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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리풀사진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리풀
중국 윈난성 여행-신비의 낙원 샹그릴라를 찾아서(1)
2012.4.1
‘아름다운 샹그릴라, 사랑스러운 샹그릴라, 나는 그곳을 가슴 깊이 사랑한다. 나는 그곳을 사랑한다. 저 포근히 안기는 산과 산과 물을 보라. 저 붉은 벽과 푸르른 기와를 보라. 마치 신화 속 풍경을 장식해놓은 듯. 저 가지런한 버드나무 가지를 보라. 저 드리워진 꽃가지를 보라. 한 폭의 채색화를 보는 듯. 아, 그리고 저 따뜻한 봄바람, 비단처럼 보드랍다....., 사랑스런 샹그릴라, 아름다운 샹그릴라, 우리가 바라던 고향....’
1933년 영국인 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이 지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은 꿈과 환상이 가득하고 대자연이 살아 숨쉬는 영원한 낙원, 샹그릴라를 아름다운 언어로 노래했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설산과 웅장한 협곡, 순결한 호수와 광활한 초원 등을 만날 수 있다. 이 소설의 등장으로 ’샹그릴라‘라는 단어는 ‘유토피아’ 또는 ‘에덴동산’의 의미로 함께 통용되기 시작했다. 화가, 시인, 음악가, 작가들은 저마다 지상낙원 샹그릴라를 예찬했다. 그들에게는 이곳의 모든 땅이 한 폭의 그림이며, 모든 꽃들이 시가 된다. 또 모든 강물이 곧 노래이고, 모든 새들의 지저귐은 한편의 산문이다.
정말 신비의 낙원, 우리가 꿈에 그리는 유토피아가 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중국인 여행가 탕하이정(黨海政)이 쓴 여행기 '윈난에 가봐야 하는 20가지 이유'(去雲南的20個理由)(박승미 번역)를 보면, 힐턴의 소설을 통해 샹그릴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샹그리라와 관련된 수많은 전설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티베트 불경에는 샹그릴라가 경전에 나오는 샹바라 왕국에서 유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샹그릴라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 즉 에덴동산이나 유토피아를 뜻하는 말이다. 불경에서는 샹그릴라가 칭장고원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샹그릴라는 키가 크고 힘이 센 한 현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땅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은밀한 비밀통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이지않는 문명이 발달한 도시를 왕래하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 비밀통로는 이 세상에서 샹그릴라로 통하는 유일무이한 길로 여겨져 왔고, 사람들에게는 이 통로를 찾는 것이 최대 관건이었다. 티베트 불교 경문에서 희미하게나마 찬란했던 샹바라 왕국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샹바라 왕국은 조물주가 이 세상을 창조했던 장소이자,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가 환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그곳은 설산, 빙천, 협곡, 삼림, 초목, 호수 등이 펼쳐진 곳이며, 아름답고 명랑하고 평화와 안정이 깃든 곳이다. 그곳에는 슬픔도 가난도 질병도 없고, 언제나 아름답고 맛있는 먹을거리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샹그릴라의 전설이 수많은 불교신자와 세계탐험가들을 유혹하듯 이곳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필자 일행은 이제부터 그 신비의 낙원, 지구상의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 머나먼 여행길에 나선다. 비행기로 서울에서 5시간을 날아가면 중국 서남단 윈난(雲南)성의 중심도시 쿤밍(昆明)에 이른다. 그 윈난성 서북부에 '샹그릴라'가 실재 존재한다.
구름이 흐르는 산의 남쪽 윈난. 그곳에는 붉은 등과 버드나무의 천년고성이 있는 리장, 태고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현존 모계사회(母系社會) 루구호, 6천미터 높이의 두 설산 사이를 장엄하게 흐르는 후타오샤(虎跳峽), 조각배 위에서 찬란한 구름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따리(大理) 얼하이, 해가 뜨면 눈부시게 빛나는 메이리설산(梅里雪山)과 위룽설산(玉龍雪山), 인간이 이룩한 대자연의 예술 웬양 다랑논과 동촨 홍토지 등 헤아릴 수 없는 절경이 산재해 있으며, 우리 모두 꿈에 그리던 낙원, 가슴이 후련하도록 탁 트인 샹그릴라(香格里拉) 대평원이 3,200m 고원지대에 숨어 있다.
3월 31일 밤 9시. 필자 일행은 샹그릴라를 가기 위해 쿤밍역에서 열차를 기다린다. 쿤밍역은 꽤 넓다. 대합실에는 밤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북적거린다. 우리나라 서울역이나 다름없는 역풍경이다.
