
저두 동물농장인진 모르지만 tv에서 본듯한데 정말 연출아냐하는 의심(?)이들정도로 멋있네엽^^ 당장 떠나고픈충동이 울컥~~~!!우와~가고프당...
여기저기?? 여행매냐랑 여기만 열씨미 출석도장 찍으러 오져~~ ^0^ 어머~ 그거 모르셨어요?? ㅋㅋ
넘 좋아보인다! 담주에 대구에있는 절에 여행가는데... 갔다와서 사진올릴께요! ^^
멋지네요~사실 외국은 들락날락 잘도 하면서 설악산 외엔 가본곳이 없을정도로 우리나라 여행에 문외한이네요..누가 제주도가자면 돈 보태서 태국 가자구 꼬시는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구요..정말 카프리 부럽지 않은곳이네요!!그리고 조셉님의 근황이 궁금했는데 미국에 계시다구요? 건강하게 공부 열씨미하구오세요
깜씨공주님,방가방가~ 소매물도 반응이 장난이 아니네염. 난리가 났어염. 당장 떠나고픈 맘이 들땐... 떠나세염!! 대신 회사에다가는 잘 말하고 가야졈. ㅋㅋ
눈송이님, 여기서 '여기 저기'란 '여행매냐'와 '지중해 클럽'을 얘기하는 거져. 암튼 눈송이님 더 열심히 도장을 찍으셔야할듯. 저말고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어염. 흑흑... 님의 능력을 보여주세여!
행복아, 그래, 언능갔다와서 올려봐. 근데 무슨 절이야?
빠식걸님, 방가여~ 그렇져. 다들 그렇잖아여. 저도 이번에 외국에 나가서 그쪽 관광지 보면서 '내가 우리나라는 얼마나 여행을 했던가?'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었져. 그래서 간것이 이번 여행이랍니다. 님도 이제부터 한번 다녀보심이...
올만에 글올리셨네요...웬지 지중해 소년님이 글을 안올리면 주인없는집에 무단침입하는거 같은느낌이....먼저 글못올리게써요...슬그머니 구경만...ㅎ 지중해소년님이 한번 등장하니 이러케나 리플이 마니 달리네요^^소매물도..첨들어봄...어떤사진은 얼핏 제주도 같다는..
안녕하세요^^ 리플은 첨인데..^^; 지중해 소년 님 글 너무 재밌게 읽고 있어요~^o^ 국내여행이네요? 놀랬어요..배낭여행은 끝이 난건가요?
난다고레님, 그게 무슨 소리야요... 글을 못올리시다니. 저는 항상 여러분의 글을 기다리고 있지요.. 저만 글을 올리는게 얼마나 뻘쭘한지 아세요..? 그러니 제발좀 올려주세욧!!! ^^
백성님, 안냐세염~~ 가입하신지는 좀 되셨죠? 이제야 말씀을 나누게 되었네요. 그런데 자주 들어오지는 않으시는듯. ^^; 제가 당분간 여행기를 쉬게되었져, 사정이 있어서. 자주 놀러오세여~ 그럼이만~~
사진 안보여여 --;;;;
나두 사진안보인당...
카페가 점점 커지네요. 축하해요! ^^ 글은 첨으로 남기는 것 같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정신 없는데, 여기 오니까 옛날여행갔던 생각나고 좋네요. 나도 추석 즈음엔 사진 정리 함 해야겠다. ^^
저도 해외로 배낭여행다닐 생각만 했지 국내여행은 자주 못했네여... 우리나라도 엄청 이쁜디....
와, 사진보인당!~ 사진이 없는 여행기는 그 나름의 읽는 재미가 있는데 사진이 있는데 안보이는 글은 왠지 참 답답해 미치겠더라구여. ㅋㅋㅋ 근데 난 왜 사진올리기가 안되는 것이여~ ㅡㅜ;;; 암튼 밤차로 국내여행하는것 무지 해보고 싶어지네여~ ^^;
그쳐? 있는게 빤히 보이는데 안나오면 그거 환장하지여. 근데 사진이안보이던게 음모가 있다라구염. 이 사진포탈 애들이 자기네 서버에 트래픽 증가하니깐 정기적으로 파일명을 살짝 바꾸고 있더라구여. 그래서 사진이 안보였던 것임. 흠~ 고얀 녀석들!
음... 여기군요. 형이 내 신발 쎕쳐신고 여행갔다가 완존히 버려가구 왔져... ㅡㅜ
아, 진아, 저게 니 신발이었냐?? @.@~ 신발꼴이 말이 아니구만... 여러분, 참고로 젤 왼쪽이 죠셉의 신발이랍니다.. ㅋㅋ
방가 방가!!! 저도 소매물도에 가보았더랬어욧!!!! 정말 좋았죠. ^^ 저도 사진 있는데 언제 함 올려봐도 될런지요. ㅋㅋㅋ ^^;
그녀3님, 그럼여! 언제든지 올리시기만 하면 대환영~!
저두 여기갔다왔는데.. 비가왔네여.. 전 날씨가 넘 좋아서 사진이 대기 잘나왔는데~ ^^;
첫댓글 호호...여기도 글남겨야짐~~ ^^ 저도 남이섬 무지 가보고 싶어요~ 그래서 가울낙엽 떨어질때나 아님...눈이 소복소복 쌓일때 갈려구요... ^0^ 생각만해도 조아조아~~
아-가보고싶네요....ㅠ.ㅜ예전에 SBS 동물농장에 나온곳 아닌가요??음..