필자 일행은 7박8일의 윈난성 여행을 위해 하루전 이곳 쿤밍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는 왕복 6시간 거리의 동촨(東川) 홍토지(紅土地)를 돌아본 후 리장(麗江)으로 가기 위해 쿤밍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역 구내에는 슈퍼마켓도 있고 각종 토산품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매점도 보인다. 슈퍼마켓에 들어가 16위안(약 3천원)을 주고 보이차 한갑을 샀다. 조그만 케이스에 들어있는 일종의 인스턴트 보이차. 여행 중 가볍게 마셔볼 수 있을 것 같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옆에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젊은 여인이 보인다. 어느 소수민족인지 궁금하다. 영어로 말을 걸어보니 언어가 통하지않는다. 마침 영어가 가능한 그 여인의 남자친구가 통역을 해준다. 구슬로 테를 두른 왕관모양의 화려한 모자와 의상, 소수민족 중 하나인 이족(彛族)의 전통의상이란다. 사진 좀 찍자고 하니 친절하게 포즈를 취해준다. 이 여인은 사실은 한족이다. 본인 자신도 석림(石林) 여행 갔다가 이족 전통모자와 의상을 사입었다고 한다. 중국 내 이족 전체인구는 약 776만명. 윈난, 쓰촨, 꾸이쪼우 등에 주로 산다.
윈난성에는 중국내 26개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양한 민족의 고유문화와 삶의 방식들은 여행객들에게 신비로움과 동화의 세계에 온 듯한 황홀감을 느끼게 해준다. 독특한 양식의 전통가옥, 다채로운 옷차림, 생소한 축제행사, 그들의 정신 속에 흐르는 각종 전통과 신화 등은 여행객들로 하여금 윈난성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예를 들어 위사진에서 보는 이족 여인의 모자는 남자가 함부로 만지면 안된다고 한다. 모자를 만지면 이는 구혼을 의미한다.이족 사회에서는 모자로 처녀와 유부녀를 구분할 수 있도록 처녀들의 모자에는 댕기처럼 늘어진 부분이 있다. 구혼을 해놓고 여자가 승낙하면 혼례 전에 3년간 여자의 집에 가서 머슴살이를 해야 한단다. 결혼지참금 대신에 우리나라의 데릴사위 역할을 해야 하는 셈이다.
드디어 열차 출발시간. 밤 9시 58분에 출발하는 열차는 다음날 아침 7시경 리장역에 도착한다. 아홉시간의 긴 밤여행. 칸 마다 4명이 잘 수 있도록 2층구조로 되어 있는 침대칸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역시 중국은 넓다. 도시간 이동에 열시간 정도는 보통이다. 중국인들은 명절 귀성시에는 몇일씩 걸려 고향에 가기도 한다.
드디어 아침 7시에 리장역 도착. 리장역은 꽤 넓고 현대식이다. 역사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않았단다. 역 정면으로 위룽설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위룽설산은 해발 5,596m의 고산으로 주봉인 싼쯔도우를 중심으로 13개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윈난성에는 위룽설산 뿐 아니라 티벹의 신산(神山)으로 알려진 6,740m의 메이리 설산도 품고 있다. 5천미터 이상의 고산이라 산 정상은 일년 내내 하얀 눈으로 덮혀있어 산 이름 뒤에 '설산(雪山)'이라는 명칭이 붙어다닌다.
이번 여행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예술원 회원이신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부부, 배경숙 시인, 이석례 시인, 그리고 임윤식 시인(필자) 등 5명이 함께 했다. 현지 안내는 이곳 리장에 살고 있는 이석례 시인의 사촌시동생 조나단 씨(닉네임)가 수고해 주기로 했다.
윈난성은 이처럼 고산들이 즐비할 뿐 아니라 도시들 역시 대부분 2,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윈난성의 중심도시인 쿤밍은 해발 1,900m, 리장은 해발 2,400m에 이른다. 지금 우리 일행은 우리나라 한라산 정상보다 높고 백두산 정상에 거의 가까운 높이에 위치한 도시들을 여행하는 셈이다.
필자 일행은 가이드인 조나단 씨 집으로 아침식사 초대를 받았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아파트는 우리나라 어느 아파트에도 뒤지지않는 정도의 현대식 건물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조나단 씨 부인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이석례 시인의 손아래 동서인 그녀는 이석례 시인을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며 오랫만의 만남을 감격스러워했다. 중국생활 7년, 서로간 못본지는 10년이나 됐단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얼마나 외로웠으며, 고국 가족친척들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조나단 씨 부인이 정성스럽게 마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샹그릴라를 향한 여행길에 올랐다.
리장은 나시족(納西族)이 주로 살고 있는 도시다. 시내를 벗어나자 나시족 마을과 전통가옥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멀리 위룽설산의 하얀봉우리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동네 밭에는 복숭아꽃이 한껏 피어 시골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보여준다.
중국 내 나시족 총인구는 약 31만명으로 주로 리장시 꾸청지역이나 위룽나시족자치현에 몰려 산다. 이처럼 나시족은 인구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닌데도 '똥바원(東巴文)'이라고 하는 고유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우수한 민족이다.
리장 시내에서 차로 1시간 쯤 달리면 '장강 제1만'이라는 곳에 이른다.
만리를 흐르는 장강(양쯔강)은 '세계의 지붕' 칭장고원에서 시작되어 윈난으로 흘러들고 란찬강, 누강과 함께 횡단산맥 고원계곡을 지나간다. 이 양쯔강 원류인 진사강은 리장 스구진 지역에 도착하면 갑자기 100도 이상 회전하며 V자 형태의 커다란 물굽이를 이룬다. 사람들은 이를 '장강 제1만(또는 만리 양쯔강 첫번째 물굽이)'라 부른다.
장강 제1만 전망대에 서면 발 아래 강 줄기가 굽이쳐 흐르고 멀리 위룽설산의 웅장한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장강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한참 가면 다리가 나타나고 다리 우측으로 '후타오샤 경구(虎跳峽景區)'라고 쓰여진 높은 안내판을 만난다. 이곳이 후타오샤의 시발점이다. 도로옆에 거리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종뎬(中甸)까지는 119km 거리. 종뎬은 중국정부가 1997년 지명을 샹그릴라로 변경한 구지명이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면 강이 휘여지는 곳에 이른다. 조망이 매우 아름답다. 이 곳이 장강과 진사강이 만나는 곳이다. 위룽설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샹그릴라 들머리도 머지않은 듯 하다.
드디어 차오토우마을에 도착. 이 마을이 바로 후타오샤 트레킹의 들머리이며, 샹글리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일단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샹그릴라를 다녀오기로 한다.
毛家大酒店이라는 이름의 이 숙소 주인여자 의상이 특이하다. 사각 뚜껑의 왕관 모양 모자가 특히 화려하다. 이족 전통의상 중 하나라고 한다.
숙소에서 잠시 배낭을 풀고 점심식사 장소로 향한다. 간판에 '모쒀일가'라는 글이 눈에 띈다. 모쒀인 일가가 운영하는 식당이란 뜻인 것 같다. 모쒀인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나시족(納西族)의 일원으로 통일하였으나 나시족과는 별도로 모쒀인 또는 모쒀족이라 부르기도 하며, 모쒀인은 특히 모계사회의 전통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는 독특한 민족이다.
식당에서 모쒀인 주인 부부와 함께 애기를 낳은지 얼마 안되는 젊은 아들부부도 만났다. 모계사회를 이어가는 모쒀인의 후손. 그들의 삶이 무척 궁금하다.
'중국 윈난성 인문기행 活化石-소수민족문화의 영속성'(박광희 저)에 의하면, 루꾸후(瀘沽湖) 호반의 모쒀인들이 사는 동네 중에는 아직도 그들의 전통을 살려 '남자는 장가들지 않고 여자는 시집가지않은' 채 철저히 모계(母系) 중심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한 가정은 대체로 20여명으로 구성되는 데 아버지만 없다. 모든 친족 내에 한 명의 계승자가 있다. 가정을 이끌 후계자를 '따부'라 하는데 이 따부는 일반적으로 능력있는 부녀자가 맡는다. 따부는 생활 및 종교제사 등을 책임진다. 만약 어느 집에 여자 아이가 없을 경우에는 딸 많은 친척집에서 양녀를 데려온다.
모계사회에서는 '쩌우훈(走婚)'이라는 전통이 살아있다고 한다. 혼인은 하되 결혼은 하지않는다. 즉, 남녀간 성적 관계는 맺지만 결혼은 하지않는다. 각자 자기 어머니 집에 살면서 남자가 밤에 여자 집에 왔다가 새벽이 되면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둘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여자 집안의 구성원이 되고 성씨도 엄마 성을 따른다. 자녀와 생부 간에는 경제적 관계가 없다. 즉, 친아버지라 하더라도 자녀를 경제적으로 부양할 의무가 없다.
모쒀인들의 풍습 중 또 하나는 남녀혼욕이다. 남녀혼욕 기회를 이용해 상대방을 만나기도 한다고 한다. 가을 걷이가 끝난 후 천막과 솥단지, 찹쌀과 고기, 계란 및 술을 싸들고 주변온천으로 목욕가는 모숴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단, 모든 남녀가 공동혼욕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같은 혈연관계에 있는 경우라면 혼욕을 하지않으며, 외지사람이라면 기피하지 않고 거리껴 하거나 수줍어하지않는다고 한다.
이마을에는 모숴인도 있지만 나시족들이 많이 산다. 동네를 지나가다 보면 나시족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동네 어귀에서 만난 어느 나시족 할머니의 복장이 특이하다. 마치 일본여인들 '기모노'를 연상케 하는 복장. 등에 일곱개 별모양의 장식이 달려있다. 이옷은 '치싱피지앤(七星披肩)'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어깨걸이(披肩)'이다. 나시족 여인이라면 처녀건 노인이건 등뒤에 이와같은 '치싱피지앤'을 달고 다니는 게 전통이라 한다. 일 잘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나시족 영웅 '잉구(英古)'를 기리는 뜻에서 대대손손 전해져온 나시족의 전통복식이다.
'치싱피지앤'은 기름끼 도는 털색의 면양피를 반복 가공해 부드럽게 만든 후 그 위에 동그랗게 오색 문양을 넣어 별을 상징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나시족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서 옛날 어릴적 할머니의 모습을 본다. 이곳은 샹그릴라로 가는 들머리. 신비의 낙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인자하셨던 우리 할머니가 이곳 윈난성 샹그릴라 어귀에서 꿈같은 삶을 살고 계신 것 같다. (글,사진/임윤식) (다음 페이지 계속)