눈송이님,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느라고 바뿌시네염~~ ^^ 남이섬이라... 남이섬이 많이바뀌어서 좋아졌다던데...
지존님, 좋져? 나중에 함 가보셔요. 그리고 동물농장이었나? 그건 몰겠는데 암튼 최근에 티비에 나왔었져.
저두 동물농장인진 모르지만 tv에서 본듯한데 정말 연출아냐하는 의심(?)이들정도로 멋있네엽^^ 당장 떠나고픈충동이 울컥~~~!!우와~가고프당...
여기저기?? 여행매냐랑 여기만 열씨미 출석도장 찍으러 오져~~ ^0^ 어머~ 그거 모르셨어요?? ㅋㅋ
넘 좋아보인다! 담주에 대구에있는 절에 여행가는데... 갔다와서 사진올릴께요! ^^
멋지네요~사실 외국은 들락날락 잘도 하면서 설악산 외엔 가본곳이 없을정도로 우리나라 여행에 문외한이네요..누가 제주도가자면 돈 보태서 태국 가자구 꼬시는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구요..정말 카프리 부럽지 않은곳이네요!!그리고 조셉님의 근황이 궁금했는데 미국에 계시다구요? 건강하게 공부 열씨미하구오세요
깜씨공주님,방가방가~ 소매물도 반응이 장난이 아니네염. 난리가 났어염. 당장 떠나고픈 맘이 들땐... 떠나세염!! 대신 회사에다가는 잘 말하고 가야졈. ㅋㅋ
눈송이님, 여기서 '여기 저기'란 '여행매냐'와 '지중해 클럽'을 얘기하는 거져. 암튼 눈송이님 더 열심히 도장을 찍으셔야할듯. 저말고는 글을 쓰는 사람이 없어염. 흑흑... 님의 능력을 보여주세여!
행복아, 그래, 언능갔다와서 올려봐. 근데 무슨 절이야?
빠식걸님, 방가여~ 그렇져. 다들 그렇잖아여. 저도 이번에 외국에 나가서 그쪽 관광지 보면서 '내가 우리나라는 얼마나 여행을 했던가?'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었져. 그래서 간것이 이번 여행이랍니다. 님도 이제부터 한번 다녀보심이...
올만에 글올리셨네요...웬지 지중해 소년님이 글을 안올리면 주인없는집에 무단침입하는거 같은느낌이....먼저 글못올리게써요...슬그머니 구경만...ㅎ 지중해소년님이 한번 등장하니 이러케나 리플이 마니 달리네요^^소매물도..첨들어봄...어떤사진은 얼핏 제주도 같다는..
안녕하세요^^ 리플은 첨인데..^^; 지중해 소년 님 글 너무 재밌게 읽고 있어요~^o^ 국내여행이네요? 놀랬어요..배낭여행은 끝이 난건가요?
난다고레님, 그게 무슨 소리야요... 글을 못올리시다니. 저는 항상 여러분의 글을 기다리고 있지요.. 저만 글을 올리는게 얼마나 뻘쭘한지 아세요..? 그러니 제발좀 올려주세욧!!! ^^
백성님, 안냐세염~~ 가입하신지는 좀 되셨죠? 이제야 말씀을 나누게 되었네요. 그런데 자주 들어오지는 않으시는듯. ^^; 제가 당분간 여행기를 쉬게되었져, 사정이 있어서. 자주 놀러오세여~ 그럼이만~~
사진 안보여여 --;;;;
나두 사진안보인당...
카페가 점점 커지네요. 축하해요! ^^ 글은 첨으로 남기는 것 같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정신 없는데, 여기 오니까 옛날여행갔던 생각나고 좋네요. 나도 추석 즈음엔 사진 정리 함 해야겠다. ^^
저도 해외로 배낭여행다닐 생각만 했지 국내여행은 자주 못했네여... 우리나라도 엄청 이쁜디....
와, 사진보인당!~ 사진이 없는 여행기는 그 나름의 읽는 재미가 있는데 사진이 있는데 안보이는 글은 왠지 참 답답해 미치겠더라구여. ㅋㅋㅋ 근데 난 왜 사진올리기가 안되는 것이여~ ㅡㅜ;;; 암튼 밤차로 국내여행하는것 무지 해보고 싶어지네여~ ^^;
그쳐? 있는게 빤히 보이는데 안나오면 그거 환장하지여. 근데 사진이안보이던게 음모가 있다라구염. 이 사진포탈 애들이 자기네 서버에 트래픽 증가하니깐 정기적으로 파일명을 살짝 바꾸고 있더라구여. 그래서 사진이 안보였던 것임. 흠~ 고얀 녀석들!
음... 여기군요. 형이 내 신발 쎕쳐신고 여행갔다가 완존히 버려가구 왔져... ㅡㅜ
아, 진아, 저게 니 신발이었냐?? @.@~ 신발꼴이 말이 아니구만... 여러분, 참고로 젤 왼쪽이 죠셉의 신발이랍니다.. ㅋㅋ
방가 방가!!! 저도 소매물도에 가보았더랬어욧!!!! 정말 좋았죠. ^^ 저도 사진 있는데 언제 함 올려봐도 될런지요. ㅋㅋㅋ ^^;
그녀3님, 그럼여! 언제든지 올리시기만 하면 대환영~!
저두 여기갔다왔는데.. 비가왔네여.. 전 날씨가 넘 좋아서 사진이 대기 잘나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